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레미야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이창무 2016. 4. 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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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말씀 / 예레미야 2:1-3

요절 / 예레미야 2: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제 큰 딸과 둘째 딸이 어릴 때 아빠를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그래서 신년수양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엄마랑 안 자고 아빠랑 같이 자겠다고 떼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한 사모님이 살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 보겠다며 희안한 일이 다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니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사이가 좋기는 하지만 반응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시큰둥할 때가 많습니다. 좀 섭섭하기도 하고 예전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이때마다 저는 전에 찍어두었던 사진첩을 들추어 봅니다. 그때 그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아이들에게도 보여주면서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옛 사진첩을 다시 들추고 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사진첩을 왜 다시 꺼내신 것일까요?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나라가 점점 멸망을 향해 치달아 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바벨론 제국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예레미야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질 듯이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예레미야를 가리켜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국이 멸망 당하기 직전 예레미야를 말씀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해 마지막 경고이자 호소를 전달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전하도록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먼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대고 외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보통 사람의 귀에 대고 외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귀에 대고 말할 때는 속삭이듯이 말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귀에 대고 외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는 경우는 단 한 가지 경우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을 때 전혀 관심조차 주지 않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경우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여러 번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아예 귀에다 입을 가까이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십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우리는 이때 하나님이 하시려는 말씀이 분명히 분노와 책망의 음성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야 이 녀석들아. 내 말 좀 들으라고. 나한테 한 번 제대로 혼이 나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이 나쁜 놈들아" 이런 식의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분노의 음성도 책망의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놀랍게도 나와 너 사이에 있었던 신혼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웬지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는 진한 슬픔이 서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 사이의 신혼 시절이 도대체 언제였을까요? 하나님은 그 때가 바로 씨 뿌리는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너희가 나를 따랐던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 사이의 신혼 기간은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40년 광야 생활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이 관계가 양쪽 모두 다 언약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맺은 사건을 가리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결혼식이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이후 광야에서의 여정은 신혼 여행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혼 여행지가 광야라니 좀 이상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주로 가는 신혼 여행지가 어디입니까? 제주도는 다 옛날 일이 되었고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의 해변 휴양지로 많이들 가는 것 같습니다. 제 부모님은 신혼 여행을 부곡 온천으로 가셨었다고 했는데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부모님이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광야라니요? 아무 것도 없고 황량한 그 땅에서의 신혼 여행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는 신혼 부부에게 보라카이면 어떻고 부곡온천이면 또 어떻겠습니까? 장소가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오히려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서로를 더욱 의지하고 함께 헤쳐 나가면서 애정이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데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백성들과 늘 가까이서 함께 하시며 동행하셨습니다. 깨가 쏟아지는 대신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쏟아졌습니다. 신혼 때는 으레 그렇듯이 서로 티격태격할 때도 있었지만 곧바로 화해하고 회복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의 이루어질 멋진 미래를 함께 꿈꾸며 길을 걸었습니다. 3절에 나온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소산 중의 첫 열매처럼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신부인 이스라엘을 건드는 족속이 나타나면 재앙이 내리게 하셨습니다.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이 이스라엘을 잘못 건드렸다가 아주 큰 코를 다쳤습니다. 좀 거칠기는 하지만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의 관계가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인 유다 백성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외적으로 볼 때는 광야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씨만 뿌리기만 하면 쑥쑥 잘 자라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습니다. 텐트 대신 그럴듯한 이층집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민족 취급 받았던 그들이 이제는 주변 민족들에게 큰 소리칠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제 여행을 가려면 화려한 애굽이나 레바논으로 갔습니다. 고생했던 광야 시절은 기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 여기며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인 하나님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첫사랑의 감격이 식어져 버린 지금보다는 차라리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었던 광야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남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신혼 여행 때의 앨범을 펼쳐 놓았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했습니다. 아내의 기억도 되살릴 수 있을까 하여 같이 보자고 했지만 아내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옆 집에 사는 바알이라는 남자가 돈을 더 잘 벌고 능력 있는 것 같다며 비교하며 불평만 늘어 놓았습니다. 남편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신혼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한결같이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데 아내인 유다 백성의 마음은 이미 냉랭해진지 오래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주님과의 첫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내 죄를 대신 짊어 지시고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음을 알고 우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도 자격도 없는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음을 깨닫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행복을 느꼈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때가 없었습니다. 이 사랑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친구에게 양들에게 닥치는 대로 전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의 환경은 광야처럼 열악했습니다. 주머니에 돈도 없었고 알아줄만한 지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센타 식당에서 라면을 끊여 먹어도 즐거웠고 지하 단칸방 장막에서 열 명이 살아도 웃음이 그치지 않았었습니다. 가슴 속에는 성서한국 , 세계선교의 꿈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시절에 비해서 지금 더 성숙해지고 세련되어졌습니다. 경험도 많이 쌓였고 더 노련해졌습니다. 성경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나름 열매도 생겼습니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더 뜨겁게 더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치 권태기의 부부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냉랭하고 형식적이 되었습니까? 혹시 찬양을 불러도 감격이 없이 힘없이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요?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이 그저 의무감으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지 않은지요? 뜨거운 기도를 해 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 것은 아닌지요? 그냥 모든 것이 귀찮고 피곤하게 여겨지지는 않는지요?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가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쏟은 수고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책망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우리가 아무리 99가지를 잘 하고 있다 하여도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주님께 책망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사랑을 기억하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첫사랑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십니다. 첫사랑을 망각하고 점점 마음이 멀어져 가는 쪽은 언제나 우리들입니다. 더 멀어지기 전에 다시 첫사랑의 감격, 신혼의 사랑을 회복하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저는 작년에 신대원을 졸업한 이후 부터 본격적으로 풀타임 목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작년 봄학기에는 거의 매주 요한복음 주일 메시지를 전하느라고 아주 힘들었습니다. 어느날 미용실에 갔더니 숱이 많던 머리카락이 엄청 빠졌다면서 요새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다 요한복음 메시지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 일이 너무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획했던 목자 학교와 예배 학교 프로그램이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예전에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은 일들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척이나 오래 걸리던 일들도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명 이것 역시 성장이고 진보였기 때문에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 버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그 무엇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순회인턴 지원을 위해 여섯 페이지 인생 소감을 쓰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주님과의 첫사랑이었습니다. 30대 중반 선교사 파송을 위해 준비하면서 제 마음 속에 품었던 초심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인생 소감을 다시 쓰면서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주님의 사랑만 생각하면 너무 행복해서 늘 강의실에서 빙그레 웃고 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프로그래머였던 시절 어느 까페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겠다는 찬송을 불렀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경험과 스킬이 쌓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예수님과의 첫사랑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인생 소감을 쓰면서 제가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앞으로도 예수님과의 첫사랑의 감격을 간직하고 더욱 뜨겁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잊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와의 첫사랑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은 식었을지 몰라도 주님의 마음은 여젼히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신랑되신 주님과 함께 했던 신혼 여행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스토리는 머나 먼 추억으로 묻어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날마다 다시 꺼내서 되새겨보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진심은 곧 무뎌지고 냉랭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첫사랑이 희미해졌다면 다시 한 번 인생소감을 써 보는 방법도 좋은 것 같습니다. 방법이 무엇이든 우리가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청년의 인애와 신혼 떄의 사랑을 늘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신앙의 권태기를 극복하고 주님과 더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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