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가복음

그의 말을 들으라

이창무 2024. 9. 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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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18강 / 이창무

그의 말을 들으라

말씀/ 마가복음 9:1-13

요절/ 마가복음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유튜브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동영상 플랫폼입니다. 매달 25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튜브를 보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한국만 보아도, 2023년 기준으로 약 4500만 명이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거의 90%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유튜브 속에서 무언가를 보고 듣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유튜브의 화면 속에 빠져 있는 동안, 정작 우리 눈이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을 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의 귀가 들어야 할 것들을 못 듣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우리가 유명인들을 팔로우(follow)하느라 정작 팔로우해야 할 중요한 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로 따라야 할 이는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눈을 들어 영광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앞선 8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마가복음 9:2)

그리고 엿새가 지난 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때 그들은 정말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신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어땠습니까?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마가복음 9:3)

예수님이 입으신 옷이 너무나도 희고 빛이 나서, 세상에서 아무리 빨래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깨끗하게 만들 수 없을 만큼 빛나고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미백을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합니다. 세럼, 크림, 에센스, 앰플, 토너 등 여러 화장품을 쓰고, 피부과에 가서 레이저 박피 시술도 받습니다. 사진 찍을 때는 앱에서 필터를 잔뜩 먹여서 최대한 환하게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의 노력도 예수님의 영광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불꽃 같은 눈, 흰 양털 같은 머리, 해처럼 강하게 빛나는 얼굴이었습니다(요한계시록 1:13-16). 그때 본 예수님의 영광은 바로 이 변화산에서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마가복음 9:4)

예수님께서 영광 가운데 변형되신 그 순간, 또 다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을 나누는 장면이 제자들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엘리야는 900년 전, 모세는 1400년 전에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카메오처럼 깜짝 등장한 것입니다. 이들이 부활의 영광 속에서 주님과 함께 서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두 사람 모두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광 중에 있습니다. 이들은 고난과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후에 영광스러운 부활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산 증인들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곧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예수님께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 자리에 있었던 세 제자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이 사건을 회상하며 "우리가 그분의 크신 영광을 목격하였다"라고 증언했습니다(벧후1:16-18). 베드로는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고난의 너머에 있을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아무리 험난해도,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기에 그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때때로 짙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삶의 길이 막히고, 문제들로 인해 고통스럽고 지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구름 너머에는 언제나 부활하신 주님, 영광의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바라보고 신뢰할 때,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강과 소망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제 인생에도 딱 한 번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다. 영광의 빛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체험 덕분에 일생 동안 말씀에 헌신된 종으로 살겠다는 결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힘이 나고,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겪는 고난이 아무리 커 보여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영광에 동참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빛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주님의 영광은 영원히 빛납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영광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붙잡고, 그분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강과 위로 속에 거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귀를 열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마가복음 9:5)

변화산에서의 그 놀라운 순간, 베드로는 감격에 차올라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주님을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또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겠습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의 찬란한 영광에 마음을 빼앗겼고, 그 자리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너무도 특별한 장면이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벅찼을까요? 인간적으로 보면 베드로의 반응은 자연스럽고 또 이해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반응은 아직 십자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인간적인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았으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깨닫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머물고 싶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신 이유는 단순히 그 순간을 즐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영광은 다가올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가기 전에 그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한, 그리고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우리는 때때로 놀라운 영적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 중에, 예배 중에, 또는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체험들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키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 속에만 머물러 있고 싶어 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현실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 성숙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편안한 영적 체험 속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마가복음 9:7)

바로 그때, 구름이 내려와 그들을 감쌌습니다.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베드로가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을 내셨습니다. 그 음성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명령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단지 위대한 교사로, 도덕적 지도자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 분이지만, 그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권위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한 인간의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8:34).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 부인과 희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 길은 때로는 고난과 어려움으로 가득할 수 있지만, 그 끝에는 부활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길을 가르치셨고, 우리도 그 길을 따르는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마가복음 9:8)

그리고 문득 제자들이 눈을 들어 둘러보니, 그들이 보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남아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모세, 그 영광스러운 순간들이 모두 사라졌고, 그곳에는 오직 예수님만 계셨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결국 남는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영광스러운 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순간을 통해 드러나신 예수님이라는 진리입니다.

지난 여름 동안 우리 각자에게는 특별한 경험들과 의미 있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우리 여름수양회, 유럽 국제 수양회, 몇몇 선교사님과의 관계 회복, 안소망 목자님의 결혼 등이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온 이러한 은혜로운 순간들은 마치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감격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일상의 바쁜 삶으로 돌아왔지만,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은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신앙 생활은 특별한 경험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이어집니다. 매일의 삶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다가오는 이 가을에도 치열한 삶의 현실 속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아직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예수님의 뒤를 따릅시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마가복음 9:9)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실 때,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오늘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제자들은 눈앞에 펼쳐진 그 영광, 그 신비로운 장면은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입술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을 당장 SNS에 올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 비밀을 잠시 가슴 속에 간직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아직 그분의 죽음과 부활,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계획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목격한 그 영광은 부활의 한 조각을 미리 보여준 것이었지만, 그들은 아직 십자가의 고난과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부활 전까지는 그들이 본 영광도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없었으며, 그들이 전할 메시지도 완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마가복음 9:10,11)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서로 궁금해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일까?" 그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신비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안개 속에서 길을 찾듯이, 그들은 여전히 영적으로 더듬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십자가와 부활의 깊은 비밀이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또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가르치나요?" 서기관들은 말라기 4장 5-6절에 근거하여,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와서 길을 예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왜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았는지 궁금해했던 것입니다.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마가복음 9:12,13)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맞다,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인자에 대해서는 왜 성경이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한다고 기록했겠느냐?" 이어 예수님은 엘리야는 이미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함부로 대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엘리야는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며,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으나, 세상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고난 속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실 길을 그는 그렇게 준비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메시아가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받기 전에 반드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이 고난의 깊은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열렸으나, 아직 모든 진리가 다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귀는 열렸으나, 그 말씀의 깊은 울림은 아직 가슴 속 깊이까지 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두 눈으로 변형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분이 있습니까? 구름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두 귀로 직접 들은 분 있습니까?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두 가지 사건을 직접 다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적인 눈을 온전히 뜨지 못했습니다. 귀가 활짝 열리지 못했습니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목격한 그 영광스러운 순간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고하는 장면이었지만, 그들은 아직 그 모든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고, 믿음의 성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눈이 온전히 열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을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 그들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고난과 부활을 통해, 주님의 구원의 길이 완성되는 것을 봐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아직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왜 말씀이 귀에 잘 들리지 않느냐며 너무 답답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때가 무르익으면 보이기 시작하고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보이고, 그것이 곧 나의 십자가요 나의 부활이라는 것이 깊이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아직 다 보이지 않고 다 들리지 않아도 묵묵히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수많은 의문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았지만 그 상태 그대로 계속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했습니다. 베드로는 초막 셋을 산 위에 짓자는 자신의 제안이 철저히 무시 받은 것에 화가 나 투덜거렸을 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는 예수님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 여정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가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주님을 더욱 붙들고 그분을 따르는 길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예수님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듯, 우리도 일상의 문제들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따르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때로는 혼란스러워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문과 갈등 속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향한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즉시 얻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얻기 전까지도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명령은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인내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경험한 영광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예고했듯, 우리도 고난 속에서도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따를 때,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마침내 영광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귀 기울이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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