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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누가복음 제 12 강 죄 사함 과 사랑
    성경공부/2017누가복음 2017.09.05 20:28
    2017년 누가복음 제 12 강 (찬 315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
    말씀 / 누가복음 7:36-50
    요절 / 누가복음 7:47

    죄 사함 과  사랑

    •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 유사한 이야기가 많은데 여기서 예수님의 사역 비교적 초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다른 사건들과 구별된다. 마태복음(26:6-13) 마가복음(14:3-9)에서는 주인의 이름이 시몬이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누가복음과 달리 나병환자이다. 요한복음과 마태복음, 마가복음은 모두 장소를 베다니로 말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의 장소는 갈릴리이다. 또한 요한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은 모두 예수님의 사역 후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다루고 있으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관시켜서 본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용서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은 누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데 요한복음은 나사로의 누이 동생 마리아라고 밝히고 있다. 다른 복음서와 별개의 사건으로 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이야기들과 뒤죽박죽이 되어 본문 이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 내게 예수님은 누구신가? 현재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 를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와 같은 말씀. 나에게 죄사함을 주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여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 인간에게는 사랑하고 싶은 갈망이 있어.. 마음 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 예수님은 마음껏 사랑해도 되는 분.. 그래서 여인은 행복한 사람.. 나도 그렇다.

    1. 예수님이 누구의 초청을 받으셨습니까(36)? 죄를 지은 한 여자가 무엇을 했습니까(37,38)? 왜 그렇게 했을까요?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한 바리새인. 그의 이름은 시몬이다. 바리새인이 왜 예수님께 잡수시기를 청했을까? 의도가 순수하지만은 않은 듯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적극적인 환대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 예수님이 정말 선지자인가 탐색해 보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함정을 파고 있었다 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
    •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 예수님으로서는 참 부담스러운 식사자리이다. 그러나 거절하지 않으시고 응하셨다. 예수님은 맨날 싸우시는 것 같은 바리새인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편견을 가지고 대하시지 않으셨다.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고자 하셨을 것이다.
    • 앉으셨다는 표현은 원어로 보면 옆으로 기대어 비스듬이 누운 자세를 가리킨다. 유대인 연회의 전형적인 식사 자세이다. 이때 하인이 와서 손님의 발을 씻어 주었다. 그리고 이런 형식의 공식 연회에는 누구나 참관이 가능했다.
    •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볼 때 몸 파는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예수님과 초면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듯. 47절에 기초해 보면 이전에 죄사함 받은 바 있다. 세리와 죄인들이 식사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런 계기로 예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았던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왜 예수님께 왔나? 죄사함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인은 그러면 현재 과거의 삶을 모두 청산했을까?
    • 향유 : 당시 일반적인 기름은 감람유(올리브유)였다. 그러나 이 향유는 좋은 향이 나는 기름으로 감람유와 달리 매우 값비싼 기름이었다. 향유 뿐 아니라 향유병을 담은 옥합도 상당히 비싼 것이었다.
    • 뒤로 발 곁에 서서 : 겸손과 자기 비하의 표현이다. 예수님께 경배드리는 자세.
    • 울며 : 왜 울었을까? 여자의 눈물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 눈물은 거짓된 눈물이 아니라 진실된 눈물이다.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 또한 참회의 눈물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 하인이 물로 발을 닦아 주는 대신 여인은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을 발을 닦아 주었다. 얼마나 울어야 이 정도가 가능할까?
    • 자기 머리털로 닦고 : 보통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한다. 그런데 여인의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풀어 예수님을 발을 닦았다. 여인에게 머리는 참 소중하다. 전 대통령에 올림머리가 그렇게 중요했다고 하는데 이 여인은 그 머리를 걸레처럼 쓰는 것을 아까와 하지 않았다.
    •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입맞춤은 유대인의 환영 인사이다. 보통 뺨이나 손에 한다. 그러나 여인은 발에 입을 맞추었다. 또한  거의 여인의 전재산에 해당했을지도 모를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 보통 향유도 아닌 감람유를 붓지 않고 손님의 머리 위에 한 두 방울 정도 떨어 뜨린다. 그러나 여인은 쏟아 부었다. 예수님이 내게 어떤 분이 되시는가를 표현한 것이다. 
    • 여인은 특이하게 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입에 발린 말보다는 행동으로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를 표현했다. 때로는 행함이 더 큰 목소리를 낸다.


    2. 이를 본 그 바리새인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39)?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그에게 무슨 질문을 하셨습니까(40-42)? 시몬의 대답이 어떠합니까(43)?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 : 예수님을 탐색 중이었던 바리새인에게 이 사건이 하나의 정보가 되었다. 만일이라는 조건문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부정적인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선지자가 아닐 것이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만약 참 선지자라면 이 여인이 어떤 죄인인줄 알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부정한 여인이 이렇게 자신에게 행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실망한 느낌이 묻어나 있다. 선지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당시 랍비는 외간 여자가 근처 1.8 미터 동심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물며 이런 죄 많은 여자는 더더욱 그러하여 18미터 이내도 접근금지였으리라.
    • 예수께서 대답하여 : 바리새인 시몬은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인데 예수님은 그 마음 속 생각까지 다 아시고 대답을 하셨다. 예수님이 시몬의 생각과 달리 참 선지자이시라는 증거가 된다.
    • 시몬아 ... 말씀하소서 : 시몬아.. 이를 말이 있다.. 예수님이 직접 이름을 부르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친근하게 타이르듯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바리새인의 대답은 매우 예의바르고 공손하다. 하지만 이는 의례적인 태도로 보인다. 이미 마음 속에는 예수님께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가득하다. 말 없이 행함으로 예수님을 환대하는 여인과 대조된다.
    • 빚 주는 사람에게 ... 졌는데 : 여기서 빚은 원어로 보면  보통 빚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지은 빚이라는 뜻이 있다. 어찌보면 이 단어를 선택하신 것은 여인의 사정을 이해할 구석이 있다는 점을 암시하시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이다. 오백 데나리온은 일년 반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크기는 하지만 일만 달란트 비유와 달리 아주 갚기 불가능한 금액은 아니다. 하필 왜 오백 데나리온을 예로 들으셨을까에 대해 여인이 부은 향유의 값어치가 그 정도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오십 데나리온은 그 금액의 십분의 일인 두 달치 월급 정도에 해당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금액이 아니라 두 빚진 자의 열배나 되는 차이다.
    • 갚은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 더 사랑하겠느냐 : 탕감이라는 행위는 두 사람의 채무자에게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어차피 둘 다 갚은 것이 없는 형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빚에 대한 이와 같은 일괄적인 탕감은 구약의 면제년(안식년) 규정 또는 희년 규정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은 희년이 성취되었다고 이미 선포하신 바 있다. 탕감은 은혜를 입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를 입은 자에게서 당연히 사랑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 시몬이 대답하여... 옳다 하시고 : 시몬은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가 더 사랑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시몬이 스스로 생각해 보고 대답해 보도록 유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시몬의 판단이 옳다고 인정해 주셨다.


    3. 예수님을 대접하는 데 있어서 시몬과 여인이 어떻게 달랐습니까(44-46)?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요(47)? ‘죄 사함’과 ‘사랑’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 여자와 시몬을 대비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비유로 말하자면 여자는 오백 데나리온 탕감 받은 자라면 시몬은 오십 데나리온 탕감을 받은 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자는 오백 데나리온 이상의 빚을 탕감 받았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고 시몬은 한 데나리온도 탕감 받은 적이 없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 내 발에 부었느니라 : 시몬과 여자의 행위가 대비된다. 시몬은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눈물로 발을 씻고 머리털로 닦았다. 시몬은 입맞추지 않았으나 여자는 발에 입을 맞추었다. 시몬은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으나 여자는 향유를 발에 부었다. 시몬은 당시 보통 손님들에게 행하던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환대 행위조차 하지 않았다. 거의 우리 집에 초대해 준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하는 투이다. 예수님으로서는 수모를 당했다고까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인은 당시 일반적인 관습을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예수님을 환대하였다.  이 같은 모습을 통해서 누가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 이 말씀을 그의 사랑함이 많기 때문에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 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런 해석은 신약의 전체적인 증거에 반할 뿐 아니라 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탐감 받은 자의 비유나 곧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반한다. 이 말은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 이 때문에 그의 사랑이 많다. 이렇게 이해해야 마땅하다. 이 말씀은 여인의 파격적인 행동을 설명해 주고 있다. 여인은 죄 많은 여인이있고 그 많은 죄가 사함을 받았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 바리새인 시몬의 인색한 행동을 설명해 주고 있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기 때문에 예수님을 적게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 과거 대 현재 또는 미래가 대조된다. 바리새인 시몬은 여인의 과거만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과거에 죄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이 여인을 영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변화된 현재와 또 앞으로 더 변화될 미래를 내다보고 계시다. 과거가 어떠하든 죄사함의 은혜가 그녀를 변화시켜 현재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인을 바라볼 때 그의 과거만을 보지 말고 주님께서 그를 앞으로 어떻게 만드실 수 있을까를 보아야 한다.
    • 사함 받은 일이 많고 적은 것은 지은 죄의 무게와 비례하는가? 여인은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많은 죄가 사하여졌고 바리새인 시몬은 그보다 깨끗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사함 받은 일이 적은가? 그렇지 않다. 여인은 주님께서 베푸신 죄사함의 깊이를 알았던 것이고 시몬은 그 깊이가 얕았을 뿐이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은혜가 넘치게 하기 위해 죄를 많이 지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럴 수 없다. 곧 헛생각은 집어치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미 지은 죄로도 죄사함의 깊이를 누리기에 아무 부족함이 없다. 이제 그 은혜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강물 삼아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날마다 예수님께서 내게 베푸신 그 은혜의 크기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알면 알수록 그 은혜는 더욱 더 커지고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4. 예수님은 여인에게 무엇을 선포하셨습니까(48)?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은 무엇이라고 수군거렸습니까(49)?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50)?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 이미 과거에 죄 사함을 받았는데 왜 또 다시 선포하시는가? 이미 이전에 선포하셨던 죄사함은 충분한 효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 두번째 선포는 이전에 했던 죄사함의 선포가 너의 사랑하는 행위로 통해 온전하고 효력이 있었다는 것이 입증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거듭날 때 죄사함의 은혜를 입고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부족한대로 우리의 진심을 드려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다시 서게 될 때 최종적인 죄사함의 선포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 :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앞에서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이 선지자인가 의문을 품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나는 선지자 이상의 존재, 죄사함을 이 땅에 가운데 선포하러 오신 성자 하나님이다 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선생님으로서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구주로서 사랑하는 것이다.
    • 예수께서 여자에게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 : 이 여인에게는 돌출 행동으로 인한 심적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덮여 있는데 이런 행동을 해서 더 이상한 여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될까 두려웠을 것이다. 또는 괜한 행동을 해서 예수님이 오해받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을 사랑해서 이렇게 하지 않았을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이런 여인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시며 안심시키신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여기서 평안은 죄사함으로부터 주어지는 평안, 하나님과의 화평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여인이 평안함과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여기서도 여인이 구원 받게 된 것은 여인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 때문임을 분명히 밝히신다. 여인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예수님이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메시아가 되신다는 믿음을 입증하였다.
    • 우리는 모두 동일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그곳은 예수님 발 아래에 서 있던 용서 받은 죄인의 위치이다. 교회는 죄사함을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세상에 알리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출발했던 그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나 자신과 결코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라 할지라도 나와 동성애자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똑같이 죄인이다. 내가 그랬듯이 동성애자도 예수님이 주시는 죄사함의 은혜를 덧입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변화된 인생을 살게 도와주어야 한다.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은 타협의 여지가 없지만 자칫 하다가 바리새인 시몬처럼 접근 금지를 명령하고 근본이 다른 사람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을 적은 죄를 지은 사람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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