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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 연구 부활의 영광 부활의 영광 본문 / 고린도전서 15:1-58 #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으로 부르는데, 고린도전서 쓰여질 상황을 살펴보자. 바울은 2차 전도 여행때 고린도 교회가 개척되었다. 개척 후 3년 정도에 이 서신이 쓰여졌다고 한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 내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린도 세속주의 문화가 침투하여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비도덕적인, 혼란한 신앙 생활(분쟁, 음행, 소송, 만찬 문제, 은사 문제 등)을 하고 있었다. # 15장에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해답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바울 스스로 먼저 꺼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바울이 생각한 터, 이런 문제들이 일어날 이유가 무엇인가 심층적인 문제를 발견했던 것 같다. 거짓 복음에 흔들리..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 고린도전서 15:35~49(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성도가 부활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입었던 것과 같은 몸을 입게 됩니다. 부활의 몸은 아담의 몸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몸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 받은 몸이 죽어야 그 후에 부활의 몸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29~34(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부활 복음은 삶과 무관한 교리나 이론이 아닙니다. 부활 복음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에 이 땅에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우리도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28(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성도의 부활은 몸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이교적인 생각이지 기독교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죽은 자의 부활 고린도전서 15:12~19(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구원은 몸으로부터 구원이 아닙니다. 몸의 구원입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모두 함께 구원을 받습니다. 헬라적인 이원론은 성서적 사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복음서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 고린도전서 15:1~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교회 안에 발생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복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어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였습니다. 이미 받은 바 사도적인 복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이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길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영어로 Christian이다. 이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헤겔에 속한 사람을 헤겔리안, 마르크스에 속한 사람을 막시스트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의 생각과 행동을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예수님처럼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각과 행동을 따르는 사람을 복음서에서 제자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뜻이다. 신자가 따로 있고 제자가 따로 있지 않다. 모든 신자가 곧 제자이다. 믿음은 어떻게 갖게 될까 믿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찾아와서 자신을 보여주시고 사람을 만나주실 ..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마가복음 5:1~20(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참 자아와 거짓 자아를 분리해 내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치유가 시작됩니다. 예수의 이름 안에 거짓 자아를 몰아낼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거짓 자아에 의해 조종 당하는 사람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될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