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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아 세례의 근거와 우리의 책임
    신학/조직신학 2015.06.18 22:10

    유아 세례의 근거와 우리의 책임


    (아래의 글은 유아 세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합신 이승구 교수님의 소논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제 74문답


    (문)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까?

    (답) 그렇다. 그들의 부모들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다.

    어린 아이들도 어른에 못지 않게 

    그리스도의 피와 신앙을 생성시키는 성령을 통해서 

    죄 용서함을 받도록 약속되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의 표인 세례로써 어린 아이들도 

    그리스도의 교회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불신자들의 자녀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이것이 구약 시대에는 할례로써 이루어졌지만, 

    신약에서는 세례로 대체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고, 그 신앙을 고백하는 참된 신자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없는 어린 아기들에게도 과연 세례를 베풀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초기 교회의 교부인 터툴리안이나 종교 개혁 시대에 급진적 개혁자들이었던 재세례파에 속한 이들에 의해서 제기된 질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침례교인들은 아주 심각하게 이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보면 교회는 과연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는 것일까요? 물론 성경에는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거나, 세례를 베풀지 말아야 한다거나 어떤 구체적인 진술이 말로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성경 구절을 언급하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성경의 전체 구조로부터만 찾아야 합니다.


    1. 어린 아기들도 은혜 언약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은혜 언약(covenant of grace)입니다. 은혜 언약은 인간이 죄로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마련해 주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 대한 언약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언약의 시행 형식은 다양하지만,  언약의 본질과 내용은 늘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속한 본질적인 것은 모세의 시내 언약에도 속하며, 다윗 언약에도 속하고, 신약에도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언약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약의 은혜 언약의 백성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 때서부터는 은혜 언약에 속하려면 베는 예식인 할례(割禮, circumcision)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할례를 받아 은혜 언약에 참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의 백성들에게는 세례를 받아 은혜 언약에 참여하는 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할례를 받을 때에(창 17:24) 하나님께서는 난지 팔일 된 어린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풀라고 했습니다(창 17:12, 레 12:3).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어린아이들도 은혜 언약에 속하는 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원칙이 적용되면 신약에서도 어린아이들도 은혜 언약에 속하는 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는 이들의 자녀들을 언약의 자녀들로 보는 이 입장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초대 교회 안에서부터 개혁 교회에서는 유아 세례를 허용하고 시행해 왔었습니다. 


    2. 어린 아기들에게도 구속이 약속되어졌습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 언약이 제공하는 구속으로부터 제외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구속의 은혜를 얻고자 성숙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갓 태어난 신자의 자녀들에게도 그들이 이미 은혜 언약의 범위 안에 있으므로 구속의 약속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약속을 믿고서 유아 세례를 시행하여 어린아이들도 이 약속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어린아이들도 그들 자신으로서는 구원함에 이를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성령님께서 적용시켜 주실 때에만 그들이 구원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순결해 보이는 아기라도 구속을 필요로 하지 않을 아기는 이 세상에 한 아이도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라고 해도 그리스도의 구속 사실에 의해서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유아 세례는 은혜 언약의 표요, 믿음의 행위입니다.


    유아 세례가 이와 같이 은혜 언약의 표라고 하면 유아 세례를 행할 때에 은혜 언약 교리에 근거해서 유아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나 어린 아기를 세례 받도록 데려 오는 부모나, 그 유아 세례식에 참석하는 증인과 온 회중이 이 세례를 받는 아이가 은혜 언약의 자녀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이 거룩한 일에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아 세례를 베풀고 받아도, 베푸는 이나 그 부모에게 성령님께서 이 유아 세례를 은혜의 방도로 유효하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그 유아 세례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언약의 자녀들을 세례 받도록 데려 올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고서 베푼 유아 세례는 반드시 그 효과가 있어서 그 은혜를 그 아이에게 내려주는 것입니다. 


    4. 유아 세례 이후의 우리들의 책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아직 신앙을 고백할 수 없는 어린 아기들에게 세례를 베푼 후에는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자신들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아이들에게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칠 책임이 그 부모와 교회 공동체에게 있습니다.


    4-1. 부모의 책임


    유아 세례 받은 아이들을 교육시킬 일차적 책임은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 있습니다. 부모의 이런 교육적 책임은 그 자녀를 낳은 부모들의 자연적 책임이기도 하지만, 이는 결국 언약의 부모로서의 언약적 책임이 됩니다. 첫째로, 부모에게는 신앙의 내용을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것들도 잘 가르쳐야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앙의 내용을 잘 가르칠 때 우리는 비로소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엡 6:4)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전수받은 복음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둘째로, 부모는 신앙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그 신앙에 있어서 본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의 본이 없으면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고 보증하기 어렵습니다. 셋째로, 그 부모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전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명령했습니다: “너는 또 그것을[하나님의 말씀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 8, 9).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사용해서 우리의 언약의 자녀들이 결국은 자신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들이 의식을 가지고 분명히 스스로의 믿음을 공표해야 할 것인데, 그것이 가능할 때까지 일차적으로 부모가 신앙을 가르치고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4-2. 목자들의 책임


    유아 세례자들을 가르치고 교육할 책임은 부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속해 있는 센터의 목자에게도 있습니다. 첫째로, 목자들은 그 아이의 부모가 제대로 양육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일은 그들이 그 아이의 유아 세례식의 증인이 된 책임의 한 부분입니다. 둘째로, 목자들은 다 같이 합력해서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첫째로 그 교회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교회 밖에 있는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려는 목적도 가집니다. BBF,CBF,EBF를 잘 운영하는 것도 이를 효과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노력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것이기도 해야만 합니다.


    5. 결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참된 교육의 토대는 유아 세례입니다. 그러므로 유아 세례야말로 교회의 교육적 사역의 근본적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아 세례를 항상 중시하고 존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유아 세례를 참으로 존중하는 방식은 유아 세례 받은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교육을 제대로 감당하는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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