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조직신학

조직신학 신론 요약

이창무 2015. 6. 1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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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장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아는 것은 다른 모든 교리의 기초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나 선입관 때문이며 둘째로 성경에 나타내신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논쟁적 주제들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피해야 할 두 가지 실수는 지나치게 사색적으로 접근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모호하게 정의하려는 태도이다.

1. 속성의 성격

하나님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님의 본질을 하나님의 속성이란 부른다. 각 속성들은 전 인격적이며 항속적이며 하나님의 존재나 본질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 속성을 포괄적으로 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하나님의 속성들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형성된다. 

2. 속성의 분류

하나님의 속성은 첫째, 하나님만이 가지진 고유한 속성인 비공유적 속성과 인간과 나누어 가지신 속성인 공유적 속성으로 분류하는 방법, 둘째, 하나님의 본성 안에 남아 있는 내재적 혹은 자동적 속성과 피조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유출적 혹은 타동적 속성으로 분류하는 방법, 셋째로 하나님 자신 안에 계시고 있는 속성인 절대적 속성과 다른 주체들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상대적 속성으로 분류하는 방법, 넷째로 옳음과 관계되는 도덕적 속성과 도덕과 무관한 위대한 속성인 자연적 속성으로 분류하는 방법이 있다.

3. 위대하심의 속성

(1) 영성: 하나님은 영이시라 물질로 구성되지 아니하시며 특정 시공간을 점유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신체를 가지신 분처럼 묘사된 신인동형론적인 표현들은 인간적인 유추 방식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 방법들이지 결코 하나님이 몸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 기독교는 다른 우상 숭배나 자연 숭배 종교와 구별된다.

(2) 인격성: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 자의식과 의지와 느낌이 있으시며 다른 인격적인 존재들과 상호관계를 맺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인격성은 하나님에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과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시는 방식과 행위 속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므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랑과 이해의 인격적 관계성 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어떤 힘이나 운동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 생명 :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으로 생명을 특징으로 하시는 분이시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다른 우상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분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생명을 소유하실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의 근거가 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생명들은 하나님께 의존하여 생명을 얻게 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으로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으신다. 흔히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는 생각은 이런 점에서 오해이며 하나님은 자존하시며 창세 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실 분이시다.

(4) 무한성 : 하나님은 제한 받지 않으시며 제한 될 수도 없는 무한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공간의 차원에서 볼 때 그 어디에나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신 곳이 있다는 느낌은 인간의 심리적인 차원에 속한 일일 뿐이지 신학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하나님은 또한 시간에 있어서도 무한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성장하거나 발전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시간에 구속 받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 말이 하나님이 일의 순서나 흐름을 무시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지식과 지혜에 있어서 무한하신데 이를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하나님은 그 능력에 있어서 무한하신데 이를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라 표현한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은 결코 좌절되는 법이 없이 반드시 성취된다.

(5) 불변성: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분으로 어떤 양적 변동이나 혹은 질적 변동이 없으신 분이다. 하나님의 본성은 늘 한결 같으시며 이와 같은 본성에서 흘러나온 그 분의 계획과 생각들은 변함이 없이 일관되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변성이 희랍 철학적인 부동성의 개념은 아니다. 하나님은 무감각하게 세상사에 초연해 있으신 분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과정 신학은 이러한 희랍 철학적 부동성 개념이 가진 문제점을 잘 지적하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이 점만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불변성의 개념을 약화시켰다는 문제점이 있다.

2장 하나님의 선하심

1. 도덕적 성질

(1) 도덕적 순결성 : 하나님은 모든 악함과 허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신 분이시다. 첫째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신데 이는 곧 하나님은 피조 세계와 전적으로 분리된 분이시며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악한 것들로부터 인해 오염되시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받아 죄로부터 떠난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둘째로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율법이 의롭고 하나님 자신이 이 율법과 일치되게 행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명목 상 의로움의 기준이 되시고 실제로도 의롭게 행하시는 분이시다. 셋째로 하나님은 자신이 의로우실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의롭게 살도록 요구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며 편파적이시지 않으시다. 이 세상에서 불공평해 보이는 일이 종종 발생하지만 결국 종말의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의대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게 될 것이다.

(2) 완전성: 하나님은 진리와 관련하여 첫째로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진정성이 있으시다. 다른 우상들은 모두 참되신 하나님을 모방하는 존재일 뿐이요 근본적으로 거짓이다. 그러나 하나님만 홀로 참되시고 거짓이 전혀 없으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사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참되게 나타내시는 정직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거짓을 말씀하시지 않으시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신뢰할 만 하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도 늘 진실될 것을 요구하신다. 셋째로 하나님은 자신의 진실됨을 스스로 입증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들은 항상 성취하신다. 신자인 우리들도 이 하나님을 본받아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신실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3) 사랑 :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속성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첫째로 이기적인 관심을 떠나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비이기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은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이타적인 행위 속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지으셨기에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며 신자들 뿐 아니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인자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공로나 업적이나 자격을 기초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 행하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구약에 걸쳐 일관되게 증언되는 바이며 구원 사건에 있어 그 절정을 드러내었다. 셋째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온정을 베푸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다. 넷째로 하나님은 오래 동안 심판을 유보하시고 구원과 은혜를 계속 베푸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믿는 이들에게 사랑이 특징적인 요소로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기초해 우리도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 긴장관계인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사이에 긴장 관계가 발견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통합된 존재이시며 그분의 신적 속성들은 서로 조화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란 사랑하는 공의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로운 사랑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의 공의와 사랑으로 대하셨다는 증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게 두어 버리실 정도로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아들을 고난 가운데 내어 주신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3. 하나님의 속성을 연구하는 최상의 방식

하나님의 속성은 이성적인 사색만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는 최선의 길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속성과 행위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속성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3장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은 균형 있게 판단되어야 한다. 어느 한 쪽을 강조하다가 다른 한 쪽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1. 내재성

(1) 성경적 기초 : 성경은 하나님이 자연과 인간 본성 그리고 역사 가운데 임재하시고 그 안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이 만물의 근원이 되시고 또한 만물을 보존하고 계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내재성 개념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결과적으로 범신론과 유사한 입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은 자연 그 자체로 환원될 수 없으시며,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신분을 갖고 계시다. 

(2) 내재주의의 현대적 형태 : 고전적 자유주의에서는 하나님은 자연을 초월해 계시거나 자연 밖에 존재하시기 보다는 자연 안에서 존재하시는 분으로 믿는다. 자유주의자는 모든 일들은 자연적인 수단으로 이뤄지게 되다고 여기며 그에게 세속적인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는 성경 계시의 특별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인간 본성의 부패를 믿지 않는다. 또한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른 인간들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분이시며 다만 하나님을 온전히 발견한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만을 지닌다. 또 다른 입장으로 폴 틸리히가 있는데 그에게 하나님은 모든 존재들의 기초가 되시며 단순히 실존하시는 분이 아니라 존재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 가운데 임재하시나 그 존재들과 동일시 되지 않는 분이라는 점에서 틸리히의 생각은 범신론과 다르다. 그러나 틸리히가 말하는 하나님은 인격성이 배제되고 창조 신앙과도 불일치한다는 점에서 성경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20세기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한 신학 중엔 사신신학도 있다. 사신신학이란 하나님이 본래는 초월적 존재이셨으나 오랜 기간에 걸쳐 초월성을 포기하고 인간과 동일시하게 되셨다는 생각이다. 사신신학에서는 거룩과 세속의 경계가 사라지게 된다. 사신신학은 틸리히와 마찬가지로 인격성 개념이 약하고 기독교 윤리의 기반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3) 내재성 속에 함축된 의미 : 내재성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첫째,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항상 직접적으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일하신다는 뜻이며 둘째로 하나님은 기독교인 혹은 기독교에 속한 기관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을 사용하실 수 있으며 셋째로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창조하신 일에 감사해야 하며 넷째로 피조 세계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알고 배울 수 있으며, 다섯째 복음이 불신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2. 초월성

(1) 성경적 기초 : 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 지식과 선하심과 거룩하심과 정결하심에 있어서 초월적인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2) 초월성의 방식 : 전통적인 초월성에 대한 이해 방식은 주로 장소적인 개념으로 하늘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해 방식은 천체 물리학의 세계관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당혹감을 주고 신학적으로도 하나님의 영적인 측면을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발생시키고 있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을 전적 타자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과 무한한 질적 차이로 분리되신 하나님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 견해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나 교제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약점이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초월성 개념을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질적 구별과 차원의 초월성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이 질적 관점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실 뿐 인간의 최상의 상태는 결코 아니라는 의미이며 또한 차원상의 초월성 개념은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께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3) 초월성 속에 함축된 의미 : 초월성의 교리는 첫째로 인간보다 고차원의 영역이 있다는 의미를 알려 준다는 의미와 둘째로 하나님은 결코 인간적 개념으로 온전히 다 알 수 없는 분이라는 점을 셋째로 우리의 구원이 스스로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을, 넷째로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는 영원하다는 점을, 다섯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경외해야 할 분이라는 점을, 여섯째로 하나님께로부터 초월적인 역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함축적인 의미를 제공한다.

4장 삼위일체의 하나님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만의 독특하면서 필수적인 교리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서 명백하게 가르쳐주지는 않으나 성경 전체의 증언을 종합할 때 인식하게 되는 교리이다.

1. 성경의 가르침

(1) 하나이신 하나님 : 고대 히브리인들의 종교는 강력한 유일신 종교였다. 유일성에 대한 증거는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 계명에 잘 나타나 있으며 신명기 쉐마로 알려진 말씀 속에서 분명히 증거되고 있다. 또한 신약의 여러 곳에서도 하나님의 유일성이 증언되고 있다.

(2) 삼위의 신격 : 성부 하나님의 신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성자 예수님의 신성에 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없지 않으나 성경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바울 서신, 히브리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자기 이해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성령님을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성경 구절도 상당히 있으며 하나님과 성령님을 상호교체적으로 표현한 구절 속에서 성령님의 신성을 알 수 있다.

(3) 삼위일체성 : 표면적으로 하나님의 유일성과 삼위의 신성은 상호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 삼위 하나님을 병행적으로 동등하게 표기한 구절들이 있다는 점, 복음서에서 나타난 삼위 하나님의 내적인 역동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 분명한 표현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성경의 지지를 받는 정당한 교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2. 역사적 교리 형성

(1) 삼위일체의 경륜적 이해 : 히폴리투스나 터툴리안은 삼위의 하나님이 창조와 구속 사역에서 드러나는 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해 주로 언급하였다. 터툴리안에게는 하나님의 일체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결국 삼위일체에 대해 모호하고 애매하게 설명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2) 역동적 군주론(단일신론) : 데오도투스나 사모사타의 바울 같은 인물들은 예수님이 본질상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인간 예수 안에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역동적으로 임하였다고 보았다.

(3) 양태론적 군주론(단일신론) : 서머나의 노에투스나 사벨리우스 같은 사람들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다양하게 호칭할 수 있는 하나의 신격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개념에 따르면 삼위의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세 이름으로 불리는 하나의 위격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견해는 매우 인기 있는 대중적인 견해가 되었으나 성경에서 삼위 하나님이 동시에 행하시는 사역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할 길이 없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4) 정통적 입장 : 아타나시우스나 갑바도기아 교부들에 의해 증거되고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교회의 정통 교리로 확증된 삼위 일체 교리는 하나님은 삼위로 나뉘어진 위격으로 존재하시나 하나의 공통된 본질을 가지고 계시다는 교리이다. 이 교리는 양태론 혹은 그 반대편에 있는 삼신론의 입장을 모두 배격한다. 

3. 삼위일체 교리의 본질적 요소

삼위일체 교리는 첫째 하나님의 일체성을 출발점으로 삼으며 둘째로 삼위 하나님의 각각의 신성을 인정해야 하며 셋째, 하나님의 단일성과 삼위성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며 넷째, 삼위 하나님은 모두 영원하시며 다섯째 한 위격이 다른 위격에 비해 열등하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시다라는 것과 여섯째 근본적으로 이 교리는 우리 이해를 초월하는 교리라는 점을 본질적인 요소로 한다.

4. 유비적 설명

삼위 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유비적인 관계를 얻어내어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유비는 쉽게 양태론이나 삼신론으로 빠져드는 위험성이 있다. 어거스틴은 사랑하는 자, 사랑 받는 자, 사랑이라는 관계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비유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관점은 삼위일체 관계의 인격성을 잘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으나 이런 심리학적 유비는 일체성 혹은 삼위성 어느 한 쪽으로 쉽게 기울어지는 약점이 있다. 결국 삼위일체 교리는 사실 상 인간의 언어나 유비로 완전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 모두에게 경배 드려야 한다는 점에서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교리이다.

2부: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5장 하나님의 계획

1. 핵심 용어 정의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지지해 준다는 점과 하나님과 의도와 행위를 강조한다는 점, 하나님의 지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작정이라는 말보다는 계획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또한 예정과 작정을 동의어로 쓰기도 하나 예정은 작정보다 협소한 개념으로 주로 구원과 심판의 맥락에서 사용하게 되며 작정은 더 넓은 범위로 역사 안에서 모든 일들에 관한 하나님의 결정이란 의미로 정의한다.

2. 성경의 가르침

(1) 용어 : 성경은 하나님의 설계, 사전적인 계획, 특별한 작정, 앞서는 지식, 하나님의 의지와 소원, 선하신 성부의 뜻이라는 개념 등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표현하고 있다.

(2) 구약의 가르침 : 구약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떤 일들이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지금 발생한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구약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이끄시는 일들은 영원부터 준비된 계획을 펼치시는 것이며 자기 백성들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기초한 일들이다.

(3) 신약의 가르침 :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아래서 발생한 것들이었다.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것들의 성취로서 잘 나타나 있으며 비록 예언과 무관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던 필연적인 사건들로 이해된다. 사도 행전에서는 하나님의 목적이 강조되어 나타나며 바울 서신에서는 하나님의 계획 하에서 모든 일이 발생한다는 사상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3. 하나님의 계획의 성격

하나님의 계획은 첫째 영원으로부터 계획이며 둘째로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들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속하며 셋째로 이 모든 계획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넷째로 하나님의 계획은 전포괄적이며 다섯째 하나님의 계획은 유효하며 여섯째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본성보다 행위에 관련되어 있으며 일곱째, 하나님의 계획은 우선적으로 하나님 스스로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지도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에 관련되어 있고 여덟 번째,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인간의 행위도 포함되어 있으며 아홉 번째 하나님의 계획은 구체적인 부분이라 할지라도 변할 수 없다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4. 논리적 우선순위: 하나님의 계획인가? 아니면 인간의 행위인가?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논리적으로 우선하며 인간의 결정과 행동들은 그 결과라고 믿는다. 반면 알미니안들은 인간의 자유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예정보다는 예지 쪽에 강조점을 두어 설명하려고 한다.

5. 온건한 칼빈주의의 형태

성경적 근거로 보자면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알미니안들의 예지 개념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강제하거나  속박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리는 그 결정을 좌우하는 요소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이다. 나의 존재와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설정해 놓으신 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개개인들의 의지에 매우 설득력 있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만드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에 괴리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일들로 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여서 보면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 일이지만 그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뜻하신 경우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계획하셨다 하더라도 그 일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인간의 참여를 포함시키기로 작정하고 인간의 계획의 전체를 다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헌신과 수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6.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이해

역사에 대해 힌두교 윤회 사상처럼 역사는 순환한다는 견해가 있다. 반대로 역사는 종말과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종말철학이 있다. 실존주의에서는 역사에 대해 비관적이며, 다만 인간이 스스로 그 의미를 창조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회 진화론에서는 역사에 대한 낙관론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역사가 스스로의 원리에 따라 종국적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에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계획하셨고 또 그 뜻대로 진행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을 믿는다.

6장 하나님의 처음 사역: 창조

1. 창조 교리를 연구하는 이유

창조 교리는 성경이 강조하고 있다는 점, 교회 신앙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다른 교리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 다른 종교와 세계관과의 차별성을 형성해 준다는 점, 기독교와 자연과학과의 대화의 접점을 마련해 준다는 점, 기독교 내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2. 창조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의 내용

(1) 무로부터의 창조 : 하나님은 이미 있던 어떤 것들을 변형해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던 무의 상태로부터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의해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  무로부터라는 말은 무라는 실체를 상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선재하는 재료들을 사용하지 않고서 라는 의미이다. 모든 실체를 존재케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오직 그분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2) 전포괄적인 성격 :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의 일부분만을 창조하시고 나머지 부분들은 다른 기원을 갖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피조 세계 전체를 만드셨다. 창세기 1장의 천지란 표현은 온 우주만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3) 이원론에 대한 거부 : 창조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비록 사탄이라 할지라도 이미 있던 것을 변질시키거나 타락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없는 것을 만들 능력은 전혀 없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 창조 사역에 있어 성경은 삼위의 세 위격이 모두 관여하였음을 증거하고 있다. 삼위 하나님은 창조 사역에서 각 위의 구별한 사역을 수행하셨다. 구약에서 마치 창조가 성부의 단독 사역인 것처럼 묘사된 것은 아직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5) 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 :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창조하셔야 할 필요는 없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다. 생명 없는 피조 세계와 생명 있는 피조 세계 모두 이 목적에 온전히 봉사하고 있다. 인간만이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이며 그러므로 인간은 가장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존재이다.  

3. 이후의 창조 사역

원재료를 만드시고 그 원재료로부터 만드시는 후속 작업 역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포함되는 것이다. 최근에 새롭게 나타난 종들 역시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한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이 창조 사역의 보조자 혹은 협력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4. 창조 교리의 신학적 의미

창조 교리는 첫째 모든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점, 둘째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인간의 창조 행위와는 다른 특별한 것이라는 점, 셋째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느 것도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없다는 점, 넷째 인간은 피조 세계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점, 다섯째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준다는 점, 여섯째 피조물들 사이에 연결성과 유사점을 추론케 해 준다는 점, 일곱째, 이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되었다는 일원론을 배격한다는 점에서 신학적인 의미가 있다.

5. 창조 교리와 과학과의 관계

신앙과 과학 간의 갈등은 오래된 일이다. 길키는 이 문제를 학문과 신학, 종교와 비종교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려 해결하려 하였으나 그의 주장은 올바른 성경관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우리가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1) 우주의 연대 : 성경을 근거로 하면 우주는 비교적 매우 짧은 나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과학적 탐구의 결과는 이에 비해 매우 오랜 나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두 개가 서로 상충된다. 이에 대해 간격 이론, 홍수 이론, 이상적 시간 이론, 세대-날 이론, 회화적 날 이론 등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이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설명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루라는 개념이 24시간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이었다는 세대-날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도그마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미흡하며 더 숙고가 필요한 상태이다.

(2) 창조계 안에서의 발전 : 생명체의 발전에 대해 과학과 창조 교리가 충돌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저등한 생명체로부터 고등한 생명체로 진화해서 다양한 생물이 출현했다고 믿는다. 반면 어떤 기독교인들은 모든 생명체가 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에 의해 출현했다고 믿는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처음 창조 단계에서는 하나님의 직접 창조가 있었으나 그 다음부터는 진화의 단계를 거치게 하셨다고 믿는다. 가장 적절한 입장은 점진적 창조론으로서 각각의 종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로 지어졌으나 그 종 내에서의 다양한 변이는 진화의 방법을 통해 이뤄졌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대진화나 종간 발달은 부정하고 오직 소진화나 종내 발달만을 인정하는 견해로 과학적 증거와 성경적 진술과도 대체로 부합한다고 본다.

6.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유일성

창조 사역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인간도 이와 유사한 사역을 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만약 인간이 무생물로부터 어떤 생명체를 만들어내게 된다면 이것은 오히려 창조가 고도의 지적인 작업의 결과물임을 입증하는 셈이 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체는 이미 존재하던 것으로부터 생성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무로부터 창조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7. 창조 교리의 함축된 의미

창조 교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직접적인 창조 사역 뿐 아니라 그 이후 간접적인 창조 사역을 포괄한다는 점, 피조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일의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 하나님 이외 그 누구도 스스로 충족하거나 영원하지 못한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7장 계속되는 하나님의 사역: 섭리

창조가 우주를 시작하신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섭리는 창조된 우주를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1. 보존으로서의 섭리

보존이란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유지시키는 것을 말하며 여기에는 보호와 필요에 대한 충족이란 두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신구약 성경에는 보존 사역에 대한 증거들이 매우 많이 있으며 이는 피조 세계가 하나님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힘에 의해 유지될 수 없음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특별히 신자에게 있어 이 보존이 위험이나 시험들로부터 분리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들 안에서 보존케 하시는 사역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존 교리는 이 세계가 자율적이라는 이신론 사상을 배격하며 그 반대로 계속적인 창조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상도 거부한다. 하나님의 보존은 특별히 큰 사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들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 섭리를 믿기에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고 계획을 세워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2. 통치로서의 섭리

(1) 하나님의 통치의 범위 : 하나님의 통치는 자연 만물 속에 미치며, 인류의 역사와 민족들의 운명도 주관하며 개개인의 삶 속에서도 주권적으로 역사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우연적으로 보이는 일들까지 모두 미치며 우주적이다. 또한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들도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는 인간들의 죄악된 행위들까지도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사역의 일부일 뿐이다.

(2) 하나님의 통치와 죄의 관계 : 하나님은 죄와 관련하여 그것을 방지하시거나 허용하시거나 지도하시거나 제한하실 수 있다.  그 어느 경우에 있어서든지 하나님의 인간의 죄의 원인이 되실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관계 속에서 행하시는 분이시다. 

(3) 하나님의 통치의 주요 특징 : 하나님의 통치 행위는 보편적이며 자기 백성들 뿐 아니라 신자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미치며 항상 선하시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는 자기 백성들에게 인격적으로 임하시며 우리의 행위를 배제하지 않고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언제나 주권적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주권적인 섭리가 가진 의미를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 섭리와 기도

성경은 하나님의 계획이 불변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동시에 명령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동역하시기를 원하시며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실 때 반드시 인간의 참여를 요청하시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기도란 하나님을 내 뜻대로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창조해 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우리가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지속적인 기도는 우리의 간구가 하나님께 중요한 것과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4. 섭리와 기적

이적은 또 다른 종류의 섭리이다. 기적과 자연 법칙과의 관계에 있어서 첫 번째 기적이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자연 법칙의 현현일 뿐이라는 주장과 두 번째로 기적이 자연 법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견해와 세 번째로 기적이 발생할 때 자연적인 힘과 초자연적인 힘의 대결이 벌어진다는 견해 등이 있다. 세 번째 견해는 기적의 초자연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반자연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성경의 이적들은 대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 계시의 초자연적 기초를 확립함, 인간의 필요를 충족함이라는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8장 악과 하나님의 세계: 특별한 문제

1. 문제점의 성격

전능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그리고 악의 존재는 이 세 가지 모두 동시에 병립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이런 딜레마를 야기시키는 악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연적인 악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인 악이다. 이 악의 문제는 종교적인 경험으로 신학적인 문제로 모두 제기될 수 있는 이 두 가지를 서로 구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2. 해결방안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해결책이 제시되어 왔는데 대개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를 완화시킴으로 긴장을 해소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악의 문제에 대해 완전한 해결책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1) 유한주의(전능성의 거부) : 고대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와 같은 이원론에서는 하나님은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우주를 분할 통치하고 있는 악한 존재로부터 나오는 악을 하나님은 막을 수 없는 분으로 묘사된다. 20세기 브라이트만은 선과 악은 서로 같은 차원에서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하나님께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견해들은 악의 문제를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결코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2) 하나님의 선하심의 개념 조정 : 클락은 발생되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에 의해 발생된 것은 모두 선하다는 것으로부터 발생되는 모든 것은 선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 선의 기준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 모든 일이라는 개념으로 변형시킨 셈이 된다. 이 경우 하나님의 선의 기준과 인간의 선의 기준이 너무나 다른 개념으로 분리되어 실제적으로 도덕적 선의 개념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하나님은 너무나 자의적인 분으로 묘사하게 되며 도덕에 대해 편의주의적 입장에 서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다.

(3) 악의 부정 : 크리스챤 사이언스와 같은 견해에 따르면 악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일종의 신념이나 환상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그들에게 질병이나 죽음도 환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악의 문제를 실제적으로 전혀 해결하지 못했으며 환상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를 완화시키는 것은 악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있으나 그 반대급부로 잃게 되는 요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온전한 답이 될 수 없음을 볼 수 있다.

3. 악의 문제를 취급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내용

(1) 인간 창조의 필수적인 부산물로서의 악 :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지금 당장 악을 멸절시키려고 하신다면 모든 인간들이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다.

(2) 선과 악의 내용 재평가 : 우리가 선 혹은 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선이나 악이 아닐 수도 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선의 개념이 잘못 되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이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성 속에서 오는 것이지 그저 불편하고 불쾌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로 시간의 지속성을 고려해야 한다. 단시간 내에서는 악으로 보이는 것이 긴 시간 속에서는 선이 될 수도 있다. 셋째는 우리가 지닌 선악의 판단 기준이 자기 위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음을 유의해야 한다.

(3) 일반적 죄의 결과로서의 일반적 악 : 전 인류가 죄를 지었으며 지금도 죄인이다. 타락의 결과 죄의 영향력에 의해 우주 안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적인 악은 바로 죄의 인한 저주의 결과인 것이다. 죄란 독립적인 실체가 있어서 여기에 인간이 감염되거나 걸리게 되는 것이 아니다. 죄란 근본적으로 비틀린 관계이다. 여기에서 죄의 실체가 생겨나고 그 결과 인간은 심대한 손상을 입게 된 것이다.

(4) 특별한 죄의 결과로서의 특별한 악 : 어떤 특별한 악은 특별한 죄로부터 생겨난다. 우리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거나 죄악된 행동을 함으로써 악을 불러오게 된다. 그러나 모든 악이 우리 자신의 특별한 죄로부터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이 저지른 죄로 인해 그 결과가 나에게 악으로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왜 세상에 악을 내버려 두시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기 앞서 우리는 왜 죄를 범했는가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는 것이 마땅하다.

(5) 악의 피해자로서의 하나님 :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이 죄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악의 피해자가 되실 것을 스스로 아시면서도 죄가 발생하도록 허락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악으로 인한 고통을 겪으신 분이시다. 그리스도가 받으신 고난은 죄악의 효과를 무효케 하시기 위함이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악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

(6) 죽음 이후 : 이 세상에서는 악이 오히려 득세하고 선이 위축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죽음 이후와 최후의 심판을 놓고 생각한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고 선이 승리하게 하실 것이 확실하다. 지옥은 어찌 보면 하나님을 거부한 악인의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9장 하나님의 특별한 대리자들: 천사들

성경에는 천사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천사들의 기원이라든지 본질에 대해 알 수 있는 구절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다른 주제에 대한 종속적인 내용으로 언급될 뿐이다.

1. 천사 교리의 역사

천사들에 대한 교리는 적절한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탐구되거나 혹은 반대로 지나치게 무시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초기 교회는 천사들을 신성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했고 중세 교회는 천사들의 계급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후기에 가면 수호 천사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가 급증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불트만과 같은 신학자들은 천사의 개념은 신화의 영역으로 축소시키고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20세기 말에 와서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해석의 열쇠로 다시 천사론이 각광을 받게 되기도 했다.

2. 선한 천사

(1) 용어 : 천사는 하나님의 사신, 하나님의 아들들, 거룩한 자, 순찰자, 회중, 만군, 천군, 정사, 권세, 보좌, 능력 등의 용어들로 성경에 나타난다.

(2) 기원, 특성, 신분 : 천사의 피조성에 대해서는 성경에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천사는 비물질적이고 영적인 존재로 믿어져 왔다. 천사가 육체로 현현하는 경우는 잠시 동안 임시로 취해진 모습으로 간주되어야 할 듯 하다. 천사들의 신분은 신격의 범주에 들지 못하고 성자 예수님에 비해 열등한 존재이다. 또한 천사들의 수는 상당히 많은 다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현현 : 천사는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하셔서 보게 하실 수 있다. 천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주로 나타나고 흰 옷을 입은 것으로 자주 묘사된다. 여자로 나타난 천사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날개가 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신념은 성경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한다.

(4) 능력 : 천사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나 전지한 것은 아니다. 천사는 큰 능력을 지니고 있으나 그 능력은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계 안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5) 조직 : 성경에 확정적이고 분명한 설명은 없으나 천사들 사이에는 계급 질서가 존재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에 스랍과 그룹들은 특별한 모습을 지니고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천사들로 추정된다.

(6) 어려운 용어 : 창세기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과연 천사인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여호와의 천사라는 말이 종종 하나님과 동일시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이 때 천사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인지 아니면 천사의 현현인지가 논란이 되어 왔다. 일시적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견해가 그 중 적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7) 활동 : 천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신자들을 섬기고 돌보아 주며 하나님의 대적들에게 심판을 행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수종 드는 활동을 한다.

3. 악한 천사

(1) 오늘날의 마귀론의 위치 : 마귀에 대한 교리를 천사 교리와 같이 언급하는 편이 좋을지 혹은 죄론에서 다루어야 할 지 논란이 있다. 마귀가 악한 천사라는 점에서 선한 천사와 같이 언급되는 편이 좋고 악과 섭리의 문제에 연관성을 지어 설명하는 것도 좋은 시도라 할 수 있다. 사단과 귀신의 존재를 신화로 취급하거나 그들을 비인격적인 힘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모두 성경의 증언과 일치하지 않는다. 귀신들과 선한 천사들이 서로 온전히 다른 존재라고 상정하고 있는 바르트의 견해도 있는데 이는 악의 구체성을 부인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2) 마귀들의 기원 : 성경은 마귀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으나 종합해 보면 원래는 선한 천사였으나 타락한 후 자기 자리에 쫓겨난 천사인 것으로 이해된다.

(3) 마귀들의 지도자 : 성경에서 악한 천사의 우두머리를 사단이라고 부른다. 사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역을 반대하는 일에 관여한다. 사단은 속이는 일에 능력이 있으나 그의 능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4) 마귀들의 활동 : 사단의 부하인 마귀들은 세상에서 유혹하고 속이며 질병을 야기시킨다.

(5) 귀신들림 : 성경에 따르며 귀신들림 현상이 있으며 이는 현재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모든 부정적 일의 배후에 귀신 들림 현상이 있다고 보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지나치게 마귀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것도 사단의 책략 중 하나이다. 

(6) 사탄과 마귀들의 운명 : 성경은 영적 싸움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이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승리하고 사단은 패배하게 될 것을 예견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때 이미 결정적인 승리를 교회가 얻었다. 영적 전투에 있어서 사탄의 최종적인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4. 천사론의 역할

천사 교리는 우리를 도우시는 영적 존재가 있음을 깨닫게 해 주고 천사들의 모습은 인간이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의 전형을 보여준다. 천사의 타락을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함을 배우며 너무 천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필요는 없고 너무 무관심하는 것 모두가 위험한 태도이다. 마지막으로 사단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하나님이 설정하여 두신 한계선을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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