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도서

역설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기

이창무 2023. 11. 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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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전도서 제9강 / 이창무

역설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기

말씀 / 전도서 7:15-29 
요절 / 전도서 7: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20세기를 대표하는 복음주의자인 존 스토트 목사님의 취미는 조류 관찰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 나라를 방문했을 때도 조류 관찰을 위해 비무장 지대와 낙동강 일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일정을 함께 했던 한 교수님이 스토트에게 ‘당신은 새를 관찰하는 일에 너무 미쳐 있는 것 아닙니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예수님이 공중 나는 새를 보라고 하신 명령을 지키고 있을 뿐이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전도자는 조류 대신 세상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그 관찰의 결과 세 가지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전도자는 세상에 역설이 존재하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전도자는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나름 이 세상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전도자는 먼저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의롭게 살았으나 제 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요절한 사람은 성경 속에도 여럿 있습니다. 창세기의 아벨,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 사도행전의 스데반 집사 같은 사람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또 100여편의 시를 남기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 나이에 요절한 윤동주 시인, 서른 살이 되던 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의사, 불과 28살 나이에 아우카 부족의 창에 찔려 순교한 짐 엘리엇 선교사 같은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이 있습니다. 그는 잘 먹고 잘 사다가 82세에 눈을 감았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군생활 때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일주일 내내 군장을 한 채 대기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볼 때 우리는 세상이 참 역설적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은 역설이란 마땅히 그리 해야 할 것이라는 느낌이 현실과 일으키는 마찰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의로운 사람은 장수하고 악인은 멸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역설을 만나곤 합니다. 이때 우리가 자칫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먼저 전도자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의롭고 지혜롭게 살기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하지 않는가? 대충 적당히 살라는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전도자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의인이었으나 멸망한 사람을 보고 다음처럼 생각하는 경우를 염두에 둔 말입니다. “의인이면 당연히 장수해야 하는데 그가 요절했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는가? 그 의인의 의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는 완벽한 의인이 되기로 결심 했어. 그렇지 않으면 나 역시 어떤 불행한 일을 겪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이미 의롭게 살았던 욥에게 그들은 너의 의가 부족해서 이런 일을 겪고 있으니 너는 더 의로워져야 한다고 계속 다그쳤던 세 친구들이 했던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완벽주의, 도덕적 결벽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미술 시간마다 스케치북 한 권을 다 쓰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완벽하게 하얀 도화지에 대한 이상한 강박이 있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검은 점 몇 개를 견딜 수 없어 한 장씩 찢다 보면 결국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완전한 의에 이르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와 도덕성에 대해서 절대적인 이상을 과도하게 실현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패망의 길로 몰아가게 됩니다. 나의 의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절망과 불안에 휩싸일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학대하는 삶을 반복하게 됩니다.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다음으로 전도자는 지나치게 악인이 되거나 우매한 자가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지나친 악인이란 대놓고 악당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의인이 불행을 겪는 모습을 보면 ‘의롭게 살아봐야 아무 소용없구나’, 또 악인이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 ‘악하고 살아도 별 일 안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들을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때로는 폭력을 가하거나 심지어 살인을 저질러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권력을 손에 넣기만 하면 그만이지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메대인 카르텔이라는 마약 조직을 이끌며 250억 달러의 재산을 모아 전세계 부자 중 7위에 랭크된 적이 있습니다. 돈으로 표를 매수해 콜롬비아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도 있습니다. 에스코바르는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기 위해 200명이 넘게 탄 여객기를 폭파시킨 적이 있으며, 이렇게 그의 직접적인 명령으로 죽은 사람만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전도자는 이런 악인들에게 경고합니다.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 하느냐” 기한 전에 죽는다는 것을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갱단의 조직원들이 살인,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으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 역시 44세의 나이에 콜롬비아 정부군과 미국 마약 단속국에 쫓기다가 지붕 위에서 총에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전도자는 결론적으로 이것도 잡고 저것도 놓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여기서 이것이란 앞서 했던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고 했던 말을, 저것이란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라고 했던 말을 가리킵니다. 뭐든지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극우도 문제이고, 극좌도 문제입니다. 지나치게 깨끗해도 문제이고, 지나치게 더러워도 문제입니다. 율법주의도 문제이고, 반(反)율법주의도 문제입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자신을 점점 더 파멸로 이끌어간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어떤 점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극단주의를 치료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곧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이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나는 하나님이 아니고 한낱 인간이기 때문에 결코 완벽할 수 없고 절대적으로 의로워질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의로움이 결코 내 안에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알고 그것을 붙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나를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고 나를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든 젊은 나이에 요절하든 상관없이 지옥에 가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사람은 의도를 가지고 악인이 되려는 선택을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려고 합니다.

우리가 역설적인 세상에서 극단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전도자는 지혜는 가치가 있지만 분명한 한계도 있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전도자는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권력자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이 한 명도 아닌 열 명이나 모여 있으니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지혜 있는 사람 한 사람이 그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전도자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백종원, 강형욱, 오은영 이 세 사람을 가리켜 국민 멘토 3인방이라고 부른다 합니다. 이분들이 무슨 정치인도 아니고 행정가도 아닙니다. 그러나 영향력 측면에서 보면 어쩌면 대통령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서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지혜 덕분입니다. 정말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고 물어보면 막힘이 없이 척척 대답해 주는 지혜로운 사람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이런 지혜자 한 사람이 차라리 열 명의 국회의원보다 훨씬 낫다는 주장에 ‘좋아요’를 누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지식이 무조건 만병통치약일까요?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먼저 전도자는 지혜가 죄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한 한계라고 지적합니다. 지혜와 지식이 많다고 해서 죄를 범하지 않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 알만큼 아는 사람도 “I am 신뢰에요.”라고 써 놓고 자신의 전문 지식을 이용해 숱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런 범죄를 가리켜 흔히 화이트칼라 범죄라고 부릅니다. 내부자 거래, 회계 부정, 사이버 범죄, 폰지 사기, 거액의 뇌물수수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피해 규모도 크고 죄질이 아주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 처벌의 수위가 너무 낮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죄의 세력 앞에서는 긴 가방 끈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죄는 지혜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전도자는 21절과 22절에서 그 한 가지 사례를 한 가지 들고 있습니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네 종’이라는 표현을 볼 때 여기서 전도자가 말하고 있는 대상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가 가진 지혜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종들이 뒤에서 자기를 헐뜯고 욕한 것 때문에 크게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심지어 평소 잘 대해 준 어떤 종이 자기에게 악플을 달았다는 소문까지 들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 그에게 전도자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전도자는 그에게 ‘너도 가끔 다른 사람을 저주했지 않느냐?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있어?’라고 되묻습니다. 이 질문 앞에 그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자기 역시 다른 사람을 뒷담화하고 별 근거도 없이 비난하고 악담과 저주를 퍼부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나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너희들과 달라’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거기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다음으로 전도자는 사람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멀고 깊은 것까지는 통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 누구보다 전도자 자신이 경험한 바입니다. 전도자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지혜로 시험하고자 했고 그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 수많은 밤을 새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전도자는 지혜를 의인화해서 표현합니다.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구약에서는 이렇게 지혜를 사람 특히 여인으로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아주 흔합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마치 전도자가 한 여인을 짝사랑하여 가까이 가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단칼에 거절당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지혜 자매님’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까? 전도자는 이미 있는 것이 멀고 또 깊고 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미 있는 것이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말합니다. 이 현실을 누가 주관하고 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세계는 사람의 지혜로 다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멀고도 깊은 세계입니다. 우리는 그 세계의 아주 일부만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을 뿐입니다. 누구도 감히 그 세계를 통달할 수 있다고 큰소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가진 힘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연 과학이 더 발달하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인문학을 통해 인간은 좀 더 교양 있는 인간, 품격 있는 인간으로 개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가’ 입니다. 인문학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돈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은 더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교양 있는 속물로 전락할 뿐입니다. 지혜를 아예 무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혜를 너무 맹신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지혜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멀고 깊은 하나님의 지혜 앞에 겸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전도자는 세상에 악은 만연해 있지만 참된 지혜는 매우 희귀하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전도자는 지금까지 지혜를 추구해 왔던 방향을 바꿔 정반대로 사람들이 왜 어리석은 것에 끌리고 미친 짓을 하게 되는지 탐구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죄에 빠지고 악을 저지르게 되는 심리가 무엇인지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전도자는 발견한 것이 무엇일까요?

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전도자는 마음이 올무와 그물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이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고 보고합니다. 도대체 이 여인의 정체가 누구일까요? ‘스파이더 우먼’일까요? 이 여인은 구약 성경에서 흔히 음녀라고도 표현하는 악을 가리킵니다. 악은 사람을 먹이로 삼는 매우 유능한 사냥꾼입니다. 올무와 그물을 숨겨 놓고 사람이 너무 좋아하는 물질과 쾌락으로 유인합니다. 사람이 일단 이 덫에 걸리면 포승줄로 꽁꽁 묶어 버립니다. 이때부터 사람은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사망보다 더 쓰디쓴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도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죄의 유혹에 매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도리어 혐오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예 올무와 그물 근처에도 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고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결국 악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죄와 광기를 연구하다 보니 전도자는 세상에 지혜가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최소한 천 명 중 한 사람은 있을까 하여 계속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에게도 지혜 자매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악의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약 중독, 도박 중독, 게임 중독 등으로 자기 삶을 스스로 망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전도자는 ‘하나님이 사람을 본래 이런 어리석은 자로 만드신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까?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나님은 본래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은 꾀들을 내었습니다. 이리저리 온갖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들은 ‘보라! 내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며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지혜가 아닌 잔꾀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 꾀에 자기가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부터, 바벨탑에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서도, 그리고 오늘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무엇이 지혜입니까? 전도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거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니냐’고 반문할 지 모릅니다. 바로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지혜 있는 사람을 천 명 중에 한 명도 찾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도 간혹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기 마련합니다.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팡세’라는 책을 쓴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블레이즈 파스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팡세 중 한 부분이 오늘 말씀의 탁월한 요약이자 적용이라고 판단되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악함을 모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교만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우리의 악함을 아는 것은 절망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교만과 절망 모두를 무너뜨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의 악함을 동시에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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