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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 일어나라

이창무 2016. 8. 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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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누가복음 7:11-17

요절 / 누가복음 7:14


청년아 일어나라


복음서에는 죽은 자를 살리신 세 가지 사건이 나옴.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사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그리고 오늘 본문의 죽은 청년을 살리신 사건.

예수님이 위로의 근원이요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말하고 있음.

아무리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근원적인 어두움에 시달릴 수 밖에 없어. 죽음 권세 아래에서 우울하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게 됨. 이런 인생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 '울지 말라' '청년아 일어나라'


1. 예수님 일행은 어디로 가고 있었습니까(11)? 예수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누구를 만났습니까(12)? 과부의 독자의 죽음이 그의 어머니와 그 성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1. 나인성은 갈릴리 지방 남부 이스르엘 평원의 한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몇 킬로 남쪽 거리에 위치. 나인의 뜻은 즐거움. 기쁨이라는 뜻. 그 이름과 정반대로 가장 슬픈 일이 일어남. 그러나 다시 기쁨을 회복하는 사건이 오늘 말씀의 주제.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 생명의 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의 행렬. 그러나 이와 대조되는 또 다른 행렬을 만남.

'

12. 나인성 입구에 가까이 오셨을 때 장례 행렬을 만남. 죽은 사람은 한 청년. 과부의 외아들. 모든 장례가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그 모든 장례 중에 가장 슬프고 가장 고통스러운 장례 행렬. 과부의 인생에 유일한 소망이며 위로이며 의지의 대상이었던 귀한 독자의 죽음. 어떻게 죽었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음. 전혀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죽음이었던 것은 틀림 없음. 세월호 사건의 부모들을 생각해 보라. 아들의 죽음으로 이 여인은 존재의미도 죽고 희망도 죽음. 죽음은 남편도 빼앗아 가고 이제 하나 뿐인 아들도 빼앗아 가고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림.

성의 많은 사람들도 함께 나옴. 슬프고 고통스러운 장례식에 사람들은 동정하는 마음으로 그 어느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 침통함이 지배하는 장례 행렬.


# 죽음은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폭군.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어. 죽음은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범죄의 결과 세상에 들어온 것. 인간에게는 이 죄와 죽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방법도 없었음.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심. 

2. 주님께서 과부를 보시고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13)? “울지 말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진정한 위로는 어디로부터 옵니까(고후 1:3-4)?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고후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13. 슬프고 있는 과부를 보시고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심. 예수님의 심정은 긍휼. 여인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심. 

'울지 말라' 아무도 이렇게 말할 수 없음. 보통 인간이 이런 말을 했다면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말. 그래서 대부분 실컷 울도록 도와줌. 답답한 풀도록 권함. 함께 울어주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음. 그러나 인간의 어떤 말도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음. 죽음 자체를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 과부의 눈에서 눈물을 그치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메시야 예수님만이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서 희망과 가능성과 행복을 앗아가지만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심.


3. 14-15절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청년아…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 청년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이 말씀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어떻게 적용 될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바가 무엇일까요(요 5:25)?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율법에 따르면 관에 손을 대면 부정하게 된다. 죄의 결과인 죽음에 의해 오염된다고 보기 때문. 그러나 죽음이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부정하게 할 수 없음. 예수님은 죽음의 행렬을 멈추시기 위해 손을 대심. 죽음의 행렬은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한다.

'청년아' 예수님은 '시체야'라고 부르시지 않음. 죽은 시신을 향해 청년이라고 부르심. 

'내게 네게 말하노니'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를 나타냄. 구약 시대 엘리야나 엘리사도 죽은 자를 살린 적이 있으나 이 때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응답으로 나타난 기적이었음.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 기적을 행하심.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심.

'일어나라' 왜 청년이 누워있느냐? 청년아 너는 일어나야만 한다는 한다. 내 능력과 권위로 너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말씀. 죽음의 권세로부터 너를 자유롭게 하였노라는 선포.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기적이 일어남. 복음서의 기록 중 최초로 죽은 사람을 살리신 사건으로 여겨짐. 예수님 자신의 권위로 능력으로 죽은 자를 일으키심. 예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죽었던 자가 일어나고 말도 함. '듣는 자는 죽은 자라 할지라도 살아난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청년을 살린다. 일으켜 세운다.

어머니에게 아들을 돌려 주심. 여인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심. 여인에게 살아갈 이유가 하나 더 생김. 아들 뿐 아니라 예수님이 그 이유.


# 청년...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죽음의 그림자가 가장 옅은 시기. 생명력이 넘치는 시기. 일어나서 펄펄 뛰어다녀야 하는 시기.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도서관 불빛 아래서 농구를 하고 한 게임 더를 외칠 수 있는 시기. 

그러나 이 시대 청년들이 청년 답게 살고 있는가? 십대 이십대 사망 원인 제 일 위는 자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 얼마전 서울대생까지 자살을 해서 충격을 줌. 청년 실업 문제 심각. 헬조선. 3포, 5포, 이제는 7포 세대. 나는 흙수저라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 자포자기. 누워 있다. 관 속과 같은 좁은 방에 누워서 무기력하게 게임이나 인터넷에 중독. 청년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기성 세대에게도 큰 근심과 걱정이 있어. 늦은 나이까지 부모를 의존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도 낳지 않음. 큰 기대와 희망을 두고 키운 자녀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절망하고 무기력해지면서 부모들도 슬퍼함.

왜 청년들이 이렇게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게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영원한 생명이 그들 가운데 없기 때문.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야 마른 뼈에 생기가 돌게 된다. 예수님의 생명은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청년들에게 임하게 됨. 말씀이 들어가면 누워있던 청년들이 일어난다. 희망이 생기고 에너지가 넘치고 도전하고 개척하는 인생으로 변화됨. 미래가 밝아진다. 헬조선이 아니라 헤븐코리아가 될 수 있다.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살 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 우리의 희망은 이 시대 청년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있다. 학생이 일어나야 요회가 산다. 학생들이 일어나야 학사들이 일어난다. 청년이 일어나야 한국 교회가 산다. 청년이 일어나야 우리 교회, 우리 모임에 미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죽은 것처럼 보인다. 캠퍼스 제자 양성이 잘 되지 않는다. 전도를 해도 반응이 없다. 생기가 없고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도 힘이 빠지고 슬프고 답답하고 어두워지기 쉽다. 그냥 다 포기하고 접어야 하는가? 그러나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라고 하신다. 죽었던 청년들, 누웠던 청년들을 살리시고 일으키시고자 하신다. 청년들 뿐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청년을 살리고자 하신다. 그 방법은 오직 하나 듣는 자를 살아나게 하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이 청년들 가운데 역사하도록 해야 한다. 청년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난다. 새학기 캠퍼스에 죽어가는 이 시대 캠퍼스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음성을 선포하여 살리는 목자가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하여 도전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갖고 다시 한 번 청년들에게 나아가는 2016년이 되도록


4. 이 일에 대한 사람들은 반응이 어떠했습니까(16)? 이 일이 그 주위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17)?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6. 큰 선지자...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큰 선지자 혹은 그 이상의 이적을 행하신 분으로 인정.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아보신 사건으로 이해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17. 죽은 자를 살리셨다는 소문이 두루 퍼짐. 한 사람이 중요함. 한 사람을 살리면 그 한 사람을 통해 열 명 백 명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 2016년 각자 한 영혼, 한 사람의 청년을 일으키고 살리는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 대한민국에 미래는 있는가? 한국 교회에 미래는 있는가?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 있어. 청년이 살아나야 나라도 살고 교회도 살고 미래와 희망이 있어. 죽어가는 청년들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야. 청년을 청년다운 청년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말씀 안에 있어. 봄학기 캠퍼스에 울지 말라 하시며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선포되고 청년들이 일어나는 역사가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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