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엠마오로 가는 길
    성경공부/수양회 및 특강 2016.08.23 12:16

    엠마오로 가는 길


    - 찬송가 170장 내 주님 살아계셔 / 165장 

    - 무덤에서 길로 ㅎㅎㅎ

    말씀/ 누가복음 24:13-35

    요절/ 누가복음 24:26

    * 부활을 믿기 어렵다. 그래서 몸의 부활이 아닌 사상의 부활, 영향력의 부활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본문 두 제자도 그랬다. 어떻게 주님이 도우셨는가?

    * 본문 앞에 보면 빈 무덤과 천사의 메시지가 있었다. 처음에 여자들이 목격했는데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 후에 제자들도 직접 확인을 했다.

    * 오늘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 눈이 가리워졌던 두 제자가 눈을 열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되는 사건에 대한 말씀임

    * 우리도 어떻게 영적 눈을 떠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음. 

     


    1. 제자 증 둘이 엠마오로 가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까(13,14)? 이때 누가 그들과 동행했습니까(15)? 그러나 그들은 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까(16)?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 그 날에 : 안식 후 첫 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현재의 주일을 말함.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진 날. 부활절은 일년 한 번이지만 사실 상 매 주 주일은 부활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부활의 날임, 제자들이 춤추고 찬양해야 할 날.

    - 그들 중 둘 : 제자들 무리에 속한 사람들(11절 열 한 제자와 다른 모든 이). 그러나 열 두 제자는 아니고 소위 2선 제자들 속하는 사람들임.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경험했고, 여인들과 사도들로부터 빈 무덤에 관한 목격담을 들었음.

    -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 : 이십오 리는 원어로 60 스타디온으로서 약 11 킬로미터 정도 거리에 해당함. 성인의 보통 걸음 걸이로 세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임. 엠마오는 두 제자의 고향으로 보임. 믿음이 없어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지 않고 낙심하여 낙향하고 있는 것임. 다른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계속 머물고 있는 반면에 이 두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십자가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제자 공동체가 뿔뿔히 흩여지며 붕괴되어 가는 현상이 서서히 시작되었음을 보여 줌. 이대로 가면 예수님은 잊혀진 분이 될 수도 있었음.

    -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 이 모든 된 일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부터 빈무덤 사건에까지 일을 말함. 여기서 문의했다는 말은 토론했다(discussing)는 말임. 진행형으로 쓰여 져 길을 가는 내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토론했음을 말해 줌. 토론을 했다는 말을 통해서 볼 때 십자가와 빈 무덤 사건에 대한 의미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으며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해 논쟁을 벌인 상황을 암시함. 오늘도 부활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이 있음.

    -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 예수님께서 먼저 혼란과 절망과 슬픔 속에 낙향하고 있는 두 제자를 찾아 오심. 왜 찾아오셨을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임. 믿음 없음을 도와 주심. 가까이 오셔서 동행하시는 주님은 부활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가능. 공자나 석가, 마호메트는 현재 우리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는 있지만 가까이 와서 동행할 수는 없음.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기 때문.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 흩어지는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붙드심. 현재도 성령(보혜사)을 보내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부활을 증거하심.

    -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 아무리 2선 제자들이라지만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나? 세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음 1) 예수님이 살아계시리라고는 전혀 짐작조차 해 본 적이 없어 보고서도 다른 사람이라고 굳게 믿음. 토론해도 부활을 믿을 수는 없음. 백문이 불여일견. 믿는대로 보인다.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2) 예수님의 모습이 부활 이후 변형되어서 알아 볼 수가 없음 3)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제자들의 지각 능력에 고장을 일으키며서 알아 보지 못했음. 어떤 이유든지 간에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보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가 중요함. 


    2. 그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했었으며 또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까(17-21)? 그러나 그들은 왜 실망했습니까? 이런 증에 그들은 어떤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까(22-24)? 그런데도 왜 고향으로 가고 있었을까요?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17) / 무슨 일이냐?(19)  :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심.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들을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반문하심. 시치미를 뚝 떼시는 예수님. 제자들 스스로 영적인 눈이 뜨여질 때까지 기다리심. 목자가 너무 일찍 답을 제시해 버리면 양들은 자기 스스로 배우지 못함. 때로는 답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면서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려 주면서 양들의 말을 들어 줄 필요가 있음. 문답식 교육-단계별 교육으로 끌어 올리시기고자 하심.

    -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더라 : 부활 신앙이 없는 제자들의 심령은 슬픈 빛을 띨 수 밖에 없음. 제 삼자가 물으니까 슬픔이 더 큼. 슬픔에 푹 빠져 멈추어 버림. 망연자실.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해만 해도 슬프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음. 부활 신앙이 없는 삶은 근본적으로 우울할 수 밖에 없음. 왜냐하면 죽음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때문. 

    -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 : 이름이 언급된 것을 볼 때 후에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으로 추측됨(요한복음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 혹시 간첩이냐? 당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제자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을 말해 줌. 요즘으로 말하면 네이버 검색어 1위가 되었을 것.

    -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설명해 주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됨. 예수님은 말씀과 사역 두 가지 면에서 모두 탁월하셨음. 하나님의 인정과 지도자가 아닌 일반 백성들의 광범위한 인정을 모두 받으셨음.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선지자라고 말함으로 그들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드러냄.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선지자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리스도는 될 수 없다고 여김. 죽음이란 한계 아래에 있는 예수.

    -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 여기서 속량이란 죄사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함. 출애굽과 유사한 일.  제자들의 기대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독립을 이룰 정치적 영웅이 될 것이라는 기대였음. 우리 나라가 35년간 일제 식민 통치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이 아직도 치유 중인데 바벨론-페르시아-헬라-로마로 이어지는 수백년의 이민족 지배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독립과 해방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을까?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충분히 있음. 이 기대를 한 몸에 받으셨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들의 기대는 깊은 절망과 탄식으로 바뀜. 희망이 물거품으로 바뀜. 원문에는 Yes - 그럼요 or 그렇구말구요 라는 들어 가 있어 아직도 다 버리지 못한 진한 아쉬움을 전달하고 있음.

    -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이요 : 당시 히브리인들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나면 영이 몸을 떠나서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봄. 최후의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졌음을 의미. 죽음은 인생들에게 모든 희망을 짓밟아 버리고 결국 절망과 탄식을 가져 옴. 부활이 없다면 궁극적 소망은 없음.

    -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 빈 무덤은 여러 증인들의 말을 통해 사실로서 확인하였음. 그러나 두 제자는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음. 당시 실제로 누군가 시체를 가져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음(도적설). 부활의 객관적인 증거들이 부활 신앙 자체를 가져다 주지는 못함. 부활 신앙에 이르기 위해서는 객관적 증거들 이외에 다른 것이 더 있어야 함. (그 분을 보아야)

      


    3. 예수님은 그들의 어떤 점을 책망했습니까(25)? 그리스도는 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셔야만 하셨을까요(26)? 예수님은 무엇으로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까(27)?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부활 신앙에 이르지 못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탄식하심. 원문에는 '오' 라는 감탄사가 있음. 그리고 책망하심. 미련하다는 어리석다, 바보 같다는 말임. 마음에 더디 믿는다는 것은 믿음에 이르기까지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말. 두 제자가 지능이 떨어지거나 원래 굼뜬 성격은 아닐 것임. 다만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 즉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 미련하고 느리다는 것이 문제임. 성경의 예언,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의 말씀, 빈 무덤, 천사들의 메시지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 더 신기한 일임.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 6,7절 갈릴리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이미 말씀하셨던 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가르치셨던 일. 메시야관의 교정이 필요하다. 고난 없는 영광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자들이 일방적으로 가졌던 그리스도의 이미지일 뿐임. 성경의 그리스도가 아님. 성경에 하나님이 계시하신 그리스도는 반드시 십자가 고난을 겪으신 후에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되시는 그리스도를 말함. 고난 없는 영광만을 말하는 것은 반쪽 짜리에 불과. 반쪽 짜리는 진짜가 아님. 오늘날에도 고난을 통한 영광의 그리스도관이 분명하지 않음. 고난을 받아 들이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음. 문제 해결, 승리 주의에 심취해 있음.

    -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제자들에게 말씀이 필요하다. 말씀이 없어서 부활 신앙이 없었다. 모세의 글은 모세 5경을 말함. 선지자의 글은 역사서와 선지서 전체를 포괄함. 유대인은 역사서를 전선지서라고 해서 선지서의 범위에 포함시킴. 여기서 모든 성경은 구약 성경을 말함. 예수님은 구약 성경 전체가 자기에 관해 쓴 것이라고 선언하심.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관한 책. 고난과 부활도 다 구약에 있음. 구약은 신약이나 예수님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책으로 여기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오해임.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이라고 분류하는 것도 잘못임. 구약이든 신약이든 모두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예수님에 관한 책임. 구약을 읽을 때 예수님을 빼고 읽는 것은 핵심을 놓쳐 버리는 것. 구약의 모든 본문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함. 성경은 도덕 교과서가 아님. 성경은 처세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님. 성경은 우리가 살아갈 때 본이 될 만한 인물들을 제시해 주는 책이 아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계시해 주는 책임.     


    4. 그들은 언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까(29-31)? 길에서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주실 때 그들 마음 가운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32)? 여기서 부활 신앙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 예수님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원래 목적지였던 엠마오에 도착함. 예수님은 그 마을을 지나쳐 더 가려는 것처럼 하심. 사실은 페인트 모션이며 할리우드 액션임. 제자들의 마음을 떠 보시려고 하셨음

    -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 들어가시니라 : 강권하여는 매우 강하게 만류했다는 말임. 겉으로는 해가 저물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속으로는 예수님과 성경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임. 예수님 이후로 이렇게 성경을 잘 가르쳐 주는 성경 선생은 처음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 예수님은 못 이기시는 척 하고 속으로는 흡족해 하시며 함께 유하러 들어가심.

    - 그들이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 어디서 많이 본 적이 있는 장면임. (공생애 기간 동안 최소한 두 번 이상 같은 장면이 있었음. 하나는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실 때 예수님을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음. 또 다른 하나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나누실 때 예수님은 그때도 또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음. 본문의 제자들은 2선 제자인 점을 감안해 볼 때 오병이어 사건 등의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이 장면을 목격했고 또한 그 모습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을 것.) 보통 때 식사하는 중에도 이렇게 하셨을 수 있음.

    -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 예수님의 공생애 때 모습과 부활하신 현재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비로서 제자들 앞에 계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발견함. 밥을 먹어야 알아 봄. ㅎㅎㅎ. 과거에나 현재나 어저께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섬겨주시는 예수님 앞에서 영적 눈이 떠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셨지만 여전히 제자들과 서로 대화를 나누며 떡을 떼면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심.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성령님을 통해 여전히 주님과의 연합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심. 낙심할 때, 슬퍼할 때 겸손한 모습으로 항상 곁에 계시며 들어 주시고 책망도 하시는 도와주시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은 늘 변함이 없다. 능력과 승리만 생각하지는 말자. 

    -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 예수님이 홀연히 사라지심. 부활하신 이후 변모된 예수님의 모습 중 하나임. 절망과 슬픔과 혼란 속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부활 신앙이라는 큰 선물을 주시고 떠나심.

    -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성경이 깨달아 지면서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뜨거워지는 것임. 원어의 의미는 burning으로서 불타는 것 같았다 강렬한 체험을 의미함.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면 마음이 불타오르고 온 몸이 화끈거리게 됨. 성령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적용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임.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 때 말씀 사경회를 통해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 사람들이 다 뒤집어 짐.

    - 부활 신앙에 이르려면 : 두 가지가 있어야 함. 첫째는 성경 공부가 있어야 함. 그러나 그냥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경 공부를 해야 함.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공부를 해야 함. 둘째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함.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통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을 가질 수 있음.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도 이 중 하나임. 이 두 가지가 있을 때 가려졌던 우리 눈이 열림. 아무리 미련하고 믿기에 더딘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음.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음. 자신에게 던져 볼 질문. 당신은 지금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예수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5. 그들은 그 때에 어디로 갔습니까(33)? 거기서 그들은 어떤 소식을 듣게 되었으며 또 무엇을 증거했습니까(34,35)?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 기껏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출발했던 예루살렘으로 감. 게다가 날이 저문 저녁 때임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향함. 큰 위로와 힘을 덧입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실을 증언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 한시라도 빨리 다른 제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돌아 갔을 것임.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과 만남은 곧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도록 만듬. 제자들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게 된 원동력도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기 때문임.

    -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서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 이미 시몬 베드로도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하였음.

    -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서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체험을 증거함으로 기쁨이 더욱 충만하게 되었음. 부활의 증거를 통한 믿음이 형성되기를 원하심. 먼데서부터 중심으로 접근하심. 뿔뿔이 흩어져 붕괴될 뻔했던 공동체가 부활 신앙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됨. 이것을 기초로 교회가 시작됨. 슬픔과 절망과 혼돈이 가득하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삶이 기쁨과 소망과 확신의 삶으로 변화됨.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의 삶을 그렇게 기쁨과 소망과 확신으로 이끄심. 여전히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성경공부 > 수양회 및 특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0) 2017.01.24
    가서 일곱 번 씻으라  (0) 2016.08.23
    엠마오로 가는 길  (0) 2016.08.23
    청년아 일어나라  (0) 2016.08.23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0) 2016.08.23
    내 증인이 될지라  (0) 2016.08.23

    댓글 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