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양성

제 1 강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

이창무 2016. 11. 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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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양성 제 1 강  (#320장)

말씀/ 마가복음 1-3장                               

요절/ 마가복음 3:13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

# 마가복음의 주제가 있다면 기독론과 제자도. 예수님은 누구시고, 예수님을 파악해가는 제자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갈등이 자주 등장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도를 자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1.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첫 번 제자로 부르신 자들은 누구입니까(1:16,19)? 이들의 직업이 무엇이며, 부르심을 받았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어부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어떤 자들입니까? 예수님은 왜 평범한 이들을 첫 번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고전 1:26-29) 

(막 1:16,19)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고전 1:26-29)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갈릴리 해변은 고기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고기 잡는다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배 하나 띄어서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 공생애 초기에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셨다. 왜? 

#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셔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 할 때, 제자를 부르신 것이 하나다. 왜 제자를 부르셨을까? 복음 역사 계승을 위해서, 만민 구속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그렇다.

# 제자를 부르신 시대적인 배경은 어떠한가?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갈릴리에서 전파하셨다. 예루살렘과 대비되는 지역이다.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지도자는 불의한 시대였다.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시대이다. 또 하나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했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통치하는 나라이다. 이런 어지러운 시대에 고통하는 양무리를 향해서 한 일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했다.

# 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바로 제자들이다. 만민 구원 가운데 부르신 사람들이 제자들이다. 

# 이들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부였다. 당시 어부는 하층민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고,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갈릴리는 호수이다. 반대쪽이 다 보인다. 생계 유지 수단 정도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비린내 나서 3D 업종이라고 했다. 굉장히 평범한 삶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들을 부르셨을까?

# 3년이나 짧은 기간에 제자를 세워야 하는데, 왜 이런 사람들을 부르셨을까? 너무 평범하지 않는가? 부르심의 일반적인 원칙은 그렇다. 세상의 부르심은 건강하고 능력도 많고 텝스도 좋은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왜 이런 사람을 불렀을까? 스마트한 사람도 아니고, 지도자도 전혀 아닌 것 같다. 

# 첫 번째로는, 처음부터 기초를 놓고 가르치고자 하신 것 같다. 원석 단계부터 가르치고자 한다. 예수님이 대화하면서 같이 대화하면서 함께 가르쳤다.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인격적인 기초를 놓고자 하셨다.

# 두 번째로는, 겸손한 자를 불러서 키우고자 하셨다. 어떤 약한 자도 다 불러서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 세 번째로는, 부르심이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것을 알려주고자 하심이다. 나의 능력과 자질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 외형적으로 맞추기보다는 그들의 내면이 가난한 자들을 부르셨던 것이다. 구원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부르신 것이다. 외형적인 것보다 내면을 보고 부르셨다.


2. 레위는 어떤 사람입니까(2:14a)? 그는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까(2:14b)? 예수님이 레위와 같은 자를 제자로 삼으신 데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줍니까? 

(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Mk 2:14) 『As he walked along, he saw Levi son of Alphaeus sitting at the tax collector's booth. "Follow me," Jesus told him, and Levi got up and followed him.』

# 레위는 세관원이다. 당시는 세관원이 매국노이다. 창녀보다 못한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로마 사람들은 폭력으로 유대인들을 지배했는데, 그들의 하수가 되어서 유대인들로부터 돈을 거두어서 바쳤다. 제 3 금융권 조폭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세리가 된다는 것은 단순하다. 돈이다.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더라도 돈을 추구했다. 증오와 멸시의 대상이고, 아무도 관심이 없는 자이다. 레위는 그 시대의 멸시와 지탄의 대상이었다.

# 그런데 예수님을 이러한 레위를 부르셨다. 왜 부르셨을까?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내면이 굉장히 깊이 병든 사람이다. 자기 인생에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다.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오직 돈 하나만 갖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레위를 보고 분을 내거나 화를 내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다.

# 나를 따르라는 말은 당시 랍비가 제자를 부를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레위를 당시 구속 역사를 섬기는 일꾼으로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단순히 불쌍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그를 제자로 쓰시고자 하시기에 부르신 것이다.

# 이 부르심의 성격은 어떠한가? 은혜. 주권. 레위의 형편을 볼 때 누가 그를 제자로 부르겠는가? 예수님이 판단하시고 부르셨다는 점에서 주권적이다. 예수님은 레위 인생에 그 고뇌에 동참하면서 키우고자 하셨던 것이다. 내면이 깊이 병든 사람은 참 키우기 힘들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자를 부르셨다.

# 예수님은 직업이 무엇이든지, 얼마나 병들었든지 주권적으로 제자로 부르시고 그 내면에 고뇌를 보시고 동참하고자 하시며 부르셨다.

# 이기심으로 병들고 사람들로부터 병들은 사람을 누가 구원하겠는가? 세리가 아니면 힘들다. 자기와 같이 병든 사람의 목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 

# 또 이 부르심은 소망의 부르심이다. 레위 같은 사람이 구속 역사에 쓰임을 받았다면 누구든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구속 역사는 굉장히 거룩한 일인데, 세리 같은 자를 쓰신다는 것을 참으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의 회심과 변화는 누구간에는 참으로 위로가 된다. 세상에서 부끄럽고 희망이 없는 사람도 희망이 되어준다.


3.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성 종교 지도자들과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2:18-22)? 

(막 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 금식에 대하여 말한다. 왜 안하는가? 일반적 사람들이 물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게 철칙이었다. 바리새인들, 요한이 하는 형식으로 제자들을 판단했다.

# 경건을 얘기할 때, 형식의 잣대로 제자들을 판단했다.

# 예수님은 형식에 매이지 말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했다. 금식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율법과 형식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 생베 조각, 새 포도주는 폭발적인 그 무엇을 갖고 있기 때문에 헌 옷에 붙이거나, 헌 부대에 담을 수 없다. 과거에 잘 쓰였다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과거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과거의 형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담지 못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담으로며 이런 형식적인 틀로는 안된다. 성령께서 주시는 자유함이 있다. 

# 물론 예수님도 금식하셨다. 

#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잘 담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예수님은 어떤 기준을 따라 열두 제자를 세우셨습니까(3:13a)? 이를 볼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데 왜 인간적인 기준이나 조건이나 행위가 문제가 될 수 없습니까? 

(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Mk 3:13) 『Jesus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called to him those he wanted, and they came to him.』

#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예수님이 부르시는 특별한 기준이 없고, 예수님은 자신의 뜻과 기준을 갖고 부르신다. 원하는 자다.

# 산에 오르셔서 부르셨다. 예수님께서 아마 밤새 기도하시고 부르셨다. 

# 하나님의 뜻의 기준은 주권적인 부르심이다.

#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이 사람 저 사람 추천받지 않으셨다. 주권대로 부르셨다.

# 부르시니 나왔다. 나왔다는 것은 인격적인 반응이다. 부족해도 나오는 사람이 제자이다.

5.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1:18,20, 2:14, 3:13b)?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데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요소가 무엇임을 알 수 있습니까? 

(막 1:18,20)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막 1:18,20) 『[18]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20] Without delay he called them, and they left their father Zebedee in the boat with the hired men and followed him.』

(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Mk 2:14) 『As he walked along, he saw Levi son of Alphaeus sitting at the tax collector's booth. "Follow me," Jesus told him, and Levi got up and followed him.』

(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Mk 3:13) 『Jesus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called to him those he wanted, and they came to him.』

# 곧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던지는 인생이다. 영적 소원이 있던 사람이다. 부르시니 예수님이 인생의 출구를 열어주시니가 바로 나오는 것이다. 마음 준비가 되어서 기쁨으로 나온 것이다. 억지로 나온 것이다. 

# 세례 요한의 제자로 있다고 나온 사람도 있다. 안드레와 요한이다. 예수님이 부르시니 바로 나왔다. 

# 좀더 의미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자 하는 간절한 사람들이 나온다. 예수님에 대한 열망이 있던 자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 주석을 보면 주로 예수님의 부르심의 영적 권위 때문에 순종해서 나온 것이다.

# 또, 예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 일을 하겠다,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 일을 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다. 다른 것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따르는 사람이다.

# 예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반응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6. 열두 제자의 이름을 말해 보시오(3:16-19). 특별히 누구에게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까? 예수님이 왜 많은 사람을 택하시지 않고 열둘만 택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떤 관계로 삼으셨습니까(3:31-35)? 

(막 3:16-19)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막 3:31-35) 『[31] Then Jesus' mother and brothers arrived. Standing outside, they sent someone in to call him. [32] A crowd was sitting around him, and they told him, "Your mother and brothers are outside looking for you." [33] "Who are my mother and my brothers?" he asked. [34] Then he looked at those seated in a circle around him and said, "Here are my mother and my brothers! [35] Whoever does God's will is my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 12 제자의 이름이 나온다. 그 중에 별명을 붙여준 사람이 있다. 베드로, 요한, 안드레이다. 빌립은 계산이 빠르다. 바돌로매는 요한복음의 나다니엘이라고 한다. 마태는 세리 출신이다. 도마는 의심 많은 사람이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은 열혈당원으로 그 시대의 운동권이다. 가룟 유다도 있다. 특정 부류의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개성도 있고, 생각하는 바가 있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예수님이랑 하나의 목표를 갖고 가는 사람들이다. 

# 12 명을 택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인격적으로 키우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소수이다. 굉장히 소수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그 중에 12명을 택했다. 인격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알고 키우고자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소수 정예로 키우고자 하셨다. 예수님을 옆에서 잘 배우고 따르게 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 부르심에 따라 나왔고 훈련을 주면서 책임도 지우면서 제자들을 키우셨다. 이것이 이 시대의 예수님이 무리를 사랑하는 방법이셨다. 

# 또 예수님은 12명과 어떤 관계 속에 두셨는가? 예수님은 가족 공동체로 보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다 한 가족으로 보셨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알 수 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가족은 굉장히 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제자 공동체가 그런 곳이라는 말이다. 제자들과 그런 관계를 갖고 하셨다. 제자 양성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지만, 그러면서도 영적 가족 관계를 이루고자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 이상에서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는지 그 특징에 대해 말해보시오.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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