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태복음

다만 그를 섬기라

이창무 2020. 3. 1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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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4 강 / 이창무

 

다만 그를 섬기라

말씀 / 마태복음 4:1-11
요절 / 마태복음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일본 코에이 사에서 출시된 유명한 ‘삼국지’ 게임 시리즈가 있습니다. 이 게임에 보면 ‘일기토’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일기토란 전쟁터에 맞붙은 양 진영을 대표하는 장수가 나와서 일대일로 겨루는 것입니다. 원작 소설에서나 게임에서나 이 일기토의 승패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지우지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일기토가 나옵니다. 적진의 장수는 마귀입니다. 우리 진영의 장수는 예수님입니다. 이 전투의 승리 이후 예수님은 거침없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걸려 넘어질 것인가 아니면 마귀의 유혹을 뿌리치고 승리할 것인가?’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도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의 인생을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귀에게 시험받기 위해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빈 들입니다.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자원이 하나도 없거나 늘 부족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하필이면 광야에서 시험받으셨을까요? 이는 우리 인생의 여정이 광야 길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도 광야처럼 부족한 것투성이입니다. 돈이 부족하고 집도 부족합니다. 요즘은 마스크까지 부족합니다. 반면에 우리 자신은 너무 연약합니다. 쉽게 피곤해지고 지칩니다. 병에도 잘 걸리고 아픈 곳도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계가 벌벌 떨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충격에도 멘탈이 무너지곤 합니다. 작은 욕심에 금방 눈이 멀기도 합니다. 마귀는 이런 우리의 약한 지점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 약점을 파고들어서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 합니다. 예수님은 열악한 환경의 광야에서,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육신의 몸으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은 인생이란 광야 길을 가는 연약한 우리를 깊이 이해하시고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세 번에 걸쳐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세 번의 시험 속에는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세 가지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질문이 각각 무엇일까요? 
첫 번째 질문은 ‘아무리 부족해도 믿고 순종하겠는가?’ 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어 담 넘어가지 않을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은 사십일을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셨겠습니까? 이때 마귀가 접근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맞습니다.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을 발휘해서 굶주림 문제 해결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을 때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도 오직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아들의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능력을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데 사용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예수님은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신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는 자기를 비워 세상을 섬기라고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눈앞에 당면한 현실 문제 해결이 더 앞서게 됩니다. 이 시험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은 떡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떡으로만 사는 존재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먹는 문제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이렇게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제가 직장에서 흔히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이 일을 왜 꼭 해야 해요?"라고 누가 물으면 대개 이런 대답이 주어졌습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야. 그냥 해" 캠퍼스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즘 청년실업자가 38만 명이고 취준생까지 포함하면 80만 명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 입학 때부터 취직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제자도, 목자의 삶이라니요? 다 좋은데 일단 취업부터 하고 삶에 안정과 여유가 생긴 후에나 차근차근 생각해 볼 문제 아닐까요? 바로 이것이 마귀가 먹고사는 현실 문제, 경제 문제로 우리의 발목을 잡아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두신 뜻과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현실 문제가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최우선으로 붙드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경험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믿고 순종하겠는가?’ 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마귀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 위에 세웠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놀랍게도 이번에 마귀는 성경 말씀인 시편 91편 1, 2절까지 인용했습니다. 본래 시편 91편은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심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정반대로 말씀을 왜곡시켜 하나님께 대한 의심을 심었습니다. “이 사람아, 경험으로 증명되지 않고서 어떻게 믿을 수 있어?”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하나님이 정말 너를 사랑하는지 한 번 테스트해 봐야 하지 않겠어?” 이 두 번째 시험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분명하게 못 박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고 입증이 되면 그때야 믿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11:1).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 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합니다.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종종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실까?’ 이런 의심을 합니다. 이런 의심이 들면 하나님께 이런저런 증거들을 요구하게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 하신다면 이번에 꼭 승진시켜 주세요.’ 이렇게 요구합니다. 막상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 있어?’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문제에 빠집니다. 자꾸 눈에 보이는 증거를 요구하며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면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좋은 일이 생기면 스피릿이 하늘을 찌를 듯이 하다가도 또 일이 잘 안 풀리면 깊은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초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근거는 경험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슨 일이든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이 말씀을 붙들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 번째 질문은 ‘더 쉬운 길이 있어도 믿고 순종하겠는가?’ 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번에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유혹하기에 앞서 먼저 보여주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보는 것에 의해 자극을 받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보고 나면 갖고 싶어집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천하만국을 보여주되 그 영광만을 보여주었습니다. 천하만국에 영광만 있겠습니까? 전쟁도 있고 범죄도 있고 질병도 있고 부조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추하고 비참한 것은 보여주지 않고 오직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만 보여줍니다. 이것을 본 이상 갖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게 됩니다. 이때 마귀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여기서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말은 순 거짓말입니다. 천하만국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마귀가 어떻게 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이라는 말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뒷말이 참인지 여부를 따져볼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얻게 될 파이는 너무나 크지만, 그 비용은 너무나 적기 때문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앞선 두 번과 달리 예수님은 먼저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셨습니다. 대놓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가 앉겠다 하는 사탄에게 향하는 예수님의 격한 분노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신명기 6장 13절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모든 인생으로부터 경배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실 분도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처음부터 천하만국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르는 길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바로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으심을 통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 후에야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되실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든 길을 가려느냐? 더 쉬운 길이 있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따르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하시며 이를 단칼에 일축하셨습니다.
빠른 길 편한 길 쉬운 길은 없습니다. 두 눈 딱 감고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빨리 가자 편하게 가자는 마귀의 속삭임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 길은 내가 가장 빨리 부패하는 길,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묵묵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길이 알고 보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앞장서 가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하나님 한 분을 얻으면 하나님이 소유하신 이 세상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을 가지려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잃고 세상도 잃게 됩니다. 내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면 마귀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면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됩니다. 누가 더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세상 영광에 한눈팔지 않고 바보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경배하고 섬긴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마귀에게 속지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에서 가르쳐 주신 의의 길, 진리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귀는 라운드마다 예수님에게 일격을 맞아 다운을 당했습니다. 마침내 3라운드가 끝나자 수건을 던지고 퇴장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통쾌한 승리였습니다. 세 번의 시험에서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 다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를 이길 무기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세 번 다 믿고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놀라운 기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명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천하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당장 문제 해결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고 순종하신 예수님은 결국 모든 것을 다 얻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승천하시어 보좌 우편에 앉으신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고 존재를 증명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승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진정한 승리가 무엇입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승리입니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에 놓인 연약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도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마귀를 무찌를 무기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공 예배로 다 같이 모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말씀 붙들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순종이 답이다.’ ‘믿음이 이긴다.’ 아무리 부족해도, 경험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더 쉬운 길이 있어도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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