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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교회
    설교/사도행전 2016.04.10 15:38

    2016년 봄학기 기도 특강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교회


    말씀 / 사도행전 12:1-17

    요절 / 사도행전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지난 해 동안 우리들이 선교지를 위해 꾸준히 기도했던 기도 제목 네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로 우크라이나 정세가 불안했을 때 이 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간구했었습니다. 

    둘째로 독일 뮨헨 이디모데 선교사님의 체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했었습니다. 

    셋째로 아리조나 템피 데이빗김 선교사님의 간이식 수술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었습니다. 

    넷째로 라트비아 김에스더 선교사님의 비자문제와 세종학당 설립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이 중에 몇 가지를 응답 받았을까요? 이 모든 기도 제목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할 당시에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일년을 모아서 보니까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합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충분히 입증을 하고도 남는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 자체가 이 사실을 확증하고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사도행전 12장 말씀으로 합심 기도의 능력과 중요성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미 우리가 얼마 전에 한 번 배웠던 말씀이지만 기도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초대 교회처럼 간절한 기도로 한계상황을 극복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본문의 헤롯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로서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헤롯 왕가는 유대가 아니라 에돔 출신이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왕궁 앞에서 날마다 헤롯왕 퇴진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촛불 시위가 있었습니다. 헤롯왕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있을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교회라는 곳이 급성장을 하고 있는데, 유대인들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이것이 유대인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일단 맛보기로 사도 야고보를 잡아 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대인들은 이 일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헤롯의 지지율이 상승세로 반등하였습니다. 헤롯은 이 일에 고무되었습니다. 내친 김에 사도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기대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침 이때가 유월절 축제 기간이어서 당장 사행집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헤롯은 일단 베드로를 옥에 가두어 놓았다가 명절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처형할 계획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전에도 감옥에 갇힌 적이 있으나 탈옥했던 전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16명의 군인을 네 명씩 4개조로 나누어 24시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두 명의 군인은 아예 베드로 좌우에 붙어 있고 나머지 두 명은 옥문 밖을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온 몸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베드로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단 1퍼센트도 없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퇴로가 없는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슬픔이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죽는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구심점을 잃고 성도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버릴지 모릅니다. 헤롯의 칼날이 그 다음에는 누구의 목을 노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막강한 정치 세력에 의한 기독교 탄압으로 교회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 교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독재자 헤롯은 베드로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왕궁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까? 아니면 더 늦기 전에 각자 살 길을 찾아 흩어졌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교회는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헤롯에게는 권력이라는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군대를 동원할 수 있고 언제든지 칼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힘이 없었습니다. 칼을 들고 헤롯의 군대와 싸울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돈이라도 많이 있었다면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쳐서라도 베드로를 빼내올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머릿수를 따져 봐도 교회는 소수였고 헤롯 편에 선 유대인들은 다수였습니다. 거대한 세상 권력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가진 유일하고도 강력한 무기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세상이 알 수도 없고 가질 수 없는 비밀의 무기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본문에서 기도의 주체를 교회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말은 믿는 자들이 각자 알아서 여기저기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모여 공통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합심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12절에 보면 여러 성도들이 마리아의 집에 모여 밤늦은 시간까지 기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저녁때부터 모여서 밤을 새워 철야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여기서 '간절히'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뜨겁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온 교회는 너나 할 것이 없이 베드로를 위해서 뜨겁게, 열정적으로, 큰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혹시 힘없는 실패자들의 자기 위로이자 만족이 아닐까요?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서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견고한 마귀의 진을 파괴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말이 기도 자체가 무슨 마술적인 능력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기도를 들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권세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골방에 들어가 개인적으로 기도하면 되지 꼭 나와서 함께 기도해야 하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골방에서 드리는 개인 기도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만 몇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함께 드리는 기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 기도가 소총을 한 발 한 발 탕 탕 쏘는 것과 같다면 교회의 합심 기도는 미사일과 같습니다. 견고한 마귀의 진은 개인 기도만으로는 파괴시키기 어렵습니다. 교회가 기도의 미사일을 퍼부어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교회의 합심 기도가 이처럼 강력한 이유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8절부터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에 빠르게 응답하십니다.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시되 합심 기도에 가장 우선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믿고 모여 함께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기도로 마귀의 강력한 진을 무찌르고 승리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가 합심 기도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6,7절을 보십시오. 때는 유월절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이제 곧 날이 밝으면 베드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사행 집행 시간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베드로는 쿨쿨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원래 잠이 많은 것인지 믿음이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때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어둡던 감옥 안에 밝은 빛이 비추었습니다. 이 정도면 웬만해서는 스스로 일어날 법도 한데 베드로는 계속 잤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발로 베드로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급히 일어나라" 그러자 신기하게도 베드로를 꽁꽁 묶어 두었던 쇠사슬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천사는 베드로에게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밤은 유월절 절기의 마지막 날 밤이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애굽왕 바로의 속박 아래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그 첫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히 일어나 띠를 띠고 신을 신고 떠날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또 다른 유월절 밤에 베드로는 하나님이 행하신 초자연적인 기적의 역사로 헤롯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천사를 따라 파수를 서던 군인들 곁을 지나쳐 가는데도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시내로 가는 쇠문이 굳게 잠겨 있었으나 베드로가 앞에 서자 자동문처럼 스르르 열렸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시내에 나오자 서늘한 새벽 공기가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때서야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들의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1절부터 4절까지는 분위기가 우울합니다. 어둡고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6절부터 분위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밝고 희망적입니다. 조마조마하면서도 짜릿한 승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반전을 일으킨 결정적인 모멘텀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5절에 나오는 교회의 합심 기도입니다. 5절을 원문으로 보면 ‘그래서’와 ‘그러나’라는 접속사 두 개가 나옵니다. ‘그래서’라는 접속사는 베드로가 옥에 갇혔다는 말 앞에 있고, ‘그러나’라는 접속사는 교회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 앞에 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상황은 계속 그럴게 흘러서 최악의 상황으로 향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반전시킬 유일한 키워드는 교회의 합심 기도입니다. 상황은 ‘그래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지만 주님의 교회는 ‘그러나’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우리도 합심 기도를 통하여 옥에 갇혔던 베드로처럼 절망적인 한계 상황에 갇힌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들의 합심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이라는 옥에 갇혀 절망에 빠진 분들이 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치쳐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하여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기도해 왔지만,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기적과 같은 일이 그분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육신적인 병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빠져서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심한 중독증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또한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늪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쉽사리 풀려지지 않는 가정과 자녀들의 문제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 때문에 힘들지만 어떤 분들은 자녀가 생기기 않아서 힘들 분들이 있습니다. 기다리다 치쳐 낙심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고 시험에 들어서 "영혼이 옥에 갇혀 있는" 리더나 양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 침체에 빠진 지체들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합심 기도는 교회인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뜨겁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절망적인 한계상황에 갇힌 분들을 도우시고 반전을 일으키실 줄로 믿습니다.


    얼마 전부터 김모세 목자님의 긴급 소집에 의해 매일 밤 9시부터 몇몇 분들이 합심 기도의 단을 쌓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 기도회에는 이름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회'라는 멋진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 기도회에서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학사 목자님도 오시고 정신없이 저녁을 치우고 오신 사모님도 계십니다. 기도 제목을 간단하게 나눈 후에 둥그렇게 무릎을 꿇고 돌아가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을 들어 보니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허리도 아프고 발도 저리고 무릎도 아픕니다. 기도가 노동이라는 옛날 수도원의 표어가 실감이 납니다. 그런데 이 기도회에서 집중적으로 기도했던 일들이 하나 둘씩 응답 받고 있습니다.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막 합심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런 응답들을 주시는 것을 보고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됩니다.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당사자들은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밤 9시에 모여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까? 물론 본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 보니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물론 그 중에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기억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를 위해서 합심 기도한 목자님들이 무척 많았으리라는 사실을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기도에 빚진 자들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아 있을 때 누가 기도해주었습니까? 목자님이 기도해 주었습니다. 교회가 기도해주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함께 예배드리는 동역자들이 기도해주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할 준비가 되어있는 기도 지원 부대가 나를 둘러싸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이제는 나를 위해 기도해준 교회와 동역자들에게 보답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탈옥한 베드로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목소리를 높여 기도하는지 기도 소리가 대문 밖까지 들렸습니다. "주님! 우리 베드로 사도님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감옥에서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베드로는 자신이 깊은 감옥에서 나오게 된 것이 바로 교회의 합심 기도 덕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어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싶어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로데'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가 문을 열어주러 나왔습니다. '누구세요'라고 묻자 '나야 나'라고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로데는 베드로의 목소리임을 직감했습니다. 너무 기뻐 깡충깡충 뛰며 기도 응답을 벌써 받았다는 사실을 빨리 알리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문 열어 주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이 지금 대문 밖에 와 계세요." 그러나 사람들은 로데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네가 미쳤구나. 사도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그만 헛것을 본거야. 애야 어른들을 놀리면 못 쓴단다." 이 상황에서 제일 황당한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교회 문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슬슬 화가 나려고 했습니다. "쾅쾅쾅"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진짜 베드로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성도들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정말 그 기도가 이렇게 빨리 응답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한 당사자마저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실시간으로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이 순간 간절히 기도해왔던 형제자매들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합심 기도에 참여한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이며 기쁨이며 감격이었습니다.


    기도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시골에 가뭄이 들어 많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비를 주시도록 특별 기도회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정말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잠시 후 장대비가 주룩주룩 쏟아졌습니다. 어른들은 기뻐하면서도 이제 어떻게 집에 가냐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때 작은 꼬마 아이 하나가 혼자서 우산을 펴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저씨들은 왜 비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산을 준비해 오지 않으셨어요?" 모든 어른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시골의 어른들이나 마리아의 집에서 기도하던 성도들 모두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정말 하나님께서 기도한 대로 이루실 줄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믿음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자란 믿음, 부끄러운 믿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부족한 믿음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처음 센터에 왔을 때 많은 분들이 1995년까지 소련에 UBF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합심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기도 제목을 듣고 많이 황당했습니다. 철의 장막 뒤에 철저하게 가려진 적성 국가 소련에 어떻게 우리 나라 선교사가 들어갈 수 있겠냐 싶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님들이 하자고 하니까 따라서 기도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에 세계 지도를 그린 고르바초프라는 사람이 소련 서기장이 되더니 개혁 개방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선교의 문이 열렸고 1991년에 102명이 참석하는 제 1 회 소련 수양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습니다. 기도했던 1995년보다 무려 4년이나 앞당겨서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놀라운 역사에 제가 기도로 숟가락이라도 얹었다는 사실에 뿌듯했습니다. 비록 믿음이 부족한 기도였지만 그런 기도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고 믿습니다. 부족한 믿음으로 드린 기도라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은 정말 신비로운 일이고 또한 큰 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크던지 작던지 어떤 모양으로든지 합심 기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참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체험하고 믿음이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임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는 일대일 성경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여러 명이 둥그렇게 무릎 꿇고 앉아서 엉덩이를 세우고 합심 기도하는 모습이 우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 능력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모습이 자주 보이질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이 말씀을 계기로 합심 기도하는 둥근 원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생겨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둥근 원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를 증폭시키는 안테나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합심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요즘 국제 정세는 미국이라는 전통의 초강대국에 맞서 중국이라는 신흥대국이 급부상하고 있는 형세입니다. 이 두 거대한 세력의 틈바구니 사이에 우리 민족은 분단된 상태로 끼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 정권이 오판을 하는 순간 한반도는 또다시 전쟁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어 갈지도 모릅니다. 이 땅의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깨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시고 더 나아가 남북한이 통일이 되어 온 세계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선교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최근 어렵다 힘들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선교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중남미 지역 사정이 매우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같은 경우는 최근 유가 하락 이후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합니다. 생필품을 구할 수 없어 상점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고 병원에서는 약품이 없어 수술을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 시카고 세계 본부에서 긴급히 의약품을 사서 베네수엘라 UBF로 보냈습니다. 다른 중남미 지역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십시일반 물질을 모아서 돕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와 함께 우리의 합심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서두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대로 선교지를 위한 우리의 합심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셋째로 캠퍼스 선교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지난 번 동아리 박람회 때 파블로 목자님께서 교수 신분임을 밝히시고 학생들에게 전도하시고 바이블 카페에 초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두 명의 학생이 적어 준 전화번호가 없는 전화번호였다고 합니다. 파블로 목자님께서 학생들이 교수에게도 이렇게 가짜번호를 적어주니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현실 문제에 꽉 매여서 여유가 전혀 없는 청년들, 개신교와 교회에 뿌리 깊은 반감을 가진 이 시대 청년들을 제자양성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것보다도 먼저 우리가 합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캠퍼스 청년들을 위해서 교회인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계란에 합심 기도가 담기면 바위가 깨지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역대하 7:14에서 하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나라와 민족과 선교지와 캠퍼스를 우리가 드리는 합심 기도의 둥근 원 안에 담아야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 땅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안암골’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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