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태복음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창무 2020. 11. 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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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36 강 / 이창무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말씀 / 마태복음 24:1-31
요절 /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대부분 고속도로 운전자는 과속 카메라가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매우 민감합니다. 그러나 이를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항상 정규 속도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알고 싶기는 합니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내 예상보다 빨리 오든 늦게 오든 언제 다시 오신다 해도 늘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주, 다음 주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왔습니다(1). 늘 보던 성전인데 왜 제자들이 갑자기 이렇게 성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21장부터 23장까지 이스라엘의 멸망과 심판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면적의 육 분의 일을 차지한 거대한 성전은 아직 한창 건축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성전을 바라보던 제자들은 ‘저렇게 크고 아직 다 지어지지도 않은 성전이 정말로 멸망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 예수님은 성전 멸망을 확실하게 못박으셨습니다. 이와 함께 제자들에게 왜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왜 너희들은 성전의 크고 화려한 외면만 보고 부패하고 타락한 내면을 보지 못하느냐는 의미입니다. 성전의 실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의 눈에 성전의 멸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왜 멸망하는가’보다는 ‘멸망의 때와 징조’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3)” 특이한 점은 제자들이 성전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을 곧바로 연결시켜서 질문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개의 사건이 서로 별개의 사건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 속에서 보면 세상의 중심인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인류 역사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을 앞으로 겪게 될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어떤 말씀으로 그들을 준비시키셨습니까?

첫째,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멸망하는 A.D. 70년까지 많은 전쟁과 재난이 있을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아르메니아, 북아프리카 등에서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유대 땅에서 로마에 대한 반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그중 가장 큰 반란은 가이사랴에서 일어났던 농민 반란으로 이때 무려 이만명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또한 클라우디우스 황제 재위 시절에 대기근이 있었고 예루살렘 교회도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소아시아에서는 지진이 발생하여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도시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폼페이에서 거대한 화산 폭발과 지진이 일어나 한 도시 전체를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대재앙이 임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는 우리 차례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감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으로 무엇인가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바로 이 심리를 파고드는 자들이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입니다. 그들은 이 모든 사건들이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사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리고 ‘나에게로 오면 살아남을 수 있다’ 또는 ‘나를 따르면 낙원으로 직행할 수 있다’는 말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나야말로 유일한 구원자라는 거짓 확신을 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4)”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니니라(6b)”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8)” 전쟁과 재난의 소식을 들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 오도방정을 떨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아직 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방이라도 세상 종말이 올 것처럼 겁을 주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들에게 결코 속아 넘어 가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 멸망 때 뿐만 아니라 역대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이 종말론을 배경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지금 가장 큰 이단 세력을 형성한 신OO도 뿌리는 종말론입니다. 그들은 자칭 재림주 이OO를 따르는 144,000 명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전에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 다미선교회가 큰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 세상의 종말이 오고 자신들만 휴거(공중으로 들어 올림)되어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날이 되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은 서기 2000년이 되면 무언가 큰 격변이 일어날 것 같은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타고 크게 확산했지만 결국에는 허탈함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 때에는 핵전쟁에 의한 인류 종말 시나리오가 유행했습니다. 지금은 기후 변화나 바이러스에 의한 인류 종말이 주목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종말론의 레퍼토리는 다양하지만 여기서 파생된 이단 사이비의 전략은 늘 비슷합니다. 그들은 어떤 재난이 일어나면 무조건 이는 곧 종말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해석합니다. 다수는 멸망을 피할 수 없겠지만 살아남는 소수가 될 길이 오직 여기에 있다고 강변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빠졌던 사람들이 여기에 혹해서 걸려들고 맙니다. 신OO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큰 타격을 받고 주춤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런 이단과 사이비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바꾸어 가며 사람들을 미혹하려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이 말씀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일은 있어야 하되 끝은 아니니라.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둘째,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전쟁과 재난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임하는 환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오직 신자들에게만 임하는 환란이 있습니다. 바로 박해와 배교가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9). 초대 교회는 처음에는 유대인으로부터, 그 다음에는 헬라인, 그 다음에는 로마인들로부터 크고 작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박해가 심해지면 교인 들 가운데 배교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배교에 그치지 않고 한때 함께 신앙 생활을 함께 했던 신자들을 밀고하기까지 합니다(10). 박해도 힘들지만 배교와 밀고는 더욱 괴롭습니다. 교인들 사이에서 사랑이 식고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하고 불법이 성행합니다(11,12). 이때 믿는 사람마저 ‘나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이쯤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다.’ 하면서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사회로부터 받는 냉대와 불이익, 동료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 견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견디는 것은 제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제자의 자리, 성도의 자리, 신자의 자리를 묵묵히 참고 지키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반드시 구원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최근에 우리 목자님들에게 주일에 예배를 드렸는지 여부를 매주 월요일마다 체크하는 회사들이 많아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괜히 찝찝하고 기분 나쁜 일입니다. 어떤 센터에서는 영어 학원의 선생님을 채용하는데 학부모들이 교회 다니는 선생님은 싫다고 해서 한 목자님이 탈락하고 만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 전체를 마치 바이러스의 온상처럼 보는 시선들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식당과 카페는 놔두고 왜 우리만 갖고 그래?’라고 항변해 보고 싶지만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유독 믿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대우를 하는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힘든 것은 함께 믿음의 길을 가던 사람에게 크게 실망하는 경우입니다. 같이 제자의 길, 믿음의 길, 거룩한 순례자의 길을 가자고 다짐했던 사람이 중도에 이탈하게 될 때 힘이 쭉 빠지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까지 사랑이 식고 갈등이 생기고 분란이 일어나면 견디기 힘듭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이렇게 물어봐야 죽은 테스형이 대답할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답이 있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인내는 말세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조건 무턱대고 참기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병이 나고 생명이 단축됩니다. 재난에 재난이 겹쳐지는 이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어떤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것에서 끝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복음 진리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셋째,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 앞에서 언급한 전쟁과 재난, 박해와 배교는 어느 시대나 늘 있어 왔던 현상입니다. 물론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 시대만의 특별한 현상이야’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종말의 확실한 사인으로 언급하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14)” 예수님은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그제야 끝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 필요한 이유는 천국 복음이 세상 구석 구석까지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까지 재림하지 않으신 이유는 아직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강은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여러 지류와 합쳐져서 마침내 서해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서울의 한강은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역사는 마치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중 한 시대를 살고 있을 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역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그 종착지가 어디인지 모릅니다. 나름대로 해석을 갖다 붙이기는 하지만 헛다리를 짚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 덕분에 역사의 출발점과 종착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 사건을 계기로 새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천하 만국 복음 전파 역사를 중심으로 그 이후 곧 일어날 예수림의 재림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종말을 내다보며 믿는 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복음 전파와 세계 선교입니다. 사실 이 일이 특별하고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고 역할입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스피노자처럼 우리는 언제 주님 다시 오시는지 알지 못하지만 오늘 한 사람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심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지금이 곧 말세의 때임을 상기시킨 후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최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본격적인 언컨택트 시대 즉 비대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온라인 상에서 만나고 대화하고 모든 일을 다 해결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을 4차 산업 혁명 시대라고 부릅니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 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고 삶의 모습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변화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낼까요? 누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펼치고 또 다른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것이라고 비관론을 펼칩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잘 모르겠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내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될 수 있을지, 정말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는 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칫하다가 여기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이미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지든 역사는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 분명히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우리는 중심을 잘 잡아야 하겠습니다. 새롭게 펼쳐지는 모든 일들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기회로 주신 것들이 있는지 잘 살펴야 하겠습니다. 언컨택트 시대가 오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복음을 전파할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홍콩에서 실시간으로 소감 발표를 하고 전세계 동역자가 함께 모여 온라인 포럼이 열리고 있습니다. 천국 복음이 있기에 우리는 복음으로부터 말세의 고통하는 때를 견딜 힘을 얻습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천국 복음 전파 역사는 계속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 복음 전파 역사와 함께 발 맞추어 나가는 역사 창조의 주역들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시점을 더욱 좁혀서 예루살렘 멸망이 임박한 시점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이 임박했다는 사인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입니다(15).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우상을 뜻하고 거룩한 곳은 성전과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당시 로마군이 예루살렘과 성전에 쳐들어가 독수리 형상이 새겨진 깃발을 곳곳에 세웠다고 합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산으로 도망가야 합니다(16). 자기 소유와 자기 집에 미련을 두지 말고 서둘러 도망쳐야 합니다(17,18). 이런 와중에도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또 다시 등장합니다(24). 그들은 ‘재림하신 그리스도가 계룡산에 이미 와 계시니까 나를 따라오라’고 속삭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 뻥입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결코 몰래 오시지 않습니다. 번개가 치면 안암동 사람이나 제기동 사람이나 동시에 볼 수 있듯이 모든 사람들이 다 알도록 공개적으로 오실 것입니다(27). 그런데 놀라운 것은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유대에 남아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따른 덕분에 모두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네로 황제가 자결하는 바람에 잠시 로마군의 포위가 풀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전부 빠져나와 ‘펠라’라는 산으로 피신을 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도망친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무 현실적인 힘이 없는 피란민 신세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신자들은 이렇게 이리저리 치이며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참고 또 참고 견뎌야 합니까?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9-31)”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제국이 해처럼 우뚝 선 나라였습니다. 한 때는 대영제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어떤 나라일까요? 뭐니뭐니 해도 미국입니다. 그 다음 달처럼 빛을 내는 2인자는 어디일까요? 중국 아닐까요? 우리 나라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중 하나쯤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나라의 권세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날이 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 천국 복음을 끝까지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을 배척했던 사람들, 박해자, 배교자, 밀고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통곡하며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참 진리를 지켰던 사람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한 사람들, 천국 복음에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충성했던 사람들, 그들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불러모으실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나의 이름이 호명되는 바로 그 순간은 우리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며 그 날은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별별 일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지금은 눈물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마지막에 웃는 자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참고 견디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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