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도서

바르게 선택하며 살아가기

이창무 2023. 12. 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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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전도서 제12강 / 이창무

바르게 선택하며 살아가기

말씀 / 전도서 9:13-10:20
요절 / 전도서 10: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2013년 4월 28일 영국 북부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에서 황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가 선수 중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무려 5,000 여명이 실격 처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건은 2위와 3위를 하던 선수들이 결승선을 얼마 앞둔 지점에서 잠시 착오를 일으켜 엉뚱한 길로 달린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선수들도 아무 생각 없이 이 두 사람을 따라가다 그만 모두 다 실격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죽어라 달렸는데 실격이라니! 얼마나 허탈했을까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됩니다. 전도자 역시 우리에게 빨리 가는 것보다 방향을 바르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10:2)

이 말을 ‘지혜자는 우파이고 우매자는 좌파이다’ 이런 정치적 의미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오른쪽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바른 길, 생명의 길입니다. 반면 왼쪽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길, 멸망의 길입니다. 우리가 삶의 매 순간마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마침내 인생의 결승점을 통과할 것인지 낙오할 것인지 결정이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전도자는 우리의 바른 선택을 도와줄 세 가지 조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죽은 파리 같은 우매 대신 무기보다 나은 지혜를 선택하십시오.

요즘 사람들이 큰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돈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매력 있는 외모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손에 쥔 사람들이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다 내 뒤를 따르라”고 크게 목소리를 냅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처럼 이런 목소리를 중심으로 대세가 형성되곤 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해 줍니다.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9:17-18a)

전도자는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크게 울리는 호령 소리보다 더 낫고 지혜가 무기보다 더 낫다고 말합니다. 과연 정말 그럴까요? 전도자는 그 사례를 한 가지 제시합니다. 한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성읍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큰 나라의 왕이 쳐들어와서 그 성읍을 포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성읍에는 이에 맞설 병력도 무기도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함락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읍에는 지혜의 가치를 무시하는 성읍 사람들에게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가난한 삶을 영위하던 지혜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반전시킬 놀라운 지혜를 제시했습니다. 그의 지혜 덕분에 그 성읍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떤 지혜였을까요? 혹시 적국의 왕을 만나 말로서 담판을 지은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A.D. 492년 강력한 군사력의 훈족이 로마를 침공했을 때, 교황 레오 1세가 훈족의 왕 아틸라를 찾아가 담판을 지어 로마를 구해낸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지혜가 무기보다 더 나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최고의 지혜가 있다면 한 성읍 정도가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지혜가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최고의 지혜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은 그 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지혜이신 예수님은 무기보다 더 강하여 온 세상 수많은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시고 그분 발 앞에 무릎 꿇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큰 소리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일대일 목자님의 입을 통해서, 매주 일요일 아는 사람만 아는 제기동 137-250번지 지하에서 조용하게 전달됩니다. 말씀을 블로그에 올려봐야 조회수도 안 나오고 광고 수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안 알아준다고 말씀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자는 지혜의 말씀이 조회수 수백만을 찍는 인기 유튜버들의 말보다, 힘 있는 권력자들의 말보다 더 가치 있고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누가 지혜자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의 얻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캐내는 참된 지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전도자가 든 사례 속의 지혜자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성읍을 구한 영웅이 되어 출세하고 성공 가도를 달렸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주목받은 것은 아주 잠시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지혜자의 공로를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다시 지혜의 가치를 무시하고 그 대신 물질과 권력과 쾌락을 추구하는 우매한 지도자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18b-10:1)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매한 권력자 한 사람이 그 동안 지혜자들을 통해 쌓아 놓은 많은 선을 무너지게 했습니다. 관료들은 뇌물을 받고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지혜자는 자신이 목숨 걸고 구원한 성읍이 여기저기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아간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은 아이성 싸움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또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거짓말 때문에 교회 공동체 전체가 더럽힘을 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한두 사람의 죄악 때문에 공동체 전체가 큰 곤경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담은 통에 빠져서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죽은 파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세상의 흐름과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말씀은 멀리하고 물질과 쾌락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죽은 파리를 내버려두면 거룩한 주님의 교회가 악취 나는 곳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파리를 항상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무는 뱀 같은 우매 대신 성공하기에 유익한 지혜를 선택하십시오.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10b)

앞에서 전도자는 지혜가 무기보다 더 낫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지혜가 성공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공이란 목표로 했던 일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완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떤 지혜가 필요합니까? 많은 것이 있지만, 전도자는 그 중에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합니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4)

주권자 곧 윗사람이 나에게 분노를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전도자가 말하는 이 주권자는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의사결정을 엉터리로 하는 바람에 조직이 뒤죽박죽이 되고 질서가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는 상식이 안 통하고 무능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아래 있으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대판 싸우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격한 감정에 휩싸여 우발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관계성만 다 틀어지고 성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차분하고 온유한 말로 대응하라고 합니다.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고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는 말씀(잠25:15)처럼 공손한 태도는 설득력을 가집니다.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지혜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갖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행동할 때 감정대로 기분대로 내키는 하지 않고, 이 시점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가를 생각하고 나서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왜 이것이 지혜인지는 그 반대인 우매자의 모습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3)

전도자는 먼저 우매한 사람은 다 티가 나기 마련이라고 말합니다. 우매자는 인생길을 가면서 자기의 우매함을 여기저기 다 흘리고 다닙니다.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잇달아 사고를 냅니다. 전도자는 그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합니다.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8-9)

사냥꾼은 짐승을 잡기 위해 함정을 여기저기 많이 팝니다. 그런데 어디에 함정을 팠는지 까먹는 바람에 사냥꾼 자신이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혜자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함정 주변에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을 해 두었을 것입니다. 옛날 집 돌담 사이 틈에는 뱀이 똬리를 틀고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매자는 아무 생각 없이 담을 헐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뱀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먼저 예방책을 세우고 담을 헙니다. 땅에 박힌 큰 돌을 캐낼 때 우매자는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올리다가 놓쳐서 자기 발등을 찍습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기구를 사용해서 안전하게 들어올립니다. 장작을 팰 때는 어떻습니까? 우매자는 우격다짐으로 장작을 패다가 나무조각이 눈으로 튀는 바람에 시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미리 고글을 쓰고 나무를 쪼갭니다.

이 네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우매한 자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위험이 있을지, 어떤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으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별 일이야 있겠어’ 하면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견지합니다. 그러다가 사고를 당해 큰 낭패를 겪습니다. 이번에는 죽은 파리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살아있는 뱀에 당합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무엇입니까? 지혜는 어떤 일을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의 사고를 미리 예측하고 그것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낙관만 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지혜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사전에 준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꼼꼼하게 챙깁니다. 도끼질을 하기 전에 먼저 날을 날카롭게 갈아 둡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이 배나 들기 때문입니다. 뱀에게 묘기를 부리게 하려면 먼저 주술을 걸어 뱀의 넋을 확실하게 빼어 놓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뱀에게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준비가 잘 되어 있다 하더라도 지혜자는 무조건 안심하지는 않고 끝까지 매사에 신중합니다. 이런 지혜가 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우매와 지혜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잠언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답을 들려줍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8:12)

교만은 자신을 실제 이상으로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입니다. 지나친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명백한 위험이 눈 앞에 있어도 잘 보이질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보이는데 자기 혼자 교만에 취해서 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과 지혜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나의 기대와 예측 범위 밖에서 얼마든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미리 준비를 합니다. 결국 이런 사람이 존귀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교만을 극복하고 겸손할 수 있습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뼈 속까지 죄인인가, 얼마나 무익한 종인가,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공은 지혜에서 나오고 지혜는 겸손에서 나오고 겸손은 경건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겸손에서 흘러나오는 참된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시끄럽게 우는 새 같은 우매 대신 은혜롭게 말하게 하는 지혜를 선택하십시오.

앞서서 전도자는 지혜자와 우매자의 행동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지혜자와 우매자의 말에 주목을 합니다. 우리 삶에 행동만큼이나 말도 참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로 말을 통해서 관계성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혜자의 말과 우매자의 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12)

먼저 전도자는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롭다고 합니다. 여기서 ‘은혜롭다’라는 말은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산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말해야 호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 전도자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매한 자가 어떻게 말하는지를 길게 말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삼키고 마는 우매자의 말을 통해서 역으로 지혜자의 은혜로운 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매자의 말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첫째, 우매자의 말은 설득력과 공감대가 없습니다.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13)

우매한 사람의 말은 시작부터 논리가 없고 근거가 빈약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습니다. 도중에 비약을 너무 심하게 하는 바람에 결론이 아주 이상하게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전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합니다. 반면 지혜자는 근거가 명확하고 논리적입니다. 그래서 지혜자의 말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고 공감대를 이루어 냅니다.

둘째,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하고 단정적으로 합니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14)

우매한 사람은 말을 많이 합니다. 이 말 저 말 닥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말합니다. 또 우매한 사람은 누구도 장래 일을 다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 결과 우매한 사람의 경우 말의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언어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납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신중하게 합니다. 자연스럽게 말수가 적어집니다. 또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단정적으로 거들먹거리며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자의 말에는 무게감이 생기게 됩니다.

셋째, 우매자는 부정적인 말을 함부로 합니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20)

우매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저주하는 말을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합니다. 그것도 점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욕설이나 인격을 모욕하는 말로 거칠게 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마음 속이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함부로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주의 말이 왕이나 부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틀림없이 보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세 종류의 동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파리와 뱀과 새입니다. 이 셋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전부 다 몸집이 작은 미물들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깟 파리가, 바닥을 기어다니는 뱀 한 마리가, 늘 주위에 있는 새 따위가 뭐 대단한 위협이 되겠느냐?”며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우매한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파리가 향기름 전체를 망칠 수 있고, 뱀에게 물려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고, 새 때문에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것 하나도 다 신경을 쓰고 대비를 하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사람이 한 번쯤 죄 지을 수도 있는 거지, 뭐 어때?” “대충 하자. 대충 해. 설마 무슨 일이 생기기야 하겠어?”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하고 사나? 내 입인데 내 맘대로 말도 못해?” 다 우매자의 마음이 향해 있는 왼쪽에 속한 생각들입니다. 지혜자는 다릅니다. 작은 죄라도 용납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사람, 매사를 신중하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사람, 함부로 말하지 않고 말에 실수가 거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이 오른쪽을 선택하는 지혜자입니다. 이런 지혜는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있는 어리석음을 거두어 가시고 하늘의 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물질과 쾌락과 인기를 따르는 우매자가 되지 않고 말씀 속에서 지혜와 지식의 보화 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는 참된 지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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