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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
    설교/요한복음 2016.10.05 21:15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


    말씀 : 요한복음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올 봄에 제가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제목으로 사도행전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인사말로 '모든 부부가 저희 부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반쯤은 농담으로 한 이야기지이지만 반쯤은 진담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 한 사모님께서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목자님 가정이 부럽네요. 저희는 좀 어려워요. 결혼 생활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때 저는 잠시 생각해 본 후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서로 관계성을 맺으시고 셋이지만 어떻게 하나 된 연합을 이루시는지 배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를 알면 알수록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부부가 하나가 되어가는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이 그분께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외에 다른 답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의 아름다운 연합과 사랑의 교제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가 아니면 부부 사이에 온전한 연합을 이룰 능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교리적 서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나의 삶과 신앙에는 직접적인 영향력은 별로 없는 주제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부부 관계, 자녀와의 관계,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의 합심과 동역, 전도와 선교 이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삼위일체에 관해 아는 것은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과 신앙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안에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인 21절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 중 일부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는 십자가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드린 기도이기 때문에 유언적 기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안에서 예수님이 품으셨던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기도 제목도 많이 있을 수 있는데 예수님은 17장에서 이 기도 제목을 집중적으로 다루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한 문제일까요? 왜 예수님은 이것을 놓고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셨을까요? 그 배경에 바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 간의 연합과 교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다 하나가 되되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렇게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의 연합과 교제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 안에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성부 하나님 안에 성자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렇게 서로 서로 안에 계심으로 성부와 성자 두 분은 하나가 되십니다. 이 관계를 가리켜서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페리코레시스'라는 말을 썼습니다. '페리'는 원을 돈다는 뜻이고 '코레시스'란 춤을 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페리코레시스'란 원을 돌며 추는 춤이라는 뜻이 됩니다. 원을 돌며 추는 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바로 우리 조상들이 추석 명절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서 췄던 강강술래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강강술래를 추려면 서로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 돌아야 합니다. 서로 각자 다른 방향을 돌면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또한 돌 때 속도를 일정하게 맞추어야 합니다. 누구는 빨리 돌고 누구는 천천히 돌아서는 춤을 출 수가 없습니다. 또 원을 만들었기 때문에 추는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춤을 출 수 있습니다. 누가 더 높은 사람인가 누가 더 낮은 사람인가 하는 차이가 없이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춤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관계가 이와 같이 원을 도는 춤과 유사하다고 해서 페리코레시스라는 말을 사용해서 표현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본질이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성부의 뜻에 성자께서 순종하시고 성령께서는 성자를 드러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분 중에 성부 하나님이 제일 우월하시고 그 다음 성자, 성령 순으로 그보다 못한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십니다. 시간상으로 선후 관계도 없습니다. 처음에 성부 하나님만 계시다가 나중에 성자가 나시고 성령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태초부터 함께 하셨고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사이에는 어떠한 갈등이나 반복, 불일치나 분열이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시고 서로의 생각을 아시고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시고 서로를 한없이 사랑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셋이 모인 하나의 거룩한 가족을 이루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알라와는 전혀 다른 신입니다. 알라는 늘 혼자입니다. 누군가와 인격적으로 깊이 교제할 줄을 모르고 매우 권위적이고 강압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무슬림들은 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알고 있는 신을 닮아가기 마련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 산의 신들과도 전혀 다릅니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편을 짓고 분열합니다. 알고 보면 서로 다 친인척 관계인데 완전히 콩가루 집안입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 사이에는 다양성 속에서도 완벽한 조화와 일치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언제 아름다움을 느낍니까? 언제 감동을 느낍니다. 다양성 속에서 완벽한 조화와 일치를 느낄 때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지 않습니까? 오케스트라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수많은 악기가 각자 다른 음색으로 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그 소리가 하나로 모아져서 웅장한 화음과 멜로디를 연주할 때 우리는 그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아름다움의 원형이 바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 간의 조화와 일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우리 안에 있게 하신다는 말씀은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교제 안에 있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삼위 하나님 간의 교제 가운데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삼위 하나님 간의 교제와 사랑이 흘러 넘쳐서 우리 안에도 그 사랑과 교제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기관들 가운데 교제와 하나됨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에 가정을 이루고 둘이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교회 역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 안에서 교제와 하나됨은 존재 이유와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변적이거나 부차적인 목적이 아니라 핵심적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교제와 하나됨에 무관심하고 힘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불행하게 만든 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삼위 하나님 간의 교제에 참여할 때 가장 기쁘고 행복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삼위 하나님 간의 교제에 참여할 때 그것이 내게 가장 큰 복이요 기쁨이 된다고 말입니다. 저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볼 때 연합과 교제를 이룰 때 가장 큰 행복이 있었습니다. 혼자서도 재밌게 놀 수는 있지만 아무리 재미있어도 뭔가 허전했습니다. 원하는 것은 손에 넣거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었을 때도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조금만 지나면 시들해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가장 기쁘게 하고 만족시키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었고 또한 하나님 안에서 가정과 교회에서 이루는 하나됨이었습니다.


    또한 연합과 교제는 선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세상으로 성부께서 성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가 아니겠습니까? 연합과 교제가 선교와 맺는 관계를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성도의 연합과 교제는 세상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은 온통 갈등과 분열, 전쟁과 테러의 소식으로 가득 넘치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한 나라는 사분오열하여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배척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지치고 상처 받고 괴로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교제와 온전히 하나되는 연합을 이룬 공동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는 등경 위에 올린 등불처럼 산 위의 도시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빛을 따라 교회로 오게 되고 성자 예수님을 성부가 보내신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됩니다. 초대 교회 당시 교회가 내 것 네 것이 없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사람들이 다투어 교회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여 큰 부흥이 일어났던 것이 바로 이런 사례입니다. 둘째로 성도의 연합과 교제는 전도와 선교의 원동력이 됩니다. 삼위 하나님 간의 교제와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온 성도 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경험한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좋은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집니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을 이 교제와 연합 속으로 초청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는 교제와 연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우리는 11월 5일, 6일 양일간에 걸쳐 가을 제자 수양회를 갖고자 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자라는 말이 들어가면 우리는 훈련이라는 말이 연상되고 어떤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훈련도 있고 프로그램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훈련이나 프로그램도 사랑으로 연합을 이룬 공동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양들을 제자양성하길 원한다면 동역자들끼리 먼저 교제하기에 힘써 하나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교제와 연합에 우리가 참여할 때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온 교제와 은혜와 사랑을 먹고 양들은 자라게 됩니다. 이번 수양회는 특히 세 팀으로 나누어 예년보다 소규모로 꾸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서로 간의 인격적인 교제를 할 기회와 시간도 많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제자 수양회를 통해 성도의 교제와 연합을 온전히 이루고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가운데 성부, 성자, 성령 성 삼위 하나님의 교제에 참여하는 역사가 충만히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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