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경신학

만약 사도 바울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기사와 이적을 주장하는 성령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을까? / 고든 피

이창무 2015. 5. 1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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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교회사 전문 잡지인 [기독교회사](Christian History)잡지 1995년 가을호는 바울 특집의 일환으로, 고든 피 교수의 저서인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 바울 서신서가 말하는 성령](God’s Empowering Presence: The Holy Spirit in the Letters of Paul, Hendrickson, 1994)에 즈음하여 고든 피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만약 사도 바울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기사와 이적을 주장하는 성령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고든 피 교수는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힘주어 말한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CH(크리스천 히스토리 잡지): 많은 신자들은 사도 바울이 생동감 있는 “영적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고든 피 : 많은 경우 개신교도들은 신학적으로 생각하며, 거의 대부분의 경우 구원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란 ‘구원론’의 입장에서만 관심을 집중해 왔다. 우리는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의 안목을 통해서 신학자로서의 바울을 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바울은 신학자이기 전에 기도의 사람이며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기를 원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바울 전 생애의 목표였다. 바울 서신서를 이런 관점에서 읽지 않으면 바울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당신이 만일 바울에게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이냐”라고 물어본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란 “X나 Y 교리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좇아 행하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그는 바른 교리를 중시하지만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CH: 바울에게는 어떤 종교적인 체험이 가장 중요했는가?

 


  고든 피: 바울의 모든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일어났다. 그 체험에 대해 그는 “나는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다른 사람들의 체험과 그것은 동일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 체험이 바울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그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간주하는 성령은 그 삶에서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실체였다. 그는 환상을 본 것은 물론 치유 사역을 행하고 방언을 말했다.

 


  CH: 바울의 영적 체험은 특별한 것인가?

 


  고든 피: 전혀 그렇지 않다. 초대 교회 때에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것들을 체험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예를 들어,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했을 때, 그는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기적)을 행하신 이”(갈 3;5)라는 말로 시작한다. 바울은 현재형으로 말한다. 성령은 갈라디아에서 역동적이고 특별한 일을 행하셨으며, 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편지를 쓸 때 그들도 이런 체험들을 했다고 가정했다.


  물론 바울은 자신이 성령의 특별한 체험을 했지만 그는 그것을 문제로 삼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그는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갔다고 말했으며, 그는 이 체험의 언급을 통해 그의 사역의 진정성을 증거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헬라의 연극에 출연하는 바보처럼 행세했다. 결국, 그는 몸 밖에 있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를 확실하게 증거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귀중한 체험을 그는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체험은 독특한 것이며 또한 바울 개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에 예언, 기적 및 방언 말함과 같은 통상적인 초자연적인 체험들은 이것(바울의 천국 체험)과는 달랐다.

 


  CH: 바울이 말하는 ‘예언’이란 무엇인가?

 


  고든 피: 이 체험은 초대 교회의 문서들에 광범위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교회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바울은 예언이란 신자들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 즉흥적으로 하는 말로 이해했다. 성령과 말하는 자의 상승 작용이 있었다. 성령이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을 말하게 하셨다. 예언은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 아니며, 말하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강제적으로 말을 하게 한 것이다.

 


  CH: 초대 교회는 어떤 종류의 기적들을 체험했으며, 빈도는 어떠한가?

 


  고든 피: 기적은 기도 응답은 물론 꿈이나 환상을 포함한다. 물론 치유도 포함된다. 많은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자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상당히 보편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쉽게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통상적인 체험과 초자연적인 요소를 요구하는 기적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성령의 사역을 존경하는 시대에 살았지만 우리는 인간의 경험을 존경하는 물질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인간의 논리로 설명해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not explain away).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도할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상당히 자주 일어나서 바울은 마치 모든 신자들이 기사와 이적을 체험한 것처럼 기록할 수 있었다.

 


  CH: 바울 시대의 방언과 오늘날의 방언은 유사한 것인가?

 


  고든 피: 아마 그럴 것이다. 방언은 예언처럼, 성령이 그 사람의 영을 통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투는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 즉 외국어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이다.


  이것 또한 당시에는 보편적인 체험이었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나는 너희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한다”고 말했다. 로마서에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롬 8:26)에 대해 말했는데, 나는 그가 방언을 의미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가 이 교회들에게 쓴 방법에 의하면, 그는 그들이 그가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가정했으며, 방언 또한 당시 교회의 보편적인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CH: 그러한 종교적 체험들이 다른 종교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는가?

 


  고든 피: 그렇다. 우리는 고대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실재를 믿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델피의 신전에서 이방인들은 기적과 예언과 특별한 신체적 현상들을 체험했다. 어떤 것들은 환각제로 인한 것들도 있었겠지만 귀신의 역사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초자연적인 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오늘날, 영적인 세계를 믿는 사람들은 오순절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데, 오순절주의자들은 이런 것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신자들은 자기들의 영적 체험이 귀신이 주는 체험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성령이 주는 체험은 구속적이지만 귀신이 주는 체험은 파괴적인 것이다. 바울은 이런 시대에 살았고 또한 사역한 사람이다.


 

  CH: 왜 오늘날의 어떤 신자들의 바울의 이러한 삶과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가

 


  고든 피: 우리는 종교개혁의 산물이자 계몽주의 산물이다. 많은 동료 보수주의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이성주의적으로 접근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마음(생각)으로 사랑하지만 자주 마음(감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체험을 온전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을 체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이유 중의 일부는 고린도 교회에 대해 읽은 것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하나님을 체험했을 때, 그들은 지나친 행동을 했다. 어떤 사람은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기 계몽주의의 신자들은 통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결과 우리는 영적 체험을 외면하게 된 것이다.

 


  CH : 이성보다 감정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든 피 : 그러한 견해는 바울이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았을 잘못된 이원론(dichotomy)이다. 바울에게 있어 이성과 감정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찬미하고 영으로 찬미했다(고전 14;15).


  그는 둘 다 했다. 다만 공중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 아래 있는 사람들도 “적당하고 질서 잇게 하여” 자제하라고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개인 기도 때에는 방언 하는 것을 위시하여 상당히 자유롭게 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은 곳에서는 믿음의 감정적인 측면과 성령이 감정을 통해 하시는 일을 무시해왔다. 바울에게 이성과 감정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필요한 것이었다.

 


  CH: 기껏해야 극소수만이 방언이나 기적을 체험하는 현대의 경건한 교인들을 보았다면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고든 피: 그는 정말 놀라서 할 말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는 도대체 현대의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기독교로 계승되어 왔는가에 대해 입을 딱 벌릴 것이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 성령이 어떻게 해서 너희를 떠났느냐?”고 탄식했을 것이다.  바울은 진리를 전파하는 설교의 결핍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 모양이 되었느냐고 했을 것이다.

 


  CH: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웃음”(holy laughter)에 대해 바울과 초대 교회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고든 피: 초대교회 당시에 그런 일은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체험하거나 목격하지 못한 현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는, 그것이 성령의 자극에 의한 인간의 반응이든 성령이 친히 웃음을 자아내게 하신 것이든, 초대교회는 그것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인정했을 것이다. 성령은 웃음마저 자아내는 분이시기 때문이다.그러나 동물 소리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나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CH: 바울과 성령을 연구하면서 당신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인가?

 


  고든 피: 바울은 그리스도를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며, 그 열정은 그가 신학을 하기 이전에 기도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영적 실상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것을 체험한 사람이었다. 교회생활을 할수록, 나는 찬양과 경배에 대한 열정이 없는 기독교는 ‘바울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바울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끝나지 않는 신학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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