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창무 2021. 4. 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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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23. 금요기도회 메시지 / 이창무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말씀 / 요한복음 4:35,36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혹시 “쓰리랑 부부”라는 개그 코너를 아십니까? 이 코너를 안 다는 것 자체가 나이대를 인증하는 것입니다. “음메 기죽어 음메 기 살어” “방 빼 못 빼” 이런 대표적인 유행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외에도 이때 만들어진 유행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그것도 하나 딱딱 못 맞춰!” 입니다. 정말 타이밍이 맞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복음서에서 제자들은 항상 예수님께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질 못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타이밍을 딱딱 맞춰 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계속 헛발질을 하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지금 예수님과 어떻게 타이밍을 맞추어야 할 것인가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양식이 무엇인지, 제자들이 함께 먹어야 할 양식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라는 말은 당시 떠돌던 격언입니다. 씨를 뿌리고 거둘 때까지는 최소한 4개월이 걸립니다. 따라서 이 격언은 “일을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추수의 때는 제자들이 생각하듯이 아직 많이 남은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고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는 그때에 영적 추수가 일어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추수의 때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 메시아가 세상에 이미 오셨다.”는 뜻과 같습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에서 추수가 일어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추수는 커녕 씨를 뿌리기에도 아직은 이 땅은 준비되지 않은 척박한 땅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36a)”

여기서 거두는 자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미 삯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어떤 삯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은 34절에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죄에 빠져 목마른 사람을 구원하라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그 일을 완수하심으로 영의 양식을 얻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미 받은 삯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모으게 될 영생에 이르는 열매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바로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께 나아와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될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이미 가져오신 이 영적 추수의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36b)”

추수의 때에 거두는 자가 즐거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한 때 작은 회사의 대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제가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 언제일까요? 바로 거래처로부터 수금하는 날이었습니다. 수금이 되어 회사 통장 잔고의 자릿수가 달라지는 것을 보는 그 순간이 가장 뿌듯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오늘은 내가 쏜다.”를 외치며 회사 근처 제주 오겹살 집에 가서 회식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 날에 추수한 사장만 즐거워 했겠습니까? 제품을 개발하고 납품했던 직원들도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씨를 뿌린 것이 헛되게 사라지지 않고 결실을 맺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거두는 자가 되기까지 그 이전에 뿌린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몇 사람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장 사마리아만 하더라도 오래 전 이곳에 씨를 뿌렸던 엘리야 선지자와 엘리사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북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정말 어려웠던 시기에 고난 가운데 눈물을 씨를 뿌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남유다 출신이지만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아모스 선지자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메시지만 전하고 자신은 사라져 버린 세례 요한이 있습니다. 이들은 씨를 뿌리는 했지만 거두는 일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추수하는 모습을 보고 그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씨 뿌린 것이 헛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꿈 꾸던 것이 드디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추수에 참여한 제자들보다 이들의 감격과 기쁨이 더 진하고 더 크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라보는 캠퍼스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추수하려면 아직도 넉 달이나 남은 땅일까요? 그래서 지금은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리며 씨를 뿌려야 할 때일까요? 코로나 19라는 상황과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의외로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일까요? 당장 서둘러 거두러 나가야 할 때일까요? 모 센터에서는 제 발로 예배를 드리겠다고 찾아 온 새내기가 세 명이나 있었고, 또 다른 모 센터에서는 홍보 영상을 보고 연결된 양들을 일대일 목자와 연결시켜 주기 바쁘다는 소식을 들리니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어느 쪽이 정답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름대로의 예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이 일치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전혀 엇갈리는 경우도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압니다. 밭에 직접 나가보지 않고는 추수할 때인지, 파종할 때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밭을 향해 눈을 들지 않고 바라보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선은 우리가 눈을 들어 우리에게 주어진 저 캠퍼스라는 밭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밭의 현실에 직접 부딪쳐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만약 아직 추수할 때가 아니라면 씨를 뿌리면 됩니다. 추수 때라면 익은 곡식을 거두기만 하면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요즘 많이 지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상황을 견디는 것만 해도 위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내 앞에 닥친 현실만 바라보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눈을 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 시기가 지금이든 미래이든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이라는 영적 현실을 믿음으로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누군가 이미 수고한 일에 우리 모두 참여합시다. 우리도 누군가가 추수할 수 있도록 오늘 씨를 뿌립니다. 그 씨가 탐스러운 열매가 될 때까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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