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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 혼인잔치의 비유
    설교/마태복음 2015.04.30 11:26

    2012년 봄학기 복음서 제 1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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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  /  마태복음 22:1-14

    ▣ 요절 /  마태복음 22:14


                     


                          천국 혼인잔치의 비유 




           예전에 펠시 콜레라는 사람이 자기가 직접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면서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토마스 주남이란 할머니가 쓴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이 유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후에 알고 보니 펠시 콜레는 성경도 안 읽고 주일에 교회에 나가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천국과 지옥 체험담에 너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성경만으로 충분합니다. 성경은 천국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천국은 혼인 잔칫집처럼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며, 에덴동산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준비하신 곳입니다. 듣기만 해도 충분히 가슴이 뛰고 기대와 소망이 넘치는 말씀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천국을 지금 여기서 맛보기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습니다. 바로 한 달여 앞으로 다가 온 여름 수양회입니다. 여름 수양회는 천국 혼인잔치의 축소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번 대천 여름 수양회가 천국의 기쁨과 풍요와 평화를 맛보고 만끽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비유의 달인이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천국을 혼인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돌잔치, 생일잔치, 환갑잔치, 칠순 잔치 등등 많은 잔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잔치만큼 즐거운 잔치는 없습니다. 신랑신부는 자기가 결혼해서 기쁘고, 장막 형제들은 간만에 공짜로 포식을 해서 기쁩니다. 처녀총각들은 앞으로 나도 결혼할 꿈에 부풀어 기쁘고,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꿈같던 신혼 시절을 추억하며 기뻐합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고생 고생하면서 자식을 낳고 키워 온 부모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장차 왕위를 물려 줄 황태자의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임금은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황태자의 혼인잔치는 임금뿐 아니라 그 나라 모든 백성들에게 경사 중의 경사였습니다. 1981년도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가 런던 세인트폴 처치(Saint Paul Church)에서 성대한 세기(世紀)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 결혼식을 전 세계 7억 명의 인구가 위성생중계로 동시에 지켜보았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중계를 보았는데 다이애나가 썼던 면사포가 엄청나게 길어서 교회의 높은 계단을 다 덮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저는 영국 사람도 아니면서 들뜨고 흥분이 되었는데 그 나라 백성들은 아마 난리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천국을 하필이면 혼인잔치에 비유하셨을까요? 그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이 혼인잔칫집과 같은 기쁨과 즐거움과 풍성함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부담스럽고 긴장되고 까다로운 삶이 아닙니다. 딱딱하고 율법적 도덕생활도 아닙니다. 혼인잔치와 같이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고 기대와 꿈과 소망이 넘치는 축제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신랑 되신 예수님과 날마다 잔치를 벌이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황태자의 혼인잔치에는 무엇이 준비되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임금은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선포합니다. 유대에서는 결혼식 일 년 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임금은 먼저 혼인잔치의 기간을 고심 끝에 학생들은 방학을 했고 직장인은 여름휴가를 낼 수 있는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삼박사일로 정했습니다. 또 한 종을 시켜 혼인잔치 장소로 가장 알맞은 곳을 찾아보도록 했습니다. 그 종은 그레이스 승합차를 몰고 전국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마침내 아름답고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천 청소년 수련원을 찾아내었습니다. 이어서 한 여종이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홍보 포스터가 전국 방방곡곡에 붙여졌습니다. 비전 웍스(Vision Works)에서는 날밤을 새면서 멋진 홍보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혼인잔치에 춤과 음악이 빠질 수 없었습니다. 댄싱 팀은 땀을 비 오듯 쏟으며 태권무와 각국 전통 춤을 연습했습니다. 세계적인 명지휘자 한 마에 선생님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팀은 매주마다 모여 축하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뒤를 이어 예쓰 찬양팀이 경배와 찬양 순서에 부를 노래들을 목이 쉬도록 연습하였습니다. 천상의 목소리가 모인 특송팀에서는 환상의 하모니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뼈 속까지 시릴 정도로 시원한 수박과 참외, 토마토, 복숭아 자두 같은 신선한 여름 과일들이 사모님들의 손에 의해 간식으로 준비되었습니다. 모든 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셋째날 밤 바베큐 파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장시간 난상토론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돼지 바베큐도 준비하고 다른 음식도 풍성히 준비하여 선택의 폭을 넓히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혼인잔치에는 이런 육의 양식뿐 아니라 영의 양식이 더욱 풍성하였습니다. 개회예배 말씀은 '주는 그리스도'이었는데 이 말씀을 먹이기 위해 태평양 너머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강사를 초빙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씀도 있었고, 학생과 학사에게 각각 딱 맞는 맞춤형 주제 강의도 있었습니다. 말씀 강사들의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주옥 같은 천상의 메시지들이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은혜와 감동이 버무려진 진솔한 인생 소감까지 더해졌습니다. 이 말씀들을 풀코스로 먹고 나면 아무리 시커먼 죄인이라도 변하여 새사람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여기서 그 청한 사람들이란 원문에는 현재완료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과거에 이미 초청을 받았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당시 풍습으로는 결혼식 일 년 전부터 초청장을 사람들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임박했을 때 종들은 초청했던 사람들이 부산에 살건 제주도에 살건 지방까지 심방을 가서 직접 에스코트해 왔습니다. 이처럼 황태자의 혼인잔치는 아무나 참석할 수 없고 오로지 선택 받은 자들만이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초청을 받아 황태자의 혼인잔치에 참석하게 된 것은 말할 수 없는 특권이요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신입생 합격자 발표 때부터 청함을 받았던 그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하였습니다. 고의적으로 초청을 거절한 것입니다. 당시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더구나 임금의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보통 임금이라면 당장 초청을 거절한 사람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임금은 달랐습니다. 넓은 아량과 인내심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처음 보냈던 종들이 경험이 없어 실수를 했을까 하여 이번에는 경험 많고 노련한 종들인 유윤희 사모님과 명사라 사모님을 콤비로 보내어 다시 한 번 초청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사실 임금은 아쉬울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황태자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잔치에 참석하여 즐길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하나님을, 아들은 예수님을, 종들은 사역자들(또는 목자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또는 양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 잔치를 준비하시고 인생들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천국 잔치가 완벽하게 준비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말은 하나라도 빠진 것이 없이 그리고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준비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외아들의 혼인잔치이니만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잔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임금의 마음이었습니다. 천국 잔치의 축소판인 여름 수양회를 섬기는 우리의 마음도 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기를 소망합니다. 매년 하는 수양회라고 해서 대충대충 적당히 섬기려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종의 도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작은 일 하나를 맡았더라도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동참하여 천국 잔치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천국은 신랑 되신 예수님의 혼인잔치와 같습니다. 이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계시록 19장 7절부터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구원의 잔치요 생명의 잔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잔치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와서 즐기세요" "와서 은혜를 받으세요" "와서 천국의 맛을 음미해 보세요" 이것이 우리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한 명의 양이라도 더 수양회에 데려가고자 기도하고 전화하고 심방하며 무진 애를 쓰는 것입니다. 요즘 죠이(JOY) 선교회에서는 학생들의 수양회비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졸업한 선배들의 기부를 받아 반값 수양회비를 실현하자는 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만 안 했지 이미 오래 전부터 반값 수양회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가볍게 등록하고 가방 하나 매고 와서 이 잔치에 참석하기만 하면 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얼른 가고 싶으시죠? 이런 자리는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합니다. 아직 초청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중에 알면 무척 섭섭해 할 것입니다. 여름 수양회에 초청을 받은 모든 학생들은 이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고 꼭 붙잡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문에서 청함 받은 자들은 왕의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들은 왕의 초대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종들을 그림자 취급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자기 밭과 자기 사업에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초청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양회 초청을 거절하는 양들에게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아르바이트가 있어요." "가족 여행을 갈 거에요." "학원에 가야 해요" "토익 시험을 봐야 해요" 물론 나의 계획과 나의 일들이 소중합니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아닙니다. 나를 지으셨고 내게 생명을 주셨고 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나의 왕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장 소중합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왕되신 하나님의 초청에 가장 먼저 응답해야 합니다. 일단 징집영장이 떨어지면 가기 싫어도 군대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군대 체질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원섭 형제님도 갔고 김모세 주니어 형제님도 갔습니다. 하물며 논산훈련소로 들어오라는 것도 아닌데, 즐거운 황태자의 혼인잔치에 오라는 임금의 초청을 꼭 그렇게 뿌리쳐야 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6장2절은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언젠가는' 이렇게 계속 미루다 보면 아마도 무덤 속에 들어 가서야 시간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더 이상 천국 잔치에 아무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천국 잔치에 오소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만사를 제쳐두고 먼저 거기에 가야만 합니다. 양들뿐 아니라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능하면 수양회 첫날부터 참석할 수 있도록 휴가를 내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직장에서 짬밥이 안 될 때 휴가를 이틀 연속으로 낸다는 것이 얼마나 눈치 보이는 일인지 잘 압니다. 그러나 아예 일찍부터 안 가면 안 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 가니까 어렵지 않게 휴가를 내서 풀타임으로 참석이 가능했었습니다. 여건도 문제이지만 우리의 소원이 중요합니다. 이번 수양회가 개회 예배 때부터 끝날까지 계속 꽉 찬 수양회가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특별히 갈 데도 없으면서 임금의 초청을 거절한 남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들이 밤낮으로 전화를 걸고 심방하여 초청을 하자 성가시고 귀찮았습니다. 심심풀이로 종들을 잡아서 때리고 심지어 죽여버렸습니다. 이는 임금과 한번 맞짱을 떠 보겠다는 것입니다. 명백한 도전이고 반역이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임금은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청을 거절하는 사람들을 지금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비하심과 긍휼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언젠가는 은혜와 자비를 거두어 가실 때가 있고 그 때는 공의와 심판 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초청을 받은 자들이 초청을 거부함으로 혼인잔치는 쫄딱 망하고 말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은 다시 종을 불러 명령을 내렸습니다. 8절과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여기에는 어찌하든지 혼인잔치를 손님들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임금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네거리에는 할 일 없는 사람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람, 부랑자들, 어중이떠중이들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황태자의 혼인잔치에 들어올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10절에 보면 종들은 명령을 따라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잘 생긴 사람이나 못 생긴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아무나 다 데리고 왔습니다. 수양회를 이제 한 달 정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도 원래 관계성이 있던 양들이 초청을 거절했다고 해서 너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네거리에 가서 닥치는 대로 초청해서 수양관을 가득 채우면 됩니다. 한참 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양들도 한번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발로 찾아 올 용기는 없지만, 목자가 다시 불러 주기만 하면 한 번 가고자 하는 양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 모임에는 대학생이 중요하지만 꼭 대학생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손정희 목자님은 직장 생활 하던 중에 학창 시절 미팅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던 뉴욕 정 요나단 선교사님의 초청으로 여름 수양회에 처음 왔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큰 은혜를 받고 성장하여 지금은 시카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광주 김 느헤미야 목자님은 고등학교 때 수양회에 와서 변화되어 대학 일 학년 때부터 여러 명의 기숙사 양들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한 달이면 아직 시간이 충분히 있습니다. 아직 우리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그러나 의외로 가까운 곳에 겸비하고 갈급한 심령으로 초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힘써 초청 역사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르신 자들로 수양회를 가득 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천국잔치 초청에 응했다 할지라도 잔치에 참석하려면 딱 한 가지 조건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복을 입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정인성 목자님이 과거 B.C 시절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려다가 대충 입은 옷 때문에 물을 흐린다며 입장을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훤칠하고 잘 생긴 사람도 예복을 입지 않으면 클럽에서 쫓겨 납니다. 하물며 황태자의 혼인잔치에 참석하려면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금은 그에게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물었습니다(12). 그 사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종들이 갈아입을 예복을 예식장 입구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임금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것이며 황태자의 혼인잔치를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그는 결국 사환들에 의해 손발이 묶인 채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13).


    천국 잔치에서 예복을 입는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수양회에 참석하려면 'Why not?'이 가슴에 붙어 있는 수양회 티를 꼭 입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사람과 짐승은 차이점이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람은 옷을 입지만 짐승을 옷을 입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복은 인간됨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옷을 입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 줍니다. 타락하기 전에 사람은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가려 줄 옷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옷이 없으면 무엇으로 내 연약함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옷이 없으면 무엇으로 내 허물과 죄를 덮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옷에는 두 가지 종류의 옷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스스로 지어 입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입니다. 이런 옷에는 어떤 옷이 있을까요? 예쁘고 잘 생긴 외모와 고급 브랜드 명품으로 치장한 옷이 있습니다. 돈의 옷이 있습니다. 자동차와 집은 종종 옷의 연장이 되기도 합니다. 권력의 옷도 있습니다. 또 자기의 능력과 재능으로 옷을 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코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없는 옷들입니다. 자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옷을 입고도 계속 불안해 하며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옷은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피 흘려 만든 가죽옷입니다. 이 옷은 내가 짓지 않은 옷입니다. 이 옷은 하나님께서 친히 재단하시고 바느질하신 옷입니다. 이 옷은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만들어 진 옷입니다. 이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로마서 13장 14절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옷입니다. 그리스도는 의의 옷입니다. 우리는 의롭지 않지만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옷을 보시고 우리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오직 이 옷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능히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옷입니다. 이사야서 61장 10절은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여름 수양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다 천국잔치의 기쁨을 맛보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소감을 깊이 쓰면서 지금까지 내가 입고 있었던 겉만 화려만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의로우신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결혼식 날 신랑과 신부처럼 아름답게 빛이 날 것이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4절을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 잔치에 초청을 받습니까? 그러나 택함을 입은 사람 즉 천국 잔치를 누리는 사람은 항상 소수입니다. 그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이요 구원과 영생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요 천국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자기가 입었던 죄악의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 수양회로 부르시는 주님의 초청에 기꺼이 응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갈아입음으로 천국잔치를 풍성히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2.6.24 이창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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