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창세기 11:27-12:20 연구

이창무 2019. 5. 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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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본문 / 창세기 11:27-12:20

I. 데라의 족보

〈창 11:27-32, 개역개정〉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 데라의 아들은 셋 이다. 아브람, 나홀, 하란이다. 딸은 적어도 한 명 있다. 아브람의 아내가 된 사래이다. 아브람은 이복누이와 결혼한 셈이 된다.
  • 아브람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아내인 사래가 불임이었기 때문이다.
  • 나홀은 어떤 자녀가 있었는지 기록이 없다. 나홀의 아내는 밀가이다. 밀가는 하란의 딸이다. 나홀은 조카아 결혼한 것이다.
  • 하란은 아들 롯과 딸 밀가와 이스가를 낳았다. 하란은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 데라 집안의 고향인 갈대아인의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 데라가 아브람과 사래 그리고 롯과 함께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만 보면 마치 데라가 주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도행전 7장 2절 스데반의 설교 중에 보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도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셨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아브람에게 임한 첫번째 부르심이다. 하나님이 부르신 대상은 아브람이지 데라가 아니다. 아브람이 부르심을 따라 가나안으로 가고자 할 때 차마 홀로 갈 수 없었다. 아버지인 데라를 봉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조카 롯도 데리고 갔다. 아브람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롯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유사 부자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이 둘은 함께 했다. 이렇게 부친과 조카를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을 볼 때 아브람은 매우 가족 중심적인 남자였음을 알 수 있다. 아내가 불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관습과 달리 다른 여인을 아내로 들이지 않은 것을 보면 오직 아내만 사랑하는 남편이었을 것이다. 고상한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람란 이름이 걸맞는 이름이다. 이런 가정적인 남자에게 자녀가 없었다는 점이 더욱 비극적이다.
  • 아브람 일행은 하란 이르러 거기에 눌러 앉아 버렸다. 하란은 메소보타미아 지역과 가나안 지역 사이 경계 지역이다. 아브람 일행이 여기를 넘어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데라의 만류가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노년의 데라는 가나안이란 낯선 지역에서의 삶을 달가와했을 리가 없다. 기회만 있으면 아브람을 만류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만류가 계속되자 아브람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갈대아인의 우르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전진할 수도 후진할 수도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기간만 흐르고 있었다.
  • 데라가 하란에서 사망했다. 이제까지 아브람의 발목을 잡던 존재가 사라졌다. 이제 아브람은 거리낌 없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주저했다. 데라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 같아 보였지만 실은 아브람도 익숙한 것과 결별해서 낯선 세계에 들어가길 두려워하고 있었다.

II.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다

〈창 12:1-9,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두 번째 부르심을 주신다.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저함 없이 응답했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오래 참으셨다. 이해하시고 감당해주셨다.
  • 부르심은 명령과 약속으로 되어 있다. 먼저 명령을 보자. “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먼저 떠나야 한다.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약점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의 애착 관계를 끊지 못하고 정에 매여 이도 저도 아니게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었다. 이제 하나님은 분명한 결단을 요구하신다.
  • 다음으로 약속을 보자. 첫번째 약속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이다. 큰 민족이라면 몇 명 정도 이상이 되어야 할까? 최소한 백만명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재 아브람은 자식이 한 명도 없다.
  • 두번째 약속을 이름을 창대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당대 아브라함은 무명이었다. 그 시대는 전사이거나 왕이 되어야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유명한 사람이 되게 만드시겠다고 하신다.
  • 세번째 약속은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에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3절에 부연설명되어 있다. 한 마디로 아브람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뜻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된다. 아브람을 축복하면 하나님도 축복하시고 아브람을 저주하면 하나님도 저주하신다.
  • 약속은 모두 미래와 관련이 되어 있다.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실현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현재 아브람의 현실과는 정반대이다. 이 약속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 무엇인가? 아브람은 말씀을 따라 갔다. 이는 곧 아브람이 약속을 믿었다는 뜻이다.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했다.
  • 롯이 함께 따라갔다. 아들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롯은 함께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동안 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아브람은 조카 롯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게 된다.
  • 아브람이 가나안에 들어섰을 때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을 다 차지하고 살고 있었다. 아브람은 좀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는 살 땅을 준비해 놓으셨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이때 아브람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실망하고 불평했을까?
  •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다. 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가나안 이곳 저곳을 다니며 이제 이곳은 내 후손의 땅이 되리라 점찍어 놓은 것이다. 현재는 아무 보장이 없더라도 미래에 주실 것을 믿었다.

III.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다

〈창 12:10-20, 개역개정〉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다. 가나안은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다. 반면 애굽은 나일강 덕분에 늘 농사가 잘 되어 풍요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기근 때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이때 아브람도 역시 애굽행을 결심했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아브람이 하나님께 묻고 결정을 했어야 옳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을 떠나면서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곤란을 겪게 된다.
  • 애굽에 온 아브람은 아내 사래의 미모 때문에 두려움이 들었다. 애굽인들이 남편인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전략은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복누이이긴 하지만 방법치고는 너무 치졸하고 비겁했다.
  • 아브람의 걱정대로 바로가 아내를 후궁으로 데려가고 말았다. 졸지에 아브람은 아내를 빼앗기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대로 고착화되면 아브람의 씨가 태어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도 위기를 맞게 된다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 아브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을 말하면 왕을 속인 죄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빼앗기고 만다.
  • 이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신다.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신다. 어떤 재앙인지 알 수는 없다. 전염병일지 모른다. 또 꿈 등으로 사실 관계를 확인시켜 주신 듯 하다.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화를 낸다. 바로가 잘못한 것은 없고 잘못한 쪽은 아브람인데 재앙은 바로가 맞았다. 바로 입장에서는 화낼만한 상황이다. 아무튼 바로는 사래를 아브람에게 돌려주고 지참금으로 주었던 재물까지 다 가지고 가도록 한다. 아브람이 맞은 곤경을 하나님이 친히 나서서 해결해 주셨다. 아이가 똥을 싸면 부모가 기저기를 갈아주듯이 아브람이 저지른 실수와 허물이 하나님이 감당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 아브람은 이 사건으로 나와 함꼐 하시고 나를 지켜 주시는 나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다. 아브람의 허물과 약점도 드러났다. 이 허물과 약점 때문에 수치를 당했고 자기가 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 모든 과정이 아브람이 성장하고 성숙으로 향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 아브람의 하나님은 키워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브람은 성장의 스토리가 있다는 점에서 창세기의 앞선 인물들과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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