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및 나눔/단상

노동과 사명, 그리고 세상

이창무 2019. 2. 2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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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군대를 전역하고 회사에 입사한 후 가장 처음 겪게 된 딜레마 중의 하나가 사명의 땅과 삶의 땅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학생 때는 삶을 주로 영위하는 곳이 캠퍼스였고 사명의 땅도 캠퍼스였습니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자 사명의 땅은 여전히 캠퍼스인데 주로 삶을 영위하는 곳은 직장이 되었습니다. 이 딜레마로 인해 여러 가지 고민과 갈등이 생겨 났습니다.


직장이 사명의 땅이 아니라고 여겼으며 직장에 다니는 목적은 오로지 돈을 버는 것 밖에는 의미를 둘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돈 벌러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이 지겹고 재미도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허비되는 시간이요 무의미한 시간처럼 여겨졌습니다. 같이 어울려 술 마시지 않고, 자매들에게 한 눈 팔지 않는 것, 소위 말해서 믿음의 중심지키기 외에는 어떤 신앙의 목표나 비전도 없었습니다.


반면 주말에 센터로 돌아오면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든 중요한 일들은 주 중에 센터나 캠퍼스에서 다 벌어지고 난 뒤에 뒤늦게 막차를 탄 기분이었습니다. 이젠 시험도 보지 않고 레포트도 쓰지 않고 친구도 동기도 다 떠나고 없는 캠퍼스는 약간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캠퍼스 선교에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딜레마가 저만의 것일까요? 아마도 많은 목자님들이 직장을 가진 학사 목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딜레마가 아닐까 합니다. 형제 목자는 빨리 결혼하여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가정을 부양하고 역사는 사모님이 열심히 섬기도록 하는 것이 답인가라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과 사명, 그리고 세상에 대해 성경적인 가치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첫째, 노동의 본질은 창조 시의 청지기 사명에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전 그의 노동은 천지 창조 시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에덴 동산에 대한 청지기직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에덴이 에덴되게 하는 축복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노동은 땅으로부터 소산을 얻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하는 저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타락한 이 세상을 천지 창조 시의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믿는 자들은 물론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땀 흘려 노동해야 하지만 그들의 노동에는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관리하라는 청지기적인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운영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관리하는 청지기직을 수행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장은 성격은 좀 다르지만 캠퍼스와 함께 또 하나의 사명지인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빛은 비추어야 하고 소금은 녹아서 스며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직장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고 소금이 되는 곳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의 비범성을 발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직장은 예수 믿는 사람이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점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매사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고 , 사심이 없이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며 , 동료에 대한 상한 심정을 가지고 북돋아 주고 보살피는 직장 생활을 하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예수님을 따르고자 애를 쓰면 핍박도 받겠지만 아울러 인정도 받게 됩니다. 등은 등경 위에 두어야 하듯이 직장에서도 숨어서 지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사는 것이 제자된 자의 도리일 것입니다.


셋째, 어디에서든지 성경 선생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임의 특징은 다른 무엇보다도 성경 선생을 키우기 위해 힘쓴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 선생으로 양육받았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 빚진 자가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성경을 가르쳐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세상에 의외로 성경에 목말라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직장 안에도 그렇습니다. 기존에 교회 생활하던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있습니다. 직장 안에서 성경을 가르친다고 해서 이것이 나의 열매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캠퍼스에서 제자 훈련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물을 주면 어디에선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심는 사람과 물을 주는 사람과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늘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열매를 맛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열심히 심고 물을 주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역하는 셈이 됩니다. 또한 직장에서 성경을 가르치면 내가 영적으로 살아 있는데 큰 도움이 되므로 결국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넷째, 직장 생활하는 학사 목자는 학생 양이나 리더들의 역할 모델이 됩니다. 학생의 미래는 학사 목자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중요한 말입니다. 학생 양이나 리더들은 학사 목자님들의 삶과 인격과 열매를 보면서 소망과 비전을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정 교회를 이룬 학사 목자님들은 보면서 학생들은 믿음의 결혼에 대한 소망을 갖습니다. 학사 목자님들의 삶과 인격 속에서 흘러 나오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달려가야 할 이유와 원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사 목자는 그 존재 자체로서 학생 역사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셈입니다. 


다섯째, 자비량 선교사의 길은 직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세상에서 써 주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써주지 않으면 자비량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좀 고생스럽더라도 실력을 쌓아서 밑천을 든든히 마련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젊을 때 너무 편한 직장을 선호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길게 보면 일이 어렵고 조건이 좀 안 좋다 할지라도 경험과 기술을 내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곳을 직장으로 선택하는 편이 좋습니다. 편한 직장은 편한 만큼 남는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직장을 갖고 목자 생활하시는 학사 목자님들은 남모르는 아픔들이 참 많습니다. 동역자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외롭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걸 아시고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도 세상 구석 구석을 비추고 계신 우리 학사 목자님들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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