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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벧엘의 하나님
    설교/창세기 2019.08.05 10:55

    2019년 창세기 제 19 강

     

    벧엘의 하나님


    말씀 / 창세기 27:46-28:22
    요절 / 창세기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모래 위의 발자국'이란 메리 스티븐슨의 시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 저쪽으로 자신의 지나온 날들이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 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모두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발자국이 한 쌍 밖에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바로 그의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들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어려운 시기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간에
    주님께서 왜 저와 함께 하지 않으셨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버리지 않는단다.
    네 시련의 시기에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바로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란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고향집을 떠나 낯선 땅을 향해  홀로 가는 야곱에게 꿈 속에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지금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도 인생길을 가는 동안 두렵고 불안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게 하셔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7장 46절을 보십시오.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리브가는 에서의 아내들때문에 무척 속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가증스럽게 섬겼습니다. 낮에는 백화점, 까페, 네일아트 숍, 이런 데만 돌아다녔습니다. 밤에는 드라마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영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에 야곱의 아내마저 이런 여자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리브가는 상상만 해도 미쳐 버릴 것 같았습니다. 이삭은 어떻습니까?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 요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신의 결혼까지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이삭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믿음의 결혼이 최고라는  체험적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 역시 야곱에게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삼지 말고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도록 명했습니다(2). 

     

    그리고 이삭은 야곱을 불러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내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8:3,4)”  이삭의 축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과 자손’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이삭은 처음에 이 축복을 에서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리브가와 야곱에게 속아서  의도치 않게 야곱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이삭은 크게 분노하고 축복을 무효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오히려 야곱을 제대로 정식으로 축복합니다. 갑자기 야곱이 좋아졌을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한번 더 축복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통해 분별력 없는 자신의 계획을 막으셨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야곱이 괘씸했지만 자기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야곱을 진심으로 기꺼이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부모님이 권면한 대로 믿음의 여인을 얻기 위해서 순종하여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7). 야곱이 야비하고 이기적입니다. 정이 안 갑니다.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렇게 항상 하나님께 순종을 합니다.

    그런데 에서는 어떻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면서 ‘가나안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제야 자신의 아내들이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8). 그래서 무엇을 했습니까?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의 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9).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자식이요 이삭의 이복형제입니다.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  틀림없이 이삭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의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애굽 여인 하갈입니다(16:1). 또한 그의 아내 역시 애굽에서 데려온 여인입니다(21:21). 이스마엘과 애굽 여인 사이에 태어난 딸들이  신앙적인 여인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리브가는 물론이고 이삭이 이 결혼을 기뻐할 리 만무합니다. 에서는 이처럼 항상 뒷북치는 인생을 삽니다. 처음에는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뒤에 가서 후회합니다. 허둥지둥 수습해 보려하지만 결과는 늘 실패입니다. 중심이 어긋나 있는데 갑자기 믿음이 있는 척  신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통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계승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한편 집을 떠난 야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마침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해가 지고 밤이 되었습니다. 사방은 캄캄하고 황량한 사막이었습니다. “아우~” 가끔씩 야생동물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쉬이익” 미친듯이 불어오는 사막의 바람 소리가  끊임없이 귓가를 때렸습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푹신한 침대가 있는 집에서  엄마가 해 주는 따뜻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독기를 잔뜩 품은 형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와야 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밧단아람에 가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삼촌 집에 얹혀살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광야에서 돌을 베고 누웠습니다(11). 맨 땅에 누워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하는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갑자기 외로움과 서글픔이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이 순간 아무도 야곱과 함께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주던 엄마도 곁에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 얼마나 외로웠는지 형 에서까지도 보고 싶었습니다. “형” 

     

    제가 군대에 갈 때 부모님과 목자님들이  훈련소까지 함께 가 주었습니다. 많은 부모와 친구들이 연병장에서 막사를 향해 들어가는 입소자들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계단을 넘어 가 그분들이 보이지 않자 갑자기 조교들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우로 굴러. 좌로 굴러.” 이 순간 더 이상 저와 함께 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에서 편히 눕던 삶과 작별하고  통제와 훈련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야간 초소에 근무를 서면 저 멀리 서울로 향해 달려가는 기차가 보였습니다. 당장 저 기차를 타고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갈 수 없는 내 처지를 생각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야곱도 비슷한 처지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집을 떠나 하나님의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당장 춥고 배가 고팠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막막했습니다. 군대는 만기제대하면 집에 돌아갈 소망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훈련은 언제 끝날지 몰랐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조차 불확실했습니다. 야곱의 눈에서 눈물이 맺혔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와 돌베개를 적셨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야곱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잠자던 야곱은 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 속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요즘 아파트 이사하는 것을 보면  10층, 20층도 고가 사다리를 타고 쉽게 올라갑니다. 그런데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는 10층, 20층 정도가 아니라 그 끝이 하늘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서 왜 사닥다리 환상을  야곱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당장 복권을 사라는 사인일까요? 야곱의 꿈은 그의 인생이 하나님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꿈이었습니다. 야곱은 지금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 형과의 관계, 고향 사람들과의 관계 등,  모든 관계가 다 끊어졌습니다. 사방이 다 꽉 막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닥다리 환상을 통해  야곱이 새로운 현실에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실은 하늘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의 통로는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픔, 고뇌, 슬픔과 외로움, 근심, 걱정, 염려를  그 누구와도 함께 나눌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알아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도와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야곱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위를 바라보니 하늘이 열려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야곱의 인생은 하늘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누구보다 안전한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이 사닥다리 환상을 보았을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우리도 야곱처럼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가 될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의지할 대상이 없고  나 홀로 세상에 버려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형제들은 군대 가서 특히 이등병때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얼마 전 한 엘리사벳 선교사님과 식사하며  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자신의 가정 딱 한 가정만 홀로 선교지에 왔을 때 '내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험에 떨어지고, 직장도 없이 막막할 때  외로움과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다들 절대고독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극한 고독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려졌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를 찾아 오시되 사닥다리 환상을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나는 너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손은 너의 손과 맞닿아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닥다리 환상은 장차 오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요,  사닥다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우리가 야곱처럼 험한 세상에 나와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힐 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인적 끊긴 길에서 돌베개 베고 자야할 때,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처량하게 혼자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 집에 가는 길이 되어 주십니다. 온 세상 다 날 버려도 하나님은 날 버리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다 실패했어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홀로 버려지고 내 팽개쳐 있어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잘 풀리고 잘 나갈 때보다 오히려 어려울 때,  몸이 아플 때, 실패하여 절망가운데 있을 때가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때입니다. 인생의 깊은 절망의 순간에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과의 만남,  이 만남이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고, 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유명한 사람과 만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고 계십니다. 때로는 수양회를 통해서, 말씀공부를 통해서, 기도실에서 기도할 때, 순간순간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우리를 향해 손 내시미고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를 보듬어 주십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길이 되시는 예수님 안에 우리가 온전히 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3, 14절을 보십시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이제껏 야곱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간접적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의 신앙은 지식만 있지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밤 하나님은 야곱에게 처음으로 친히 나타나 주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을  야곱에게도 인격적으로 주셨습니다. 지금 야곱은 어딘지도 모르는 땅을 지나는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그가 누운 땅을 그에게 주겠다 약속하십니다. 지금 야곱은 혈혈단신 혼자입니다. 그런데 장차 그의 자손이 땅의 먼지처럼 동서남북으로 퍼지고, 세상 만민이 그와 자손을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현실 문제로 걱정 가득한 야곱에게 장차 일어날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 역사의 비전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현재 현실 문제가 절박했습니다. 땅과 자손, 모든 족속의 복은 먼 미래의 일입니다. 집 떠나는 그의 관심은 당장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  이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잘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현실과 먼 미래만 이야기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가장 듣고 싶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과거 야곱 곁에 엄마 리브가가 있었습니다. 장자의 축복이 형 에서에게 넘어갈 뻔 했을 때  엄마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습니다. 야곱은 엄마만 있으면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야곱은 혼자였습니다. 아무도 밧단아람까지 멀고 먼 길을 함께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동행이 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고 또 전능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끌어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에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 역사 속에 야곱을 쓰고자 하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야곱 한사람의 현재의 필요를 깊이 아셨습니다. 그의 걱정과 염려와 불안과 외로움을 아셨습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동행과 보호와 인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어떤 사나운 것도 야곱을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에 두신 계획을 모두 성취하실 때까지 그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장래가 불안하고 두려울 때  빨리 현실 문제가 해결되어야 안정이 될 것 같습니다. 집 문제가 해결되고 직장 문제가 해결되고 결혼 문제가 해결되어야 불안에서 벗어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실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참된 안정은 현실 문제 해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또 그 약속을 믿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내 삶을 주님께 맡기고 안심하는 것이  모든 조건과 상황 속에서 평화를 누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진정 주기 원하시는 축복은 당장의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속에 평안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평안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장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나는 장차 어떤 길을 가게 갈지, 우리 모임의 장래는 어떻게 될지 불안이 있습니다. 혹 내가 가는 이 길에서 실패하고 망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 인생 길에 동행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은 여호와가 그곳에 계신 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신 분인 줄 알았습니다. 그가 머문 곳은 에서를 피해 도망하다 노숙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는 그곳이 어딘지도 몰랐습니다. 그의 인생에 그저 거쳐 지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집을 보게 하고  하늘에 이르는 길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약속하고  하나님의 동행과 보호와 인도를 약속하셨습니다.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깊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나를 찾아와 만나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10여년 전 저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 무렵 서울 시립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던 선교사님 한 분을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에게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겨서  미팅 시간이 한 시간 후로 미뤄졌습니다. 남는 시간에 주일 찬양에 어떤 곡을 부를까 생각하다가  ‘눈을 들어’라는 찬양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눈을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두 손 들어 주를 찬양합니다. 

    나는 거룩한 제사의 산 제물 주여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임하소서 거룩한 주님 

    태우소서 주의 성령의 불로. 

    받으소서 향기론 제물 

    부으소서 주의 성령의 기름”  

     

    이 찬양을 나지막하게 부르다가  제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때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내가 어떤 사람이 되든,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다만 나 자신을 거룩한 제사의 산 제물로 드리겠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찬송가 가사처럼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선교사님이 들어오셨을 때 저는 시간이 십 분 쯤 지난 것 같아 아니 어떻게 벌써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님은 자기가 30분을 더 늦어 한 시간 반 만에 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서울 시립대 옆의 카페에서 그런 만남이 있을 줄을  정말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곳에서 하나님은 저를 만나주시고 제 마음에 드리워졌던 불안과 두려움을 모두 몰아내주셨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은 그날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뜻 밖의 장소에서 저를 만나 주신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8, 19절을 보면 야곱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자기 집만 생각하던 야곱이  하나님의 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20,21).”  그의 서원기도에는 현실적인 고민이 가득 나타납니다. 가는 길에 만날 위험과 먹을 떡과 입을 옷을 걱정했고  평안히 아버지 집에 돌아올 수 있을지 염려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은 땅과 자손도 관심 없고 여러 민족의 복도 관심 없었습니다. 야곱의 서원은 현실 문제 해결에 근거한 서원입니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안위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처음으로 절박하게 하나님께 매달린 기도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까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기 원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역사적인 기도였습니다. 또 야곱에게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자 하는 영적 열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십일조 신앙은 내게 주신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주권 신앙의 표현입니다. 야곱의 서원 기도는 그가 하나님을 체험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장소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 장소는 바로 ‘벧엘’입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야곱은 달라졌습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하고 있는 자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예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가야할 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떠나 낯선 곳을 향해 혼자 가는 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그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약속, 그 모든 문제들을 덮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도망자 야곱의 여행을 순례자의 여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그 약속이 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오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힘겹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살아간다고 해서 매일매일 부딪치는 문제나 어려움들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것들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변하게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내가 이루려고 하는 목표를 바꾸어 놓습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그것이 벧엘입니다. 우리 모두에겐 이미 각자의 벧엘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는 그분을 예배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이 예배의 자리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새로운 벧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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