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이창무 2016. 5. 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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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 22 강 (찬송가 342장)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말씀; 사도행전 25:1-27

요절; 사도행전 25: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역사는 100% 사람의 일이며 동시에 100%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모순처럼 들리는 이 말 속에 사도행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가 담겨져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게 된 사건 속에 그 의미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람의 선함과 악함을 모두 쓰셔서 궁극적으로 자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벨릭스 총독의 뒤를 이어 베스도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베스도는 부임한 후 곧바로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유대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좋은 관계를 맺고 통치에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유대 지도자들은 베스도를 만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대뜸 바울을 고소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해서 공회에서 재판을 받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구실일 뿐이고 그들의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실패를 통해 법으로 정당하게 바울을 없애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대신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이송되는 길목에서 매복하였다가 암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23장에 보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사십 명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2년 동안 굶고 있었을까요? 그럴 리는 없겠지요. 밥을 먹기는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 때문에 맹세를 깰 수밖에 없었던 것에 더욱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또다시 죽음의 먹구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바울을 향한 고발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이는 신임 총독이 가장 약한 때를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스도가 예루살렘 유력 인사들의 간청을 처음부터 딱 잘라서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임자가 유대인들과 갈등 때문에 해임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더욱 부담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직 현황 파악이 되지 않은 시점이라서 스스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스도는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철통같은 감시 속에 있고 자기도 곧 예루살렘을 떠날 예정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또 만약 바울에 대한 고발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당신들이 가이사랴까지 직접 와서 절차대로 고발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베스도가 유대 지도자들의 요청을 거절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베스도가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로마 시민인 바울은 로마 총독이 주관하는 법정에서 재판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베스도가 아주 노련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들의 요구에 끌려 다니는 그런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강한 인상을 주고 싶어서 거절했을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결과는 같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에도 불구하고 베스도 덕분에 바울은 위기를 넘기고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베스도가 소심하거나 어리바리한 총독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이 시점에 베스도가 부임해 온 것이 우연이었을까요? 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하시기 위해 방패막이로 베스도 같은 사람을 신임 총독으로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유대인들의 집요함과 교활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벨릭스 총독의 재판이 있은 지 2년이나 지났습니다. 이제는 잊을 만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 대제사장도 아나니아에서 이스마엘로 교체되었습니다. 전임자가 벌여 놓았다가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은 흐지부지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달랐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총독 교체기라는 허점을 노려서 기다렸다는 듯이 바울을 해하려는 음모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한번 실패했던 매복 테러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사도하려고 했습니다. 이 유대인들의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그들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지 않고서야 과연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세력의 실체가 누구인지 압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집요하고 교활합니다. 교회를 박멸하기까지 사탄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포기했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훅하고 다시 공격해 들어옵니다. 조그마한 빈틈이라도 있으면 그 허점을 노리고 쳐들어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게다가 교활하기까지 해서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속에 감추어 놓은 의도가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사탄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용당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탄의 속성을 안다면 깨어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를 죽이고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압박하고 내부에서 흔들어 복음의 진보를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날뛴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교회가 승리할 것입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줄 그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방패요 산성이 되어 주고 계십니다. 섭리 가운데 주님의 교회된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집요하고 교활한 마귀의 공격 앞에 방심하지 말고 늘 깨어 있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가이사랴에서 베스도가 주재하는 재판이 열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거창한 죄목으로 바울을 고발했지만 증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 도무지 죄를 범한 일이 없음을 변론하였습니다. 앞의 장들과 달리 여기서 저자 누가는 단 두 문장으로 짧게 재판 과정을 요약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내용이 계속 반복되므로 더 이상 자세히 기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5절에서 베스도가 고백하다시피 바울의 무죄가 누가 보더라도 명백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일은 바울을 석방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베스도는 어떻게 했습니까? 베스도는 바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이 문제는 앞에서 이미 베스도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았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베스도는 유대 고위층 인사들의 첫 번째 청탁을 거절한 것에 대해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같습니다. 또 베스도가 예루살렘에서 지도자들과 일주일 이상 함께 하면서 그들과 친해져서 마음이 약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총독을 구워삶으려고 날마다 연회를 열어 접대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바울 건을 협조해 주지 않으면 앞으로 괴로운 일이 많을 것이라며 은근히 협박도 했습니다. 베스도의 마음이 점점 유대인 편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바울은 총독의 말을 듣고서 그 배후에 유대인들이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이번에 예루살렘으로 가면 유대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바울을 죽이려 들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총독은 흔들리고 유대인들의 압박은 거세어지는데 과연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바울에게 어떤 해법이 있었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바울은 만약 죄가 있다면 기꺼이 죽음도 달게 받을 용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 지은 죄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유대인들에게 넘겨준다면 이는 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재판 받을 의사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마지막으로 묵직한 한 방을 날렸습니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로마법에 따르면 로마 시민은 지방 법원에 불복하여 로마에 있는 황제의 법정에 상소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는 네로 황제였습니다. 우리는 네로하면 정신 나간 폭군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는 통치 초기로서 현명한 철학자이자 시인인 세네카가 보필을 받아 나름 선정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바울로서는 황제의 공정한 판결을 충분히 기대해 볼만 했습니다. 총독 베스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울의 제안에 순간 당황을 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참모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로마 시민에게 보장된 권리이니 인정해야 한다고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베스도로서도 유대인들 앞에 명분을 세우면서 바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이로서 바울을 살해하려던 유대인들의 음모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가이사에게 상고한 것은 사도 바울의 기가 막힌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이 한 수로 지긋지긋하던 유대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바울이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앞서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비전을 품은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23장 11절에서 주님께서 직접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그 말씀 그대로 바울은 드디어 로마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단, 죄수의 신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애초에 머리 속에 그렸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유로운 신분으로 로마에 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는 이제 금방 풀려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습니다. 2년이 넘도록 동안 계속 갇혀 있어야만 했습니다. 바울의 인생에서 2년이면 결코 짧지 않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더 힘든 것은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 될지 기약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로마에 가긴 해야겠는데 풀려날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로마로 가라 해 놓고 풀어주시지 않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도대체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바울은 서서히 주님의 뜻을 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갇혀 있으니 전에 없던 여유 시간이 좀 생겼습니다. 자기가 직접 변론도 해야 하니 이 시간에 로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형사소송법 공부를 하다가 로마 시민은 황제에게 상소를 하면 로마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바울의 머릿속에 번쩍 하고 불꽃이 튀면서 모든 퍼즐이 짜 맞추어 지는 것 같았습니다. 석방이 되어야 로마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황제에게 상소하여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왜 바로 저를 풀려나게 하지 않으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매인 몸으로 가라 하시면 가겠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는 이 바울의 말은 갑작스럽게 나온 말이 아니라 이처럼 오랜 고민과 생각과 기도 중에 탄생한 말이었습니다. 바울은 때를 기다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 말을 던짐으로 상황을 반전시켰습니다.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는 것을 꼭 슬프거나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곧바로 풀려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을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그냥 둘 리가 없었습니다. 바울을 끝까지 추적해서 테러를 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에게 상소한 죄수의 신분이 되면 24시간 바울 곁을 떠나지 않는 호송 병력이 따르게 됩니다. 게다가 모든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이 됩니다. 바울에게 이보다 더 안전하고 더 깔끔하고 저렴하게 로마로 갈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가장 빠른 길로, 애매한 듯 보였지만 가장 확실한 길로, 그야말로 베스트의 길로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요셉에게 형제들 중에 으뜸이 되리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게 흘러갔습니까?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기까지 하였습니다. 현실은 비전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길이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요셉이 그 과정 속에서 항상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입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혹시라도 기회가 생길까 하여 자기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죄수들의 꿈 해몽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갇힌 중에도 로마 선교의 비전을 계속 놓치지 않고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이리저리 알아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시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앞에서 총독 벨릭스에게 재판을 받을 때 바울의 모습은 비둘기 같이 순결한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총독 베스도에게 재판 받을 때 바울의 모습은 뱀 같이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겠느냐는 총독의 제안 뒤에 유대인이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또한 발전된 로마법 체계를 잘 활용했습니다.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나거나 환상을 보든지 해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의 제도나 문물과 같은 일반 은총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당시 로마의 법체계가 우리나라 조선 시대와 비슷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로마 총독은 바울이 잡혀오자마자 일단 ‘주리를 틀어라’ 하면서 고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면서 없는 죄도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아무리 바울이라도 꼼짝없이 죽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로마법은 고문을 금지하고 피고의 반론권을 보장하고 상급심에 항소할 수 있는 상당히 앞선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를 선교 역사에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예비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로마 시민권자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의 역사를 잘 섬기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를 총동원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조인현 목자님은 전에 전공인 지리교육과 대학원 입시에 실패하여 크게 낙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일어나서 이리저리 열심히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보보호 대학원에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낯선 분야인데 잘 할 수 있을까 염려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보보호 대학원에 들어간 조인현 목자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뛰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저널에 논문이 실리고 좋은 논문으로 상도 받았습니다. 일찍 졸업 요건을 다 갖추어서 이번 학기는 아예 학교에 나가지도 않고 선교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조인현 목자님을 떨어뜨린 지리교육과 교수님께 고마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교수님이 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인현 목자님을 Best Way로 인도하시기 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계 선교와 캠퍼스 제자 양성의 비전과 방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길이 안 보이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참 많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고 주님께서 구체적인 방법을 다 알려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우리가 고민하고 연구해서 뱀 같은 지혜로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이 주신 비전을 끝까지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바울처럼 지혜롭고 창조적으로 주의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왔습니다. 아그립바 왕의 정식 호칭은 헤롯 아그립바 2세였습니다. 갈릴리 호수 북쪽과 동편에 있던 아빌레네와 드라고닛을 다스리던 분봉왕이었습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 왕의 부인이 아니라 배 다른 누이동생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 오빠인 아그립바 왕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신임 총독이 왔다고 하니 아그립바 왕이 인사차 방문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베스도는 바울의 일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바울의 로마행은 이미 결정이 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을 황제에게 그냥 보낼 수 없었습니다. 이 고발 건에 대한 자초지종을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를 함께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뭐라고 써야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베스도가 보기에 바울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유대인들 내부에서 일어난 종교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라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주장하는 바람에 일이 여기까지 커졌다고 했습니다. 이방인 총독으로서는 왜 그게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도 납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황제에게 보낼 보고서를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마침 아그립바 왕이 방문을 했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가 헤롯 가문의 왕이니까 유대 사정에 밝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바울 건에 대해서도 뭔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그립바에게 바울의 문제에 대한 조언과 자문을 구했습니다. 


이때 아그립바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22절을 보면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라고 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총독이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니까 으쓱했던 모양입니다. 또 이참에 총독에게 점수를 좀 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도와주겠노라 약속하고 바울의 말을 집적 듣기를 청했습니다. 다음 날 접견 장소에서 바울 사건 진상 조사 위원회의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에는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뿐만 아니라 군대의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다 모인 셈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증언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어느새 거물급 인사가 되었습니다. 주로 상대하는 인물이 총독 아니면 왕이었습니다. 이것이 다 누구 덕분입니까? 유대인들 덕분입니다. 본래 바울은 성전에서 조용하게 참배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해 준 덕분에 거물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끈질기게 바울을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바울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증언할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주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처음 부르실 때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 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이방인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바울이 빨리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바로 재판정에서 변론하는 자리를 통해서 복음을 증언할 기회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죄수가 되어야 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죄수가 되어야 한다니 억울하고 분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임금들과 고관들에게 복음을 증언할 기회가 된다면 바울은 이를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사실 열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가장 잘 드러낸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유롭게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러 다닐 때는 확실히 복음의 진보가 눈에 보였습니다. 복음이 횡적으로 더 넓은 지역을 향해 뻗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2년 동안 가이사랴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동안에는 복음 역사가 정체되거나 심지어는 퇴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본 것입니다. 사실 이 2년 동안 복음은 사회의 고위층 사람들을 향해 종적으로 뻗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설령 그 중에 회심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여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복음에 대한 오해를 풀고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큰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복음의 진보이며 전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바울의 당한 일이란 로마의 감옥에 투옥된 사건을 말합니다. 감옥에 갇힌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다니 참 수수께끼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빌립도 성도들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자신은 이 비밀을 언제 깨닫게 되었을까요? 바로 가이사랴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는 길을 열고 임금과 관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깨달았을 것입니다. 혹시 답답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매인 것이 많아 갑갑하십니까? 시간이 멈춘 것 같아 괴로우십니까? 그러나 우리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을 깨닫는 것은 우리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찾아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나의 전 인생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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