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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및 나눔/양식 86

큰 놀보다 위에 계신 예수님

놀이라는 단어를 아마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놀은 노을의 약자가 아닙니다. 놀은 파도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다가 큰 놀을 만났습니다. 놀은 배를 덮쳐 예수님 일행을 모두 수장시킬 기세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배 뒤편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잠이 옵니까? 제자들도 답답한 나머지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호들갑을 떨며 우리가 다 죽게되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음이 적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셔서 바다와 바람을 향해 꾸짖으셨습니다. 곧 으르렁 대던 사자 같던 바람과 파도가 순한 양처럼 잠잠해 졌습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이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 몸은 비록 작을지라도 큰 놀보다 더 큰 분이십니다. ..

머리 둘 곳이 없다

꿈과 이상을 따라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찾아 온 서기관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열렬한 지지자를 만난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딱 한 마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명인의 삶은 멀리서 보면 멋있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삶은 아닌 특별한 삶입니다.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면 머리 둘 곳 없는 삶입니다. 척박한 현실, 차가운 현실과 끊임없이 싸우는 삶입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명을 내려 놓게 됩니다. 꿈에 부풀어 있는 서기관에게 예수님은 따끔한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힘은 꿈이나 이상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믿음 외에 다른 동기..

믿은대로 될지어다

백부장은 백명의 군인을 통솔하는 로마의 하급 지휘관입니다. 비록 하급 지휘관일지라도 식민지에서 위세는 대단했을 것입니다. 이런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까지가 전부가 아닙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굳이 오시지 않으셔도 얼마든지 병자를 낫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도 놀라신 믿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본 적이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이 이런 놀라운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군대 내에서 경험한 말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상관의 명령은 곧 법과 같습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이 군인입니다. 지휘관의 말이 곧 현실이 되는 곳이 군대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이 곧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나병환자는 율법에 따르면 진 안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에게 접촉해서도 안 됩니다. 접촉한 사람도 함께 부정해집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치유 사건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굳이 손을 대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말씀만 하셔도 됩니다. 굳이 내가 원하노니 라고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굳이 내가 원하노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병이란 육체적 질병의 치유가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병으로 인해 생긴 마음의 병가지 함께 고쳐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오랜 관계의 단절로부터 왔던 고독감까지 예수님은 치유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정하게 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정결함이 나병환자에게 들어가서 그..

하나님의얼굴을본것같사오며

야곱은 형 에서가 과거의 원한을 갚으려고 자기를 죽이려할 지 모른다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그 두려움은 모두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에서는 원한을 잊은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두려움은 헛개비였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지난 긴 세월 속에서 결코 헛개비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늘 야곱 곁에 두려움은 함께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야곱은 속인 자이기 때문입니다. 속임을 당한 에서는 오히려 쉽게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속인 자 야곱은 에서로부터 용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그 두려움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고향 땅을 생각할 때마다 야곱은 다시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속인 ..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야곱은 씨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형인 에서와 장남 자리를 놓고 씨름했습니다. 좀 더 성장한 후에는 외삼촌 라반과 씨름했습니다. 야곱은 만만한 씨름꾼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속임수를 써서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얻었고, 라반에게 당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에는 그의 딸과 재산을 얻었습니다. 제법 잘 싸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했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이미 하나님께서 에서 대신 야곱을 태 중에서부터 택하셨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야곱은 이제 하나님과 겨루어 씨름합니다. 야곱이 씨름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택하시고 복주시는 하나님과 씨름해야 합니다. 이 씨름은 체급이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씨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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