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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설교/디모데전서 2016.01.27 21:30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 : 디모데전서 2:1-4

    요절 : 디모데전서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제가 꼭 보시길 추천해 드리고 싶은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작년에 미국에서 개봉되어 그 주에 박스오피스 2위에까지 올라 화제가 된 적이 있는 ‘워룸’이라는 영화입니다. ‘워룸’이란 전투를 지휘하는 작전 통제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전투의 승패는 총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워룸이라는 이 작은 방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처럼 믿는 자의 승리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골방에 들어가 기도로써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데 달려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이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보고 감명을 깊이 받아 저희 집에 있던 책상과 책꽂이를 이리 저리 옮겨서 기도의 골방을 하나를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요즘 막내 예나도 이 워룸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면 정치 지도자들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자기들 뜻대로 이루어가는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는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성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또 이렇게 두 세 사람이 모여서 합심 기도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디모데 전서 말씀을 통해 세상을 위한 중보 기도의 필요성을 배우고 기도의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앞선 1장에서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바른 교훈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역사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해야할 또다른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여기서 첫째로 권한다는 말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여기서 도고라는 말이 좀 낯섭니다. 도고는 영어로 intersession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신하가 왕 앞에 나와 알현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신하가 자기 문제를 말하려고 왕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개는 나라의 여러 가지 문제와 사정을 아뢰기 위해 왕을 알현합니다. 그래서 도고는 특별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 흔히 말하는 중보 기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본문에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라는 표현으로 다양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결국 가리키는 것은 한 가지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개인기도가 아니라 공예배에서 기도를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하라는 말 속에 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나 개인이나 내가 속한 교회만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불신 세상과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에는 개인기도와 공적인 기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기도는 자기 자신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골방에 들어가 홀로 하는 기도입니다. 반면에 공적인 기도는 예배나 기도회에 모여서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개인 기도는 자신의 절박한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하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다 느끼고 있습니다. 반면 공적인 기도는 그 필요성을 즉각적으로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에 주일예배에 왔을 때 대표 기도를 듣고 의아하게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대표 기도를 들어 보니 김일성과 노태우 대통령을 위한 기도로 시작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가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정작 그날 예배를 위한 위한 기도는 맨마지막에 잠깐 나올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표 기도 시간이 참 지루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2절 상반절을 보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야 한다는 이 말씀에 반감을 느낄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도 대표 기도할 때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아 이 교회는 여당 편이구나. 새누리당을 좋아하는구나. 한국 교회가 보수적이라더니 여기도 마찬가지이구나' 이렇게 판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더 거부감을 갖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그들을 지지하고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당시 임금은 곧 로마 황제 네로를 의미했습니다.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은 황제입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이 미치광이 황제 네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불신 세상과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 교회가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바울은 우리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이 중요합니까?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우리의 경건을 함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날마다 전쟁과 소요가 일어나서 내일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런 와중에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매주 말씀 공부하고 소감쓰고 예배 드리는 생활을 통해 우리의 경건을 유지하고 성숙한 믿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당장 지난 해 메르스 사태가 일어나서 여름 수양회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몇 주간 고심했던 경험을 상기해 보십시오. 치안이 부재해서 강도와 도둑이 들끓는 나라에 산다면 일대일과 제자 양성 역사를 제대로 섬기기가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세상에 질서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해야 기독교인들도 안심하고 영적인 생활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뒤숭숭해지면 신자들도 마음이 분산되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나라는 특별히 북한을 위해서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가 아무리 잘 해도 북한이 무슨 일을 저지르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이 아무리 정치를 잘 해도 북한이 핵폭탄을 터트리겠다고 나오면 막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선진화된 나라일수록 그 나라 국민들은 자기 나라 대통령이나 수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정치가들이 정치를 너무 잘해서 국민들이 정치에 신경 쓸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정치 기도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절에 보시면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중보 기도를 기뻐하시고 받으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중에 수요 기도회에 나와서 드리는 중보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개인 기도가 중요하지만 또 이렇게 모여서 합심하여 중보 기도를 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신세상과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들 자신의 경건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의 중보 기도가 선교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복음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만약 정치 상황이 불안하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질 수가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인 1989년에 고대에서 학내 분규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재단 퇴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격렬하게 시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학교 측에서는 휴교 조치를 내려 교문을 걸어 잠가 버렸습니다. 캠퍼스에는 한창 꽃이 피는 봄이 되었지만 학생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피싱을 하려 해도 피싱할 양이 없었습니다. 강의실로 심방을 가도 양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양이었지만 우리 목자님들이 계속 이렇게 되다가는 올해 농사를 다 망치게 된다면서 휴교 사태가 조속이 해결될 수 있도록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결국 한 달만에 휴교 조치는 해제가 되었고 그해 요하네스 타이거라고 이름이 붙여진 여러 명의 제자들이 서는 큰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헬게이트가 열린 나라 즉 지옥문이 열린 나라라고 일컬어 지는 나라가 몇몇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소말리아라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정부가 형식적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군벌들이 나라를 분할해서 차지한 후 자기들끼리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살 길이 막막해진 어부들은 해적이 되어서 지나가는 배를 무력으로 탈취해서 몸값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여덟살 아홉살 소년들까지 AK 소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나라에 어떻게 선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 땅에서 김씨 왕조가 3대까지 세습을 하면서 독재 정치, 공포 정치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수십년 간 길이 막혀 있습니다. 정치가 안정이 되고 질서가 잡혀야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도 지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요즘 사도행전을 배우고 있는데 이번 주 주일 말씀부터 시작해서 사도 바울의 일차, 이차, 삼차 전도 여행에 대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고대 사회에서 이런 장거리 여행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행 중에 강도의 위협이나 혹은 국지적인 내란의 위협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로마 제국이 강력한 대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지중해 연안 지역 구석구석 치안을 유지하고 모든 내란을 잠재웠기 때문에 이런 선교 여행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때의 시기를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평화라고 부르는데 이 팍스 로마나가 사도 바울의 이방 선교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복음 전파의 길을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복음 전파 뿐 아니라 제자 양성 역사를 위해서도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아시다시피 요즘 청년 실업이 큰 문제입니다. 왠만한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학부 때만해도 학점은 3.0만 넘어라 그러면 어디든 취업에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림도 없습니다. 제가 첫 직장에서 토익 735점을 받자 어디서 이런 영어의 귀재가 들어왔냐는 대접을 받았습니다만 요즘은 900점대가 수두룩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학생들은 스펙 관리에 목을 맬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인격과 내면을 성숙하게 할 수 있는 영적인 훈련에 힘을 써야 할 시기인데 늘 바쁘다는 사람을 붙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 청년들의 삶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 지도자들의 실정에 분명 큰 원인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캠퍼스 영적 지도자 양성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학생들이 마음 껏 진리 탐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를 잘 하도록 우리가 열심히 중보 기도를 해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학사 목자님들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치여서 경건 생활과 목자 생활에 힘쓰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지나치게 경쟁 위주로 흘러가면서 신자들의 경건도 메마르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또 올해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의 경착률으로 인해 또 한 차례 경제 위기가 올 조짐이 있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들의 믿음의 진보를 위해서 또 선교와 제자 양성 역사를 위해서 중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수요 찬양 기도회는 말씀 이후 항상 중보 기도 제목을 숙지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늘 빠지지 않는 기도 제목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 제목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 보려고 해도 한국 교회 자체가 힘이 약해지고 무너지면 우리도 함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장 한국 교회 이미지가 실추되면서 우리의 캠퍼스 전도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임 뿐 아니라 한국 교회를 위한 중보 기도에도 더욱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세계 곳곳의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조차 자기 중심적으로 오그라드는 내면을 넓게 펴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간절한 중보기도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16년 주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셔서 평화와 안정을 지켜 주시고 전 세계 가운데 북한땅과 회교권에도 복음의 길이 열리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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