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디모데전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

이창무 2024. 2. 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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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디모데전서 제4강 / 이창무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

말씀 / 디모데전서 4:1-5:2
요절 / 디모데전서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우리 나라 축구 국가 대표팀이 아시안 컵 경기를 한창 진행 중입니다. 흔히들 이번 대표팀을 가리켜 역대급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그럴까요?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정도 레벨이 오른 것이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이강인 선수만 해도 슛돌이 시절부터 축구를 하고 어린 나이에 스페인 유학까지 가면서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에 미래가 있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로,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우리는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는 이 진리를 마구 흔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4:1,2)

그들은 믿음에서 떠나 마귀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양심에 화인 곧 불도장을 맞았습니다. 이 말은 양심이 마비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고 짝퉁 복음을 명품 복음인 양 속였습니다.

어떤 짝퉁 복음이었을까요? 결혼하지 않고 평생 ‘솔로’로 살면서 육식을 금하고 풀만 먹으면 거룩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3). 이런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4).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이지 독신주의와 채식주의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5).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자들을 무엇이라 할까요? 나쁜 일꾼 또는 악한 일꾼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신천지라는 이단이 한국 교회 전체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전도의 문이 막히게 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악한 일꾼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합니다. 이들과 맞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는 누가 필요합니까?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6a)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일꾼이라고 다 같은 일꾼이 아닙니다. 어떤 일꾼은 주인의 일에 무관심하고 게으릅니다. 주인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합니다. 이런 일꾼은 힘을 빠지게 하는 나쁜 일꾼입니다. 반면에 어떤 일꾼은 주인의 일에 부지런하고 충성됩니다. 주인이 기뻐하는 일을 항상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이런 일꾼이 힘이 되는 좋은 일꾼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좋은 일꾼일까요? 나쁜 일꾼일까요? 우리 교회는 정말 많은 분들이 좋은 일꾼이 되어서 주님의 교회를 여러 모양으로 충성스럽게 섬기고 계십니다. 이런 분들을 보기만 해도 힘이 납니다. 하나님께 참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잘 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각자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교회에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새해의 목표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계속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본다면, 2024년을 마무리할 때 우리는 현재보다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그분의 몸 된 교회에 힘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양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필요한 것은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6b,7a)

양육이란 어린아이가 쑥쑥 잘 자랄 수 있도록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몸에 안 좋은 ‘정크 푸드(Junk Food)’만 자꾸 먹으면 아이는 잘 자랄 수 없고 어른은 갖가지 성인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자라기 위해 먹어야 할 ‘웰빙 푸드’와 피해야 할 ‘정크 푸드’가 무엇일까요? 웰빙 푸드는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입니다. 바로 성경과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정크 푸드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입니다. 곧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해롭게 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을 가리킵니다.

문제는 우리가 몸 건강에 좋은 담백한 음식을 싫어하고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을 찾듯이 말씀은 멀리하고 재미있고 짜릿한 콘텐츠들에 너무 중독되어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자극적인 콘텐츠만 즐긴다 해도 지금 당장 별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 결과가 누적이 되면 큰 차이가 생깁니다. 영적인 성장이 답보 상태에 머물거나 심지어 더 퇴보하게 됩니다. 영혼의 한쪽 구석에서 악성 종양이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결국 내면이 깊이 병들고 맙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 되기에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시간을 투자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주는 힘을 삶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힘이 우리의 삶을 다르게 할 것이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내가 받았던 말씀으로 또 누군가를 깨우칠 수 있는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경건에 이르는 훈련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7b,8)

우리 몸이 잘 성장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운동 곧 육체의 연단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이라는 표현이 너무 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여러 유익이 있습니다.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고, 핏이 딱 사는 좋은 몸매를 유지할 수도 있고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교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연단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고 피부도 안 좋아집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훈련일까요? 이미 앞에서 한 번 언급했듯이 말씀과 기도의 훈련입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개인 기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훈련을 꾸준히 실천하면 어느새 삶이 달라집니다. 죄를 원하는 본성이 죽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잘못된 습관이 하나씩 바로잡힙니다. 영혼에 근육이 생겨 어떤 환란을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영적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늘 죄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작은 시련에도 무너지는 연약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저는 두 달 전 담낭절제 수술을 받고 쓸개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건강에 대한 문제 의식이 생겨 먹는 것, 운동 이 두 가지를 신경 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밀가루 음식, 튀긴 음식, 설탕이 들어간 단 음식 이 셋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대신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10 Kg 정도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덕분에 겉사람이 새로워졌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또 아파트를 올라갈 때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가고 틈틈이 근력 운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혈압이 많이 내려갔고 혈색이 좋아졌다는 말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저는 영적으로도 똑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먼저 우리 영혼의 양식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골고루 정기적으로 충분히 먹어야 하고 그 다음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질 나쁜 콘텐츠를 멀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일용할 양식 말씀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개인 기도하는 영적 훈련을 꾸준히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영혼의 병든 부분이 치유함 받을 것이고, 영적으로 반드시 성장할 것입니다.

월드클래스의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패스와 드리블 같은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본기가 갖추어지려면 힘이 들더라도 날마다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 이 두 가지 영적인 기본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우리 가운데 매일 일용할 양식 먹기, 매일 기도하기 붐(Boom)이 일어나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 결과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들로 성장하고 준비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로, 내면이 성장하면 외적인 약점을 극복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11,12a)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 가르칠 책무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막중한 책임입니까? 그런데 디모데에게는 한 가지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디모데의 나이는 삼십 대 중반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주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에베소 교회 안에 그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디모데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또한 디모데와 비슷한 또래의 교인들 중에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디모데가 하는 말마다 트집을 잡고, 하려는 일마다 딴지를 걸었습니다. 디모데가 오죽 힘들었을까요? 일꾼이 되고 싶어도 일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다섯 가지 길을 제시해 줍니다.

첫 번째는 ‘본이 되기’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대할 때 어떤 대처를 떠올리게 됩니까? 대체로 자신의 생각을 더 강하게 주장하려 하든지, 상대방을 더 강하게 몰아붙이려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바울은 다른 길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12b)

바울은 디모데에게 본이 된다면 그의 연소함을 업신여김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교회의 리더십은 힘이 아니라 본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본이 되는 삶으로 사람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럴 때 외적인 약점은 어느새 가려지고 삶과 인격을 통해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에 전념하기’입니다.

디모데가 가진 권위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디모데 자신에게 있다면 그가 가진 약점이 항상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권위가 궁극적으로 디모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럼 어디에서 나온다는 말입니까?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13)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서 디모데의 권위는 바로 디모데가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말씀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가르침의 근거가 자기 생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성경이어야 합니다. 가르침의 근거가 성경이어야만 그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오직 그럴 때만 디모데가 자신의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반대를 무릅쓰고 담대하게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양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이것을 가르쳐도 될까?’ 고민을 하곤 합니다. ‘양이 반발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 내용이 성경에 기초한 것이라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들도 목자가 말씀에 있는 대로 전하고 가르치는지 아니면 자기 생각을 주입시키는지 모를 것 같지만 기가 막히게 다 압니다. 목자가 언제나 성경에 근거를 두고 가르친다면 결국에는 그 목자를 존경하고 따르게 됩니다.

세 번째는 ‘은사를 활용하기’입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14)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사역자로 안수를 받을 때 어떤 은사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은사가 어떤 은사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섬기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은사를 발휘하는 것 또한 많이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같이 능력도 없고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어떻게 교회를 섬길 수 있겠어?” 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바울은 받은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교회를 섬기는 직분으로 부르실 때 그 일을 감당할만한 은사도 함께 주셨습니다. 디모데는 그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여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에베소 성도들은 디모데를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으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친히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사실은 은사를 통해서 공적으로 인증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일꾼으로 부르실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은사를 주십니다. 물론 그 은사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찬양의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상담에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봉사에 은사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는 별 볼 일 없다며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성도는 교회를 위해 자신의 은사를 분별하고 개발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위해 일하라고 은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모습을 나타내기’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닙니다. 완벽함이 아니라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여전히 부족할지라도 작년보다 올해 더 성장한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구나’ 인정하게 되고 앞으로 더 성장하고 변화될 모습에 기대를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바로 이런 모습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신나는 일도 없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이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더 성장하고 더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계를 스스로 정해 놓고 그 자리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우리는 더 자라가야 합니다.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 주십시오.

다섯 번째는 ‘성도를 가족과 같이 대하기’입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5:1,2)

교회 안에는 다양한 연령과 성별을 가지 그룹이 존재합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도 있고 나이 어린 남자도 있습니다. 또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도 있고 나이 어린 여자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사람들을 아버지처럼 형제처럼, 어머니처럼, 자매처럼 대하라고 권면합니다. 한 마디로 가족처럼 대하라는 말입니다. 가족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애정입니다. 교회 식구들을 가족을 대하듯 애정으로 대하면 ‘나이가 많냐 적냐’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오해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학교도 아니고 동호회도 아니고 회사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번 주에 있었던 전국 학생 수양회는 여러 면에서 역대급이었습니다. 401명의 참석 인원도 역대급이었고 강당의 시설도 역대급이었습니다. 메시지와 특강도, 소감과 찬양도 역대급이었습니다. 심지어 간식도 역대급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참석한 학생분들 중에 앞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들이 서게 될 비전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아직은 부족한 점들이 많이 있겠지만 주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새롭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은혜 안에서 점점 더 성장하고 온전케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들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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