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가복음

복음이 먼저 만국에

이창무 2015. 4. 3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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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수양회 저녁은혜 4강          


복음이 먼저 만국에

■ 말씀 / 마가복음 13:1-13

■ 요절 / 마가복음 13: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이제까지 우리는 수양회를 통해 예수님을 배우고 충만한 죄사함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가 일생 구원의 주 예수님을 잊지 않고 늘 예수님과 교제하며 복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간 이런 구원의 은혜에 더해 한가지 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네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모르고는 따라 우리 인생의 방향을 달라지게 됩니다. 세상에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그 어떤 것을 좇아가며 살아가는 삶에는 역사성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역사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역사의 흐름을 쫓아가기도 하며 역사를 창조하기도 합니다. 하나님도 인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역사 속에서 일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 그 역사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요? 특별히 구원받은 우리는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종말론적 안목을 가져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헛다리 집지 않고 진리에 기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바로 인류의 종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를 분명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이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적인 세계관, 그에 기초한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진리에 기초한 분명한 영적 방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Ⅰ. 말세의 징조 (1-9,11-13)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으리으리한 성전 보고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갈릴리 촌놈들이었던 제자들은 이 성전의 웅장함을 보고 감탄하며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당대 건축 예술의 꽃이라고 할만큼 아름답고 웅장하게 지어졌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 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BC 20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AD 6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성전 건물은 흰 대리석을 지어졌습니다. 그 입구에는 12m나 되는 그리스산 대리석 기둥들이 서 있었습니다. 천정과 내부는 물론 지붕까지 온통 황금으로 장식되었습니다. 크기도 고대 예루살렘 전체 면적의 1/6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성전을 멀리서 보면 흰 대리석 산처럼 보였고, 해가 떠서 비추면 눈이 부시어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광채를 발했습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이 성전이 더욱 아름답고 멋있게 보였던 이유는 이제 예수님이 곧 왕이 되시고 이 성전을 중심으로 메시야 왕국이 세워질 때 자기들이 장관들이 되어 이 성전을 멋있게 걸어다닐 것을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이런 꿈이 있었습니다. 이는 생각할수록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께서는 성전 건물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고 견고하고 화려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지 약 40년 후, 놀랍게도 이 말씀은 글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AD 66년 유대에서 로마에 대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로마 원로원은 디도(Titus) 장군에게 8만 명의 군단을 주어 이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습니다. AD 70년 디도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로마 군병들에게 성전 파괴를 명령했습니다. 이때 성전의 돌들 사이에 금덩이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아 군인들이 금을 찾는다며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무너 뜨렸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은 다 함께 같은 성전 건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저 성전의 겉모습을 보고 경탄하며 자기들의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은 성전의 멸망을 예고하실 수 있었을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추어진 성전의 부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곳이요 기도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성전에서는 기도 소리보다는 장사꾼들의 호객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권위를 내세웠지만 성전을 장사터로 만들어 재물을 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경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형식적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제사,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깊이 부패한 성전이 장차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임을 보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배우게 됩니다. 인류 문명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눈부시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기차가 만들어지고 비행기가 만들어져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이든 보다 빨리 왕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TV가 발명되고 이어 인류발명의 꽃이라고 말하는 컴퓨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인류의 과학 기술은 고도로 발달되어 우리의 상상을 넘어 서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마침내 생명을 복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국에서 1998년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후, 그 다음 해에는 일본에서 복제 송아지 8마리가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유전공학의 발전은 멀지 않은 장래에 인간의 복제까지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황우석 박사의 인간 배아 복제 기술과 관련하여 온 나라가 큰 홍역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실험이 대국민 사기극이 아니라 정말 성공이었다면 불치병 치료에 획을 그을만한 역사적 사건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인체의 뼈, 호흡기, 간, 관절, 근육, 피부 등을 체외에서 복제하여 인간에 이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유전자 지도인 게놈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늙는 것도 질병의 하나로 생각하는 세상,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새로운 개념의 휴대폰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에 약 30억 개 이상이 보급된 이 휴대폰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생활의 모든 것을 다 휴대폰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기본적인 전화 기능 이 외에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며 인터넷을 하고 TV를 보며 은행 거래까지 합니다. 과연 휴대폰 진화의 끝은 어디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인류가 이룩한 고도의 과학기술문명을 볼 때 제자들과 같은 심정이 되어 입이 닫혀지지 않습니다. "샘~~ 저 신제품들 좀 보삼. 지대로 뽀대나지 않으삼?"


  그러나 화려한 겉과는 다르게 내면은 죄로 인해 얼마나 황폐해지고 곪아가고 있습니까? 기술이 발전하여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해지자 이것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린이부터 늙은이까지 인터넷을 통해 음란 동영상을 탐닉하고 있습니다. 최첨단 과학 기술이 가장 먼저 적용되는 분야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 산업입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도 미사일의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인터넷도 미국방성에 시작한 군사정보용 알파넷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리학의 성과를 이용해 지구를 수십 번 멸망시키고도 남을 원자 폭탄, 수소 폭탄을 만든 인류입니다. 만약 정보 공학, 유전 공학이 지금보다 더 고도로 발달하면 과연 어떤 흉측한 괴물을 만들어 놓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21세기 인류가 이룩해 놓은 과학 기술은 참으로 경탄할 만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내면이 이천 년 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선해지거나 거룩해졌습니까?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잔인해지고 더 탐욕스러워졌으며 더 음란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인류는 인간의 죄 때문에 멸망하고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처절하고 무서운 심판 앞에서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기술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백일 하에 드러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도 더 분명한 말세의 징조는 인간 영성의 타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의 타락을 보시고 멸망을 예언하셨듯 우리도 이점에서 인류의 멸망을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이런 인간 편의 위주의 문명들은 인본주의를 대량 생산해내므로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 중심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신앙도 철저히 인간중심의 인본주의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죄를 범하는 것을 이전같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것을 죄라 하는가’ 하면 이제 여기에 대해 더 이상 할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 해체주의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죄라는 개념도 해체해버리고 모든 것을 인간 편한대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교회의 예배는 이제 사람을 위한 예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짓고 하나님은 용서하실 뿐이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없습니다. 교회의 설교에 지옥이라는 말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뭔가 거룩한 일이 벌어지는 있는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러 모이지 않고 자기와 가족의 축복을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무서운 영적타락입니다. 이런 타락은 성적인 타락, 도덕적 타락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은 자기의 시녀 삼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타락하면 교회가 바로 잡아주지만 교회가 타락하면 누가 교회를 바로 잡아줍니까? 인류는 이제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제 인류가 곧 멸망할 때가 되었다는 징조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경제 성장을 말하고 어떻게 하면 이 어려움을 이겨나갈까 고민하지만 지금 더 급한 것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길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영적 위기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감람산은 성전과 마주하고 있는 산으로 한 눈에 성전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유대인들은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이므로 영원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을 하셨습니다. 유대인인 제자들에게 이는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종말에 관심을 갖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언제 인류의 종말이 오는가?’ 하는 것과 ‘그 때 무슨 징조가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말세를 믿는 만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물어오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어떠합니까? 


  첫째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5,6).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거짓그리스도의 출현과 미혹은 첫 번째로 나타나는 말세의 징조입니다. 미혹이란 ‘deceive’ 즉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속여서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칭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거짓 메시아들이 1000명이 넘고, 우리나라에도 300여명에 이릅니다. 요 근래 구원만을 강조하는 박옥수 계열의 구원파와 교주인 이만희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라고 믿는 신천지 교회가 극성입니다. 신천지 교회는 말세에 택함 받은 자들이 144,000명이라고 말하고, 자신들만이 그 택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44,000명을 채우기 위해서 각 교회나 선교 단체에 추수꾼들을 보냅니다. 이들은 몰래 교회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심어지는 교회 자체를 신천지 교회로 바꿉니다. 이단 중에 아무도 자기가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이단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이 성경을 근거로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인용하지만 성경대로 말하지 않고 자기들의 주장을 교묘하게 섞습니다. 드물지만 때로는 이들은 실제로 기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단인지 모르고 쉽게 미혹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미혹하는 자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짓 그리스도에 미혹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목사님은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차분한 마음으로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질 염려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미혹을 받는 것은 진리를 분명하게 붙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바로 성경 선생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짓 그리스도의 세력에 미혹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양떼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유능한 성경 선생으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는 재난의 연속입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최근 100 동안에도 수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1차와 2차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었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곧이어 한국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 간 네 차례 중동 전쟁,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 포클랜드 전쟁, 이란과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90년대 동서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사람들은 이제는 평화의 시기가 올 줄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보스니아 내전, 체첸 사태, 소말리아 내전, 동티모르 사태 등 더 많은 전쟁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9.11 테러 이후에는 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최근 이 지구상에 단 하루라도 총성이 멈춘 날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를 두려움과 슬픔에 빠지게 하는 것은 전쟁과 테러의 소식만이 아닙니다 처처에서 지진과 기근이 발생합니다. 최근 대형 지진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지진에 철저한 대비를 해 온 일본이었지만 이 지진으로 6,500명이 죽었습니다. 2004년도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 해일 즉 쓰나미로 말미암아 한 순간에 4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바로 올해 5월 12일 중국 쓰촨성에서 진도 7.8의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한 사망과 실종자수가 약 10만 명에 이르며 약 22조원의 경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과연 지진의 안전 지대일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의 강도가 점차 강하여 지고 발생 횟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1978년- 1995년 사이 18년 동안의 매년 지진 발생횟수는 최저 6회 최고 29회 총 359회로 평균19.9회였으나 1996년- 2005년 사이 10년 동안에는 매년 최저 21회 최고 91회 총428회가 발생하여 평균42.8회였습니다.


  기근 문제도 심각합니다. 기술 발전과 함께 농업 생산력은 크게 향상 되었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세계적으로 약 2천만 명 정도가 굶어 죽었습니다.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1.5초 동안에 한 사람씩 굶어 죽고 있는 셈입니다. 총 60억 지구 인구 중 20억이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우리 동포인 북한의 기근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평화 재단 측에 따르면 북한을 그냥 내버려 두면 올해 5월부터 7월 사이에 약 20만 명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배불러서 숟가락을 놓지만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숟가락을 놓고 있습니다. 앞으로 예상할 수 없는 기후변화로 인해 기근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이런 기근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20% 사람들이 전 세계 물자의 70%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 20%가 세계 물자의 1.6%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근의 원인은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한 쪽에서는 비만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으로 죽고 한 쪽에서는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전쟁과 지진과 기근 등 재난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난의 시작을 영어 성경(NIV)에는 ‘The beginning of the birth pain’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산통의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여인은 새 생명을 출산하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이처럼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같은 재난은 장차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기 위한 산통입니다. 해산의 고통은 처음에는 주기가 길다가 나중에는 10분, 5분 간격으로 빨라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 생명이 탄생합니다. 이와 같이 재난도 그 주기가 완만하다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빨라지게 됩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많은 재난이 발생합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 큰 능력과 영광으로 재림하십니다. 새 하늘 새 땅이 도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난을 당할 때, 그리고 그 재난이 더 자주 일어나고 그 강도가 점점 더해질 때 우리는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셋째, 가족 간의 사랑이 사라집니다. 말세의 때에 가정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혈연으로 맺은 가족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말세가 가까워지면 이 가족공동체마저 철저히 무너집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배신하여 죽음으로 내몹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감옥으로 보내어 죽게 합니다.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배신을 당하는 것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하지만 오늘 날 많은 가족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으며 비정하고 무자비한 일들이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 딸이 어머니를 필리핀에 여행 보내드린다고 보내 놓고 뒤로는 살인청부 업자를 고용해서 총으로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행 가기 직전에 딸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겨주도록 유언장이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서래 마을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프랑스인 쿠르조씨 부부가 자신들이 낳은 아기 둘을 죽인 후 2년이 넘게 냉동실 속에 보관해 온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로 도망간 후 현지 경찰에게 또 다른 아이도 죽여 시체를 난로에 넣어불태워버렸다는 자백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가족 간에 사랑이 식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때 우리는 말세가 가까이 왔음을 알고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으십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나라 산 소망을 바라보면서 말세를 준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네째, 핍박이 많아집니다(9-13). 말세에 믿음으로 사는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 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말세에 성도들은 핍박을 받습니다. 우리가 여름 수양회가 끝난 후 돌아가 "나 예수님 믿고 새 사람이 되었어요"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까요? "축하한다. 정말 잘 되었다" 하면서 격려를 할까요? "너만 새 사람 되지 말고 나도 좀 변화되자" 이렇게 말할까요? 그래야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리어 우리들을 미워할 것입니다. "안타깝구나. 좋은 친구 하나 잃어 버렸네." "야! 너도 이제부터 개독교냐?" "차라리 그냥 성당에나 다녀라" 별의별 소리를 다 듣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말세가 가까워지면 세상은 크리스천들을 모함하여 공개재판을 받게 하고 매질하며 모욕할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겠다는데 욕을 먹습니다. 좋은 일을 하다가 핍박을 받습니다. 이는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하지만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성도들이 예수님을 인하여 반드시 이런 핍박을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런 핍박을 받도록 허락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핍박을 통해서라도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이들이 재림하신 주님 앞에서 복음을 듣지 못했다며 변명하지 못하도록 증거 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핍박을 받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입에 할 말을 넣어주실 것입니다(11). 또한 예수님은 13절에서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약속을 믿고 염려하지 말고 핍박이 있을 때 믿음으로 끝까지 견뎌야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이번 수양회에서 드린 믿음의 고백을 굳게 지켜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만국 복음 전파 (10) 

  그렇다면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 전에는 세상 끝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세상 역사는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하였을 때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의 계획 속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 그 나라의 모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복음을 완성하시고 그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난리와 재난의 소식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택한 자를 불러 내시어 구원의 역사를 줄기차게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역사는 출렁이는 바닷물의 표층류와 같다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도도히 흐르는 심해류와 같습니다. 이 역사의 주관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표층류와 같은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그곳에 떠다니는 정치인들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범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을 회복시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해 세상의 권력자들까지도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의 주역이 아닙니다. 그들은 조연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주역은 과연 누구입니까?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하리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복음은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이 얼마나 어디까지 전파되었는가를 따라 하나님이 심판의 때를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역사를 혼자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왕 바로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준비되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모세에게 40년간 왕자 교육을 받게 하시고 40년간 광야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비로서 그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이스라엘을 넘어 아시아와 유럽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혼자 일하시지 않고 사도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러 다메섹로 가던 그를 강렬한 부활의 빛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 들어가서 복음을 깊이 연구하여 그 비밀한 세계를 깨닫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로마에까지 복음 진리를 전파하셨습니다.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십니다. 이 역사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대로 사람을 택하셔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만국 복음 전파 역사를 섬긴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에 우리 민족을 택하셔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계십니다. 또 우리 모임을 통해 전 세계 90개국에 15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룬 역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중국과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와 이슬람지역에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통해 이루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복음이 먼저"라고 하심으로 천국 복음 전파가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먼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복음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것과 건강을 지키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순위에 있는 것입니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직장 생활도 궁극적인 복음전파의 목적을 두고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업을 하는 것도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저희가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중점적으로 이루고 계시는 만국 복음 전파 역사에 복음 전파자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역사의 주역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인줄 믿습니다. Hi! History Maker, 역사 창조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도 은혜로 택하셔서 역사 창조의 주인공으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군대를 제대한 후 당시 대학생 선호도 기업 1 위였던 LG 그룹에 입사하였습니다. 첨단 시설을 모두 갖춘 초고층 빌딩 안에 자리 잡은 사무실로 들어서며 저는 외쳤습니다. "보소서 이 시스템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회식 자리에 쫓아 다니며 맛나고 비싼음식도 많이 먹어보았습니다. 월급날 통장에 찍힌 동그라미를 확인하면 왠지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협력 회사 직원들이 찾아 와 굽실거릴 때는 목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대기업의 정교하고 조직적인 일 처리 방식을 익혀 가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겉모습이 전부 다는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 이면의 모습까지 보게 되자 왠지 모를 답답함이 밀려 왔습니다. 모두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때로는 주말에까지 나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돈을 많이 벌자’ 만나면 오직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 이야기거나 주말에 놀러 갔던 곳 이야기였습니다. "돈 많이 벌고 즐기자" 이것이 삶의 모토였습니다. 꿈과 비전은 좋은 차 사고 집 사고 강남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전부는 아니고 전부여서도 안 되잖아’ 이런 독백이 가슴 속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입사 2년 후 IMF 사태가 터졌습니다. 회사 형편이어려워지고 인원 감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회사를 전부로 여기고 충성해 온 선배들이 하루 아침에 목이 잘리고 축 늘어진 어깨로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사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사명에는 고난도 따르지만 사명 없이는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게 되고, 참된 행복도 누릴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은 분명했습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점점 더 물질의 노예, 쾌락의 노예가 되고 죄악의 밤이 깊어가는 이 시대는 제가 보기에도 말세중의 말세라고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대에서 천하만민 중에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역사에 ‘나와 함께 일하자’ 하시며 저를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이에 저는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너무 부족하고 형편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국 복음 전파 역사에 저를 쓰시겠다고 하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저는 내가 선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자비량 선교사로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유망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이 서른에 회사를 그만 두고 컴퓨터학과 3학년으로 다시 편입하였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한 학기에 일곱 개의 전공 과목을 들으면서 동시에 예닐곱 개의 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 학기에 4.41의 학점을 받았고 졸업 때까지 매 학기 성적 최우수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이는 제 능력이 아니라 만국 복음 전파 역사에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일이었습니다. 졸업 후 대기업에서 입사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습니다. 선교사로 나가려면 기술력이 있는 벤처기업으로 가야만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벤처 기업에 들어가고 나서 후회를 참 많이 했었습니다. 맨 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온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이러다가 선교사도 못 되고 평생 죽도록 고생만 하는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친히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올해 드디어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IT 회사에 취업할 수있게 해 주시고 무려 4:1이 넘는 경쟁을 뚫고 취업 비자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곳에는 스탠포드나 버클리와 같은 서부의 명문 대학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인본주의와 자유주의에 깊이 병든 곳들입니다. 그런데 스탠포드 대학에 가봤더니 한 가운데 이 대학 창학 이념이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For the Glory of God" 저는 이 문구를 보면서 저를 하나님께서 왜 이곳으로 인도하셨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에만 남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곳 캠퍼스 지성인들의 심장에서 다시금 활활 불타오르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 미국 캠퍼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택하신 자를 건져내는 역사에 저를 사용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말세지말(末世之末)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어 때가 되면 이 세상 역사의 문을 닫으시고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대를 분별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만국 복음 전파 역사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위대한 선교역사의 주역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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