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디모데전서

자족하는 마음

이창무 2024. 2. 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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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디모데전서 제6강 / 이창무

자족하는 마음

말씀 / 디모데전서 6:3-21
요절 / 디모데전서 6: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사람들이 흔히 많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있으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딪치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내 생각만 고집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존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인정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와 어긋나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타협일 뿐입니다. 아무리 관용이 미덕인 시대라 할지라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켜야 할 진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복음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경건이라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나 만약 다른 교훈을 따르게 되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요?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4,5)

다른 교훈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교만합니다. “내가 다 알아” 이런 식으로 큰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둘째, 다른 사람과 말싸움을 벌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시비를 걸고 논쟁을 벌이려고 합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 크고 작은 다툼과 분열이 일어납니다.
셋째,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한 중고 사이트에 이런 상품이 올라왔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안 걸리게 기도해 드립니다. 1인당 2,000원입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 합니다.

듣기만 해도 피곤해지고 답답해집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다수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교회는 병든 교회가 됩니다. 맨날 만나서 싸우기만 하는 콩가루 교회가 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진리 위에 우뚝 선 교회, 모습은 달라도 서로 하나 되는 교회, 경건이 열매로 맺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 각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이 질문의 답을 세 가지 엄중한 명령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자족하는 법을 배우며 부유함을 목적으로 삼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6)

사도 바울은 앞에서 언급했던 “경건”과 “이익”이라는 단어를 또다시 언급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경건을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경건이 이익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그냥 이익이 아니라 큰 이익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자족이 무엇입니까? 바울에 따르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삶의 기본적인 필요만 채워지면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 것입니다.

왜 자족해야 합니까?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출생과 죽음에 관한 근본적인 사실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알몸으로 왔다가 다시 알몸으로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죽을 때 손에 힘을 주고 아무리 세게 붙잡는다 해도 결국 모든 것을 다 두고 갑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부자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난하게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족이란 자신의 소유와 처한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직장이 아니어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제 승용차가 없어도 값비싼 고급 아파트가 아니어도 광고에 나오는 최신 스마트폰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면 만족할 수 있습니다.

왜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경건이 큰 이익이 될까요? 경건이란 내일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반면 자족은 주님을 바라보면서 오늘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오늘에 대한 만족이 없이 내일을 위해 인내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경건한 삶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자족과 경건이 함께할 때 내일을 기억하면서도 오늘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족과는 반대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내일은 잊어버리고 오늘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9)

그들은 부를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유혹에 넘어갑니다. 더 많은 물질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양심을 속이고 부정직한 일을 행합니다. 그렇게 부를 얻었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낳습니다.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고 발버둥을 칠수록 더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결국 파멸과 멸망이라는 밑바닥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고 자기 자신까지도 잃게 됩니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돈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도 물질이 없으면 안 됩니다. 문제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돈 자체를 애정하고 다른 것들보다 돈 버는 것을 더 우선 순위에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돈의 지배를 받는 것이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배신하고 돈 때문에 속이고 돈 때문에 양심을 팝니다. 심지어 돈 때문에 죽기도 하고, 돈 때문에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돈 때문에 발생하는 수많은 악 중에서 바울은 구체적으로 딱 한 가지만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 자기 자신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지만, 누군가는 돈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최악입니다.

가룟 유다가 그런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런 비극을 맞이하지 않았습니까? 자족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않고 물질에 대한 탐욕에 마음을 내어 주면 이런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돈을 사랑함으로 생기는 많은 근심의 가시들로 자신을 찌릅니다.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평안을 잃고 괴로워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물질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2021년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서 한국을 포함한 17개국을 대상으로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17개국 중 14개국이 일순위로 “가족”을 꼽았습니다. 다른 답을 한 나라는 스페인과 대만과 한국 뿐이었습니다. 이 중에 스페인과 대만은 공통적으로 건강을 꼽았습니다. 한국인은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을까요? 바로 “돈”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주목해 볼 조사가 있습니다. OECD 38개국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간 실시한 “삶의 만족도” 조사입니다. 조사 결과 한국은 38개국 중 36위를 했습니다.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튀르키에와 콜롬비아 뿐이었습니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과 삶의 만족도가 바닥을 찍고 있는 것이 상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근심으로 자신을 찌를 것이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 그대로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물질주의 사회 속에서 살다 보니 우리도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을까요? “내가 돈을 사랑한다고요! 말도 안 돼요!” 이렇게 말은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내 마음 속에는 돈에 대한 사랑이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돈은 우리 마음을 쉽게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돈이 주는 편리함, 돈이 주는 안락함, 돈이 주는 달콤함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점점 더 돈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믿음의 길에서 탈선하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딱 멈춰 서서 “그래, 이 정도면 됐어! 더 욕심내지 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더 가지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가장 똑똑한 뇌는 지금 여기서 만족하는 뇌다!” 우리가 주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장래에 베푸실 더 큰 은혜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가운데 오늘을 경건으로 채우고 자족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부르심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나왔습니까? 다른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부하려는 사람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렇게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11a)

디모데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앞에서 열거한 교만하고 다투기를 좋아하고 탐욕스러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다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어디 디모데 뿐이겠습니까? 디모데가 섬기던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에서 모세, 다윗, 엘리야 같은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영광스러운 칭호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십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이요 특권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제 하나님의 사람 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립니다.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11b,12)

이 명령은 바울의 사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전달하는 엄중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크게 네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돈을 사랑함에서 나오는 모든 악을 피해야 합니다. 가급적 빨리 벗어나 도망쳐야 합니다. 머뭇머뭇하다가 잡히고 맙니다. 물질의 유혹이 있는 곳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내면의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 전부 다 내면의 성품과 인격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무려 여섯 가지나 됩니다. 바울의 권면은 한 마디로 ‘돈 많은 부자가 되려 하지 말고 내면 세계가 풍요로운 영혼의 부자가 되라!’ 입니다.

셋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누구와의 싸움이겠습니까? 이미 앞에서 언급한 거짓 가르침, 그 중에서도 특히 돈을 사랑하고 우상시하는 물질주의와의 싸움입니다. 시대의 물질주의에 휩쓸려 가는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람일 수 없습니다. 물질주의와 싸우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넷째, 영생을 붙잡고 풍성하게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주님께 이미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영생을 취하라고 명령할까요? 이는 없던 영생을 획득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얻은 영생을 충분히 마음껏 누리라는 말입니다. 물질에 정신이 팔려서 이미 얻은 영생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꽉 붙들라는 말입니다.

“악을 피하라! 선을 따르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주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신 우리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명령들을 우리가 얼마나 잘 따랐는지 여부에 대해서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주님이 우리를 “너 하나님의 사람아! 내 명령을 잘 지켰구나!”라고 하실까요? 아니면 “내가 너를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냐, 세상에 속한 사람이냐? 도대체 어디 소속이냐?”는 질문을 받게 될까요?

예전에 제가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황정민이 방 한쪽 구석에 세워둔 아버지의 빛 바랜 사진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여기서 약속은 아버지 앞에서 동생과 가족들을 잘 돌보겠다고 했던 마지막 그 약속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환상 중에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니한테 억수로 고맙데이!”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았습니다. “주님, 저 약속 잘 지켰지요. 이만하면 잘 지켰지요. 근데 저 진짜 힘들었거든요.” 그러면 주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고맙다. 너는 언제까지나 내 사람이다. 나는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저도 주님께 이런 말을 꼭 듣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부자 되기보다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이 되기보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 온 마음 다해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을 지키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로,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너그러운 사람이 되십시오.

앞에서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 더 가지려는 욕심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더불어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교훈했습니다. 이제 또 다른 대상을 향해 명령과 교훈을 주고자 합니다.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17,18)

그들은 부한 자들입니다. 초대 교회 때도 성도들 가운데 부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부유한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자기가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부자는 대기업 회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 입을 것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삶에 꼭 필요한 것 외에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 부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 부자입니다. 이 명령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들어야 합니다. 어떤 교훈입니까?

첫째,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재산이 생기면 저절로 마음이 높아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나타나는 첫번째 현상이 자기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내게 남들보다 더 많은 부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재물이 정함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본을 보면 ‘덧없는 재물, 믿을 수 없는 재물, 확실치 않은 재물, 곧 없어질 재물’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가 소망 두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우리 인생을 돌보시고 인도하고 계시는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기도 하는 재물에 소망을 둘 것이 아니라 그 재물을 주관하시는 분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셋째, 너그럽게 자신의 소유를 베풀고 나누어야 합니다. 기부도 하고 헌금도 하고 구제도 하는 등 선한 사업을 위해 자신의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것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아까운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나의 영원한 미래를 위해 하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확실한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편지를 끝맺을 때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권면을 남깁니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20)

바울은 디모데전서 전체를 통해 교회가 거짓과 맞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말씀에 따라 자격 있는 일꾼을 세워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고 악을 피하고 선을 따르며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며 너그럽게 베풀며 살아가야 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교회를 부탁했던 것처럼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건강한 교회,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갈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21b)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은혜 없이는 안 됩니다. 변함없는 주님의 은혜가 우리와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주님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길로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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