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베소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이창무 2018. 5. 2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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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제 3 강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말씀 에베소서 6:10-24

요절 에베소서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요즘 극장가에서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라는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여 화제입니다. 어벤져스는 여러 영웅들을 한 곳에 모은 팀의 이름인데 이 중에 아이언맨이라는 영웅이 있습니다. 이 영웅은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자기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언맨 슈트라고 불리는 특별한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슈트를 입으면 총을 맞아도 끄떡없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언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아주 특별한 슈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입니다. 이것을 입으면 어떤 마귀의 공격도 능히 물리칠 수 있으며 또한 마귀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다 영적인 세계에서 아이언맨이고 어벤져스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십 갑주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이를 잘 활용하여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0절부터 12절을 보십시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사도 바울은 이때까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의 새로운 인류, 즉 모든 믿는 자들의 신앙 공동체인 우주적 교회를 창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장엄한 목적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아무 문제없이, 아무런 방해도 없이 평안하게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형통하기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교회와 세상 가운데 외적 내적으로 끊임없이 문제는 발생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를 일으키고 그 사람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제도와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일까요?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 대상이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하려고 하는 원수 마귀와 그 졸개들을 가리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긴다는 말입니다. 일단 우리가 싸울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장엄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진행되는 이면에는 이를 필사적으로 방해하는 마귀의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장벽을 허무시고 하나 되게 하셨는데, 마귀는 이를 하나 되지 못하도록 회의와 불신을 심고 분열을 조장합니다. 우리는 지금 배후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이 사탄 마귀와의 영적 전쟁 중입니다. 우리는 기를 들고 앞장 서 싸우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주 안에서 강건해져야 합니다. 10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군인은 강해야 합니다. 나약한 군인은 쓸모가 없습니다. 도리어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만 가중시키기만 할 뿐입니다. 영적인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는 마귀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해야 세간을 늑탈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강한 자가 마귀입니다. 예수님도 일단 결박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귀가 강한 자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이런 강한 자를 상대하는 군인이 영적으로 약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 한 번 못 써보고 박살나지 않겠습니까?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만 무너지고 끝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을 무너지게 하고 더 나아가서 한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바울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사 40:30). 힘의 근원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전폭적으로 주님을 의지할 때 강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강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11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하라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무장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귀의 특징은 간교하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는 신출귀몰하는 술책이 있습니다. 마귀는 계시록에 따르면 머리가 일곱 개가 있다는데 그 좋은 머리로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 수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도록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것입니다. 때로는 광명의 천사처럼 위장하고 나타나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이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은 마귀의 밥이 된 줄도 모르고 제 발로 마귀의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마귀는 안일과 이기심, 자만심과 교만을 부추겨서 우리를 사로잡아 버립니다. 달콤한 말로 유혹합니다. 앞뒤가 말이 되는 그럴듯한 말로 끈질기게 설득합니다. 마귀는 물질 만능의 시대에 돈으로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성경만 붙들고 있다고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 모든 문제가 돈이 없기 때문이고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단다.’하면서 속삭입니다. 또한 성적인 쾌락의 노예가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 호기심으로 한 번 들어갔다가 발목이 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수법도 다양합니다. 대중 문화를 이용하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마귀의 수법에 걸려 넘어지면 하나님께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지게 됩니다. 자기 감정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한때 영적인 소원이 충만했던 사람이 어느새 세속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립니다. 이렇게 간교한 마귀와 상대를 하려면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장비로 무장하지 않는 것은 맨손으로 소총을 든 상대와 싸우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장으로 주신 전신 갑주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전신 갑주를 여섯 가지 장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진리의 허리 띠. 1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허리 띠를 맨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뜻일까요? 우리 나라 말에서 이것이 주로 절약하고 아끼는 내핍생활을 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다른 의미로 주로 쓰입니다. 허리 띠를 맨다는 것은 느슨하게 풀어져 있지 않고 복장을 단단히 하고 긴장한다는 의미입니다. 결연하고 확고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잘 때는 허리를 풀어 몸을 이완시키지만 아침에 일을 하기 나올 때 허리 띠를 매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쟁터의 군인들은 반드시 허리 띠를 맵니다. 우리도 영적 전쟁을 하려면 마음의 준비부터 단단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 전쟁에서 허리 띠는 무엇입니까?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를 소유하면 영적 싸움을 할 자세가 분명해지고 단호해집니다. 진리를 소유하지 못하면 허리 띠를 푼 군인처럼 자세가 없고 방향이 없습니다. 진리를 소유하면 싸움의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진리가 없으면 자기 유익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입니다. 말과 행동이 정함이 없고 우유부단해집니다.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어집니다. 적군과 아군도 없이 모두 다 뒤섞여 버립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적당과 중용을 미덕으로 하는 인본주의자가 됩니다. 이런 인본주의자는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없습니다. 진리에 기초해 분명한 기준과 방향을 잡고 확고한 자세를 가질 때 마귀와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안암 1부 학생회에서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교리문답이란 성경의 진리를 문답 형식으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3박 4일 동안 치열하게 서로 묻고 답하면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처음 해 보는 형식의 수양회라 결과가 어떨지 걱정이 되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끝나고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1학년 자매는 수양회 후 일대일 목자님에게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성경을 알면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한 형제는 지금까지 전도를 하고 싶어도 질문에 답할 자신이 없어서 전도가 주저되었는데 수양회를 하고 나니 답변할 자신이 생겼고 전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동안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는데 이번 수양회를 통해 질서가 잡히고 방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이번에 전체 내용의 반 밖에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반이 더 남았습니다. 계속해서 진리를 더 배우고 익혀서 우리 학생 제자들이 허리 띠를 동여매고 마귀와의 전쟁에 온전히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의의 호심경. 1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호심경이란 가슴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입니다. 가슴 안에는 심장이나 폐와 같은 중요한 기관들이 있습니다. 적은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 가슴 부위를 주공격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가슴 보호가 아주 중요합니다. 바울은 의가 우리의 호심경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다시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허물과 죄가 있습니다. 이때 사탄 마귀가 송사합니다. 사탄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소자, 비방자라는 뜻입니다. “네가 그러고도 목자냐? 네가 그러고도 신자냐? 넌 위선자야. 지금 당장 사표 내고 죽어라. 죽어.” 우리를 끊임없이 고발하고 탄핵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어이 불의에 빠지고 절망하고 자학하게 만들어 버리려고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는 의의 호심경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3, 3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우리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복음을 붙들고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의의 호심경이 우리를 사탄의 송사와 고소, 정죄에서 보호해 줍니다.


군대도 갔다 오고 마지막 학기인 한 형제 목자가 있습니다. 학생회 모든 리더들 중에서 현재 가장 학번이 높습니다. 맏형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에게는 장점이 아주 많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 세상에서 이렇게 착한 형제를 본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잘 하다가 갑자기 무기력해 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형제가 왜 갑자기 이렇게 되는가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룹 소감 발표 모임을 하면서 그 원인을 알았습니다. 소감을 들어보면 항상 제가 잘 못해서 제가 실수해서 제가 허물이 많아서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 형제를 위로해 주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과대평가하느냐고 책망을 했습니다. 마치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학생회가 좌우되는 것 여기고 있는데 그건 착각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보니 이 형제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의의 호심경이었습니다. 사탄의 송사를 받고 불의와 자학에 빠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앞으로 불의한 생각이 들 때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외치면서 사탄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연약한 이분의 심령을 보호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셋째, 평안의 복음의 신. 15절을 보십시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당시 로마 군인은 가죽으로 된 군화를 신었습니다. 튼튼한 군화가 발을 보호해 주어야 군인은 평안한 가운데 어떤 길도 갈 수 있습니다. 군화가 없으면 자갈밭이나 가시밭길은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길 가다가는 상처가 나고 아파서 싸움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면 잘 걷거나 달릴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 마음에 걱정과 근심, 불안이 가득하면 마음이 나누어져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집중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습니다. 군인이 왜 탈영을 하게 됩니까? 보통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을 잃었기 때문에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투수도 마음이 평안해야 집중력을 발휘해서 공을 잘 던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의사도 마음이 평안해야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해서 잘 돌볼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의료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군사도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영적 전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2강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 화평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할 때 우리 안에 평안이 임합니다. 미국의 네비게이토 지도자 중에 제리 브리지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쓴 책 중에서 자신의 습관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면도하는 시간에 거울 안에 보이는 자기 자신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헤이, 제리 형제”라는 말로 시작하여 약 십분에서 십오분 정도 자기 자신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또 스스로 “아멘”하면서 믿음을 고백합니다. 제리 브리지스는 이 십오분의 투자를 하고 나면 마음에 평안이 임하여 그날 하루를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따라고 해보니까 정말 효과가 있었습니다. 쓸데 없는 인간 갈등이나 불신적인 생각에 시달리지 않게 되어서 집중적으로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안의 복음을 날다마 붙듦으로 주님이 인도하시는 어떤 길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 16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방패는 다른 장비들과 차별되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갑주들은 들은 특정 부위를 보호하는 반면에 방패는 몸 전체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장비입니다. 바울 시대에 전쟁터에서는 화살 끝에 송진을 발라 불을 붙여 쏘았다고 합니다. 이 화살에 맞으면 검투사라 할지라도 불에 타 죽었습니다. 마귀도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온갖 의심의 불화살을 날립니다. 여기에 맞으면 의심의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절망의 불화살이 마음에 와서 꽂히면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딥니다. 말씀에 대한 상대적인 생각도 불화살입니다. 하와에게 ‘죽을까 하노라’라면서 말씀을 혼잡하게 한 것처럼 마귀는 우리에게 꼭 그렇게 말씀대로 살아야 하느냐며 절대성을 상실하게 합니다. 불신과 원망의 불화살은 어떻습니까? 여기에 맞으면 자기도 태우고 남도 태우게 됩니다. 이런 불화살은 도대체 무엇을 막을 수 있습니까? 바로 믿음의 방패로만 막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전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어떤 상황 가운데서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가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자식이 없자 시험에 들 뻔했습니다. 그러나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의 방패로 의심의 불화살을 물리쳤습니다. 욥도 불신과 원망의 불화살을 맞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능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 1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구원의 투구와”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머리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좀 무겁고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헬멧을 쓰고 전장에 나섭니다. 영적 싸움에서 투구는 구원의 투구입니다. 영적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 내가 구원 받았는가에 대해 긴가민가하면서 싸울 수는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어떤 싸움에서든 승산이 있습니다.


여섯째, 성령의 검. 1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지금까지 다섯 개의 무기를 살펴 보았습니다. 모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장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마지막 공격용 무기 한 가지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의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의 검을 휘두르면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임합니다. 마귀가 힘을 쓰지 못하고 쫓겨 갑니다. 에베소 교회가 그 산 증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치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은 오만량에 해당하는 마술책이 불태워졌습니다. 에베소에서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결과 에베소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역사는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말씀과 성령은 별개가 아닙니다. 성령은 항상 말씀 역사와 함께 하시며 감동을 일으키십니다. 


우리 시대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은 죄인이고 구원의 복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 더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말씀이 없는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말씀을 가진 자가 승리자입니다. 예수님도 사십일 간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을 가진 사람이 마귀와 대적하여 싸워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가지려면 말씀을 연구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무뎌진 칼로는 아무 것도 자를 수 없듯이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지 않으면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칼처럼 벼린 말씀의 검이 있어야 원수를 무찔러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여섯 무기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무기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8절을 보십시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휴대폰에 여러 가지 기능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배터리입니다.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100가지 기능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앞에서 언급한 좋은 장비를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기도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장비를 갖추고 반드시 기도로 에너지를 공급해야 합니다. 19절과 20절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강하고 담대한 사람 아닙니까?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기도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도 연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지 않으시면 바울이라 하더라도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원이로되 육신이 약합니다. 해야 할 일들도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발을 붙들어 매고 기도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교회는 악한 영의 세력과 끊임 없이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이 전쟁에 나선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맨몸으로 나가서 싸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충분히 보호하고 상대방을 무너뜨리기에 합당한 무기를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 함께 승리의 찬가, 개선 행진곡을 부르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그 날까지 힘차게 전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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