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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무엘상하

에벤에셀의 하나님

by 목자 이창무 2025.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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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송년 특강 / 이창무

에벤에셀의 하나님

말씀 / 사무엘상 7:1-14
요절 / 사무엘상 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서론 : 무엇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가?

2025년이라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1월의 설렘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달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올 한 해, 우리의 마음 풍경은 어떠했습니까? 누군가에게는 찬란한 성취의 계절이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겨울 같았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찬 바람 부는 들판에 홀로 선 듯한 외로움, 최선을 다했음에도 여전히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허무함으로 텅 빈 가슴을 안고 이 자리에 계신 분은 없으신지요?

오늘 우리가 묵상할 사무엘상 7장 초반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20년간 계속된 영적 침체와 블레셋의 압제 속에서 그들은 깊은 탄식과 패배감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상황은 경이롭게 반전됩니다. 철기로 무장한 블레셋 군대를 상대로 오합지졸 같던 이스라엘이 극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감격 속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며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웁니다.

절망의 신음이 승리의 함성으로, 패배의 잿더미 위에서 감사의 제단이 세워지는 이 반전의 드라마는 2025년을 마감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깊은 패배의 수렁에서 건져내어 승리의 정상에 서게 했을까요? 그 전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회복의 네 단계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부흥의 시작은 거룩한 갈망과 탄식입니다.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2a)

이스라엘 민족은 본격적인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기까지 무려 20년이라는 기나긴 영적 침체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는 본래 있어야 할 성소가 아닌 기럇여아림의 한 민가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예배를 드리고 신앙의 연수가 쌓이고 있었지만, 실상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소통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마치 장롱 속에 묵혀 먼지만 쌓여가는 사진첩처럼, 하나님과의 생생한 임재 경험은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단절 속에서 흘러간 시간이 20년이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그들의 영혼에 길고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삶의 활력은 사라졌습니다. 영혼은 메마르고 건조했습니다. 블레셋의 압제 아래 신음하며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메마른 광야와 같은 시련의 시간 속에서 마침내 변화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2b)

'사모하다'라고 표현할 때 사용된 히브리어 원어는 단순히 그리움이나 설렘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을 치며 울다', '슬퍼하며 신음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길 잃은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통곡하는 것과 같은 영혼의 비명 소리입니다. "하나님, 어쩌다 저희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꼈던 그 순간들이 간절히 그립습니다. 이 메마른 광야에 저희를 홀로 두지 마옵소서"라는 처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5년의 대한민국이 K-컬처 열풍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 시대의 영혼들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등불이 꺼진 채 깊은 어둠과 한기가 스며들고 있는 듯합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슴 설레게 했던 은혜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까?"라는 탄식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이 바로 이 깊은 탄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골짜기에서 터져 나온 신음 소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탄식은 좋은 신호입니다. 이는 우리의 고집이 꺾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이자,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표지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한 탄식과 갈망이 있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시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탄식으로부터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은혜로운 여정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회복의 전환점은 진심 어린 회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거룩한 열망이 차오르자, 사무엘은 명확하고 단호한 지침을 선포했습니다. 참된 회복이란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청산'하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세 가지 중요한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3)

첫째, 우상을 제거하십시오
사무엘은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조각상을 치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 오직 하나님만이 계셔야 할 자리에 대신 앉아 있는 해묵은 우상들과 작별하라는 뜻입니다. 그것 없이는 불안해서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던 것들,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었던 그것들이 사실은 우리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십시오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라"는 요청은 거친 풍랑 속에서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닻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화려한 소음과 유혹에 빼앗겼던 시선, 갈대처럼 흔들리던 마음을 이제 오직 한 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더 이상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겠다"는 단호한 결단단을 의미합니다.

셋째,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붙잡으려는 '두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양다리 걸친 아슬아슬한 삶을 끝내고, 오직 주님만 예배하는 삶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

백성들은 이 엄중한 도전에 응답하여 오래된 우상들을 내던졌습니다. 진정한 복은 가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화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대와는 다른 모습의 우상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바알이 풍요를 약속했듯이, 현대의 바알은 '돈'의 모습으로 우리 안의 불안을 잠재우려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산 가치에 마음의 평안을 맡기며, 주식 지수의 오르내림에 따라 존재의 흔들림을 겪습니다. 이 돈의 신은 끊임없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영혼을 지배하려 합니다.

또한, 쾌락의 여신 아스다롯은 더욱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중독성 강한 미디어, 성적 쾌락, 약물 등은 찰나의 만족감을 제공하지만, 이는 마실수록 더욱 목마른 소금물처럼 우리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견뎌도 와이파이나 배터리 없이는 1분도 버티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스스로에게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실질적으로 의지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바알입니다.

이러한 우상과의 단절은 인간의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우상과 결별하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오직 복음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가 붙잡고 있던 것이 사실은 영혼을 옥죄는 '덫(올무)'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더불어, 성령께서 그리스도라는 가장 값진 보화를 우리 마음에 비춰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가짜 신들을 배설물처럼 여겨 버릴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6a)

사무엘은 모든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개인의 회개도 중요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더 큰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미스바에 모인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영적 대각성을 위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백성들은 세 가지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회개를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올려 드렸습니다.

첫째,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습니다. 한번 쏟아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쏟아놓으며, 다시는 세상을 향해 뒤돌아가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자신의 남은 삶 전체를 주님의 발 앞에 쏟아붓는 전적인 헌신을 상징합니다.

둘째, 하루 종일 금식했습니다. 금식은 내 힘의 근원을 끊는 행위입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인정하며, 육의 양식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시급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살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고, 이제 오직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의 떡으로만 살겠다는 영적 갈망의 표현입니다.

셋째, 죄를 자복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는 고백은 핑계와 변명의 가면을 벗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거나 "세상이 다 그렇지 않냐"는 자기합리화 뒤에 숨겨두었던 부끄러운 얼룩들을 미스바의 밝은 햇살 아래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면을 벗어 던진 정직하고 투박한 고백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미스바에서 철저하고 전심 어린 회개가 있었기에, 그들은 에벤에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제 2026년 전국청년대학생수양회가 열릴 평창이 이 시대의 거룩한 미스바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창이 단순한 모임을 넘어, 청년들이 마음속의 바알과 아스다롯을 과감히 내던지는 결단의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향해 흩어졌던 시선을 거두고 오직 주님께만 마음의 닻을 내리는 진정한 회복의 역사가 평창에서 간절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3. 승리의 비결은 위기 앞에서 드린 예배입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 영적인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어둠이 드리워집니다. 이스라엘의 모임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칼과 창을 앞세워 전면전을 감행하기 위해 쳐들어온 것입니다. 이제 막 하나님 앞에 마음을 잡고 엎드리기 시작했는데, 축복 대신 위기가 찾아온 이 상황이 참으로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몰려오는 적군의 말발굽 소리 앞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20년 전, 이스라엘은 비슷한 위기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블레셋의 침공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언약궤를 마치 승리의 부적처럼 여겨 전쟁터로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미 죽어 있었으면서도, 그저 상자 하나가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 믿었던 비극적인 미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스라엘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언약궤 대신 사무엘을 붙잡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8절). 이제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닌,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적군이 코앞에 닥쳐 숨소리가 들릴 듯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사무엘은 예상 밖의 행동을 취합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9)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이보다 미련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당장 칼을 갈아도 모자랄 급박한 상황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무기나 군사의 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급할수록 예배하고, 바쁠수록 기도하라'는 거룩한 역설을 온몸으로 실천했습니다. 번제의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자, 그것은 세상 그 어떤 대포보다 강력한 영적 미사일이 되어 하늘 보좌를 움직였습니다.

그 순간, 고요하던 하늘이 뒤집혔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향해 큰 우레를 발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건드린 자들을 향한 거룩한 분노이자, "내 아들딸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라고 외치시는 아버지의 우렁찬 음성이었습니다.

이 압도적인 하나님의 소리에 블레셋 대군은 혼비백산하여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승리의 길을 믿음으로 달려간 것뿐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종종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 즉 오늘날 우리의 '블레셋 군대'와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난관에 포위되어 있을 때,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와 ‘기도’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전략과 전술을 의지하지만, 성도에게 가장 강력한 전술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가장 멀리 내다보는 자는 무릎 꿇는 자이며, 가장 강력하게 싸우는 자는 예배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레를 발하셔서 우리 앞의 모든 문제들을 흩으실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이 가장 신속한 승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눈앞의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모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4. 회복의 완성은 은혜를 기억하는 기념비를 세우는 것입니다.

전쟁의 폭풍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온 들판.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환희의 순간, 사무엘은 조용히 돌 하나를 가져와 땅에 깊이 세웠습니다. 이 돌은 인간의 용맹함을 기리는 전승비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에 감사하는 기념비였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12)

사무엘이 세운 이 돌의 이름은 '에벤에셀', 곧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까지'라는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눈부신 승리의 순간뿐만 아니라, 헛되이 보낸 지난 20년의 세월, 통곡하며 지새웠던 밤, 그리고 적군 앞에서 떨던 두려움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했음을 선언하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사무엘은 이 돌을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웠습니다. 미스바는 회개의 장소이며, 센은 승리를 거둔 전투의 장소입니다. 이는 곧 승리의 열매가 회개의 뿌리에서 비롯됨을 말해줍니다. 미스바에서 흘린 회개의 눈물이 없었다면, 센에서의 승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당부합니다. "우리의 승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렸던 그 낮은 마음이 바로 에벤에셀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에벤에셀에는 더욱 감동적이고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20년 전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참패하고 언약궤를 빼앗겼던 치욕의 현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섬세하십니다. 우리가 가장 처절하게 무너졌던 그 자리,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픔의 기억 속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바로 그곳에서 가장 찬란한 승리를 경험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수치를 덮어주시고, 실패의 잿더미 위에 승리의 깃발을 꽂게 하시며, 아픈 과거 위에 더 큰 은혜를 입혀 영광으로 변화시키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14b)

에벤에셀의 기념비가 세워진 후, 마침내 이스라엘 땅에는 진정한 샬롬,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외부의 위협은 사라지고, 내부의 갈등은 눈 녹듯 해소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자, 그들을 둘러싼 모든 깨진 관계와 세상도 다시 하나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2025년의 마지막 장을 넘길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는 어떤 기념비가 서 있습니까? 혹시 여전히 패배감에 짓눌려 있거나 지워지지 않은 상처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바로 그 아픔의 자리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너를 여기까지 도왔고, 앞으로도 도울 것이다. 너의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를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로 변화시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 : 미스바에서 에벤에셀까지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20년이 회복의 찬송으로 바뀌는 여정을 함께 해 보았습니다. 2025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첫째, 우리의 미스바는 어디입니까? “주님, 이것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는데, 이제는 주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터져나오는 그곳이 바로 나의 미스바가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삶 속에서 여기까지 도우셨다고 고백할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셨습니까? 지난 한 해 동안 블레셋 같은 거대한 장벽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기에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절망의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새해를 앞두고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단호히 제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메마른 탄식이 변하여 감격의 찬송이 되고, 패배의 상처가 승리의 훈장이 되는 기적 같은 회복의 역사가 새해를 향해 전진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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