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중고등학생을 위한 매일 양식 묵상

중고등학생을 위한 매일 양식 묵상(요12:1-36, 계20:1-22:21)

이창무 2020. 8. 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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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월요일

향유를 부은 마리아

요한복음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1-11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값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마리아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죽었던 오빠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려주신 것에 너무 감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롯 유다는 이런 마리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예수님은 마리아가 마음껏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가만 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헌신이 죄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쳐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실 예수님께는 결코 지나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일 년 동안 모은 용돈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은 분이십니까? 아니면 십일조 헌금을 드리는 것도 아까운 분이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와 거기에 담긴 그 사랑을 깨닫는 만큼만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만큼 사랑하고 헌신하지 못하고 있다면 마리아가 알았던 만큼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콩고 선교사로 헌신했던 찰스 스터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분께 드리는 어떤 희생도 결코 크다고 말할 수 없다.”

기도하기 : 하나님 아버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내게 있는 향유를 드려 예수님께 나의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길 원합니다.
한마디 :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 하리라

9월 24일 화요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요한복음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12-19

유대의 최대명절인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서 예루살렘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서 외쳤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종려나무는 유대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였습니다. 그들이 이런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든 것은 유대 민족의 왕으로서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이 기대하는 유대 민족만의 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왕, 낮아져서 섬기시는 겸손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흰 말이 아니라 작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경차를 타고 취임식에 나타난 대통령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대통령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지만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셨습니다. 나귀도 아니고 나귀 새끼입니다. 이 예수님께 실망하여 돌아서시겠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흰 말을 타고 나타나셨다면 우리는 주눅이 들어 가까이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너무나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신 왕이신 예수님께 더 큰 목소리로 이렇게 찬양을 부릅시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기도하기 : 하나님 아버지! 왕이시되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은 어떤 왕보다도 더 위대하신 왕이십니다. 제가 이 예수님의 이름에 걸맞는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마디 : 겸손의 왕께 찬양과 경배를

9월 25일 수요일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 묵상
요한복음 12:20-36

명절에 온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낮고 천한 마구간 구유 위에 태어나셨습니다. 채찍에 맞고 대못에 박혀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무의미한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는 것은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이 길은 인류를 구원하는 영광의 길입니다.
열매 맺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데 ‘힘들다’ ‘괴롭다’ ‘이러다 망할 지도 모른다’ 하면서 자꾸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여전히 한 알 그대로 있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살면 천년이 두 번 지나도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인생에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진짜 낭비하는 인생이란 바로 이런 인생입니다. 남는 인생은 한 알의 밀이 되어 죽는 인생입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1 밀리미터도 오차가 없는 확실한 진리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수많은 생명을 열매로 얻으신 예수님께서 직접 증명해 보이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 : 하나님 아버지! 제가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먼저 가신 길을 따르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마디 :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9월 26일 목요일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20:1-15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그들이 미래에 누리게 될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사탄을 잡아서 천년 동안 가둡니다.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 천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왕처럼 다스리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더 이상 사망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탄을 따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심판을 받아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첫째 부활만 있고 둘째 사망이 없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면 그 영광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요? 길어봐야 삼십년 내지 사십년 정도입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는 천년 동안 왕처럼 다스리게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이 사실이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줍니다. 기대가 되고 설렙니다. 우리는 앞으로 왕이 될 사람인데 지금 좀 일이 잘 안 풀린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잘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기도하기 :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왕이 되어 다스린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 거친 성품을 변화시켜 품위 있는 왕 같은 성품으로 만들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마디 : 천년 동안 다스리리

9월 27일 금요일

새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21:1-8

지금 이 땅에는 눈물이 있고 사망이 있고 슬픔이 있고 통곡이 있고 아픈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다시는 사망도 슬픔도 통곡도 아픔도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고 악을 행한 사람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16세기에 영국의 토마스 모어가 자유와 평등의 나라를 꿈꾸며 ‘유토피아’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라는 말은 이 세상에 없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유토피아는 없는 곳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슬픈 일을 겪습니다. 질병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힘겨워 합니다.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억울한 일도 겪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눈물이 고일 날이 많습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날이 옵니다. 모든 것이 다 새로워지는 날이 옵니다. 그 날 이후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영원히 사랑 받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기 : 하나님 아버지! 지금 주님을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 주님 얼굴을 보고 영원히 함께 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한마디 : 그 날이 오면

9월 28일 토요일

거룩한 성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21:9-27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있습니다. 이 성은 각종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은 이전에 땅에 있던 예루살렘 성과 달리 성전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곳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곧 성전이 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성도와 늘 함께 계시기 때문에 성전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이 성은 활짝 열려 있어서 만국의 왕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러 그 성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속되고 거짓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 예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만이 하나님이 주신 영광 속에서 영생할 것입니다.
'우리 집은 언제나 좋은 집에서 살아보나?’ 이렇게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때가 되면 찬란하고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살게 될 것입니다.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만 하면 장차 이 약속은 반드시 현실이 됩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세상에 아무 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 아무 장애물이 없이 사랑하는 예수님과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꿈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 : 하나님 아버지!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지금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한마디 : 나의 꿈, 나의 소망

9월 29일 주일

생명수의 강

요한계시록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22:1-9

하나님이 만드신 낙원 한 가운데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생명수의 강 주변에는 달마다 다른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의 잎사귀는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죽음의 저주가 없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빛이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비추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들이 너무 놀라워서 믿기질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신실하고 참된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약속을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즘 대부분 정수기를 사용하거나 생수를 사서 먹습니다. 건강을 고려해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언젠가는 병들고 죽고 캄캄한 무덤에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죄 때문에 에덴동산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에게는 다시 에덴동산이 회복됩니다. 생명수의 강에서 맑고 깨끗한 생명수를 마시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모든 어둠이 다 사라집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물론 지금 당장 이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기 : 하나님 아버지! 잃어버렸던 에덴 동산으로 장차 다시 돌아갈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날까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한마디 : 생명수가 흐르고 생명나무의 열매가 열리는 그 곳

9월 30일 월요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22:10-21

예언의 말씀을 감추어 두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 점점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한 사람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반면 방탕하고 살며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성 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새벽별처럼 빛나는 예수님께서 듣는 자는 다 내게로 나아오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더 늦기 전에 부르실 때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약속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에 대한 성도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지막 때가 가까운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살까요? 잘 먹고 잘 사는 것인가요? 남과 북의 평화 통일입니까? 다 좋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라고 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소원 위에 굳게 세울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남북통일이 되어도 우리의 진정한 소원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죽음과 눈물, 슬픔으로 가득 찼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다 사라집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소망이 있음을 인해 감사합니다.

기도하기 :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점점 악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 어서 다시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세상을 새롭게 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한마디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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