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가복음

하나님 나라의 비밀

이창무 2024. 5. 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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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8강 / 이창무

하나님 나라의 비밀

말씀/ 마가복음 4:1-25
요절/ 마가복음 4: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세계 3대 미스테리가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고대 이집트에서 어떻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했는가’이고 두번째는 ‘아틀란티스 대륙이 실제로 있었는가’이며 세번째는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왜 그 많은 비행기와 선박들이 실종되었는가’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미스테리를 밝히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호기심은 가나 몰라도 그만인 이런 것들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 달려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나라일까요?” 이 비밀은 세상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이 비밀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1)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왔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그러나 무조건 좋아만 할 일은 아닙니다. 이 무리 중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감시하려고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말씀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기적만 바라고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엄마가 가보라고 해서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연 이중에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한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한 농부가 어깨에 씨앗을 담은 가방을 메고 밭으로 갔습니다. 여기저기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씨는 네 종류의 땅에 떨어졌습니다.

더러는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지나가면 흔적이 남고 백 명이 지나가면 오솔길이 되고 천 명이 지나가면 길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기 때문에 단단하게 된 길 가에 떨어진 씨는 흙 속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결국 새에게 먹혀 버렸습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이곳에 떨어진 씨는 흙에 있는 습기를 빨아들여 싹을 냈습니다. 그러나 돌들 때문에 땅 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습니다. 햇볕이 내리쬐자 점점 시들다 말라버렸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졌습니다. 가시떨기 속으로 떨어진 씨는 싹도 나고 부드러운 흙 속으로 뿌리도 내렸습니다. 그런데 가시가 함께 자라면서 물과 양분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 제대로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고 뿌리를 깊이 내리고 물과 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았습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추수 때가 되자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9)

예수님의 말씀은 다 같이 들었지만 ‘들을 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랐습니다. 무리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잖아! 우리가 이런 말씀 들으려고 여기까지 왔나?’하며 투덜거리며 돌아갔습니다. 비유가 담고 있는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10)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어떤 의미인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고 이리저리 씨름해 봐도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알고 싶은 열망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와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이들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11,12)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안다는 것이 엄청난 특권입니다.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그 의미를 깨닫고자 하는 소원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눈과 귀를 열어 주십니다. 그 마음에 천국이 임합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간절함이 없이, 아무런 소원도 없이 그저 흘려 듣기만 하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영적으로 무디어지고 마음이 굳어질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죄 사함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보다 성경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들을 귀가 없으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고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듣는 것에 우리의 영적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얼마나 씨름했는가에 따라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잘 듣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제자들에게 직접 비유를 해석해 주시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 나라는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14)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씨는 말씀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씨앗은 겉보기에는 볼품이 없습니다. 쭈글쭈글하고 못 생겼습니다. 그러나 씨앗 하나가 얼마든지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솜으로 된 옷을 입지 못해 겨울을 너무 춥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익점이라 분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를 보고 이것만 있으면 사람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붓 자루 안에 목화씨를 몰래 숨겨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후 경작에 성공하여 드디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솜으로 된 이불이나 옷을 입고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성경은 고리타분하고 딱딱하고 재미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 같지도 않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조차 두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대신 유튜브의 바다에서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 같은 실용적인 지식이나 인생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게 해 줄 것 같은 재미 있는 내용을 찾아 여기저기를 서핑을 합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 안에 정교하고 방대한 유전자 정보가 담겨 있듯이 말씀 안에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설계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말씀 안에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생명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문익점이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가져왔듯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축복과 능력을 말씀 안에 넣어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곳에 말씀이 자라 꽃이 피고 하나님 나라로 열매 맺을 그날을 기대하며 온 힘을 다해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매주 한 번의 성경 공부, 한 번의 메시지 듣는 시간이 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나를 바꿀 수 있을지, 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바쁘다고 건너 뛰고 피곤하다고 건너 뛸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생명이 담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우리가 다른 어떤 지식보다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고 잘 간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는 말씀을 심는 것이 아니라 뿌리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농부는 밭을 갈고 이랑을 내고 구멍을 판 후 조심스럽게 씨를 심을 것입니다. 이렇게 심겨진 씨는 발아하고 성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팔레스타인에서는 밭을 갈지 않고 씨를 흩뿌렸다고 합니다. 흩뿌리다 보면 씨앗은 다양한 곳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뿌리는 사람은 결과를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 역시 말씀을 심지 않고 뿌리셨습니다. 바리새인, 병든 사람, 귀신 들린 사람, 말씀에 관심 있는 사람, 관심 없는 사람 가리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뿌려진 말씀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지 여부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말씀의 종은 말씀 역사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말씀의 종의 역할은 좌절과 실패의 가능성, 성취와 성공의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매번 자신을 거는 것입니다.

거칠게 말해서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열매 맺지 못하는 땅이 3/4이고, 열매 맺는 땅이 1/4입니다. 이것을 보면 씨 뿌리는 자에게 있어서 씨앗의 낭비는 숙명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의미한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흘러 넘쳐서 낭비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땅 나쁜 땅을 가리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단 복음의 씨를 뿌려서 기회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씨를 뿌려야 나중에 땅이 다른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내게 열매가 맺히지 못한 것은 씨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런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만약 나쁜 땅에 떨어진 것에 낙심하여 씨 뿌리는 일 자체를 중단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에는 좋은 땅에도 씨가 뿌려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씨 뿌리는 일은 사람이 하지만 열매 맺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중과 주말에 전도 모임을 꾸준히 이루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천국 복음의 씨앗을 넓게 뿌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하나님 나라는 듣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열매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따르면 네 종류의 땅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첫째, ‘길 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15)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처음에 말씀을 듣기는 듣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대개 자기 생각이 강합니다. 마음이 딱딱하고 비판적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럴 때 사탄이 말씀을 그 사람의 마음에서 빼앗아 갑니다. 그는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이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16,17)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습니다. ‘할렐루야! 아멘!’을 연발하며 말씀을 영접합니다. 이런 양을 만난 목자는 오랜만에 좋은 양을 만났다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시련이 닥쳐올 때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넘어지고 맙니다. 그 이유는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말씀 때문에 내가 손해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무리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셋째,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입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18,19)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말씀에 뿌리를 내려 한 동안 잘 성장합니다. 그런데 곧 그 한계가 드러납니다. 숨겨져 있던 가시도 함께 자라서 말씀을 막는 것입니다. 가시의 정체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입니다. 표현은 다양하지만 전부 다 돈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돈 많이 벌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말씀으로 향해야 할 삶의 에너지를 다 빨아들입니다. 결국 더 이상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결국 배신자가 되어 버린 가룟 유다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넷째, ‘좋은 마음’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20)

좋은 마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받는다는 점입니다. `받는다`는 말은 원어로 '인정하다'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계획이 있고 자기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이 틀렸습니다. 말씀이 옳습니다. 내 계획을 접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내 욕심을 내려놓겠습니다.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아름다운 성품이 그 사람 안에 빚어집니다. 영광스럽고 자유와 기쁨이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람 안에 임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네 가지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중에서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혹시 길 가입니까? 돌밭입니까? 가시떨기입니까? 아니면 길 가이면서 돌밭이면서 동시에 가시떨기입니까?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열매 맺기는 다 틀린 것 아닙니까? 이번 생은 망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쁜 땅도 잘 가꾸면 얼마든지 열매 맺는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길 가와 같은 마음은 쟁기로 갈아 엎으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생각은 잠시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신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돌발과 같은 마음은 돌을 들어내면 됩니다. 들은 말씀을 자기 삶에 적용해 보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말씀과 내 자아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때 기꺼이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가시를 제거하면 됩니다. 수시로 찾아오는 염려와 물질에 대한 욕심과 세상 향락에 대한 갈망과 싸워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 초기에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뽑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한 번 뽑았다고 안심해서도 안 됩니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또 자라고 있습니다. 보이는 족족 지체하지 않고 뽑고 또 뽑아야 합니다.

좋은 땅이란 각 단계마다 그 시기에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루어 가는 밭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결국 씨가 자라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반짝 잘하는 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끈기 있게 기다렸을 때 마침내 말씀이 내 안에서 열매를 맺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맘 속으로 들어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결실은 최소 삼십 배에서 최대 백 배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동안의 모든 싸움과 수고를 단숨에 잊게 만들 것입니다.

제가 한 회사 다닐 때 연구소장님이 땅끝 마을이라고 불리는 전남 해남에 땅을 사두었습니다. 언젠가는 땅값이 크게 올라 큰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해마다 여름 휴가를 온 가족과 함께 해남으로 갔습니다. 아들 둘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한 아들은 멀어도 너무 멀다고 투덜댔고 다른 아들은 왜 맨날 여기로 오냐고 투덜댔습니다. 그래도 소장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땅이 잘 있는지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최고의 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너무 너무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성장하고 결실하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수익률이 높은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등불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21). 나도 복되게 하시고 내 이웃도 복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사촌이 땅을 샀다고 배 아파할 일이 없게 됩니다. 반면 말씀을 거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 빼앗아 그 땅이 황무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25).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생명이 담긴 말씀의 씨앗을 우리에게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마음을 열매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으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자비하신 손길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 안에 말씀의 씨앗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역사가 풍성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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