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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누가복음 제6강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성경공부/2017누가복음 2017.08.30 09:51
    2017년 누가복음 제 6 강(새찬송가 499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말씀/ 누가복음 4:16-44
    요절/ 누가복음 4:43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제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메시야 사역을 시작.... 대통령이 직무를 시작할 때 취임사를 발표. 자신이 재임시에 어떤 일을 하겠다고 선언. 예수님도 만왕의 왕으로서 자신이 하실 일을 선포. 그 일의 핵심은 희년의 선포.. 희년은 해방과 자유의 해..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은 죄인들을 죄로 부터 자유케 하는 것.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해방되는 것. 오늘 말씀을 통해 희년을 전파하러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길... 기도...


    1. 예수님은 나사렛에 가셔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16,17)? 예수님이 읽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18,19, 사61:1,2)?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20,21)?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반장이 된다...

    • 장소적 배경은 고향인 나사렛. 시간적 배경은 안식일.
    • 늘 하시던 대로.. 예수님은 평소에 꾸준하게 안식일 회당 예배를 신실하게 참여하셨다. 회당 예배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생겨난 유대교 전통이다. 예수님이 무조건적인 전통 파괴자는 아니셨다. 좋고 필요한 전통을 인정하셨고 선교의 도구로 활용하시기도 하셨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 회당 예배의 순서는 기도, 모세오경 낭독, 성문서 낭독, 설교, 축도의 순서로 대략 진행되었다. 이사야의 글은 성문서에 해당. 기록된 데를 찾으셨다고 되어있는데 원문으로 보면 의도적으로 찾으셨다기 보다는 우연히 그날에 읽은 본문이 이사야서 61장이었다. 예수님이 우연히 읽게 된 본문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 섭리였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때 그 머리 위로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다. 성령충만하신 가운데 시험을 받으셨다. 갈릴리 각 지역을 다니시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셨다. 예수님의 특징은 성령의 임재였다.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말과도 서로 통한다.. 구약의 왕은 기름 부음으로 받아 왕이 되었으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메시아이다. 메시아는 무엇을 위해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시는가?
    •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여기서 가난한 자는 일차적으로 돈이 없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가난하여 오직 하나님 밖에 기댈 것이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김현유 목자님의 토크 콘서트) 기쁜 소식을 접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한 자들이다. 이 세상에서 슬픈 소식, 마음이 무거운 소식에 익숙한 자들이다. 이런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임한다. 이 기쁜 소식 곧 복음은 요절인 43절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통치 ,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은혜의 통치가 임한다. 평화의 나라가 임한다는 소식만큼 기쁜 소식은 없다.
    •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이사야서 원문의 의미로는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귀환을 직접적으로 의미한다.. 여기서는 그 뿐 아니라 죄의 포로된 자들까지를 포괄한다. 죄에 매인 인생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하셨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게 참된 자유를 주셨다... 
    •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맹인 뿐 아니라 영적인 소경을 포함한다... 예수님은 소경 바디매오를 고쳐주셨다... 니고데모... 사도 바울은 과거 영적으로 눈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듯이 바울은 눈을 뜨고 빛을 보았다...
    • 눌린 자를 자유롭게... 귀신에 사로 잡힌 자. .병마에 사로잡힌 자를 풀어 주셨다... 군대 귀신 들렸던 거라사 광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셨다.. 열두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서 병마가 떠나게 하시고 자유롭게 해 주셨다...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은혜의 해란 희년을 가리킨다.. 칠년에 한 번 오는 안식년이 일곱번 끝나고 50년 마다 한 번 돌아온다.. 희년이 되면 땅이 원래 주인에게로 다 돌아간다. 종들이 풀려나서 자유민이 된다.... 구약 시대에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 정신이 중요하다. 정신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모습을 가리켜 샬롬.. 평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시인과 촌장이 부른 노래 풍경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모든 만물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심히 기뻐하셨던 그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은혜의 해에서 은혜란 받으실만 하다는 뜻이다.. 제자리로 돌아갈 때 이 세상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 이 말씀을 책을 덮자 회당에 있는 자들이 주목하였다.. 본문에 대한 해설을 하실 차례였다. 무슨 말씀을 하실까 주목하는 이 순간 예수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말씀이다. 어째서인가?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곧 예수님 자신이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강력하게 선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시작했다는 선포이기도 하다.
    • 사람들 마음 속에는 우리가 제 자리를 벗어났다..탈선했다.. 망가졌다..는 의식이 있다.. 본래의 행복하고 자유롭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낙원의 희미한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결코 이 세상의 모습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참조) 그래서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생겨난다. 누가 이 세상을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 놓으실 수 있는가?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이 일을 이미 시작하셨고 앞으로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자유와 회복이 있다.  


    2. 고향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까(22-24)? 예수님은 어떤 역사적 사건을 들어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까(25-27)?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28-30)?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 그러면 누가 이 은혜의 해를 체험할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다 경험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고향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은혜의 해가 임하더라도 은혜를 체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22절을 보면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이 공존한다.. 예수님의 말씀이 은혜로운 말임을 안다.. 그리고 놀라기까지 한다.. 그러면 다음 순서로 영접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조건을 보고 눈 앞에 펼친 엄연한 현실을 부정하려고 한다. 열릴 듯 하다가 닫혀버려...
    • 예수님은 눈치 백단이시다. 고향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다 알아차리셨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진리의 말씀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는 속담이 있다(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이 말은 네가 정말 의사라면 네 병부터 고쳐 봐라 이런 뜻이다.. 즉 이 말은 다른 동네에서만 기적을 행하지 말고 너 고향에서부터 좀 기적을 행해 봐라는 뜻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관심과 호기심이 있었을 뿐이지 예수님을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 이에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고 일침을 놓으셨다.. 고향 사람들은 선지자를 잘 알고 인간적인 모습만을 크게 보는 바람을 거기에 걸림이 되어 환영하지 못하는 우를 저지르기 쉽다.. 우리도 우리 센터 목자님의 훌륭함을 잘 못보는 경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예수님은 이 상황과 유사한 과거 사례 두 가지를 드신다.. 엘리야 시대 기근이 심했다.. 이스라엘에도 과부가 많았지만 시돈 땅 사렙다(사르밧) 과부 한 사람에게 엘리야가 갔다. 엘리사 때 나병 환자가 이스라엘에도 많았지만 치유를 받은 사람은 이방인이었던 수리아(아람) 장군 나아만 뿐이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은혜가 완악한 이스라엘 지역을 넘어 이방에게로 흘러가는 예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즉 현재 나사렛 사람들이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완악하다는 지적이시며 그래서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도리어 고향 밖 사람들에게 은혜가 임할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 이 말씀에 대해 회당에 있던 자들이 크게 화를 냈다.. 예수님을 동네에서 추방할 뿐 아니라 심지어 낭떠러기에 가서 밀어 떨어뜨려 죽이고자 했다.. 예수님은 진실을 날카롭게 드러냈지만 사람들은 듣기 싫어했다. 오히려 옳은 말하는 예수님을 거짓 선지자 취급하며 살해하려고 했다..
    •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다.. 아마도 벤허 영화처럼... 예수님의 권위와 위엄에 감히 어쩌지 못한 듯하다. 그보다도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사역 초기부터 예수님의 사역에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그림자가 덮이기 시작했다.
    • 은혜의 해를 체험하려면 마음이 겸손해져야 한다. 특히 인간조건이나 나이 지위 학력  등등에 의해 은혜의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산의 모 교회 목사님이 존경 받는 이유는? 새파란 전도사가 설교하는 자리 맨 앞 자리에 앉아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듣는다고 한다.. 우리도 학생 목자가 전하는 메시지에서 은혜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외적인 조건이 어느 정도 판단 준거로서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우리 나라 사회는 이것이 너무 강하다.. 스펙 쌓기에 여념 없는 이유가 이것 때문.. 기업도 요즘 블라인드 면접을 한다고 한다.. 겸손하게 들으면 감동 받고 은혜 받을 일이 너무 많다... 자기만 손해다....


    3.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왜 놀랐습니까(31,32)?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33-35)? 예수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이 어떠합니까(36,37)?

    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 31절부터 41절까지는 이사야 말씀의 실제적인 성취를 다루고 있다.... 주로 권세 있는 복음 전파(말씀 가르침)...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신다.. 공통점은 권세이다 또는 권위이다..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종교지도자는 외적인 권위는 있었지만 내적인 권위 실제적인 권세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는 권위와 권세가 있었다. 메시야로서의 권위이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자로서의 권세이었다...
    •  첫째로 말씀의 권위를 다루고 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안식일에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놀랐다.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랍비들은 회당에서 강론했다. 그런데 주로 과거의 유명한 스승의 권위에 기대어 강론했다.. 권위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권위로 가르치셨다.. 왜냐하면 저자 직강이기 때문이다.
    • 둘째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위가 있었다. 회당에 와 있던 귀신들린 자가 크게 소리 질렀다.. 왜? 귀신이 예수님 근처에 함께 있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은 거룩한 것을 견디질 못한다. 귀신들린 사람이 한 말은 매우 정확했다.. 역시 영적인 세계귀신을 멸하러 온 것도 맞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 것도 맞다.. 그러나 귀신은 예수님을 잘 알지만 거부한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은 예수님을 알아도 경외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 알기 때문에 멀리 가야 한다.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이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라 하고 나오라 하셨다.. 귀신은 예수님의 말씀에 나갈 수 밖에 없다. 사로 잡고 있던 사람을 포기해야 했다. 귀신이 나가는 순간 그 사람이 넘어졌다.. 그러나 다치지는 않았다. 귀신 들렸던 사람은 온전하게 되었다.. 위에서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다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말단 공무원과 대통령.... 
    •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에 놀랐다... 특히 말씀만으로 귀신을 내어쫓은 것에 더욱 놀란 듯 하다.. 당시에도 나름대로 복잡하고 지난한 축사 의식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꾸짖음 한 마디로 귀신을 내쫓으셨다. 이것은 이전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예수님은 클래스가 다르신 분이었다. 이에 소문이 사방에 퍼지게 되었다... 입소문이 난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은 권위가 안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가?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몸된 교회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하셨던 예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에게는 사도들이 전하여 준 예수의 복음이 있다. 우리도 얼마든지 예수님의 권위를 이 시대 가운데 나타낼 수 있다. 예수님의 권위는 사도들에게 그대로 나타났고 복음적인 교회를 통해 교회사 가운데 나타내셨다... 두 가지 무기가 있었다. 하나는 말씀이었고 다른 하나는 말씀에 의해 변화된 사람이었다. 말씀 자체에 권세가 있었고 그 말씀에 의해 변화된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 역사를 섬기는 힘이다. 정공법이다. 다양한 전도 방법이 필요하다. 다트를 던지도록 해야 하고 솜사탕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씀이 있고 말씀에 의해 변화된 사람이 있어야 사람들은 주목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입소문이 나게 될 것이다. 


    4.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어떻게 치료하셨습니까(38,39)? 예수님은 온갖 병자들을 어떻게 치료하셨습니까(40)?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어떻게 나갔습니까(41)?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 세번째로 병을 쫓아낸 권위를 나타내셨다.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는데 예수님이 전부터 시몬을 알고 있으셨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요한복음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다. 말라리아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 장모를 위해 구했다. 장모가 덕이 많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또한 예수님의 권세를 보고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열병을 꾸짖으시자 병이 곧 떠났다. 병을 향해 꾸짖는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여기서만 나오는 표현이다. 역시 권위와 권세를 표현하기 위해 쓴 표현이다. 곧 일어나 수종들었다. 곧 이라는 말 속에 권세를 짐작케 해 준다.. 수종들었다는 것은 즉시 완전한 치유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수종을 든 것을 볼 때 역시 덕이 많은 분이시다. 
    • 이 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병자를 해질 때가 되어서야 데리고 왔다. 치료행위로 볼까 해서였다. 예수님은 물론 그 전에 데려온 사람도 개의치 않고 돌봐 주셨겠지만 무리들은 율법사회 속에서 스스로 조심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으셨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께서 일일이 손은 얹으사 고치셨다는 점이다. 구약에서 안수는 주로 죄를 전가시킨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안수는 그 정반대이다. 예수님의 거룩함과 온전함이 손을 댄 자에게 흘러간다는 의미가 있다... 두번째 특이한 점은 귀신을 내어 쫓으실 때 귀신들이 함구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또는 그리스도이심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사실인데 왜 이것이 문제가 될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었다. 정보 범람으로 가비지 정도로 진짜 정보를 혼란케 함...
    • 이 역사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수고한 사람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문을 낸 사람들과 데리고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별한 일은 한 것은 아니다.. 뭐 대단한 희생을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 그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전파된다..누룩처럼..  내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럴 권세도 능력도 내 안에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소문을 내고 데려오기만 하자..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고치실 것이다...


    5. 예수님은 왜 무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네로 가고자 하셨습니까(42,43)?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44)?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고자 힘쓰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오.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 날이 밝자 마자 예수님은 왜 한적한 곳에 가셨는가? 본문에 없지만 기도하러 가셨다. 바쁜 사역 중에 힘을 얻으시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무리들은 예수님이 떠나신줄 알았다. 급하게 찾으러 다녔다.. 만나자 마자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였다... 예수님을 곁에 붙들어 두고 싶었다.. 말씀도 듣고 병자도 고쳐주시고 얼마나 좋은가? 예수님도 나쁠 것이 없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섬김 받으며 편하게 지낼 수 있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주하실 수 없었다. 주어진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명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를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다른 동네에도 가보셔야만 했다. 아쉬움과 석별의 정을 뒤로 한채 가버나움을 떠나 여러 회당에 가서 전도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개척의 모델이시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은 삶을 살았다. 바울은 평균 3개월 정도만 한 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 목자님들 자녀 선교사 자녀들이 많이 학생회에 있다. 그분을 섬기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할 일은 불신자를구원하고 제자삼는 일.. 개척자의 사명이 있다. CCC 등 학생들이 많이 있는 곳도 다 기존에 오랫동안 교회 다니며 제자로 살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사람들이 간다. 그러나 우리는 맨땅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할 일임을 알고 적극적으로 새 양들을 얻기 위해 애를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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