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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롭다 하는 기도, 의롭다함을 받는 기도
    설교/마태복음 2015.05.03 06:41

    의롭다 하는 기도, 의롭다함을 받는 기도


    말씀 : 누가복음 18장 9절에서 14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에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라는 점에서는 동일했지만 두 사람의 기도는 매우 달랐습니다. 기도라고 해서 다 같은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가 있고 그렇지 않은 기도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예수님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된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바리새인의 기원은 알렉산더가 세운 헬라 제국이 유대를 식민지화하여 다스리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대 지역을 통치하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대대적인 헬라화 정책을 펴서 유대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고 헬라 종교와 문화를 강요하였습니다. 이에 율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일제 시대에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 같은 독립 투사들이었습니다. 초기에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율법에 대한 열심을 깊이 인정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헬라가 물러나고 독립을 쟁취한 후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율법 준수를 뽐내며 사회의 특권 계층으로 변모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처럼 율법 준수에 철저하지 못한 보통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특히 세리와 창기들은 공인된 죄인으로 낙인 찍고, 인간 이하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특별히 바리새인과 세리의 예를 들어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그들이 함께 성전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하는 구체적인 장소는 서로 조금 달랐습니다. 바리새인은 성전 가까이에 가, 서서 따로 기도하였습니다. 따로 기도하는 것은 역시 분리된 자라는 뜻을 가진 바리새인다운 자세였습니다. 그가 선 장소는 사람들이 눈에 잘 띄는 장소였습니다. 반면 세리는 성전에서 멀리 서서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이지 않는 외지고 후미진 곳에 몸을 숨겼습니다. 

    사람들이 얼마 없을 때는 기도를 하지 않던 그가 이리 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사람이 좀 모인 듯 싶자 아름답고 유창한 말로 멋있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이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의 기도는 감사가 충만한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 제목이 좀 이상했습니다. 그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가 같지 않고 특히 세리와 같지 않음으로 인해 감사했습니다. 한 쪽 구석에 있던 세리가 이 기도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뜨금하고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습니다. 바리새인은 감사 라는 형식을 빌어 자신에게 불의가 없고 깨끗함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법에 따르는 원래 금식은 일년에 한 번 있는 대속죄일에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은총을 구하는 자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하였습니다. 땀 흘려 노동을 하지 않던 바리새인들은 매주 두 번씩 금식을 하면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하였습니다. 금식을 하는 날이면 그들은 멀쩡하던 머리카락을 일부러 헝크러뜨리고 옷을 구긴 다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정터 사거리에 나아갔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힘든 육체 노동을 하며 먹고 사는지라 금식할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사람들을 경건치 못한 자로 여기고 멸시했습니다. 또한 본문의 바리새인은 꼬박 꼬박 소득의 십일조를 바친 것을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는 마치 성실 납세 표창을 수상하러 나온 사람 같았습니다.

    반면 세리는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당시에는 일어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이 정상적인 기도의 자세였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 한 움큼이라도 자랑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머리를 치는 것은 바보 같다는 표현이고 땅을 치는 것은 원통함, 가슴을 치는 것은 깊은 슬픔을 나타냅니다. 세리는 자신의 죄로 인해 깊은 슬픔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바랄 자격이 없는 자인 줄 잘 알았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긍휼하신 성품에 기대어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세리는 바리새인과 달리 자신을 의인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세리의 기도는 낮은 자의 기도였습니다.


    과연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의로운 사람일까요?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면, 금식도 열심히 하고 꼬박 꼬박 십일조도 바쳐 온 바리새인이 더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의를 쌓으므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는 최후의 심판을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실 때 비로서 의로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다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를 소원을 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소원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내가 이만큼 하나님을 위해 했으니 하나님도 그에 합당하게 이것은 꼭 주셔야 된다고 기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협박합니다. 저에게 원하는 바를 주시지 않으면 저도 다 따로 생각이 있다고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횟수에 집착합니다. 지금까지 3일째 기도했으니 97일만 더 하면 꼭 응답을 받을 거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모두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데서 나오는 의인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의인이 된 사람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죄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 바대로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애통하며 회개하는 가운데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기도야말로 가장 잘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바리새인의 기도를 보면 주어가 모두 나 즉 자기입니다. 그는 자기 의지와 힘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었고 금식과 십일조에도 철저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다 해 놓고 이제와서 무슨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남은 건 자기 자랑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세리는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실지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긍휼로 시작되어 하나님의 긍휼로 마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향에 맡기고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도 않고 하나님을 놓쳐 버리지도 않고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 움직이며 하나님이 멈추실 때 멈추며 하나님을 딱 반 보 뒤에서 좇아가는 것이 기도의 삶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무전기를 잠깐 다루어 본 적이 있는데 무전을 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상대방과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무전기 볼륨을 올리거나 애타게 부르짖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마음과 주파수를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일단 주파수를 맞추어 놓고 큰 소리로 부르짖던 수시로 부르짖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입니다. 우리가 먼저 자신의 죄를 애통히 회개하고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어린 마음으로 양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기도는 본질적으로 낮은 자의 기도입니다. 높은 자의 기도란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낮은 자의 특권이요 무기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애통함으로터 시작하여 소망으로 인해 기뻐하는 낮은 자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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