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누가복음

깊은데로 가서

이창무 2017. 4. 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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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7 강


깊은데로 가서


말씀 : 누가복음 5:1-11

요절 : 누가복음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모든 운동 경기가 다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 특히 마라톤만큼 인내심과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경기가 있을까요? 마라톤 선수가 완주하기 위해서는 단 일 분도 쉴 수 없고 때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2013년 4월 28일 영국 북부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에서 황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가 선수 중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무려 5,000 명이 실격 처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건은 2위와 3위를 하던 선수들이 결승선을 얼마 앞둔 지점에서 잠시 착오를 일으켜 엉뚱한 길로 달린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선수들도 아무 생각 없이 이 두 사람을 따라가다 그만 모두 다 실격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허탈했을까요?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정말 한평생을 열심히 살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제까지 삶이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온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방향을 향해 달려온 것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남들이 다 가는 길이라고 안전한 길인줄 믿었더니 그게 아니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생이 실격 처리된다면 이제까지 흘린 땀과 눈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는 하마터면 그런 삶을 살 뻔했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시몬을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시몬의 삶을 놀랍도록 풍성하고 아름답게 변화시켜주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실 예수님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이곳은 게네사렛 호수가였습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씻는 것을 보니 때는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서서히 물안개가 걷히고 호수 표면에 반사된 햇살에 눈이 부실 때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가끔씩 들리던 물새의 울음소리만이 적막을 깨트리는 조용한 시간대였습니다. 그러나 이 날만은 북적이는 사람들이 내는 크고 작은 소음으로 호숫가는 요란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무리가 몰려와서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신형 아이폰을 가장 먼저 사기 위해 애플샵 앞에서 밤새 장사진을 치는 사람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들은 밤새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의 말씀에 듣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몰려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 구석에서 자기 일만 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몬을 비롯한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밤샘 조업을 했습니다. 밤샘 알바를 해보셨다면 아실 것입니다. 어부들은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만사를 제치고 당장 집에 가서 발 뻗고 자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몬은 다음 조업을 위해 열심히 그물을 씻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시몬은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까? 매우 성실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할 일은 끝마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주위 사람들에 의해 쉽게 휩쓸리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 덕분일까요? 시몬은 지금까지 나름 자기 삶을 잘 꾸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요? 시몬은 일단 자기 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을이 아니라 갑이었습니다. 게다가 앞 장에서 시몬의 장모가 나온 것으로 봐서 결혼을 했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결혼이라구요? 그런데 결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요즘 세대를 가리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시몬은 장가를 갔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인생의 절반쯤은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이제 시몬은 속으로 이렇게 결심했을지 모릅니다. "앞으로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살다보면 모든 것이 다 잘 될거야"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요? 전날 밤에도 시몬은 열심히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물고기가 있을만한 곳을 샅샅이 다 뒤졌습니다. 단 5분도 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5절에서 시몬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피라미 새끼 한 마리조차 없었습니다. 너무나 처절하고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 맛은 쓰디썼습니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갔을 때 실망한 표정으로 맞이할 아내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같이 일한 동료들에게도 너무 미안했습니다. 차라리 그냥 집에서 쉬는 편이 더 나을 뻔 했었습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었습니다. 노력과 열심과 성실로도 안 된다면 다른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이날 아침 시몬도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뾰족한 답이 없었습니다. 답이 없어도 어쩌겠습니까? 시몬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별 수 없이 오늘 밤에 또 나와서 그물을 내려야 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인생도 뻔했습니다. 날마다 호수에 나가 똑같은 물고기 잡는 일을 반복할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이번 달이나 다음 달이나 달라질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물고기가 조금 더 많이 잡혀서 웃고 어떤 날은 조금 덜 잡혀서 웃고, 대부분의 날들은 웃을 일도 울 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살다가 죽어 무덤에 묻혀 게네사렛 호숫가의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시몬이 아는 인생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남은 것이 없었다' 이 날 호숫가에서 시몬은 이렇게 자기 인생의 축소판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몬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배를 좀 빌려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착한 시민 시몬 베드로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퇴근 시간이 더 늦어졌지만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다시 다가오셨습니다. "배를 빌려 주어서 고맙네."라고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아 보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참 뜬금없고 당황스러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이라기보다는 시몬이 얕은 세계를 떠나 깊은 세계를 직접 경험해 보도록 하시는 초청의 음성이었습니다. 시몬이 알고 있는 세계는 상식과 이성과 경험이 지배하는 세계였습니다. 익숙해서 안전해 보이지만 변화가 없기 때문에 권태로울 수밖에 없는 세계였습니다. 이 얕은 세계 속에 갇힌 시몬의 삶은 수고하고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허무한 삶이었습니다. 이런 시몬을 예수님은 깊은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깊은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영적인 세계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세계입니다. 상식과 이성과 경험을 뛰어넘는 놀라운 세계입니다. 얕은 세계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풍성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펼쳐지는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더 깊은 또 다른 더 깊은 하나가 나를 기다립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세계이기 때문에 거기에 허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이 이 깊은 세계 속으로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초청하셨습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임어당이라는 대만이 자랑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임어당은 철저히 유교 사상에 입각한 수필을 써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수필에는 거의 매번 공자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인생 말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적인 세계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남긴 한 마디가 있습니다. "태양이 떠올랐다. 촛불은 끄자." 유교의 세계가 촛불과 같다면 예수님의 세계는 태양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대만에 임어당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이어령 전 이화여대 교수가 계십니다. 이분은 수십 년간 대한민국 지성계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인본주의자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이 분이 요한복음 8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아끼고 사랑하던 딸이 중한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날카로운 지성이 딸에게 아무런 힘도 도움도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됩니다. 딸을 지탱해 주는 힘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영적인 세계에 마음을 열고, 믿음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써낸 책이 바로 '지성에서 영성으로'입니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대학교에만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이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제 큰 딸도 하교 길에 과잠을 입고 제기시장을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을 보고 그렇게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잠을 줄여서면서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과연 대학에 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제 또 다시 레포트를 붙들고 씨름하고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합니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의 문을 통과하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스펙 쌓기에 매진해야 합니다. 그래서 취업하면 만사 오케이일까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월요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출근하면 하루 종일 과중한 업무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에 눌립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지겨워하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산다고 어떤 확실한 보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직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명예퇴직이나 정리 해고로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퇴직금을 밑천으로 치킨 집을 차립니다. 하지만 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결국 투자한 돈을 다 날리고 빚까지 지게 될지 모릅니다. 설령 그러저럭 잘 살았다 하더라도 뒤를 돌아보면 반복된 일상 속에 무의미하게 흘러간 시간들이 전부입니다. 제 어머니는 삼형제를 키우시느라고 누구보다도 인생을 열심히 사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병원에 계시는 동안 날마다 저에게 '내가 암만 봐도 인생을 헛 산 것 같다. 다 부질없구나'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습니다. 마음이 아프면서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한 번 뿐입니다. 이 한 번뿐인 인생을 얕은 바다에서 맴돌다가 마친다면 너무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를 향해 부르고 계십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우리를 찾아오셔서 더 깊은 세계로 초청하시는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아침에는 깊은 곳에 물고기가 없다는 것이 이 동네의 상식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밤샘 작업을 통해 현재 호수에 고기가 없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입증된 상태입니다. 지칠대로 지친 시몬 베드로의 몸과 마음의 상태도 다시 고기잡이를 시작할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목수 출신인 예수님이 베테랑 어부 시몬에게 어업에 대해 방향을 주시는 것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거절한 이유는 이 외에도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어떻게 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이 생겼을까요?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배 위에서 선포되었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서서히 시몬의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믿음이 모든 어려움을 다 극복하고 순종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깊은 세계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세계입니다. 막상 깊은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면 두려움이 듭니다. 얕지만 익숙한 세계가 더 안전해 보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이유는 참 다양하지만 그 이유들을 한 꺼풀 벗겨 보면 거기엔 대개 두려움이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무슨 사건 사고 기사가 실리면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댓글이 바로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입니다. 세상살이가 그만큼 팍팍하고 힘들어졌다는 반증일까요? 이런 사고방식은 인생을 계획할 때도 나타납니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길, 정해진 길만을 고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공무원, 공기업 직업, 교직원 등이 꿈의 직장이 되었습니다. 대다수가 가지 않는 길은 무조건 기피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두려움 때문에 평생 이불 밖을 못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깊은 세계를 한 번 직접 체험해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너무 두렵다면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 신뢰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처음에는 믿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참되며 지혜로운가를 곧 깨닫게 됩니다. 한 번 이 말씀에 내 인생을 걸어도 될 만하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작은 순종이라도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그래서 깊은 세계를 직접 한 번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몬이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순종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고기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른 배에 도움을 청해 보았지만 두 배를 가득 채우고도 넘쳐서 배가 물에 잠길 지경이었습니다. 어업인 시몬의 인생에 이렇게 많이 잡아 본 적이 있을까요?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몬의 경험과 지혜로 꽤 많이 잡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배가 잠길 정도로 잡는 것은 클래스가 다른 세계입니다. 이 사건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세계는 이 정도로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해서 그 세계를 경험해 보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깊은 세계를 경험한 시몬은 자신의 참모습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8절을 보면 시몬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거짓 자아가 아니라 절대자 앞에서 참된 자아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 예수님은 시몬을 물고기를 취하던 인생에서 사람을 취하는 인생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람을 취하는 인생이란 죄와 죽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건져내어 구원하는 삶을 말합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은 말합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시몬을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는 가장 값진 일, 아름다운 일로 부르시고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더 깊은 세계로, 더 나아가서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별과 같이 빛나게 될 인생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요즘 ‘속도보다는 방향이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 가면 뭐하겠습니까? 방향이 잘못 되어 표적을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남들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서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면 아무리 빨리 간들 소용이 없습니다. 결말은 허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예수님은 초청하고 계십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나의 깊은 세계로 들어와서 풍성하고 놀라운 영적 세계의 비밀을 체험해 보아라” “이제 후로는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이 소중한 일을 나와 함께 하도록 하자” 우리가 이 부르심의 음성에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풍성한 인생, 허무하지 않을 인생, 후회하지 않을 인생,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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