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및 나눔/단상

어떻게 말과 경주를 할 수 있겠느냐

이창무 2018. 1. 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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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여러 회사에서 시무식을 합니다. 제가 다녔던 한 벤처 회사의 시무식은 좀 특별했습니다. 사장님이 마라톤을 너무 좋아하시는 바람에 직원 전체가 마라톤으로 시무식을 했습니다. 얼마나 특이했는지 MBC 뉴스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였습니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강바람이 부는 여의도에서 12 킬로미터 정도를 달렸습니다. 추워서 얼굴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안 하던 마라톤을 하자니 금방 다리가 풀리는 바람에 고생하다가 겨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요? ‘너무 힘들지?’ ‘얼마나 힘들어?’ ‘힘들면 포기해도 괜찮아.’ 이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12장 5절에서 경주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이 말을 풀이하자면 ‘네가 사람이랑 달리는데 이렇게 피곤해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가지고서야 어떻게 말과 경주를 할 수 있겠느냐?’ 이런 뜻입니다. 한참 달리고 있을 때 이 말을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해도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저라면 위로의 말을 해주지 않으실 것이면 조용히 계실 것이지 왜 이런 가혹한 말씀을 하시는가하며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자기 연민에 빠지기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힘들 때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렇게 힘든 내 자신이 불쌍하게 보이고 딱해 보입니다. 그러면 슬슬 힘이 빠집니다.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다 때려치우고 주저앉고 싶습니다. 이렇게 한 번 주저앉고 나면 다음에 포기하는 것은 더 쉬워집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예 힘들 것 같아 보이는 일은 시도조차 안 하게 됩니다. 정말 그 사람을 위한다면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쉬운 때에 오해를 살 위험이 있다 하더라고 이런 말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정도로 주저앉아서야 되겠니? 너는 더 큰 일을 감당해 낼 사람이야.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해.”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뜻이 얼마나 크고 높은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경주하여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표는 그 이상입니다. 말은 동물 중에 가장 잘 달리는 동물입니다. 순간 가속도는 치타가 더 빠를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은 말에게 이길 수 없습니다. 말은 달리기 위해 태어난 동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과 함께 경주할 수 있을 정도까지 끌어올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높은 수준에까지 이르기를 바라신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까?


훈련소 조교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는 군인이 되도록 훈련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고난이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값싼 위로나 동정 따위를 주어서 자기 연민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성장하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 동정심을 구걸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절망의 땅 한복판 천릿길을 단숨에 내달리고도 그 이상을 견딜 수 있는 숨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달달한 하나님을 원합니다. 일주일 동안 지지고 볶고 힘든 세상살이에 지쳐서 예배에 오면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란다." 이렇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 생크림 케이크 같은 메시지를 원합니다. 그러나 계속 단 것만 먹으면 우리 몸이 망가지듯이 이런 달콤한 메시지만 받아먹은 성도는 영적인 건강함을 잃어버립니다. 아무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습니다. '힘듭니다. 어렵습니다. 지쳤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들을 너무 쉽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지금이 내 인생 최고로 힘든 때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다 접고 싶어 하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네가 사람들과의 경주에서도 이렇게 피곤해하면, 앞으로 말들과는 어떻게 경주하겠느냐?” 우리 나약해지지 맙시다.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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