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골로새서

이 비밀의 영광

이창무 2021. 1. 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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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년 제 3 강 / 이창무

이 비밀의 영광

말씀 / 골로새서 1:24-2:5
요절 /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의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안에서 그 어느 곳보다 ‘나’라는 1인칭 대명사가 많이 사용된 본문이라는 점입니다. 골로새 양들의 목자로서 바울의 개인적인 심정과 각오와 자세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이 도대체 어떤 목표 의식과 열망을 가지고 목자 생활했는지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목자 바울의 삶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24)”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에 대해 말합니다. 이 괴로움은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고 난 후 생긴 걱정과 근심을 가리킵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이단과 거짓 교사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자 바울은 그들을 걱정하느라 잠을 설쳤습니다. 마음이 눌려서 한 시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괴로움을 도리어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바울은 이 괴로움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이 마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지 못한 일을 바울이 나서서 완성하겠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 한 방울도 남김 없이 고난의 잔을 다 마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이미 십자가로 완성된 구원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한 선교적인 고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를 통해서 고난을 받고 계십니다. 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사도 바울은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밤낮으로 양들 때문에 근심 걱정하느라 힘들고 괴로웠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고난이기에 영광으로 알고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됨의 진정한 표지가 무엇일까요? 자녀를 향한 끊임없는 걱정과 근심이 바로 부모됨의 진정한 표지 아닐까요? 부모는 늘 자식 걱정을 합니다. 제 어머니는 제가 결혼한 후에도 가끔씩 전화를 하셔서 가스불을 끄고 중간 밸브를 잠갔는지 확인을 하셨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걱정하라고 말씀을 드려도 어머니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목자의 진정한 표지가 무엇일까요? 바로 양들을 향한 끊임없는 걱정과 근심입니다. 말씀을 잘 붙들고 살고 있는지, 세상 유혹에 넘어가 실족하지는 않았는지, 믿음이 잘 자라고 있는지, 어디 아프진 않은 지 목자는 늘 양들을 염려합니다. 이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목자 생활 더는 못하겠다. 너무 부담되어서 다 내려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괴로움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 순간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 목자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예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과 하나가 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신비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요? 이런 우리를 위해서 바울은 목자로서 받는 괴로움을 도리어 기뻐했던 이유를 세 가지로 부연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사명을 하나님께 확실히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25)” 사도 바울은 본래 교회의 일꾼이 아니라 교회의 원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말살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원정 박해를 하러 가던 바울을 예수님께서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6-18)” 이렇게 해서 바울은 교회와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교회와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할 사명과 역할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룬다’라는 동사의 원어는 본래 ‘가득하게 하다’, ‘채우다’, ‘넘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와 복음의 일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 없이 전파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꽉 채워질 때까지 충분히 알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 사명과 역할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충성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자기 코가 석 자인데, 골로새 성도들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드러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 4 권은 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장에서 칼빈을 교회를 가리켜서 ‘모든 신자의 어머니’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교회를 어머니로 표현했을까요? 어머니가 자녀에게 음식을 먹여 자녀의 생명을 유지하듯, 교회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먹여 영적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가 종종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무척이나 밥 먹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이런 저에게 어떻게 하든 밥을 먹이고자 온갖 애를 쓰시다가 마침내 이런 시도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솜과 헝겊으로 벌레 모양을 만들어 감추어 놓았다가 제 앞에 툭 던져 놓으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너무 놀라서 입을 벌리는 순간 밥이 가득한 숟가락을 제 입에 밀어 넣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 어머니 뿐만 아니라 모든 어머니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목자의 마음이 이 어머니의 마음과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먹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양이 말씀을 먹고자 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발을 동동 구르고 애가 탑니다. ‘안 먹으면 성장할 수 없을 텐데, 안 먹으면 약해져서 병이 들 텐데…’ 하는 마음에 때로는 제발 먹으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아무리 피곤해도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맛있는 한 끼 밥상을 차려 주듯이 목자 역시 아무리 괴로워도 양이 배부를 때까지 하나님을 말씀을 먹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는 말씀을 먹이는 사람, 복음과 교회의 일꾼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잘 먹고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초해서 어찌하든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는 목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영광스럽고 풍성한 분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26, 27)” 이 두 구절에는 비밀이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비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는 영어의 Secret에 해당하는 비밀, 남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사이트 계정 비밀번호는 누구에게도 알려 주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비밀을 지켜야 합니다. 두번째는 영어의 Mystery에 해당하는 비밀, 공개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남아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비밀은 이 둘 중에 어느 쪽에 해당할까요? 바로 후자입니다. 또한 이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는 비밀로 감추어 있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내셨고,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이 비밀을 알게 된 사도 바울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그리스도가 너무나 위대하시고 너무나 아름다우시고 너무나 영광스러운 분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알게 된 바울은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놀라운 분을 주위 사람들에게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열망 때문에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는 일이라면 그 과정에서 어떠한 수고도 다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직장에서 여수로 출장을 갔다가 한 선배의 추천으로 한 식당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비포장 시골길을 한참 달려 가보니 간판도 없는 식당이었습니다. 메뉴는 달랑 하나 ‘닭한마리’였습니다. 한 입에 넣었을 때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지금까지 먹은 닭한마리는 닭한마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여수 닭한마리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출장 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약도를 적어 주며 가거든 꼭 먹고 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광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자를 빛으로 인도하시고,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를 해방시키십니다.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고, 저주의 자리에서 영광의 자리로 옮기시며, 영원한 심판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운명을 바꾸십니다. 이것이 영광스럽고 풍성한 복음의 비밀입니다. 아직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복음 전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핀잔을 주거나 매몰차게 거절할 지 모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비밀을 아는 우리는 아무리 반응이 차가워도 기쁨으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안에 있는 영광과 풍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밀스러운 닭한마리 맛집을 알게 되어도 식당의 전도사를 자처하게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입소문을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의 영광과 풍성함을 먼저 제대로 경험하고, 그 기쁨과 감격 가운데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를 힘차게 증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 성도에게 유익이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28, 29)”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란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숙한 사람을 뜻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22절에서 나오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인격과 성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여덟 가지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무엇으로 사람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이 일은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성령님만 사람을 근본적으로 새사람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령님께서는 목자가 전파하고 가르치는 말씀과 함께 일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전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조언해 주고 권면했습니다. 영적 성장에 필요한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이 모든 일에 그는 힘을 다하여 수고했습니다.

혹시 ‘규화보전’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규화보전은 제가 어릴 적 읽었던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 비급입니다. 이 책을 입수해서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 무공을 쌓으면 강호의 최강의 고수, 극강의 완성된 무공에 이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봐야 결국 사람을 마구 죽이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인격과 성품을 완성시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목자가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목표를 낮추어서 설정한다면 그렇게 많이 수고하고 애쓰지 않아도 될 지 모릅니다. ‘그냥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되었지.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면 굳이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치기에 이렇게 힘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목표는 그 이상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인격과 성품에 열매를 맺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얼마 전 일어난 정인이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 만들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가해자인 양부모 모두 목회자 자녀이고 기독교 대학인 포항의 H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해 왔다는 것 그 자체가 사람의 변화를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한 사람의 내면 속에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오직 성령님이 사람을 새롭게 하고 인격과 성품의 열매를 맺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항상 말씀과 함께 말씀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말씀에 기초한 권면과 가르침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때 성령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은혜와 진리, 사랑과 공의가 조화를 이룬 온전한 인격을 갖추게 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배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를 잘 아시는 BBF부터 HBF까지 교사 목자님들의 힘을 다한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21년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지런히 배워서 좀 더 성숙하고 완성된 인격과 성품을 갖추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 자녀들과 양들에게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2:1)” 바울은 이제 골로새와 인근 교회들과 특별한 관계에 주목하도록 합니다.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2, 3)” 골로새와 인근 교회들은 바울이 직접 개척한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바울의 관심과 애정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 교회와 마찬가지로 그 교회들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그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고 또 사랑 안에서 연합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랑의 관계성이 먼저 맺혀져 있어야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마음껏 캐내어 가기를 원했습니다. 마음껏 감상하고 누리고 즐거워하길 원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를 경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를 누리지 못하면 거짓 교사들의 교묘한 말에 속아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의 특징은 언변이 화려하고 뛰어나다는 점이었습니다. 온갖 현란한 말로 사람들의 넋을 빼놓고 뭔가 대단한 것을 줄 것처럼 환상을 심었지만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런 거짓 교사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5)” 여기 질서와 굳건한 것, 이 두 단어가 모두 군사 용어입니다. 즉 군인이 평소 방어 태세를 철저히 하는 것처럼 이단 세력이 틈타지 못하도록 평소에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단도 이런 곳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를 우습게 여기고 캐내어 가기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을 집중 공략합니다. 우리가 사랑 안에서 연합을 이루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 일에 집중하는 가운데 시대의 모든 이단과 거짓 사상들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목자의 삶이란 괴로움과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요,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삶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괴로움을 싫어 합니다. 누가 괴로움을 좋아하겠습니까?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피곤하고 지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 삶에 고난을 채워 넣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풍성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완전하게 세워질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수고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할 양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애씀 덕분에 이단과 거짓 사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게 될 형제 자매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이렇게 아름답고 열매 맺는 삶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복음의 일꾼, 교회의 일꾼의 영광과 가치를 알고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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