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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본 교회론의 맥락 속에 본 나의 목회 방향
    신학/조직신학 2017.01.23 12:40

    하나님 나라란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풀어낼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선한 자의 부활과 악한 자의 부활이 함께 일어난다. 이 중에 선한 부활에 참여한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 형태로 주어진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간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로 오신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실체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나타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초림은 하나님의 장막이 우리 가운데 임하신 사건이다. 이를 더 끌고 들어가면 하나님 나라는 창조와 함께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인간들과 함께 창조 세계에 거주하셨다. 나라를 이루는 삼요소인 주권, 국민, 영토가 창조 시에 다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 타락이 일어났다.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지 않는 사태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보좌가 창조 세계로부터 떠나고 말았다. 하나님의 장막이 이 땅에서 하늘로 거두어져 버렸다. 이후 하나님의 장막이 다시 나타난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온전한 모습으로 임하게 된다. 성경의 큰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역사가 성경의 메타 내러티브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수단으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과 교회라는 공동체를 선택하셨다. 구약 시대에는 뭇 민족과 백성들 가운데 특별히 이스라엘을 불러내셔서 하나님 백성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고 계신다. 종말의 때에 자기 백성을 한 곳에 다 불러 모으실 것이며 그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창조 세계 안으로 들어오셔서 자기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다시 곡하는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사망이 없게 하신다. 구약과 신약의 역사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 창조 과정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공교회로서의 교회

    여기서 나는 교회가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공동체라는 사실을 통해 공교회라는 개념을 확실해 해둘 필요성을 느낀다. 교회는 내 교회 혹은 우리 교회에 앞서 하나님의 교회이다. 나는 교회를 사적인 모임으로 여기는 모습들을 지금까지 종종 보아 왔다. 이런 모습은 대개 교회 일에 열심을 내었던 사람들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그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헌신으로 말미암아 존경과 칭송을 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들이 공동체에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변해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었다. 왜 저분들이 저렇게 변했을까? 좋으신 분들인데 왜 이렇게 하실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결국 그분들이 교회를 자신의 노력과 땀으로 일군 사적인 모임인양 매우 폭이 좁은 시각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데 특정인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다가 분란이 생긴 것이었다. 일반 기업체에서도 자기 것이 아닌 공금을 마음대로 쓰면 횡령이라고 하여 처벌을 받고 또 직권을 남용해서 사적 유익을 위하면 배임죄로 고발을 당한다. 하물며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이용하여 사적으로 이익을 취하고 권한을 남용하면 어떻게 될까?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피할 수 없게 되리라. 나는 목회를 하게 되면 교회는 사적이지 않은 공적인 공동체라는 사실을 목회 현장에서 분명히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백주년 기념 교회 이재철 목사님께서 실천하고 계시듯이 일단 모든 재정을 매우 작은 단위까지 철저하게 공개를 하려고 한다. 교회가 공적인 모임이라는 사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바로 재정 공개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있는 교회도 재정 공개를 하기는 하지만 세부 항목이 없기 때문에 사실 상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보고하고 설득과 합의에 의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형성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 체험으로부터 형성된다. 이 체험을 한 사람은 두려움의 신비와 매혹의 신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이런 체험은 문화를 따라서 혹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선택이 일어나는 방식으로 경험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 공동체를 통해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 교제가 일어난다. 이 교제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 관계 속에서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백성들이 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지점에서 실패하였고 예수를 중심으로 한 교회 공동체가 이 사명을 맡기셨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어 내는 목회

    여기서 나는 목회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 나는 지금까지 제자 훈련이라는 모토를 가진 교회에서 성장해 왔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훈련이 과연 하나님의 백성다운 개인과 공동체를 만들어 왔는지 의문이 든다. 훈련의 내용 자체는 분명 기독교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훈련을 받은 사람이 그 후에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고 주변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오히려 훈련을 강하게 받으면 받을수록 훈련 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교만이 생겨 더 못 쓰게 변해버리는 모습도 보았다. 나 자신의 삶을 보아도 훈련보다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던 때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두려움의 신비와 매혹의 신비를 동시에 경험하였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만남 이후 나는 결코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었다. 내가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이 누구신지 관심을 기울이며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목마름이 생겼다. 그리고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만나주셨다. 나는 현재 대부분의 교회에서 설교나 성경 공부에서 하나님 그분 자체에 대해서 너무 적게 소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가장 깊은 목마름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만나고 경험하고 싶은 갈망이었다. 앞으로 나의 목회에서 특별히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설교,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이 온전히 드러나는 설교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설교를 통해서 회중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그러나 또한 우리와는 무한하게 멀리 떨어져 계신 존엄자이자 초월자이신 하나님께 압도되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물론 이런 설교가 인기가 없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을 만난 참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교회는 새로운 가족이자 대안 공동체

    교회는 우리의 범죄함으로 인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이다. 교회는 결코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다. 교회는 결국 사람이다. 교회는 또 하나의 사회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들과는 차별화된 사회이다. 가치관과 삶의 지향점이 다른 사회이다. 교회는 세상적 삶의 방식에 대한 대안적 삶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방식이 교회를 좌지우지 하게 두어서는 안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용서와 의와 생명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서로의 필요에 개방되어 서로의 짐을 지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다름 아닌 새로운 가족이며 대안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가정 교회 목회 모델

    여기서 나는 목회란 세상과 다른 대안적인 사회를 형성시켜 가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 세상의 원리가 교회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 와 있는 모습을 너무나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이 있는 사람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우대 받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차별 당하는 현실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맥 쌓기나 적당한 처세술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모습도 보았다. 이는 모두 교회가 세상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야 할 부분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만 결과가 아닐까 한다. 지금은 아직 담임 목회자가 아니라서 내가 소박하고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만약 내가 담임 목회자가 된다면 아무래도 헌금을 많이 하고 목회자를 잘 챙겨주는 사람이 더 귀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교회는 대안 사회이어야 한다는 점을 가슴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하겠다. 나는 교회 안에서 일체 세상의 차별적인 현상들, 특히 요즘 문제시 되고 있는 갑을 관계가 교회 안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하는 사회,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짐을 지고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가정 교회 모델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그야말로 새로운 가족 같은 아니 가족인 공동체를 가정 교회 모델을 통해 교회 현장 속에서 만들어 가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게 여김을 받고 일체의 차별이 없으며 리더는 헌신적으로 섬김으로 본이 되는 공동체를 가정 교회 모델을 통해서 구현해 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교회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보는 교회론에서 강조해야 할 점은 교회 공동체는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하나님 나라가 교회보다 더 범위가 넓은 상위의 개념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가 붙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통치이다. 하나님은 교회 뿐 아니라 창조 세계 전체를 통치하고 계시다. 물론 하나님의 통치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인 교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을 불러내신 하나님의 이름을 걸머진 공동체라 부를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통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서만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예배로 회집했던 사람들은 각 자의 삶의 처소로 흩어지게 되고 그 삶의 처소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경험되어야 한다. 삶의 처소는 가정이 될 수도 있고, 학교가 될 수도 있고, 직장이 될 수도 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진정으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연장선상에서 가정과 학교와 직장 등등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려고 할 수 밖에 없다.

    일터에 하나님 나라를

    여기서 나는 목회의 목적이 자기 교회에 충성스러운 교인 만들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 만들기가 되어야 함을 배운다. 나는 엘지 그룹에서 삼년 반을 그리고 벤처 회사에서 7년을 , 그리고 한 외국계 회사에서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한 후에 신대원에 들어 왔다. 직장 생활 하는 동안 나의 큰 불만은 이것이었다. 바로 왜 기독교인이 직장 생활함에 있어서 어떻게 복음의 가치를 드러낼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에서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는지에 대해서였다. 교회에서 듣는 말은 모두 교회 생활에 헌신하라는 말 뿐이었다. 교회 밖의 삶에 대해서 하는 말이라고는 고작 금주, 금연 정도가 전부였다. 교회 밖의 삶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아주 간혹 가정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 외에는 없었다. 막연하지만 이런 것은 잘못 된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답을 찾아 팀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복음의 가치를 담아 팀을 이끌려고 노력해 보기도 하고, 직장 내 성경 공부 모임을 인도하거나 믿지 않던 사람들 몇몇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여전히 많았다. 내가 개혁주의 신학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개혁주의는 교회라는 범주를 뛰어넘어 온 피조 세계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직장 사역에 관심이 많다. 나처럼 풍부하고 다양한 직장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경험을 통해서 직장 생활하는 회중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해서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목회 실습 시간을 여러 직장 사역 현장을 탐방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삼십대부터 오십대까지 직장 생활하는 장년 남자들의 삶을 터치할 수 있는 설교를 고민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직장에서 다만 수비적인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군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이 목회자의 사명이라 믿고 있다. 또한 주중에 있는 수요 예배나 금요 기도회는 폐지하고 싶다. 나도 전에 한 그룹의 리더를 맡고 있을 때 목사님으로부터 왜 수요 예배에 오지 않느냐는 꾸중을 듣고 몹시 마음이 상한 적이 있다. 날마다 야근을 하느라고 11시에 퇴근하는 나에게 이 목사님의 한 마디는 비수처럼 다가왔다. 나는 주중에는 각자 자기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그 영역 속에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주일 집회를 통해서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형태의 목회를 하고자 한다.

    사모의 직업에 관해서

    지금 내 아내는 초등 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있는 교회는 목회자의 사모는 헌법에 나오지 않는 직분자였고 사역자였다. 당연히 풀 타임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목회에 있어서 사모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내 아내가 계속해서 초등학교에서 일을 하도록 할 작정이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단 첫째는 내 아내는 선배들과 같은 사모 역할을 맡기에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떠밀려 맡게 되면 아내는 물론이요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될 것이 뻔하다. 둘째는 재정의 독립을 통해서 좀 더 자유로운 목회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례를 받아 생활하게 되면 아무래도 교회의 재정 문제에 관해 압박을 받을 것이 틀림 없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하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셋째는 아내가 하는 일 자체가 귀하고 의미 있기 때문이다. 초등 학교 교사는 또다른 목회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나 역시 프로그래머로서 경력자이기 때문에 틈틈이 시간이 허락된다면 일을 하려고 한다.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교회와 목회직을 생각할 때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엄마로서의 교회

    교회 안에서 설교와 성례전이라는 은혜의 방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는 일은 큰 갈등 요소가 없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 밖의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무신론자도 있고 불교신자도 있으며 안티 기독교인들도 있다. 예를 들어 당장 한국 교회에서 음주 문제만 하더라도 교회 안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 밖의 현장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가 된다. 술 권하는 사회 속에서 술잔을 거부하는 행위는 스스로 불편한 존재로 낙인을 찍는 행위로 비추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상사가 불의를 행하도록 압력을 넣는 상황 속에서 신앙 양심에 비추어 이를 거부하는 일은 곧 이어 뒤따라 오게 될 갖가지 회유와 압박을 견디어 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감수할 용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성도들 가운데는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실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패배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성도들은 그렇게 상처 투성이인 상태로 교회로 다시 모인다.

    상처 투성이 상태로 교회로 모인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직분자들이다. 칼빈은 직분자들을 엄마로서의 교회로 표현하였다. 자녀에게 엄마의 역할을 영양분이 풍성한 젖을 먹이고 자녀의 필요를 돌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직분자들은 회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와 성례를 통해 먹여야 한다. 또한 회중의 실제적인 필요를 살펴서 구체적인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 내의 자원 뿐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자원까지도 활용할 수 있다. 이같이 직분자들로부터 풍성한 양분을 공급받은 회중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전투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 세상 속으로 다시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된다.

    목회의 핵심인 말씀

    나는 내가 모든 면에서 다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하나님께서 내가 한 가지 은사를 주셨다고 믿는다. 그것은 말씀에 대한 은사이다. 이는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읽고 가르칠 때 다른 때와는 달리 특별히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깨달아질 때가 많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은사를 주셨음을 확신하기 때문에 또 이를 교회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일에 부르셨음을 믿기 때문에 늦은 나이에 신대원에 입학을 하였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말씀을 풍성하게 먹이는 목회를 하고자 한다. 여기서 풍성하다는 말은 일단 성경 전권을 균형 있게 먹이는 일을 포함한다. 가능하다면 신구약 성경 전권을 강해 설교로 풀어내 보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 또한 내가 아니더라도 말씀에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발견하고 잘 키워내서 동역자로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말씀에 은사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 계기도 목사님께서 나를 지속적으로 세우시고 키우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무리 21세기 교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목회 사역의 중요성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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