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예수님을 믿는 삶

이창무 2018. 5. 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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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 삶


말씀 / 요한복음 7:1-44

요절 /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때는 유대 명절 중 하나인 초막절이 가까운 무렵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에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친형제들이 “2선 3선 제자들도 당신이 행하는 일들 즉 기적들을 보도록 하소서 그러면 당신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유명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도 덕 좀 봅시다.” 형제들은 정치적 메시아, 기적을 일으키는 분으로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서 돈과 명예, 권력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 믿음은 성경에서 나타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헛되이 믿는 것입니다. 기복적인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믿으려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에 좋은 것이 있다는 태도를 가졌던 형제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주의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서 세상과 벗됨이 하나님과 원수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영적인 간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들의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 후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은밀한 때에 예수님이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가 있고 지혜가 있었습니다. 저자 직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놀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전직이 목수였는데.. 랍비 학교도 안 다녔는데.. 어떻게 성경을 그렇게 잘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는가?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당시 배웠다는 것은 스승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스승이 없으니 네 자신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승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스승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계시된 진리가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연구하고 생각하고 가설과 이론으로 증명하여 지식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은 불완전합니다. 철학의 역사는 그 전 철학을 부정함이다. 과학도 언제든지 부정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이 영원불변한 진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압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깨닫는 것은 행함에서 나옵니다. 성경 외 다른 지식은 자기가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삶이 열쇠입니다. 삶이 없으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문은 닫힙니다. 28절에 보면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성경을 붙들고 사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순종하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계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계시하시는 대상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모세가 준 율법을 지키는 자가 너희 중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내고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 성경 저자의 의도입니다. 율법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말하고 있는데 그 메시아를 죽이려고 하니 말이 됩니까? 율법을 안 지키는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예수님을 향해 귀신 들렸다고 공격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5장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행하는데 안식일이어도 할례를 주었습니다. 안식일은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 상위 계명입니다. 반면 할례는 그보다 하위 계명입니다. 할례의 목적은 사람의 일부를 건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목적으로도 상위법인 안식일 법을 어기는데 예수님은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하려고 안식일에 고쳤다는 것을 비난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공의입니까? 왜 잣대가 제 멋대로 입니까? 외모로 판단하는 것입니까? 논리적인 추궁 앞에 바리새인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리들 중에는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바리새인 당국자가 왜 가만히 있는가?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인가? 수군거렸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우리는 안 믿는다고 강변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인데 그리스도일리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디서 오시는지 모르는 그리스도는 묵시 문학적 표현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가 안 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보냄을 받은 자이십니다. 누구에게서 입니까? 위에 계신 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십니다. 기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나 있는 곳에 너희는 못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은 전혀 이해 못하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가려는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죽으심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스스로 취하시고 스스로 버리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인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발적 순종을 하셨습니다. 사람과 달리 예수님은 생명을 스스로 버리시고 스스로 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명절 끝날 큰 날 실로암 물을 제단에 붓는 헌수식을 합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어 갈증을 느꼈는데 반석에서 물을 내신 사건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쳤을 때 물이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졌습니다. 이백만명이 다 물을 마셨습니다. 반석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마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 중심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성경에 이름같이 에스겔서 예언처럼 참 만족과 갈증이 없는 상태, 충만한 기쁨을 누립니다. 믿는 자는 성령이 그 안에서 흐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상적인 신자라면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안 나온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보배로 여기고 예수님을 얻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삶에서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신자의 삶은 마이너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를 덜어내는 것이 비결입니다. 모든 복은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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