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누가복음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이창무 2017. 5. 2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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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누가복음 13강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말씀 / 누가복음 8:4-15

요절 / 누가복음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조슈아 벨(Joshua Bell)이 있습니다. 그의 연주를 들으려면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티켓 값도 엄청나게 비쌉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신문사에서 조슈아 벨에게 한 가지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리지 않고, 워싱턴 DC의 한 지하철역에서 연주를 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조슈아 벨은 1713년에 제작된 바이올린을 들고, 자신의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섯 곡을 골라 연주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런 대단한 연주를 공짜로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었을까요? 결과는 전혀 예상과 달랐습니다. 45분간 1097명이 그 지하철을 지났지만, 아무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 한 여인만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으로 들려주는 세계 최고의 곡을 들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다면 그 비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고 열매 맺을 수 있는 들을 귀를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각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나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왔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그러나 무조건 좋아만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무리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나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감시하려고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병 고침을 받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냥 친구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연 이중에 얼마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될까요? 이중에 얼마나 말씀을 영접하고 순종하여 열매를 맺게 될까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전부가 다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말씀의 열매 맺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말씀을 들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까요? 예수님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한 비유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비유는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가지고 엄밀히 말하면 네 종류의 밭의 비유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5절부터 8절을 보십시오. 어떤 농부가 어깨에 씨앗을 담은 가방을 메고 밭으로 갔습니다. 요즘 같으면 밭을 갈고 이랑을 내고 구멍을 판 후 조심스럽게 씨를 뿌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팔레스타인에서는 밭을 갈지 않고 씨앗을 흩뿌렸다고 합니다. 흩뿌리다 보면 씨앗은 다양한 곳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씨앗은 네 종류의 밭에 떨어졌습니다. 더러는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지나가면 흔적이 남고 백 명이 지나가면 오솔길이 되고 천 명이 지나가면 길이 됩니다. 길 가는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기 때문에 단단했습니다. 길 가에 떨어진 씨는 흙 속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다녔습니다. 결국 공중의 새에게 먹혀 버렸습니다.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졌습니다. '바위 위'란 겉은 부드러운 흙이 얇게 덮여 있으나 그 아래에 돌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이곳에 떨어진 씨는 흙에 있는 습기를 빨아들여 싹을 냈습니다. 그러나 돌들 때문에 뿌리를 내릴 수 없었습니다. 햇볕이 내리쬐자 점점 시들어 말라버렸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졌습니다. 가시떨기는 황무지에서도 자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합니다. 주위에 물과 양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 빨아들입니다. 이런 가시떨기 속으로 떨어진 씨는 부드러운 흙 속으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가시가 함께 자라면서 물과 양분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겨우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 결실하지는 못했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물과 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았습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추수 때가 되자 백배의 결실을 했습니다. 엄청난 수확을 거둔 농부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 비유를 볼 때 씨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씨는 백배의 결실을 거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밭입니다. 밭이 나쁘면 씨의 생명력은 발휘될 수 없습니다. 밭이 좋아야 씨가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큰 소리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 비유를 듣기는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들을 귀 있는 자라니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9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들은 귀 있는 자는 다름 아니라 바로 이 비유의 뜻을 물은 제자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유의 뜻을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묻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밌는 이야기구만’ 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잖아 우리가 이런 말씀 들으려고 여기까지 왔나’하며 투덜거리며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담긴 의미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고 이리저리 씨름해 봐도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꼭 알고 싶은 열망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와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허락되었다’는 말씀을 볼 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알고 싶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세계적인 석학이든 노벨상 수상자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주십니다. 말씀을 알고자 하는 소원이 없는 사람은 알기 쉬운 비유를 들어도 보지 못하고 듣고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안다는 것이 엄청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특별히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들의 삶은 외적으로는 고생만 하고 얻는 것이 없이 손해만 보는 인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천국의 보물을 얻은 복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도 이 제자들처럼 말씀을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묻고 생각하고 고민도 하고 씨름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씨가 떨어 진 곳은 사람들의 마음 밭을 가리킵니다. 씨앗은 겉보기에는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엄청난 유전 정보와 놀라운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2009년 5월에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에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여 년 만에 발견이 되었습니다. 이 씨앗을 물에 담근 지 5일 만에 싹이 나기 시작하였고, 다음 해 7월 7일 드디어 7개의 연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이 연꽃에 ‘아라홍련’이라는 이름을 붙여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씨앗과 같습니다. 그 안에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씨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마음 밭에 떨어졌는가가 중요합니다.


첫째로, 말씀의 씨가 길 가와 같은 마음 밭에 떨어졌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말씀의 씨가 먼저 길가와 같은 마음 밭에 떨어졌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처음에 말씀을 듣기는 듣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자기 생각이 강합니다. 대개 마음이 딱딱하고 비판적입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 시대 유행하는 과학 지식이나 철학 지식 등등으로 다져져서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그 사람 속으로 파고 들지 못합니다. 탁구공 튀듯이, 말씀이 튕겨져 나갑니다. 마귀는 이런 사람을 금방 알아채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아 갑니다.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먹잇감을 노리고 공중에서 배회하고 있는 새에 비유하셨습니다. 마귀는 부지런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영접치 않으면, 마귀는 지체하지 않고 찾아와 말씀의 씨를 집어 삼켜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접할 때 지체하지 말고 즉시 말씀을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나중에 말씀이 저절로 내 마음에 와 닿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하면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채가 버립니다. 들을 때 일단 아멘 하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차근차근 소화시키는 것은 그 다음에 할 일입니다.


둘째로, 말씀의 씨가 바위와 같은 마음 밭에 떨어졌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바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바위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습니다. 할렐루야, 아멘을 연발하며 말씀을 영접합니다. 말씀을 들으니,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인다고 소감 발표를 합니다. 이런 양을 만난 목자는 오랜만에 좋은 양을 만났다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좀 더 지켜보면,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아주 피상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말씀 공부를 하긴 하지만 생각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러다가 시련이 닥쳐올 때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고 맙니다. 부모님이 싫은 소리 한 마디 한 것 가지고도 친구가 뭐라 한 것 가지고도 쉽게 제자의 길을 포기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뿌리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에 뿌리내린다는 것은 말씀에 기초해서 내 인생의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분은 오락가락합니다. 감정은 수시로 변합니다. 시련까지 이겨내려면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셋째로 말씀의 씨가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 밭에 떨어졌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 밭은 말씀이 어느 정도 뿌리 내려서 잘 자라는 밭입니다. 그런데 곧 그 한계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지내는 중에 숨겨져 있던 가시도 함께 자라서 기운이 막히게 하는 것입니다. 가시에는 이생의 염려의 가시와 재물의 가시와 향락의 가시가 있습니다. `이생의 염려`는 공부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취업에 대한 염려, 먹고 살아갈 염려, 결혼에 대한 염려, 자녀에 대한 염려 등등 다양한 염려가 있습니다. 염려가 시작되면 여기에 온 생각이 집중되어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재물은 큰 부를 쌓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돈에 눈이 뒤집혀 돈, 돈, 돈 해 보십시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돈이 안 되는 말씀 공부에 소원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향락입니다. 술 취함과 음란을 비롯하여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종류의 쾌락의 가시를 말합니다. 죄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잔재미와 향락에 빠지게 하는 드라마, 예능프로, 영화, 게임, 취미 생활, 스포츠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너무 지나치면 우리의 영적 소원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세상일에 집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살고 있는데 세상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말씀으로 향해야 할 삶의 에너지를 그것이 다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열매를 맺으려면 최대한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로 말씀의 씨가 좋은 마음 밭에 떨어졌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좋은 땅은 어떤 땅입니까? 앞선 결실치 못하는 세 가지 밭의 약점을 모두 보완한 마음 밭을 말합니다. 좋은 밭의 특징은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지킨다는 점입니다. `지킨다`는 말은 원어로 보며 '붙들다, 보존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시련이나 유혹 앞에서 말씀을 계속 붙잡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계속 붙잡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요즘 광고를 보면 단기 코스, 속성 과정 등이 유행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단기 코스도 속성 과정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 참고 견디는 인내가 있을 뿐입니다. 인내 없이는 열매도 없습니다. 인내의 과정은 쓰디쓰지만 그 열매는 달콤합니다.


지금까지 네 가지 마음 밭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중에서 지금 나는 어떤 마음 밭에 속하고 있을까요? 길 가입니까? 바위 위입니까? 가시떨기입니까? 아니면 길 가이면서 바위면서 동시에 가시떨기입니까?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열매 맺기는 다 틀린 것 아닙니까? 이번 생은 망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쁜 밭도 잘 가꾸면 얼마든지 열매 맺는 좋은 밭이 될 수 있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습니다. 1913년 오지를 여행하던 한 여행자가 우연히 양치는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나 이런 계획을 듣게 됩니다. 이곳 황량한 프로방스 지방의 알프스 산간에 앞으로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여행자는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울창한 참나무 숲과 개울가가 펼쳐져 있었고 황량했던 그곳에 풍요로운 마을이 재건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나쁜 땅도 심고 가꾸면 엄청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길 가는 쟁기로 갈아엎으면 됩니다. 바위는 캐내면 됩니다. 가시떨기는 뿌리까지 뽑아서 제거하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생각은 잠시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신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자기 삶에 적용해 보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시련이 닥쳐도 말씀을 붙들고 잘 견디면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복잡한 염려와 물질과 쾌락의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백배의 결실을 주시겠다는 주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말해 회개하고 믿으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소감을 잘 써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소감을 쓰면서 말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문하고 생각합니다. 소감을 쓰는 가운데 내 안에 열매 맺기 못하게 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고 회개합니다. 소감을 쓰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을 덧입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비결, 백배의 열매를 맺는 비결이 여기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소감만 깊이 쓰면 열매를 맺지 않으려고 해도 열매 맺지 않은 길이 없습니다.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매주 한 편의 소감을 빠지지 말고 깊이 있게 쓰도록 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고 백배의 결실을 맺는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밭이 아니라 씨 뿌리는 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들에게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씨 뿌리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씨를 뿌리다 보면 항상 부딪치는 고민이 이것이 너무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난 동아리 박람회에서는 거의 오백 명 정도의 학생들이 왔다 갔는데 이 중에서 말씀 공부로 연결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캠퍼스 전도를 나가도 만난 양들의 대부분이 나중에 답장이 없습니다. 이런 비효율적인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도 단순히 말해서 열매 맺지 못하는 밭이 3/4이고, 열매 맺는 밭이 1/4입니다. 이것을 보면 씨 뿌리는 자에게 있어서 낭비는 필연적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낭비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밭 나쁜 밭을 가리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단 하나님의 씨를 뿌려서 기회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나중에 밭이 다른 핑계를 댈 수 없게 만듭니다. 내게 열매가 맺히지 못한 것은 씨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런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나쁜 밭에 씨가 떨어진 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낭비가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쁜 밭에 떨어진 것에 낙심하여 더 이상 씨 뿌리는 일을 중단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에는 좋은 밭에도 씨가 뿌려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일단 좋은 밭만 만나면 백배로 결실하기 때문에 99번 실패했다고 해도 손해가 결코 아닙니다. UBF 영남센타의 한 사모님은 봄학기 내내 매일 30분씩 캠퍼스로 올라가서 말씀의 씨를 뿌리는 수고를 감당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씀의 씨가 떨어진 사람이 150명가량 된다고 합니다. 물론 이 중 대부분이 말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현재 5~6명의 학생들이 매주 신실하게 말씀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전혀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도 요즘 매주 토요일마다 1시에 전도 모임이 있습니다. 나쁜 밭을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전도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밭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시편 126: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했습니다. 또 로마서 1:16절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능력, 말씀의 생명력을 믿고 계속해서 열심히 말씀의 씨를 넓게 뿌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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