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디모데전서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

이창무 2024. 1. 28. 20:08
반응형

2024년 디모데전서 제3강 / 이창무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

말씀 / 디모데전서 3:1-16
요절 / 디모데전서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국회에서 진행하는 인사 청문회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청문회는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가 그 후보를 검증하는 절차입니다. 국회의원들이 후보자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청문회를 보면 검증을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어떻게 하든 후보자를 깎아내리고 그만두게 하려고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아예 대놓고 사퇴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를 섬기는 직분인 감독과 집사는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을 가지고 우리도 인사 청문회를 열어야 할까요? 하지만 오늘 본문은 누군가의 흠을 찾아내고 실격 처리를 하기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영적인 성숙을 가늠하는 기준을 제시하여 사역자를 세울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 위해 주어진 말씀입니다. 또한 직분을 맡은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어떤 부분에서 영적으로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함께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면에서 그리고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영적 성장은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1)

사도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말하며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도대체 어떤 말이길래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까요? 이 말은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국가대표 축구팀도 아니고 갑자기 등장하는 감독은 누구일까요? 여기서 감독은 장로와 동의어로서 한 교회를 책임지고 이끄는 목회자를 가리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책임 목자나 선교지의 지부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혹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감독의 직분을 얻는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검소한 삶, 낮아지는 삶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도리어 끊임없이 자기 부인을 해야 하는 길입니다.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는 영역이 늘 존재하는 고독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바울은 이 길이 사모할 만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 길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배울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분’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벧전2:25). 이런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우리가 가장 잘 배울 수 있겠습니까? 내가 영혼의 목자요 감독의 역할을 실제로 감당해 보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빠르게 더 확실하게 예수님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목자와 감독의 직분을 맡아 섬기게 되면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머리 속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주 예수를 사모하는 모든 이에게 이보다 더 큰 유익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회에서는 어떤 자리나 직위를 대개 성취에 대한 보상이나 나이에 따른 예우 차원이나 힘과 명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주어진 직분은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직분은 그 직분 자체보다 그 직분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단순히 직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직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애쓰고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면 어떤 모습이 성장한 모습일까요? 어떤 모습이 제대로 자격을 갖춘 모습일까요? 본문을 두 절 씩 묶어서 세 가지 영역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영역은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2,3)

가장 먼저 나오면서 제일 일반적인 것은 책망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벽하거나 잘못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뜻이라면 누구도 감독이 될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칼빈은 “망신스러운 일로 훼손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모든 과목에서 백 점을 맞을 수는 없지만, 빵 점이 있는 과목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과목들이 있습니까? 신실한 결혼 생활, 자기 절제, 나그네 대접, 말씀 가르치기, 술을 즐기지 않기, 혈기를 부리지 않기, 돈을 사랑하지 않기, 이렇게 일곱 개의 전공 필수 과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중에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는다면 적어도 감독의 직분에는 부적절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영역은 가정입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4,5)

한자 성어 중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닦고 난 후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나라도 다스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형제, 자매가 모여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정에서 자녀들의 바른 성품을 길러주고 있지 못하고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더 성장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우리가 고치고 자라가야 합니다.

세 번째로 살펴볼 영역은 교회와 사회입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6,7)”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는 직분을 맡기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런 사람의 장점은 그의 심령이 아주 뜨겁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감독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그에게 직분을 맡기지 말라고 할까요? 이는 그가 교만하게 되어 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깨어지고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것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누구든 이 교만의 덫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성숙에 이를 때까지 훈련되고 다듬어져야 할 어느 정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감독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교회 밖 믿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에서 고립된 게토가 되어서는 안 되고, 교회 밖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감독이 세상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세상과 전혀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교회가 세상을 품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감독의 자격에 대해서 세 가지 영역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 능력 측면에서 감독의 자질을 다루고 있는 부분은 가르치는 것, 딱 하나뿐입니다. 가르치는 것 말고 모든 항목이 다 그 사람의 인격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점에서 성장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능력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인기가 아니라 인격입니다. 외모가 아니라 인격입니다. 가진 것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요 인격이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격을 다듬어 가는 것이 선한 일이고 우리가 계속해서 마음에 두고 추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인격 면에서 끊임 없이 예수님을 배워서 언제든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영적 성장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8절부터 감독에 이어 집사의 자격이 나옵니다. 교회에서 감독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감독을 도와 실무적인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집사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부장단 목자님들이나 팀 리더 목자님들, 관리 목자님이나 재정실무자 목자님이 일차적으로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라는 말과 함께 집사의 자격을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집사의 자격도 감독의 자격과 그 기준이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집사의 자격 요건을 보면 가르치는 은사 외에는 감독의 자격과 거의 비슷합니다. 결국 감독이든 집사이든 중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다만 본문에서 집사의 자격을 열거하는 도중에 ‘여자들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여기서 여자는 집사의 아내를 가리킵니다. 아내 역시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본이 되고 충성스럽게 섬겨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동역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집사 뿐만 아니라 감독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 어떤 보상이 있을까요?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13)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름다운 지위입니다.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얻는 영예로운 지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존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입니다.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의 담대함을 의미합니다. 충성스러운 섬김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합니다.

집사의 직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섬김의 가치입니다. 집사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집사는 식탁에서 시중 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섬기는 일은 그다지 품위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섬기는 것보다는 섬김을 받고 위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관점을 완전히 바꾸셨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예수님은 식탁에서 집사가 되셔서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집사로서 제자들을 섬기시고 스스로 종이 되셨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의 모습은 바로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한 양이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목자님이 캠퍼스 런치 미팅을 위해 양손에 도시락과 국 통을 들고 이공대 애기능 꼭대기까지 낑낑대며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성경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우리가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곧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내어 주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섬기며 이웃과 양들을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 다시 만날 때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영적 성장은 교회의 사명과 함께 갑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 언급했다면, 이제부터 자격을 갖춘 일꾼들이 섬겨야 할 교회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14,15)

사도 바울은 직접 에베소를 방문해서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디모데를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지체되어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써서 에베소 교회의 임시 감독 역할을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디모데가 교회의 본질과 정의부터 알아야 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여기서 집은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 곧 가족을 의미합니다. 결국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MBTI도 애니어그램도 다 다르지만, 이제 우리는 하나님 한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형제와 자매가 되었습니다.

가족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교제하고 서로를 돌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을 활짝 열어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시로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감사 제목과 기도 제목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한 가족이 되어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주일에 잠깐 교회에 왔다가 가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더 많은 일을 함께 하고 더 깊은 관계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이와 같은 성도의 교제를 촉진하고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단 그냥 만나서 대화하고, 기도하고 헤어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둘째,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구약 시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어디에 임하셨습니까?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전에 임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는 어디에 임하십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예배 시간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경배를 올려 드리며 그분의 높으신 이름을 찬양하게 됩니다. 예배 가운데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만찬을 통해 나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자기 몸을 내어 주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회, 찬양, 특송, 반주, 기도, 말씀, 헌금, 방송, 음향, 청소, 음식 준비 등등 예배의 요소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모든 섬김이 한 데 어우러져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셋째,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기둥은 지붕을 튼튼하게 받쳐 주는 역할을 하고 건물을 높이 올려서 멀리서도 건물을 볼 수 있도록 합니다. 터는 건물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교회는 진리의 기둥으로서 진리를 높이 들어 올려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야 합니다. 곧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가리킵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진리의 터로서 이단과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진리를 튼튼하게 지켜야 합니다. 요약하면 진리를 전파하고 수호하는 것, 이것이 교회의 핵심적인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은 언제나 진리를 선포하고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렵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든 복음 전파의 길을 열고자 기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단 세력이 교회 안으로 틈타지 못하도록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거짓 가르침과 맞선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교회가 흔들림 없이 진리 위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널리 전파해야 하고 지켜야 할 진리가 무엇입니까?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16)

16절은 초대 교회 때 널리 불렸던 찬송의 가사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찬송으로 말하는 진리는 바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입니다.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경건의 비밀입니다. 세상은 이 비밀을 알지 못해 방황하며 헛된 것을 쫓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은혜로 이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령으로 부활하셨기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고 사람들에게 믿은 바가 되었으며 믿는 자들의 주님으로서 영광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배 중에 부른 이 찬송은 형태는 다르지만 오늘 우리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우리가 교회로서 진리 되신 주님을 높이며 진리 되신 주님을 온 세상에 증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성하고 다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반응형

'설교 > 디모데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경하라  (0) 2024.02.18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  (1) 2024.02.05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2) 2024.01.21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1) 2024.01.14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0) 2016.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