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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누가복음 제9강 열둘을 사도라 칭하셨으니
    성경공부/2017누가복음 2017.08.30 10:13
    2017년 누가복음 제 9 강 (찬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말씀 / 누가복음 6:6-19
    요절 / 누가복음 6:13

    열둘을 사도라 칭하셨으니

    • 리더십. 누가 이 나라를 이끌 것인가 대통령 선거가 한참 진행 중..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그 시대를 감당할 지도자를 세우신 이야기.
    •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예수님의 공동체의 리더십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어떻게 발휘될 것인가?
    • 리더의 타락으로 고통 받는 시대 복음을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우리가 세워야 할 영적 리더십 대안적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말씀이 되도록...

    1.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누가 있었습니까(6)?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무슨 목적으로 예수님을 엿보고 있었습니까(7)?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 안식일의 주인이신 것을 말씀(밀 이삭 사건, 1-5절) 뿐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심. 앞의 안식일과 다른 안식일에 회당에 가르치시기 위해 들어가심.
    • 오른손 마른 사람. 기형이 되어 혹은 마비가 되어 쓸 수 없게 된 오른손. 직업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 외경에 따르면 석공이었다는 설이 있음. 거지로 살았을 것. 죽을 병이 아니지만 이것 하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불쌍한가?
    •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손 마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없음. 관심은 예수께서 안식일에도 병을 고칠 것인가 말인가에만 있었음.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이 치유하시길 바랐을 것. 왜? 손 마른 사람이 불쌍해서? No. 고소할 조건을 찾기 위해서임. (그들도 예수님이 이 병을 고치실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듯.) 안식일에 일을 했다해서 법범자로 몰 수 있음. 검찰에 고발해서 구속시킬 수 있고 유죄 판결을 받을 근거를 만들 수 있음. 바리새인들의 규례에 따르면 치료 행위는 일이므로 생명의 위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면 치료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으로 보았음. 스파이처럼 엿봄. 의도를 숨긴 채 짐짓 아닌 척 하고 있었다는 말. 함정을 파고 있음. 
    • 종교지도자들의 타락하고 부패한 리더십. 양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을 여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나 날 때부터 소경되었다가 눈을 뜨게 된 사람도 다 마찬가지였음. 우리 시대 갑질이 이슈화된 것도 다 이런 잘못된 리더십에 근거하고 있음. 우리에게도 양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또한 거짓됨.. 음모를 꾸밈...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리더십... 

    2. 예수님은 무엇을 아셨습니까(8a)? 한 손 마른 사람에게 왜 한가운데 서라고 하셨을까요(8b)?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셨습니까(9)?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 그들의 생각이란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고자 하려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생각. 사람의 생각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렘17:10, 시139:236-24) 그래서 인간의 음모는 다 소용없다... 
    • 아시면 몸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은 오히려 아시기 때문에 한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고자 하심. 예수님은 다음 날로 치료를 미루실 수 있었지만 안식일의 주인임을 나타내시기 위해 치료를 행하시고자 하심. 예수님께 배워야 할 것 =>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뒤로 미루지 마라. 양을 돕는 일은 지체하지 마라. 지금 당장 하라. 그리고 과감하게 하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
    • 예수님이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물으신 것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질문의 방식을 선택하심. 질문을 통해 안식일 계명의 본질을 생각해보도록 하심. 답했을까? 종교 지도자들은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에 대답을 회피했을 것. 우리도 무슨 일을 하던 왜 하는지 본질과 정신을 생각해 보아야 함. 질문을 계속 던져 보아야 "이것 왜 하는거지? 본래의 목적이 무엇이지?"
    • 선을 행할 능력이 있으나 소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 = 악행. 세월호도 마찬가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음. 안식일 법은 선을 위한 것인가? 악을 위한 것인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 죽이기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법은 선과 구원을 위한 것. 쉼은 생명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선과 생명을 위한 안식일 법을 선행마저 금지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악행을 유도하는 규정으로 오용하고 있었음. 바리새인의 아이러니. 이런 아이러니는 숱하게 나타남.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 율법이 득세하게 될 때 권위적이 된다..부패한 마음 때문에 결국 이것이 기득권이 된다... 율법주의는 사람들을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 불평하게 하고 원망하게 만든다..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처음 출발은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였다. 안식일에 쉬라는 십계명 율법은 있는데 구체적인 규정이 없었다. 사람들이 헷갈리고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나름대로 규정을 만들었다. 얼마나 들 수 있고 얼마나 걸을 수 있는지를 정했다. 순종을 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로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 규정들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본질과 정신이 중요하고 이것을 형식이 뒷받침해야 하는데 그러나 때로는 형식이 본질과 정신을 가로 막거나 해치는 경우가 생김. 이것이 문제. 율법의 본질은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이 율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과 은혜로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마다 그렇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율법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이며 최고의 법(이웃 사랑 약2:8)이다. 
    •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목표와 지향점이 무엇인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기쁘고 자발적인 헌신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부패와 타락 때문에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율법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향점을 분명히 가지고 사랑과 생명과 성령의 법을 나아가야 한다.  율법은 몽학선생일 뿐이다.


    3. 한 손 마른 자의 손이 어떻게 회복되었습니까(10)? 마른 손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종교지도자들은 얼마나 더 악해졌습니까(11)?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 네 손을 내밀라는 말씀으로 고쳐주심.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은 안식일 법을 어기지 않으셨다. 말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다. 손을 내민 것도 안식일 법을 깨트린 것은 아니었음. 종교 지도자들은 넋 놓고 볼 수 밖에 없었을 것. 회복된 한손 말랐던 사람은 얼마나 기뻤을까? 진정한 안식일은 축제의 날이다.
    • 손이 회복된 것은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증거이다. 마치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죄사함의 권세자이신 것을 입증하신 것과 유사하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인정하신 셈이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으나 도리아 더 악한 마음을 품음. 분노란 표현은 매우 강한 표현(정신이 나갔다)으로 비이성적이며 병적인 분노를 말함. 강력한 기적조차 완악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함. 치유와 회복을 기뻐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성공과 자신들의 의도가 무력화된 것에 대해 분노함. 예수님이 미꾸라지 같다고 생각했을 것.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된다. 요즘 정치판도 비슷한 듯 하다. 이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며 제거하려는 모의를 하게 됨. 여기서부터 벌써 십자가 고난의 그림자가 드리움.
    • 긍휼이 필요했던 사람에게 계속 사랑으로 사역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반대에 직면하셨다. 살리고 섬기고 사랑했을 뿐인데 죽이려는 자들이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렇게 될까봐 두려워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기 쉽다. 그러나 설령 반대에 부딛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섬김과 사랑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선행을 하기 때문에 뒷따르게 될 수 밖에 없는 고난을 감당하고 누군가와는 부딛치고 갈등할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용기가 없어서 선행을...  못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4. 예수님은 이 때에 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을까요(12)? 날이 밝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13)? 열둘을 사도라 칭하신 데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 제자의 허다한 무리들(17절) 가운데 특별히 12명을 제자로 부르시고 사도로 세우시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시기 위해 철야 기도 하심. 기도하셨다는 내용은 누가복음에만 나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보시고 깊은 고민에 빠지심. 그들과 싸워야 하는가? 어떻게 시대의 악에 대처해야 하는가? 등등... 또는 예수님 자신의 죽으심을 미리 내다12보시며 준비하신 것일 수 있음. 누가 양들을 돌보고 섬길 것인가? 방법은 새로운 지도자 양성. 모든 신자는 제자인데 사도는 그 중에 지도자라 할 수 있음. 즉 열둘은 사도가 된 제자.
    • 왜 하필 12인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새로운 이스라엘이며 남은 자들. 12이란 숫자가 중요해서 공식이 생기자 대체할 사람을채우기까지 했음. 왜 소수인가? 그래야 인격적인 교제와 양육이 가능하기 때문..
    • 제자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 제자는 소명이고 사도는 사명. 사도란 말은 당시 사회 속에서 황제의 명을 받아 파견된 전권대사를 가리킴. 사도가 누구인지는 복음서보다는 사도행전에 잘 나타남. 예수님의 메시지(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침투하여 전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로 세우심.
    • 우리는 부패하고 타락한 지도자와 싸우기에만 올인하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싸워서 제거하기 보다는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가 천년만년 살 것이 아니다. 누군가 계승해야 한다. 계승할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걸리고 더딘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교육이 백년지대계이다.

    5. 열두 사도는 각각 누구입니까(14-16)? 이들은 당시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이들을 사도로 세우신 예수님의 믿음과 소망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 특이한 점은 시몬이 둘, 야고보도 둘, 유다도 둘로서 동명이인 세 쌍. 네 명씩 구성된 세 개의 소그룹으로 보기도 함. 각각 베드로, 빌립, 야고보가 리더로 봄. 
    • 설명이 붙은 제자들 : 베드로(반석, 아람어 게바)로 명명되어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시사하는 시몬은 제자 목록의 항상 첫 머리에 나옴. 친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한 안드레. 다른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붙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또는 작은 야고보). 열심당원 출신 시몬(또는 가나나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다대오와 동일 인물. 배신자 유다(원어에는 예수를 판다는 말이 없음)는 처음부터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움, 가룟은 유다 남쪽 지명 그리욧으로 비갈릴리 출신임을 말해줌. 마태는 세리 레위. 도마는 디두모(쌍둥이)라는 별명도 있음. 바돌로매는 요한복음의 나다나엘. 
    • 평범하거나 평균 이하. 그리고 다양하다. 어부도 있고 세리도 있고 민족주의자도 있고 여기도 저기도 아닌 사람도 있다.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시다. 세상과 같이 돈이나 지위, 권력이 리더십의 기초가 아니었다. 강력한 쇼맨십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 가롯 유다가 있다는 점은 모든 사람들이 팀플레이어로 남는 것은 아니며 배신이 가장 깊은 내부에서부터 생길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처음부터 사도로 뜻 두시고 제자로 부르셨음. 이 사람들이 세상을 흔들었던 사도들이 됨.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준비가 된 평범한 사람들이 예수 공동체의 리더가 된다. 복음과 말씀에 대한 수용성이 있는 자들이 리더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돈이나 능력, 백그라운드, 화술 심지어 외모 등을 보고 리더를 세웠다가 공동체에 파괴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겸손히 예수님을 배우려고 하는 제자여야 사도가 될 수 있다.


    6. 예수님은 열두 사도와 함께 어디에 서셨습니까(17a)?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온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17b)? 예수님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18,19)?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 예수님께서 평지로 제자들과 내려오신 것은  모세가 새내산에서 백성들에게 내려온 것과 유사. 이곳에서부터 49절까지를 산상 수훈과 비교하여 평지 수훈이라고 부르기도 함.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와 율법을 제시한 것처럼 예수님도 산에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법을 주심. 예수님의 법은 옛 법을 폐지하거나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옛 법을 성취하고 완성하는 천국의 법, 사랑의 법(요13:34; 2:8)
    • 예수님은 열두 제자뿐 아니라 허다한 이스라엘 사람들(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방인들(두로와 시돈 사람들)까지 관심을 가지심.  제자도에 관한 말씀(20-49)은 열두 제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한 도전이며 초청.
    • 평지에서 문제 많은 양들과 씨름하며 제자 훈련을 받음으로 사도로 성장하게 됨. 리더십은 현장에서 스승의 모습을 통해 인격적으로 실제적으로 배우는 것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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