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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도행전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

by 목자 이창무 2025.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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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사도행전 제 29 강 / 이창무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
 
말씀 / 사도행전 22:30-23:35
요절 / 사도행전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서론: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증인의 길


혹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도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카메라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카메
라라도 삼각대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손떨림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그 소중한 장면이 흔들려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삼각대가 든든하게 받쳐주면 어떤 상황에서도 카메라는 안정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죠. 그래서 전문 사진작가들은 아무리 무겁고 불편해도 반드시 삼각대를 짊어지고 다닙니다.

오늘 본문 속 바울의 상황은 마치 한겨울 칼바람 앞에서 홀로 서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한 채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선 바울. 불공정한 재판, 대제사장의 모욕, 그리고 무려 40여 명이 금식하며 맹세한 암살 위협까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왜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그의 삶을 든든히 붙들어 준 영적인 삼각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삼각대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삶의 ‘손떨림 방지 장치’가 되어줄 삼각대의 세 기둥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가 보려 합니다.

1. 첫 번째 기둥은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22:30-23:10)

지금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한복판, 자신을 죽이려 혈안이 된 대제사장과 수많은 공회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한 마디 말실수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모두가 숨을 멈춘 채 바울의 입만 바라보는 그 살벌한 재판정. 마치 전국에 생중계되는 듯한 엄청난 압박감! 이 압박감이 우리의 심장을 짓누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얼어서 꼼짝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울은 겁에 질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 위험천만한 무대에서 주인공처럼 등장합니다. 그는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 그 자리에서, 한치의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나는 양심대로 살아왔노라고 증언합니다.

이 모습에 대제사장은 분노하여 바울의 입을 치라 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위축되기는커녕 그대로 맞받아 칩니다.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은 위선자를 향한 사이다 발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시작으로 재판의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공회원들의 약점을 날카롭게 간파했습니다. 그들 내부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6b) 

이것은 절묘한 신의 한 수였습니다. 바울은 공회 내부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부활 교리 논쟁에 불을 질러버립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회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오히려 바리새인들이 바울의 편을 들며 “이 사람에게서 아무 악한 것도 찾지 못했다”고 선언합니다. 결국 로마 군인들이 나서 바울을 구출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재판은 중단되고 말았죠.

이렇게 된 이유가 바울의 행운이나 재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과 침착함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재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바울의 이런 담대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1)

그 담대함의 근거는 오직 하나,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따라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호연지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크고 넓은 기운을 뜻합니다. 이는 자신의 신념과 도리에 떳떳하여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바로 이 호연지기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스피릿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했던 선택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했던 그의 모든 순종들이 겹겹이 쌓여 바로 이런 호연지기를 길러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양심대로 사는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때로는 비웃습니다. “그렇게까지 정직할 필요가 있나?” “양심 지키다가는 손해 본다”라는 말을 쉽게 하죠. 어떤 이들은 양심을 따라 살려는 사람을 바보처럼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심은 힘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인생의 위기와 시험 앞에서 우리의 발을 붙들어 주고,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내적인 힘이 바로 양심입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하듯, 우리의 영혼도 평소 양심의 근육을 길러야 합니다. 작은 선택 속에서 거짓 대신 진실을, 미움 대신 용서를, 불의 대신 정직을 택할 때 우리의 영혼은 점점 단단해집니다.

양심대로 사는 사람은 잃는 것이 많아 보여도 대신 더 중요한 것을 얻습니다. 그는 신뢰를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담대함을 누립니다. 양심을 저버리고 얻은 이익은 잠깐 달콤할지라도 결국 썩어 없어지고, 양심을 지키며 걸은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조롱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작은 순종들이 모여, 언젠가 위기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우리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두 번째 기둥은 외로운 밤에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23:11)

낮에는 “회칠한 담이여!” 하고 호통치며 공회원 70명을 뒤흔들던 바울. 마치 천하무적 같았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두꺼운 감옥의 벽, 싸늘한 공기 속에서 바울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내가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나의 사명이 여기서 허무하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 바울이 아무리 강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이 밤에는 인간적인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11)

절망의 밤, 바울이 가장 외롭고 나약할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친히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스펙타클한 환상을 보여주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마치 친한 친구처럼, 따뜻한 아버지처럼, 그 차가운 감방 바닥으로 직접 찾아오셔서 바울 곁에 서서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이때 바울에게 건네신 주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담대하라.” 두려움에 떠는 바울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둘째,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하리라.” 이는 바울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쓰임 받을 귀한 그릇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생각할 때 저는 디트리히 본회퍼가 떠오릅니다. 그는 히틀러의 독재에 맞서 양심과 말씀을 따라 증언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결국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담대했지만, 감옥에서 쓴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에서 그는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을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의연하고 당당하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두렵고 불안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누구이든, 나는 주님의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담대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이 담대한 것입니다. 성도의 담대함은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역시 바울처럼 인생의 밤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낮에는 괜찮은 것 같다가도 밤이 되면 마음이 무너지고 두려움이 엄습하죠. 건강의 문제, 가정의 갈등, 직장에서의 압박, 관계의 상처들이 밤이 되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이런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주님께서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주님은 멀리서 지켜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친히 가까이 다가와 “담대하라”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귀에 직접 들리지 않아도, 주님은 실제로 우리 곁에 계시며 연약한 우리를 붙드시고 위로하십니다. 실패와 두려움 속에서도 끝나지 않은 길이 있다는 것, 여전히 우리가 서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십니다.

저 역시 인생의 밤을 여러 번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도 밤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냉철하게 ’T’처럼 판단하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극 ‘F’처럼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속상하고 불안하고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저는 본회퍼처럼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T인가 F인가?’ 그런데 주님께서 욥기 말씀을 통해 제게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내가 누구인지는 하나님이 아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상황이나 결과가 나를 판단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이 나를 최종적으로 판단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있었기에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마음이 평안해졌고, 제가 해야 할 사명과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밤을 지나고 있든지,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붙드시고, 여전히 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시 붙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끝까지 증인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은혜 안에서 담대히 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3. 세 번째 기둥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3:12-35)

12절부터 우리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12)

이들이 세운 계획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습니다. ‘죽이기 전에는 굶어 죽겠다!’ 40여 명이 피의 맹세를 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까지 가담한, 종교 권력 최상층부가 결탁한 치밀하고 은밀한 암살 작전이었습니다. 이 음모가 발각되지 않았다면, 바울은 하루 만에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악한 계획보다 더 치밀하고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바울을 보호할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16)

하나님은 이 극비 암살 작전을 무산시키기 위해 국가정보원이나 C.I.A 요원을 쓰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조카를 사용하셨습니다. 어떻게 이 소년이 40명이 모여서 세운 비밀 계획을 알게 되었을까요? 롯데리아에서 알바하다가 손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이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조카로부터 음모를 전해 들은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즉시 행동에 나섭니다. 바울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한 군사 총 470명이 동원됩니다! 이 정도면 일국의 왕을 경호하는 규모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왜 천부장이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천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VIP 국빈처럼 극진히 보호하시는 것! 이 또한 섭리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맹세했던 40명은 끝까지 굶었을까요?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합니다. 40명이 단체로 굶어 죽었다는 뉴스는 없습니다. 아마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맹세를 슬그머니 포기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굳은 맹세도 결국 하나님의 계획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번 사건에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옥문이 저절로 열리는 초자연적 사건도 없었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바울의 조카라는 작은 자와 천부장이라는 큰 자를 모두 사용하셨습니다. 로마의 행정 체계 같은 평범한 통로들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이 일하셨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기적입니다. 섭리로 역사하시는 비밀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작은 것’을 통해 일하십니다. 때로는 한 아이의 기도, 누군가의 짧은 위로의 말, 혹은 예상치 못한 만남이 우리의 삶을 살리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 말할 수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섭리의 순간입니다. 우리의 작은 것까지 귀하게 사용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감사할 이유를 찾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큰 것’을 움직이십니다. 나라의 제도, 사회의 권세, 예상치 못한 인맥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보호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권력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결국 우리를 위한 선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음달 중순에 마태 게루스 목자님 가정이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십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신다고 하니 걱정과 염려가 앞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것들을 사용하셔서 섭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실은 게루스 목자님이 징병 기피를 표시하는 빨간색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몇 달 전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돌어가면 강제 징집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갑자기 문제 없음을 뜻하는 초록색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릅니다. 이미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하기 시작했음을 믿을 뿐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화려한 기적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 건강한 몸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가족과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베푸신 일상의 기적이요, 섭리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 바로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굳건히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설명할 수 없어도, 그 사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위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사랑 안에서 평안과 담대함을 얻어 증인의 길을 넉넉히 걸어갈 것입니다. 이 섭리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워진 담대한 증인의 삶

오늘 우리가 본 바울의 모습은 세 개의 든든한 기둥 위에 세워진 집과 같았습니다.

첫째,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정직한 삶. 둘째, 외로운 밤에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붙드는 신앙. 셋째, 보이지 않는 손길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믿음.

이 세 기둥이 바울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0인의 단식 암살단의 위협 속에서도, 난장판이 된 산헤드린 법정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폭풍은 몰아칩니다. 예기치 못한 위기, 억울한 오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우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 기둥 위에 굳건히 서 있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양심을 따라 정직하게 살고, 주님의 약속을 붙들며,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한다면, 세상의 비웃음과 위협 속에서도 우리는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 삶을 보호하시고 이끄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지키는 방향으로 역사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공격해도,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폭풍 속에서도 우리는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때 두려움은 물러가고, 우리의 마음에는 놀라운 평안이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흔들리지 않는 증인의 길이며, 오늘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바울이 보여준 이 세 기둥—곧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섭리 위에 세워져서, 흔들리지 않고 진리를 증언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정신호>

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세상 그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 은혜로 나를 돌보시며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시네

주 사랑이 나를 이끄시네
내가 갈 수 없는 그 곳으로
주의 사랑 나를 붙드시며
세상 끝날까지 인도하시네

주님만이 내 아픔 아시며
주님만이 내 맘 어루만지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주님만이 내 능력이시며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이 흔들림 없는 증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를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양심을 따라 정직하게 살며, 외로운 밤에도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보이지 않는 섭리를 신뢰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풍랑이 우리를 흔들 때, 주님 곁에서 “담대하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끝까지 복음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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