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조직신학

기독교 세계관과 이원론 (Dualism)

이창무 2017. 1. 21. 16:20
반응형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자동적으로 삶의 전 영역에서 성경적인 삶과 가치관을 갖게 되는가? 오늘날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면서도 그들의 삶에 있어서 비기독교적 가치관과 삶을 살고 있음을 본다. 사람들의 삶과 행동양식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사회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세계관은 사람들의 삶에 밀착되어 있으며 직업 선택, 도덕적 결단, 시간 활용, 경제적 관리, 가족 생활의 운영 등 삶의 전반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성경대로 살려면 성경적 근거에 의해 형성된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이 기독교적인 세계관인가를 알아야 하며,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성경에 비추어 겸손하고 정직하게 검토하여 끊임없이 반성하고 갱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먼저 기독교 세계관, 이원론적 세계관, 세속적 세계관을 살펴보고, 각 세계관이 사람들의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 태도, 가치와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 보며, 그 다음에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일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를 제시해 보려한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조명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각자의 일에 대한 바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관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삶과 세상에 대해 견지하고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세계관은 사람들의 가치관, 인생관, 사고 방식을 형성하고 행동양식을 이끌어낸다.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의 삶과 주위의 세계를 해석한다. 그러므로 세계관은 사람들의 인생을 인도하고 방향을 지시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관은 문화와 같이 공유되는 것이므로 세계관이 유사한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사고 방식과 행동방식을 형성하고 있으며, 또한 각자가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전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전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 비로소 그들의 세계관이 다름을 인식하고 도전 받게 된다.

 

일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역할을 하는가?

 

일은 우리의 삶에서 분리된 한 부분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의 한 구성요소이다. 우리는 일을 통해 나와 이웃의 필요를 채우고, 인간의 복지에 필요한 유익한 재화를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즉 우리는 노동을 통해 직접. 간접으로 문화, 예술, 학문의 발전, 정치와 교육 등 우리 삶 전반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일을 빼앗거나 노동을 통해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존재의 틀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 인간은 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창조성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과의 협동을 통해 공동체 의식과 사회성을 배우며 인격을 형성해 나간다. 노동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연결시킬 뿐 아니라 다른 피조물과 자연과도 연결시켜 준다. 사람은 감정적, 심리적, 사회적 피조물이며 따라서 그들의 일에 있어서의 자유나 책임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들의 인간성이 무시되며, 일이 완전한 인간성의 표현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정서적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일이란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원하는 물건을 취하고 부를 얻기 위한 필요악으로 생각한다. 한편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죄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로서 보며, 세상일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가 더욱 힘들다. 과연 일이란 단순히 생계 유지를 위한 필요악이며, 세상일을 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인가? 세계관을 연구해 봄으로 일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보기 원한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세계관이란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 의해 세계(자연, 역사, 사회, 인간)를 을 이해하려는 방식을 의미한다.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을 구분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피조물의 인격적인 관계를 기초로 한다.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이 삶 전체에 포괄적이며 내적인 통일성과 개방성을 가지고 접근을 하며 다양성 가운데 하나됨을 강조하며 실제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또한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사명, 가치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이 기독교인들에게는 개인의 신앙, 경건 생활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의 통일된 관점을 제시함으로 일관성 있는 가치관 형성과 행동 양식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의 참되고 통일적. 실질적이며 좋은 가치관과 행동 양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도전과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일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노동의 의미와 목적은 첫째, 하나님과 피조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노동의 종교적 의미와 인간적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둘째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피조계를 다스리게 하신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어떻게 통합적인 성경적 사고방식을 적용시켜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위와 같은 성경적 세계관의 포괄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를 어떤 종교적인 혹은 영적인 삶의 한 측면으로 국한시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종교적인 영역을 넘어서 삶의 전 영역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사고는 실제 삶과 신앙을 분리시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낳게 되었다.

 

이원론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희랍적 문화전통에서 나오기 시작한 이원론은 선으로서의 영혼과 악으로서의 물질의 구분에 의하여 철학적 형태로 표현되었다. 대표적 이원론자인 플라톤은 이 세상에서 사는 피조물로서의 삶을 부인하고 천상적 삶의 영속성, 안정, 그리고 기쁨을 갈망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Phaedo에서 ꡒ육신은 영혼의 감옥이다ꡓ 라는 극단적인 이원론적 사고를 내놓는다. 플라톤주의는 물질적 세상에 대한 모든 참된 흥미를 배제하며 삶의 수직적 지향으로 수평적 지향을 무시한다.

 

교회에 들어온 이원론은 영적인 영역(정신 세계)을 우월하게 여기며 물질세계를 열등하게 여겼다. 그 결과로 은혜의 영역을 인간의 영적 생활(신앙 생활, 개인적 도덕, 예배, 성례)에 제한하며, 타락과 구원의 범위를 인간의 영혼 구원으로 보며, 이것은 교회를 통해서 하는 것임을 강조함으로 제도적 교회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반면 교회는 물질세계(이세상과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를 소홀히 여겨 기독인들은 이 물질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발전시키기보다는 이 세상을 악하고 적대적으로 보며 세상에서 분리된 삶을 살거나, 인간의 이성을 믿고 세속적인 삶을 살게 만들었다. 즉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그리스도인이고, 물질적인 영역에서는 금욕주의자가 되거나 세속주의자가 되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이원론적 세계관은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전락시키며 성과 속을 분리시켰다. 그 결과로. 기독인들의 사회 참여가 수동적이며 방관자적으로 되었고, 기독인들이 실제 삶에 유리된 생활을 하게 만들었으며, 그들 삶의 자연적 측면을 위해 다른 궁극적 권위를 찾게 만들었다. 이런 이중적 시각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영역에서는 다른 신을 섬기게 만들었다 즉 이원론은 교회의 일들을 자연적인 세계보다 우월한 것으로 취급하여 높이 평가했으며, 삶의 다른 부분들을 무시하고 희생시켜 피조된 삶의 어느 한 측면만을 부당하게 격상시키는 불균형을 낳게 되었다.

 

이원론적 세계관이 일에 미친 영향

 

교회 안에 들어온 이원론자들의 정적인 삶에 대한 선호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시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경제적/기술적/과학적 발전을 위한 추진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성 어거스틴(354-430)은 명상적인 삶과 활동적인 삶을 구분하고 명상적인 삶을 실제 직업보다 높이 평가했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명상이 활동의 삶보다 더 높은 소명이라 했다. 결국 기독교 전임 사역과 세속적 직업의 이분법은 희랍사상에서 생겨나서 교부들에 의해 채택된 것을 현대 기독교가 수용한 것이다.

죤 스토트는 교회가 이원론적 사고 방식에 기초해서 기독교 공동체 내에 하나의 위계 질서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기독교 전임 사역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참으로 열심히 있으면 선교사가 되거나 목사가 될 것이라는 인상을 주며, 이 세상을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눠 한 영역이 다른 영역보다 중요하고 영적이다라는 인상을 주어,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직업상의 계층화를 조장했다고 한다. 이런 사고는 우리가 신앙과 삶이 통합된 그리스도인으로 매일의 일속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한다. 혹은 이원론적 사고 방식을 가진 의사나 농부는 기독교인으로 살아가지만 그들이 통합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이들은 여전히 의학과 농업에서 기독교적인 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그들의 영적인 삶에만 국한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으로 자기들의 직업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직업에 신앙을 첨가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우리는 삶 전체에서 주님께 봉사하며 그의 왕권을 인정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러므로 일/직업에 있어서의 성/속의 구분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일/직업에 있어서의 다양성과 독특성은 인정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성/속을 분리시키는 주장은, 하나님은 어떤 행동들에 대해서는 표준을 정하시지만 다른 어떤 행동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은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삶 그 자체가 엄밀하게 종교와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 직접 적용될 수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게 된다. 이런 이원론적인 태도는 비성경적이고 복음을 불신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이 실행할 수 있는 세계관으로 참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결국은 근대에 들어와서 이에 대한 반동으로 세속적 세계관이 현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