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사도행전 제 26 강 / 이창무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바울
말씀 / 사도행전 20:17-35
요절 / 사도행전 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서론: 우리 삶의 향기를 바꾸어 주시는 분
우리의 삶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무엇입니까? 얼굴입니까? 옷차림입니까? 아니면 말투나 직업일까요? 그런데 정말 우리의 깊은 존재를 드러내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향기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 분노의 냄새를 풍깁니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위축되고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따뜻한 사랑과 겸손, 은혜의 향기를 풍깁니다. 그 곁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위로받고, 평안을 얻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향기가 가장 극적으로 바뀐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울은 율법과 교만, 그리고 분노의 냄새를 풍겼습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그는 복음의 향기, 은혜와 눈물과 사랑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 만남이 우리의 삶의 향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흘려보내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1. 자기의(自己義)의 냄새를 풍기던 사울
사도 바울의 이전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철저히 지킨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가말리엘 스쿨을 졸업하고 ‘All A’를 받은 당대의 수재였습니다. 완벽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달랐습니다. 겉으로는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혹시 내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닐까? 혹은 남들보다 뒤처진 것은 아닐까?”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자기 안의 공허함을 감추기 위해, 더 강한 열심을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을 핍박했습니다. 감옥에 가두고,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습니다. 누군가를 짓밟을 때만, 비로소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마음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포장했지만, 속으로는 교만과 자기 의, 그리고 억눌린 불안이 그를 몰아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비참했습니다. 사울의 열심은 결국 폭력과 살인을 낳았습니다. 그의 손에는 스데반의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스스로 쌓아 올린 인생이 무너질 때, 남는 것은 상처와 죄뿐이었습니다.
사울의 이야기는 단지 2000년 전의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의 내면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거울과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울처럼 자기의의 냄새를 풍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적인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좋은 학벌, 높은 연봉, 화려한 직함, 남들이 부러워하는 완벽한 가정을 통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울과 마찬가지로 깊은 불안과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우리를 끊임없이 몰아세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강하게, 더 완벽하게 자신을 포장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나아",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아"라고 속삭이며, 상대방을 깎아내릴 때 비로소 내가 옳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의 자기의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입니다. 겉으로는 향기로운 모습일지 모르지만, 그 속은 시기와 질투, 교만이라는 썩은 냄새로 진동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쌓아 올린 인생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끝에는 사울처럼, 우리에게도 상처와 죄악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자기 의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2.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울
사울의 인생은 다메섹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곧 다 잡아 가둘 기세였습니다. 이른 승리감에 가득 차서 말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졌습니다. 눈을 찌르는 그 빛 앞에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한때 위풍당당하던 사울은, 이제 빛 앞에 무력한 인간으로 엎드려야 했습니다. 사울은 3일 동안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의 내면은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멈추어 세우고, 자신을 무너뜨리는 빛 앞에 정직하게 섰습니다. 3일은 단순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옛 자아가 무너지고, 새로운 자아가 태어나기 위한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바울의 영혼에서 독기가 빠지는 영적 디톡스(detox)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업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힘과 의지는 허망한 것이었다는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붙잡고 있던 확신, 자신이 진리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교만과 자기 의로 세운 세계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옛 사람에게서 로그아웃하고 은혜의 사람으로 재부팅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다메섹 사건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먼저 옛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내가 죽는 만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3. 복음의 향기가 풍겨 나는 바울
다메섹에서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얻은 사울은 이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역을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밤낮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손길은 연약한 자를 세우는 데 쓰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양들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선교사이자 목자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마지막 고별 메시지를 전하려 합니다. 바울은 다시는 이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장로들 또한 그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고별사를 전하는 바울의 음성은 떨렸지만 단호했습니다. 이 메시지는 복음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증언이었습니다.
첫째, 겸손과 눈물의 향기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19)
옛 사람 사울은 교만했습니다. 율법적 열심과 사회적 지위, 학문적 배경과 로마 시민권까지,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자랑이 넘쳤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판단했고, 자신과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순간, 그의 자랑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분 앞에서, 그는 철저히 깨어졌습니다.
이후 바울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 섬김의 장면이 바울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 부르며, 날마다 십자가 은혜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
목자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양들을 눈물로 가르쳤습니다. 어떤 눈물이었을까요? 바울이 세운 교회에는 믿음이 약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유혹에 쉽게 흔들리고,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비울은 그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넘어질 때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양들이 넘어질 때 함께 울었고, 잘못된 길로 갈 때 더 크게 울었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던, 아니 바늘이 부러질 것 같았던 바울이 어떻게 이토록 달라졌을까요? 그의 눈물 또한 예수님께 배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양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목자 없는 무리를 보시고 가슴아파하셨습니다. 바울이 흘린 눈물은 그가 주님의 마음, 그 목자의 심정을 품은 사람이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SNS를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과시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강하고 당당한 모습만을 보여줘야 인정받습니다. 반면, 겸손과 눈물을 연약함의 표시처럼 여깁니다. 안타깝게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 연민으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해도 괜찮은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하려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삶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줍니다. 진정한 복음의 향기는 바로 이 겸손과 눈물에서 나온다고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복음의 향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남보다 더 높아지려 하고, 겉치레에 급급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겸손과 눈물로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상처 입었던 영혼들이 위로를 받습니다.
캠퍼스 목자의 사역이 바로 이와 같은 겸손과 눈물의 사역이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성경책을 들고 강의동과 기숙사 앞을 돌며 양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학생들 앞에서, 목자들은 논리나 권위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밥을 사 주고, 늦은 밤까지 말씀을 함께 읽어 주며, 눈물로 함께 울어 주었습니다. 바로 그 겸손한 발걸음과 눈물의 섬김이 청년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었고, 상처 입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 열매가 바로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 겸손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있던 교만과 정죄의 냄새를 씻어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채워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삶이 다른 이를 살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굳건한 사명인의 향기입니다.
바울의 변화된 삶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굳건한 사명의식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4)
성령께서 바울에게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물러서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안전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귀히 여겼습니다. 편안함보다 은혜의 사명을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과거 사울은 율법과 자기 열심에 매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붙들린 삶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사명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삶을 지탱하는 중심이자, 모든 결정의 기준이었습니다.
바울의 사명 의식은 억지 의무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은혜에 사로잡힌 결과였습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순간, 그는 지금까지 붙들었던 영광은 배설물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바울에게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내 목숨을 걸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에서 ‘내가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아’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사명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안전과 안락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고, 손해 보지 않는 관계를 맺으려 애씁니다. 신앙생활조차도 "가늘고 길게", 무난하게 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우리는 위험과 도전보다는 편안함과 익숙함을 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때로 너무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편하기는 하지만 인생에서 뭔가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것 같이 공허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처럼, 복음이 주는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돈이나 성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손해를 보거나 위험에 처할지라도, 기꺼이 자신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뚜렷한 목적 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웬만한 일에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이런 말이 저절로 흘러 나오게 됩니다. “살아 있네”
이것이 바로 혼돈과 방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보여줘야 할 복음의 향기입니다. 뚜렷한 목표 없이 표류하는 이들에게, 사명으로 굳건히 서 있는 우리의 삶은 큰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세대에게, 사명을 확고히 붙든 이의 삶은 그 자체로 빛과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는가?" 바울처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붙들린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주는 삶의 향기입니다.
바울의 삶에서 또 하나 뚜렷한 변화는 바로 “주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35)
이 말은 바울의 인생 전체를 압축한 한 줄이었습니다. 과거 사울은 빼앗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타인의 자유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빼앗는 자에서 주는 자로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붙들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교회의 지운을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종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천막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고로 자신뿐 아니라 동역자들의 필요까지 채웠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복음이 조금이라도 오해받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돈 때문에 우리에게 온 것”이라는 의심조차 들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삶입니다. 소유가 목적이 아니라, 나눔이 목적이 되었던 삶입니다.
주는 삶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유하라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가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을 나눌 때, 재정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때, 마음을 다른 이들을 품는 데 쏟을 때,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깊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공허함은 단순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받고, 너무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옷을 사고, 음식은 넘쳐납니다. 손 안의 작은 휴대폰 하나만 켜면 수많은 정보와 즐길 거리가 흘러넘칩니다. 그런데도 마음 깊은 곳은 여전히 허전하고 외롭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움켜쥘수록 더 불안하고, 더 고립됩니다.
그러나 작게라도 나누고 베풀기 시작할 때, 놀랍게도 마음은 열리고 존재가 충만해집니다. 이웃과 가족, 동료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삶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의 인간다움을 회복하게 됩니다. 소유는 쌓을수록 불안이 쌓이고, 나눔은 나눌수록 기쁨이 쌓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배우며 자신의 삶을 ‘주는 삶’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 자체가 복음의 증언이 되었습니다. 주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세상에 퍼져 나갑니다. 주는 삶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결론: 어떤 '향기'를 발하겠습니까?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으로 눈물로 고별하며 자신의 삶을 증언했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세상 영광과 권세와 명예의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은혜와 사명, 눈물과 헌신에서 흘러나온 복음의 향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에서는 어떤 향기가 풍기고 있습니까? 세상의 욕망과 비교 속에서 피곤과 불안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까? 아니면 은혜와 사랑, 겸손과 희생의 향기가 스며나고 있습니까? 세상적 성공과 스펙으로 만들어낸 향기는 잠깐 지나가면 사라지는 휘발성 향수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안의 옛 자아를 무너뜨리고, 결코 우리가 스스로 낼 수 없었던 새로운 향기를 선물하십니다. 그것은 영원히 남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은혜의 향기로 가득 차길 소망합니다. 그 향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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