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가복음 제14 강 / 이창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말씀/ 마가복음 7:1-23
요절/ 마가복음 7: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청소기 제작업체로 유명한 다이슨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와 먼지의 유해성에 가장 민감한 국가는 한국이라고 합니다. 10개국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은 외출 후 옷을 세탁하거나 갈아입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집안 대청소를 가장 자주 하는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뉴스를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오, 한국 사람들! 우리와 정말 잘 맞겠네요. 손도 빡빡 잘 씻고 있겠지요?” 이렇게 반응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위선을 지적하시며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깊이 새기며, 우리의 신앙 생활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종종 외적인 규례와 형식에 얽매여 진정한 신앙의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정결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사람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정결을 가져다 줍니다.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1,2)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그들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했을까요?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3,4)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에 따라 식사 전에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이 전통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때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되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손을 씻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사장이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드릴 때 손을 씻도록 한 규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규범을 일반화해서 모든 유대인에게 적용시키고, 종교적, 영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들은 "바깥 세상은 오염된 곳이므로 씻지 않으면 그 음식을 먹은 내가 부정하게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규정은 더욱 많아지고 권위도 강력해졌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두 종류의 율법을 주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문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구전율법, 즉 사람의 전통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전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사실 전통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둘 다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전통이 성경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대일 성경공부, 소감쓰기, 일용할 양식 먹기 등의 전통은 신앙 생활을 구체적으로 이끌어 줍니다. 또한 전통을 통해 신앙을 훈련하고 성숙해질 수 있으며, 전통을 공유하는 사람들 간에는 일체감이 형성되며 공동체의 일치와 연합에 도움을 줍니다. 신앙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전통의 부정적인 면도 존재합니다. 전통은 개인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제한할 수 있고, 형식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변화와 개혁을 저해할 수 있으며, 전통과 성경의 권위가 충돌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통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분열을 초래할 수 있고, 다른 전통을 가진 공동체에 대해 배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세시대 어떤 수도원에 쥐가 많아서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너무 ‘야옹~ 야옹~’ 하면서 설치고 다녔습니다. 특히 예배 볼 때 시끄러워서 예배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장이 말했습니다. “예배 보기 전에는 반드시 고양이를 묶어 놓도록 하여라” 그 후로 이 수도원에는 예배보기 전에 고양이를 잡아 묶어 놓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수도원장이 돌아가셨습니다. 고양이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도원은 예배 전에 고양이를 묶어 놓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기 때문에 시장에 가서 고양이를 한 마리 사다가 묶어 놓았습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고양이를 묶어두는 것이 중요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예배 드리는 것과 고양이 묶어 두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전통이 그랬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잃어 버리면 이처럼 비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그 속은 반드시 썩고 부패하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경우도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던 전통의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6-8)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지적하셨습니다. 말로는 경건하기 짝이 없는데 정작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판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대신하여 헛되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우선시되는 상황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두 가지 하나님의 계명을 언급하셨습니다. 첫째는 출애굽기 20장 12절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둘째는 레위기 20장 9절의 “부모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계명을 어기고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통해 부모를 부양하지 않았습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의미로, 일종의 맹세였습니다. 이들은 고르반을 선언한 후 부모 부양을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미뤘습니다.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13)
예수님은 이러한 전통이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만들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장로들의 전통을 잘 알았지만, 그 지식을 이용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마음의 부패에 있었습니다.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에 좋은 전통도 악의 도구로 변질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손 씻기를 열심히 했지만, 사실은 마음 씻기를 해야 했습니다.
예전에 “아빠 어디 가”라는 MBC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축구 선수 송종국 씨가 출연하여 딸 바보이자 화목한 가정의 가장으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이런 화목한 모습이 연출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져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아빠 어디가’ 출연 당시에도 부부가 이미 각방 생활 중이었습니다. 결국 두사람은 2015년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행복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적으로 멀어진 부부를 ‘쇼윈도 부부’라고 부릅니다.
‘쇼윈도 부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쇼윈도 신자’, ‘쇼윈도 목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거룩하고, 경건하고, 믿음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형식만 남아 있고, 하나님에 대해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부족하고 자랑할 것이 없어도 서로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껴주는 부부가 진짜 부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나 사이도 정말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떻게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까? 전통 뒤에 숨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겉모습만 경건한 ‘쇼윈도 신자’가 되지 않고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진정한 회개의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 진정한 정결을 가져다 줍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화가 나서 다 돌아가버렸습니다. 자신들의 위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남은 무리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15,16)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완전히 뒤집는 혁명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외부의 음식이나 외적인 요소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믿었지만,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말씀하신 후, 제자들이 집에 들어가서 그 비유의 의미를 묻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의미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것을 보시고 실망하셨지만,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18,19)
예수님은 음식이 몸에 들어와 흡수되고 배출되는 과정을 설명하시며, 외부의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음식은 본래 깨끗하며,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태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음식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었습니다.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서는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분하며, 유대인들이 먹어야 할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음식 규제는 주로 외적인 정결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적인 규제는 사람의 내적인 상태, 즉 마음과 정신의 상태를 정결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내면의 죄와 부패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정결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효과는 있었지만, 영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는 말씀은 구약의 음식 규제를 폐지하고, 모든 음식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깨끗하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율법을 완성하시고 새로운 언약을 세우심으로써, 음식 법과 같은 율법의 일부 규정이 더 이상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적용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자유롭게 삼겹살도 먹을 수 있고 오징어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무엇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이제는 복음의 시대입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첫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이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희생은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합니다.
두번째로 복음의 중심에는 믿는 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죄를 깨닫게 하여 회개하도록 인도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삶에서 점진적으로 죄의 영향력을 줄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시편 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구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인 기도 생활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의 은혜로 정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진정한 정결을 가져다 줍니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20)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의지의 중심이며, 우리의 행동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 역시 깨끗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21,22)
예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여러 가지 악한 생각과 행위를 언급하셨습니다.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등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외적인 규례를 지킨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손을 씻고, 음식 규례를 지키며, 여러 가지 전통을 철저히 따랐다 해도 소용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만 이러한 악한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성경 공부에 모임에서 인도자가 “우리는 깨끗해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깨끗해질 수 있나요?” 인도자가 대답했습니다. “음, 먼저 더러워져야겠죠.” 그런데 우리는 먼저 더러워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더럽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더러움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죄와 악한 생각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말씀과 기도 외에 또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와의 교제’입니다.
공동체와 교제를 통해 내 마음이 얼마나 비뚤어지고 병들어 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거하신 열 두 가지의 악한 생각들이 대부분 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내가 얼마나 교만한지, 내가 얼마나 사랑이 없는지 …” 백날 혼자 있을 때는 전혀 깨닫지 못하던 나의 자기 중심성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섬기려 하다 보면 단 하루 만에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공동체와의 교제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짐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복음 안에서 용서와 오래 참음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믿음으로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도록 서로를 북돋아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 공동체는 마음의 정결함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암 1부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또 이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되는 공동체가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통해 외적인 규례와 형식이 아닌 내면의 정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외면이 아닌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공동체와의 교제를 통해 신앙을 성장시키며,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살펴본 마가복음 7장 1절에서 23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삶에서 외적인 행위보다 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삶에 충만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진정한 정결을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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