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경신학

미가서 6:1-16 주해

이창무 2015. 6. 1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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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6:1-16 주해

2013.6.21.


본문의 메인 아이디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 관계 속에서 요구하신 것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정의와 인애와 신실함이다.


본문의 개요


I. 하나님의 고소와 백성들과의 논쟁

A. 법정으로 백성들을 소환(1-2절)

B. 하나님의 고소(3절)

C. 하나님의 변론(4-5절)

B'. 백성들의 반론(6-7절)

A'.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을 듣고 행하라(8절)


II. 하나님의 심판 선고(9-16절)

A. 상대방을 부름(9절)

B. 정죄의 내용(10-12절)

C. 심판 선고(13-15절)

D. 요약: 정죄와 언약 파기(16절)


미가서 6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고소하시고 백성들과 논쟁을 벌이시는 부분으로 8절까지이다. 후반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시는 부분이다. 전반부는 동심원 구조로 되어 있다. 김창대,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p242

 4절과 5절을 중심으로 해서 3절과 6,7절이 1,2절과 8절이 짝을 이루고 있다. 후반부는 기승전결의 직선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8절을 고리로 하여 연결되어 있다. 전반부에서는 8절을 결론으로 하여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후반부에서는 이를 행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8장 전체의 중심절은 8절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론

김창대 안양대 교수의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에 따르면 소선지서는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고 그 전체가 동심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동심원의 중심에 미가서가 있다. 김창대,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p40

 또 그 미가서의 중심에 6장이 있다. 따라서 미가서 6장은 소선지서 전체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6장 8절에 6장의 메인 아이디어가 담겨져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고발을 당한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제물로 제사를 지내왔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구하시는 바는 제물이 아니라 미쉬파트(정의)를 행하고 헤세드(인자)를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물으며 동행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신다.

 

문맥과 배경

미가서의 저자인 미가의 이름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뜻이다. 미가의 고향은 유다 서편의 모레셋이었다. 미가 선지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이 사실은 미가가 그리 유력하지 못한 가문의 출신임을 시사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트램퍼 롱맨 & 레이몬드 딜러드, ‘최신 구약 개론’, p602

 미가가 활동했던 시기에 관해서는 1장 1절의 표제어를 통해 알려져 있다. 미가는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하였다. 이 세 왕의 통치 기간 내내 활동했는지 혹은 그 중 일부 기간에만 활동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찰스 다이어와 유진 메릴은 요담의 말년부터 히스기야의 초기인 B.C. 735년에서 B.C. 700년 어간까지 활약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찰스 다이어 & 유진 메릴, ‘구약 탐험’, p862

 어찌되었든 그의 활동 시기는 대체로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와 겹친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로 왕족과 예루살렘 거민들을 대상으로 예언을 한 반면에 미가는 유다의 평민들을 대상으로 예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찰스 다이어 & 유진 메릴, ‘구약 탐험’, p864



유다왕 아하스는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고 공격해오자 앗수르의 보호를 받기 위해 조약을 맺고 유다는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다.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 왕 때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B.C. 705년 산헤립이 앗수르의 왕이 되었다. 이 틈을 타서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산헤립은 두 차례에 걸쳐 유다를 침략하여 수십개의 유다의 성읍들을 파괴하고 수십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 공격에 의해 미가의 고향인 모레셋도 멸망을 당했다. 이와 같은 위기 가운데 히스기야는 이사야와 미가의 사역을 통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보시고 예루살렘을 남기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남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당한다.



미가서는 힘찬 문체를 특징으로 한다. 또한 미가서에 사용된 히브리어가 해석이 난해한 부분이 많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트램퍼 롱맨 & 레이몬드 딜러드, ‘최신 구약 개론’, p606

 미가는 특히 언어와 수사법에 있어서 탁월한 선지자였다.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미가서 1:10-16이다. 산헤립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들어올 때 거치게 되는 성읍들의 이름과 그 이름과 유사한 동사를 엮어서 언어유희(Word Play)의 진수 성기문, ‘소선지서 미가서 강의안’

를 보여주고 있다. 


본문 주해


1.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2.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1) 6장 전체가 법정 모티프로 되어 있다. 법정 모티프는 미가 이외의 선지자들도 종종 사용하는 모티프이다. cf. 사 1:2-3, 18-20; 3:13-15; 렘 2:4-13; 호 2:4-17; 4:1-6; 12:3-15

 법정의 모습을 그려보면 필수적인 등장 인물들이 있다. 먼저 재판을 주관하는 판사가 있다. 그리고 피고가 있으며 원고가 있다. 피고와 원고는 각각 변호인을 대리인으로 세울 수 있다. 6장의 법정 모티프 속에서 재판관은 하나님이시다. 원고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땅에서는 재판관과 원고가 동일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는 하늘의 법정이다.

 피고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원고이신 하나님이 변론을 맡은 대리인을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미가 선지자이다.

2) 1절은 ‘너희’는 피고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여호와께서 본격적인 변론을 시작하기 전에 피고에게 주의를 환기시키신다. 1절의 ‘너’는 미가 선지자이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대리인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고소장을 읽는다. 여기서 산과 지대가 재판의 증인으로 등장한다. 지대라는 말은 땅의 기둥이라는 뜻이다. 고대인들은 땅을 지탱하는 기둥들이 땅 속에 박혀 있다고 생각했었다. 송병헌, 엑스포지멘터리 주석 미가서, p230

 하필이면 산과 지대를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하였을까? 이는 산과 지대가 변함없이 영구적으로 거하기 때문일 것이다.

3) 2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과 변론하자고 하신다. 이는 곧 현재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가 일종의 분쟁과 갈등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 갈등의 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가리는 것이 이 재판의 목적이다.

4) 엑스포지멘터리 미가서 주석은 산들이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일부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송병헌, 엑스포지멘터리 주석 미가서, p231

 그러나 1절과 2절 본문에는 과거를 상기시키는 표현이 없으며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와 같은 암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WBC 주석의 언급처럼 예전부터 지금까지 증인의 역할을 계속 해 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좀 더 타당해 보인다. 랄프 스미드, WBC 주석 미가서, p83



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1) 3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향해 품고 있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괴롭게 하시는 분으로 여기고 있었다. 6절과 7절을 참고해 보면 그 괴로움이 주로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괴로운 일로 보았던 것이다. 예배 참석을 괴로운 의무로 보는 현대의 교인들과 닮아 있다.

 그들은 제사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 귀찮은 일, 부담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마치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어 가는 군주와 같은 이미지를 여호와 하나님께 투사하였던 것이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이와 같이 불평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와 같은 불평을 음지에서 늘어 놓았을 뿐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평과 원망을 양지으로 끌어 올려 놓고 과연 그들의 불평과 원망에 정당성이 있는지 여부를 가려 보자며 백성들의 공적 증언을 요구하신다.

3) 엑스포지멘터리 주석과 WBC 주석은 공히 3절에서 백성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더 괴로워하신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송병헌, 엑스포지멘터리 주석 미가서, p232

 반면 두란노 하우 주석은 하나님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웅변적인 질문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주장 중에서 3절의 시작을 ‘내 백성아’라는 인격적인 호소로 시작하는 것으로 볼 때 웅변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괴로운 심정이 담겨있다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5.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1) 4절과 5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변호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괴롭히신 적이 없음을 변호하심과 동시에 오히려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을 베푸셨는가 하는 점을 상기시키신다. 모두 네 가지 과거 사실들을 언급하신다.

2) 첫째로 출애굽 역사를 회상하도록 하신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셨고 자유민이 되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일이 바로 출애굽 사건이다.

3) 둘째로 백성들의 지도자를 세워주신 일을 회상하도록 하신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은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도자가 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백성들을 위해 보내신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할 때 수에 비해 힘을 쓰지 못한 것은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인데 이를 볼 때 백성들 가운데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4) 셋째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신 일을 회상하도록 하신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이라는 예언자를 매수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도록 사주하였던 사건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발람이 저주의 말이 아닌 축복의 말을 하도록 만드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는 시도마저 바꾸어 축복으로 만드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분이라는 오명은 당치도 않은 일이다.

5) 넷째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땅을 차지하게 하신 일을 회상하도록 하신다. 싯딤은 요단 강 동편의 마지막 성읍이다. 길갈은 요단 강 서편의 첫 성이다. 싯딤에서 요단까지의 일은 여호수아서 3장에 요단강 도하 사건을 가리킨다. 당시 요단강에 물이 많아 건널 수 없었으나 언약궤를 앞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강물을 마르게 하심으로 마른 땅으로 건널 수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 서편의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권능으로 도우신 결과이다.

6) 두란노 하우 주석은 싯딤에서 길갈까지의 일을 땅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땅을 차지하게 하신 여호와의 은혜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은 구체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일을 적시하고 있다. 송병헌, 엑스포지멘터리 주석 미가서, p234

 싯딤과 길갈이라는 지명이 갖는 상징성을 살펴 볼 때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의 언급처럼 요단강 도하 사건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7) 위의 네 가지 일들은 모두 출애굽부터 가나안 정복 초기까지에 집중되어 있다. 이스라엘 민족과 연약 관계를 맺은 초기의 일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일들이 이 네 가지뿐이라는 뜻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처음부터 이렇게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 그 이후 베푸신 모든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더 컸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다. 이를 생각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게 될 결론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공의롭게 행하셨다는 것뿐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이나 열방의 통치자들처럼 자기 백성 위에 군림하여 백성들을 괴롭게 하신 분이 아니라 한 없이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고 자기 백성을 공의로 통치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1) 6절과 7절의 일인칭 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를 의미한다. 6절과 7절은 앞의 4절과 5절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괴롭게 하신 적이 없으며 인자와 정의로 대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제물을 바치느라고 괴롭다고 항변한다.

2) 6절과 7절은 총 네 개의 질문으로 되어 있다. 각 질문은 뒤로 갈수록 그 의미가 강화되는 점증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3)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께 경배할 때 적합한 제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번제물로 일 년된 송아지로 충분할 것인가를 묻는다. 번제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 일 년된 송아지는 가장 좋은 품질의 제물이다. 세 번째 질문은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냐고 묻는다. 두 번째 질문이 제물의 질에 대해서 말했다면 세 번째 질문은 제물의 양을 논한다. 만약 품질이 잘 통하지 않는다면 양으로라도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네 번째 질문은 극단적인 예를 치닫는다. 자신의 맏아들을 제물로 바치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겠느냐는 것이다. 질과 양의 문제를 떠나서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최고의 헌신을 나타내는 제사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4) 6절과 7절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제물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으로 비추어졌던 것이다. 이는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지 제물에 굶주린 분이 아니시다. 그렇다고 해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치지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제물을 바치는 자의 동기가 잘못 되었음을 지적는 것이다.

 이를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관은 주변 민족들의 신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가나안 종교에서 바알신은 농사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다. 바알신에게 제물을 바쳐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면 바알신은 적당한 비를 내려 풍년을 가져다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종류의 종교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여겼다. 매번 여호와가 좋아하실만한 제물을 바치느라 그들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또는 남들보다 더 좋은 제물을 바쳐서 더 큰 복을 받기를 원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은 형성되지 못하고 기계적인 관계만이 형성되었다.

5) 현대 성서 주석은 6절과 7절 부분이 입당 예전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제인스 림버그, 현대 성서 주석 호세아-미가, p295

 입당 예전이란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하러 온 사람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출입문 앞에서 제사장과 질문과 답을 나누는 행위를 말한다.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 화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에서 여호와를 대신한 미가로 바뀐다. ‘사람아’라는 호격은 물론 그 대상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한다. 미가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설득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여기서 미가는 선한 것이 무엇임을 하나님께서 이미 백성들에게 보이셨다고 말한다. 즉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숨기지 아니하시고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내셨다는 말이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를 숨기셨기 때문이 아니다. 백성들에게 이미 알려주셨지만 백성들이 지금까지 고의로 귀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구하시는 것은 단 세 가지이다.

3) 첫째로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정의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외형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행동하는 일체의 모습’이다. 김창대,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p27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순종은 반드시 외면적으로 구별된 삶의 패턴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이 정의를 행했다면 그들의 삶은 이방 민족들과는 구별되는 탁월함과 거룩함이 있어야 했다.

4) 둘째로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인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충성, 충정, 감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 편의 헤세드는 그에 앞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와 은총, 자비와 긍휼로 인해 생겨난다. 헤세드가 헤세드를 낳는 것이다. 룻기 전체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향한 헤세드와 사람을 향한 헤세드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뗄 수 없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이웃을 향해서도 긍휼과 자비를 행하게 될 것이다.

5) 셋째로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물으며 신중하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 WBC 주석과 두란노 하우 주석은 겸손에 방점을 찍고 있다. 랄프 스미드, WBC 주석 미가서, p84

 그러나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은 겸손의 원어적 의미가 신중하게 라는 의미라는 점을 밝혀 주고 있다. 송병헌, 엑스포지멘터리 주석 미가서, p239

 현대 성서 주석도 이와 같은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제인스 림버그, 현대 성서 주석 호세아-미가, p299

 따라서 이 부분은 원어의 의미를 따라 겸손보다도 신중하게 하나님께 묻고 행하는 삶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고 본다.


9.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


1) 9절부터는 이스라엘 백성과 주고 받는 변론이 없다. 변론이 끝이 났고 이제 선고만이 남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신다는 말씀이 1절과 대조를 이루면서 새로운 단락에 들어섰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즉 선고 공판이 시작되었으니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는 특별히 성읍을 언급한다. 이 성읍은 전후 맥락에서 볼 때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2)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는 말씀은 지혜를 의인화하여 지혜 있는 자가 취할 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함은 곧 주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지혜로운 자는 주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들을 것이므로 이제 여호와의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들으라는 권면으로 여기에 삽입되었다. 미가 선지자 자신이 앞으로 할 심판 예언에 대해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3) 매가 예비되었다는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죄가 선고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죄를 선고하시고 형량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앞 단락에서는 여호와께서 원고의 입장에 서 있으셨다면, 여기서는 재판관의 자리에 서 계신 것이다.


10.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11.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12.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도다


1) 10절부터 12절까지는 예루살렘 거민들이 행악 범죄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첫 번째로 악인의 집에 있는 불의한 재물을 언급하신다. 불의한 재물이란 말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소유를 말한다. 악인들은 이렇게 부정하게 얻은 재물을 자기 금고 속에 감추어 두고 있다. 두 번째로는 부정한 도량형을 쓴 일에 대해 책망하신다. 에바는 부피를 재는 단위로서 약 36리터 정도이다. 김의원 감수, 홀리원 바이블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라는 말은 본래 부피보다 줄여서 폭리를 취한 일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다. 11절의 내용도 도량형에 관한 것인데 이번에는 무게를 부정하게 재는 일을 말한다. 부정한 저울이나 거짓 저울추를 이용해서 무게를 속여서 부당 이득을 취하였다. 세 번째는 부자들의 강포이다. 부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증식시키기 위하여 폭력을 행사했었던 것이다. 네 번째로 주민들의 거짓말이다. 당시는 어디에서도 정직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였다.

2)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은 부자들이 행한 강포를 거짓 고발과 불의한 재판이라고 보고 있다.   송병헌, 엑스포지멘터리 주석 미가서, p245

다른 주석들에는 이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다. 이에 대한 지지구절들은 주로 시편들에 나타나 있다(cf. 시 25:19, 55:9, 58:2). 현재 6장 전체가 법정 모티프라는 점에서 이 점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즉 부자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세상 법정과 하나님이 재판관이 되시는 공의로운 하늘의 법정이 대비되고 있는 셈이 된다.

3) 이와 같은 예루살렘에 만연했던 사회악은 백성들이 바로 8절에서 언급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정의와 인자와 하나님과의 동행을 버린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정의가 있어야 할 곳에 속임과 불의가 인자가 있어야 할 곳에 강포가 있다. 여호와의 질타는 주로 당시의 지배 계층을 향하고 있다. 특별히 부유한 자들이 주대상이 되고 있다. 한 편으로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또 한 편으로는 온갖 불의를 행하는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하며 더럽고 거짓된 자들이다.


13.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였으며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나니

14.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15.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1) 13절부터 15절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다.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앞 절에 대한 결과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13절에 언급된 질병과 황폐함은 저주와 심판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황폐함의 저주는 다시 또 16절에서 한 번 더 언급이 된다.

2) 14절과 15절은 심판의 결과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인지를 묘사하고 있다. 다섯 가지 정황을 열거하고 있다. 먹어도 배부르지 못할 것,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할 것,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얻지 못할 것, 포도를 밟아도 술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정황은 다양하지만 메시지는 한 가지이다. 즉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결과가 허무할 것이라는 저주이며 심판이다.

3) 이와 유사한 심판 선언은 구약에 여러 곳에 나타난다. 소선지서 내에서는 학개서 1장 6절이 대표적이며 호세아서 4장 10절, 11절도 있다. 선지서 중에서는 이사야서 55장 1,2절과 예레미야서 26장 20절을 참고할 수 있으며 오경 중에서는 신명기 28장 38, 39절에 나타나있다.

4) 열거된 언약적 저주의 내용들이 주로 경제적인 궁핍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주로 예루살렘에 거하는 부자들에 대한 책망이 있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이 몰락하여 빈궁에 처하게 될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16.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그의 주민을 사람의 조소 거리로 만들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1) 16절은 본 단락을 마무리하는 최종 선고문과 흡사하다. 백성들의 죄악을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을 묘사한다. 오므리는 악행과 바알 숭배로 유명한 북이스라엘의 왕이다. 아합 왕 역시 선지자를 죽이고 언약을 깨뜨린 악명 높은 북이스라엘의 왕이다. 이 두 왕의 율례와 예법과 전통을 따른다는 말은 백성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철저히 파기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비참한 죽음을 당한 두 왕의 이름을 거론하여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의 임한 심판을 암시하고 있다. 

2) 엑스포지멘터리 주석의 언급대로 남왕국 유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면서 북이스라엘의 사례를 드는 것이 유다 백성들에게 충격이 컸을 것이다.  송병헌, 엑스포지멘터리 주석 미가서, p247

 왜냐하면 남유다 백성들은 북이스라엘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의 현실은 북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3) 여호와의 최종 판결은 이스라엘은 황폐하게 되고 주민들은 조롱거리가 되고 죄로 인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선고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받아들여졌었다. 16절은 여호와께서 요구하신 정의와 인자와 하나님의 동행을 저버리고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의 암울한 미래를 비통적인 어조로 담아내고 있다.


결론


미가서 6장은 법정 모티프를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쟁론을 거친 후 하나님의 심판 선고로 끝을 맺고 있다. 그 핵심에는 8절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세 가지 요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4절과 5절에서 언급하였듯이 여호와께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인자하심과 정의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넘치도록 받은 백성들은 마땅히 정의와 인자를 행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는 무리하게 제물을 요구하면서 괴롭게 하시는 분이라며 하나님을 힐난하였다. 정의를 짓밟고 인자를 행하지 않고 부정한 사리사욕을 취했다. 그 결과 그들이 거하던 땅이 황폐하게 되고 그 땅의 주민들은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되는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미가서 6장은 마치 오늘 대한민국의 상류층을 차지한 일부이지만 큰 영향력이 있는 교인들을 향해 주시는 말씀과도 같다. 그들은 교회에 많은 헌금을 하고 특히 예배당 건축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것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충분히 했다고 여긴다. 부족하다면 더 많은 돈을 벌어 헌금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현세적인 복은 그러한 헌신의 반대급부로 주어진 것으로 여긴다. 그들의 신관은 다분히 기계론적 신관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나와 동행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이런 가시적인 헌신을 행하기 이전에 이 사회에서 불의와 부정직을 멀리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에 힘쓰기를 원한다.’ 장로이며 집사이며 신자라고 하지만 돈을 버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번 돈의 일부로 헌금만 열심히 하고 교회 일에 헌신하면 하나님께 복 받는다고 믿는 이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미가서 6장 말씀으로 일침을 놓고 계신다. 지금 당장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와 심판이 이 땅 가운데 내릴 수 있음을 알고 악한 길에서 떠나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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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렘퍼 롱맨 & 레이모든 딜러드, 최신 구약 개론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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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봐이저, 미가 주석 (서울: 나단출판사, 1991)

랄프 스미드, WBC 주석 미가-말라기 (서울: 솔로몬, 2001)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요나|미가|나훔|하박국|스바냐|학개|스가랴|말라기 (서울:국제제자훈련원,2011)

목회와 신학 편집부, 두란노 하우 주석 29 호세아-미가 (서울: 두란노 아카데미, 2009)

제임스 림버그, 현대성서주석 호세아-미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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