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베소서

새 사람을 입으라

이창무 2023. 1. 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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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겨울 특강 / 이창무

새 사람을 입으라

말씀 / 에베소서 4:22-24
요절 / 에베소서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서양 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생각하는 것이 곧 인간성의 핵심이라는 사상에 기초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제를 따라 생각하고 고민하고 배우는 지성적인 존재로 우리 자신을 규정하며 살아 왔습니다.

이것은 제자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왔습니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주장을 귀하게 여겨왔습니다. 사람들이 무지하게 때문에, 눈이 가려져 잘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리를 알게 되면 그래서 시각이 바뀌게 되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안다고 행동이 바뀌나요? 말씀을 듣고 결단을 했지만 교회 문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 삶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잘 알지만 행동은 그대로일까요? 지식이 중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식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말씀 속에서 찾고자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22)”

바울은 우리에게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권면합니다. 옛 사람이 누구일까요? 옛 사람은 우리가 거듭나기 전 죄와 죽음의 지배 아래 있던 사람을 가리킵니다. 옛 사람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옛 사람이 육체의 욕심을 부리는 까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만 하면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며 기만입니다. 옛 사람은 아무리 욕심을 부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지라도 참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거짓된 환상을 부여잡고 자기만족을 구하며 살다가 점점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해 갑니다. 마침내 죽음으로 그 허무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심할 때 이미 옛 사람을 벗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6절에서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나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 난 새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다시 과거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산다면 그것은 거듭 나기 이전에 존재도 되돌아가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마치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할 때 가마 곁에서 고기를 주워먹었던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임금이 거지를 불쌍히 여겨 입양해 왕자로 삼았더니, 왕자가 다시 거지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기 쉽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결심을 하곤 합니다. 올해는 작년과 다른 새롭게 변하고 업그레이드된 내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라는 표현처럼 삼일을 못 넘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그러는 것일까요?

22절의 ‘구습’라는 표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습이란 예전의 생활 방식과 습관을 말합니다. 나의 생각이 ‘나’일까요? 아니면 나의 습관이 ‘나’일까요? 흔히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고 행동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채 하는 행동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쩌면 습관처럼 배인 일상이 오히려 실제 ‘나’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나의 습관과 일상이 실제 나의 영성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옛사람을 벗기 힘들어 하는 이유가 바로 나의 오래된 습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습관, 다른 사람을 욕하고 미워하는 습관, 틈만 나면 포기하고 누워버리는 습관, 영 좋지 않은 영상을 계속 보는 습관, 지나치게 낭비하거나 지나치게 인색하게 구는 습관 등등, 우리는 이런 습관들이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것을 머리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습관을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단절이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도 생각보다 손과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옛 사람의 구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헤어질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과 단호하고 분명하게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유혹에 눈과 귀를 닫아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겉옷을 두고 도망쳤던 것과 같은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면서 옛 사람의 구습이 끊어질 때까지 이를 악물고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물론 처음에 금단 현상이 올 것입니다. 삶이 재미가 없고 낙이 없어서 살 맛이 안 날 것입니다. 그래도 견뎌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라는 온갖 유혹이 들어와도 헤어질 결심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끊어질 날이 옵니다.

하지만 옛 사람의 구습을 끊고자 하는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3,24)”

새 사람을 입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새 사람이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거듭 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자아, 영적인 자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죄 때문에 망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고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새롭게 되어’라는 표현의 원어는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새롭게 하는 주체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또한 여기서 심령은 단지 지성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하고 사랑하고 선택하는 우리의 전 인격을 가리킵니다. 새 사람을 입으려면 먼저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지만, 생각만 바뀌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사랑하는 대상, 원하는 대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전적으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습관은 어떻게 형성이 됩니까? 반복을 통해 형성이 됩니다. 어떤 일도 만 번을 하면 달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의 십 분의 일인 천 번을 반복한다면 평생 가는 습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거야 할 좋은 습관이 무엇일까요?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매일 기도하는 습관,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 매주 하나님 앞에 자기 몸을 보이며 예배하는 습관, 감사하는 습관, 섬기는 습관, 복음 전하는 습관 등등 아주 많습니다. 러너스에서 양식 챌린지, 소감 챌린지를 하는 이유도 이런 습관 형성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설이 지난 후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자 요절 심포지움을 발표하는 날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좋은 습관을 만들겠노라 올해 결심했던 것이 벌써 약해지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계기로 다시 새롭게 결심하기를 기도합니다. 옛 사람의 습관 한 가지와 확실하게 헤어지고 새 사람은 습관 한 가지를 확고하게 형성하는 2023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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