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신년 2강 / 이창무
서로 사랑하라
말씀/ 요한복음 13:1-38
요절/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진짜 위대한 변화
최근 가수 이찬혁 씨가 발표한 '멸종위기사랑'이라는 노래를 들어보셨나요? 가사가 참 서늘하고도 도발적입니다.
"왔다네 정말로, 아무도 안 믿었던 사랑의 종말론...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 사랑"
이 노래는 선포합니다. 이제 진짜 사랑은 끝났다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말이죠. 예전에는 한 사람당 하나의 진실한 사랑이 있었고, 가슴속에 불을 지피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는 절망적인 '사랑의 종말론'을 노래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이 가사가 단순한 노랫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넘쳐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온통 '나를 증명하기'와 '각자도생'뿐입니다. 남보다 화려한 곳에서 대접받는 것을 성공이라 믿고, "나 이만큼 대단하니까 무시하지 마!"라고 외치는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가사처럼, 상대를 위해 나를 태우는 '불이 만들어지는 사랑'은 사라지고, 오직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차가운 계산만 남았습니다. 세상은 이제 사랑의 종말을 고하며 묻습니다. "누가 여전히 사랑을 노래할 것인가?(Who's still gonna sing for the love?)"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3장에는, 멸종해가는 사랑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몸소 무릎을 꿇으신 한 분이 등장합니다.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어느 작은 다락방, 그곳에는 사랑의 종말이 아닌 '진짜 사랑의 혁명'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 군림하는 것이 상식이라 말하지만, 예수님은 그 삭막한 상식을 완전히 뒤집으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곧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을 아시고, 멸종 위기에 처한 이 땅의 사랑을 되살릴 결정적인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젖은 수건과 물대야를 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꼬질꼬질하고 냄새나는 발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긴다는 것, 우주의 주인이 노예의 일을 자처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이 만들어지는 사랑'의 진짜 실체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랑은 끝났을지 몰라도, 나의 사랑은 '끝까지' 간다"고 말이죠.
이제 이 젖은 수건 한 장으로 세상의 차가운 종말론을 깨뜨리신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세 가지 포인트로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완전한 사랑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서 '끝까지'라는 말, 들을 때마다 참 감동적이지 않나요? 단순히 시간적으로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사랑했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랑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끝판왕, 그러니까 자기 생명까지 탈탈 털어 다 주는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는 뜻이에요! 주님은 제자들이 곧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갈 거라는 걸 이미 다 알고 계셨거든요. 의리도 없고 겁쟁이인 제자들이었지만, 주님의 사랑은 그들의 연약함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어요. 이게 진짜 대단한 점이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주님의 움직임이 정말 드라마틱해요.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서', 권위를 상징하는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어요'.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시 발 씻기는 일은 가장 낮은 이방인 노예나 하던 일이었는데, 우주의 주인공이신 분이 그 더러운 발 앞에 무릎을 꿇으신 거예요!
한번 우리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볼까요? 우리가 진짜 멋지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어떤 건가요? 남들을 내 밑에 두고 마음대로 부리는 카리스마인가요?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진짜 권세는 달라요. 상대를 귀하게 대접하려고 내가 먼저 낮아지는 사랑의 힘이죠! 특히 예수님이 가룟 유다의 발 앞에 앉으셨을 때를 상상해보세요. 자기를 팔아넘길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의 발을 잡으셨을 때, 주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아마 "유다야, 제발 돌아와라... 너는 내 소중한 친구야"라고 속삭이듯 그 발을 닦아주셨을 거예요. 세상 권력은 배신자를 색출하고 처단하지만, 주님의 권세는 배신자의 발까지 씻겨주는 이런 '바보 같은 사랑'이 어디 있나요? 예수님은 이런 사랑으로 세상을 승리하셨습니다. 이 젖은 수건 한 장이 세상의 어떤 날카로운 칼보다 훨씬 강력해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우리가 이 사랑을 온전히 영접할 때 우리 삶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런 '낮아짐의 신비'를 생각할 때마다 제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부끄럽고도 감사한 기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우리 모임은 양들을 섬기기 위한 '런치 미팅'을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요즘처럼 배달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직접 밥과 국, 반찬을 커다란 통에 담아 낑낑거리며 들고 날랐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거운 국통을 들고 고려대학교 교양관 앞을 지나가는데, 그만 중심을 잃고 국통을 바닥에 통째로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뜨거운 국물이 사방으로 튀고, 고대생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와 그 광경을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제 평생 가장 창피한 순간이었습니다. 쏟아진 국물을 닦아내고 뒷정리를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괴롭던지, 속으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연말 요절 심포지움 때, 한 자매님의 발표를 듣고 저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그 자매님은 영적으로 깊은 방황을 하며 교회를 떠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교양관 앞을 지나다가 제가 국통을 쏟고 쩔쩔매는 장면을 본 것입니다. 자매님은 그 초라하고 창피한 모습 속에서, '저 목자님은 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국통을 쏟으면서까지 우리를 먹이려고 애를 쓰실까?'를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투박한 헌신 속에서 자신을 위해 낮아지신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을 발견하고 마음을 돌이켰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드셨던 '젖은 수건'의 능력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국통을 쏟은 저는 실패한 것이고 부끄러운 모습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부끄러운 현장을 통해 한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그 고백을 듣고 제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아, 가끔은 국을 좀 쏟아야 하나?' 하는 농담 섞인 생각까지 들더군요.
세상은 우리가 얼마나 완벽하고 높은 곳에 있는지를 보고 감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님을 닮아 얼마나 낮은 곳에서 '바보처럼' 헌신하는지, 그 진심 어린 사랑의 흔적을 보고 마음을 엽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온전히 영접할 때, 우리 삶은 비로소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연약함을 내어드리고 씻김 받는 영적인 관계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이 세족식이 우리 영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주 리얼하게 보여줘요. 예수님이 다가와서 발을 씻기려 하자 베드로가 깜짝 놀라며 소리치죠. "아이고 주님, 제 발은 절대 못 씻기십니다! 어떻게 주님이 이런 천한 일을 하세요?" 베드로 입장에서는 스승이 종처럼 구는 게 너무 민망하기도 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속마음엔 이런 생각도 있었을지 몰라요. '주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면 나도 나중에 자존심 다 버리고 남의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부담감 말이죠. 우리의 뻣뻣한 '자존심'과 '고집'이 주님의 은혜를 막아서는 장벽이 된 셈이에요.
이때 예수님이 아주 단호하고도 무서운 말씀을 하세요. "베드로야,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랑 나는 이제 아무 상관도 없는 거야!"(8절). 여기서 '상관없다'는 말은 그냥 "우리 이제 모르는 사람이야" 정도가 아니에요. 주님이 하늘나라에서 주실 영원한 상속과 축복, 그 모든 영광을 같이 누릴 자격이 없다는 뜻이죠. 주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얼마나 착하게 살고 대단한 업적을 쌓았느냐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주님, 저 진짜 엉망진창이에요. 주님이 저를 깨끗하게 안 해주시면 전 정말 소망이 없어요"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주님의 손길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과 '찐 가족'이 되는 거예요.
10a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예수님은 또 이런 재미있는 비유도 하세요.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돼." 여기서 '목욕'은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그 한 번의 큰 사건을 말해요. 하지만 '발을 씻는 것'은 구원받은 뒤에도 매일매일 세상에서 묻히게 되는 먼지 같은 죄들—누군가를 미워하고, 작은 거짓말을 하고, 교만한 생각을 했던 것들—을 날마다 주님 앞에 내어놓고 용서받아야 한다는 뜻이죠.
오늘 우리의 마음에는 어떤 먼지가 쌓여 있나요? 교회 오래 다니다 보면 내 허물을 교묘하게 감추고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는 기술만 늘기도 해요. 마치 깨끗한 양말 안에 더러운 발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주님과 진짜 가까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자존심 다 내려놓고 "주님, 저 오늘 또 이런 죄를 지었어요. 너무 부끄러운 제 발을 씻겨주세요"라고 정직하게 내어미는 거예요. 내 잘난 맛에 사는 걸 멈추고,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매일 경험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우리 모두가 꼭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러너스 겨울 방학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인 '양식과 기도 챌린지'는 단순한 출석 체크나 숙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매일 아침 주님의 물대야 앞에 내 인생의 더러워진 발을 내어미는 '영적 세족식'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거울 앞에 나를 비추어 내 발에 묻은 먼지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아, 내가 어제 그 형제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구나", "내가 주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했구나" 하고 내 영혼의 때를 발견하는 것이죠. 그리고 '기도'를 한다는 것은 주님께 내 발을 맡기는 행위입니다. "주님, 제가 오늘 또 이런 죄를 묻히고 왔습니다. 부끄러운 제 발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주십시오"라고 정직하게 고백하며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챌린지에 참여하며 단톡방에 나눔을 올리는 그 짧은 순간이 바로 여러분의 영혼이 주님과 '상관있는 사람'으로 회복되는 거룩한 현장입니다. 혼자 하면 금방 지치고 포기하고 싶지만, 함께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나아갈 때 우리 공동체 전체가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만 거룩한 척 양말 안에 더러운 발을 숨기고 사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 아침 주님 앞에 맨발로 서는 이 정직한 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양식과 기도'라는 젖은 수건으로 우리를 날마다 닦아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주님과 '찐 가족'으로서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방식대로 서로 사랑하는 삶
예수님이 보여주신 이 놀라운 사랑은 그냥 우리끼리 "와, 감동적이다" 하고 감상만 하라고 주신 게 아니에요. 주님의 사랑은 씻김 받은 우리 가슴에서 팡 터져 나와서,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되어야 하거든요. 세족식을 다 끝내신 뒤에 주님은 아주 중요한 "새 계명"을 주셨어요.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게 왜 '새로운' 계명일까요? 옛날 구약성경에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있었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사랑의 '기준'이 완전히 업그레이드됐어요! 예전에는 '나 자신을 아끼는 만큼' 사랑하면 됐는데, 이제는 '우리의 더러운 발까지 씻기신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이게 억지로 해야 하는 괴로운 숙제가 아니에요. 주님께 받은 그 엄청난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그 에너지가 우리 마음을 사랑의 자리로 막 떠미는 거예요. 은혜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하고 다이나믹한 즐거움인 거죠!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네 발을 씻겨줄게"라는 마음으로 섬길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어라? 저 사람들 봐! 진짜 예수님 제자 맞네!" 하고 단번에 알아보게 될 거예요(35절). 세상은 우리가 얼마나 화려한 프로그램을 돌리는지, 교회가 얼마나 웅장한지에는 별로 관심 없어요. 대신 우리가 서로를 위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바보 같은 사랑'을 베푸는지를 보고 깜짝 놀라죠.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심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에,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발을 씻겨주는 사랑이야말로 기독교를 증명하는 최고의 필살기 아닐까요?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을 거슬러 이 사랑의 법을 온전히 지켜내야 합니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주님은 "이걸 알고 진짜로 행하면, 네 인생에 진짜 행복이 찾아올 거야"라고 약속하셨어요.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돈이 많거나 성공해서 느끼는 그런 뻔한 게 아니에요. 남보다 잘나서 으스대는 기분보다, 낮아져서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때 느끼는 그 찡한 보람과 하늘의 평안을 말하죠. 우리는 참 약해서 오늘 결심해도 내일이면 또 짜증 내고 미워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먼저 씻겨주신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해봐요. 그 사랑의 힘으로 다시 한번 옆 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자리에 함께 서봅시다!
오늘, 당신의 수건은 어디 있나요?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3장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세 가지 사랑의 얼굴을 만났습니다.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믿어주시는 '포기 없는 사랑', 우리의 수치를 깨끗하게 닦아주시는 '씻어주시는 사랑', 그리고 우리도 그 길을 같이 걷자고 격려하시는 '흐르는 사랑'입니다.
지금 강대상 뒤 배경에 써있는 글귀가 보이시나요? "우리의 사랑이 흘러 생명을 살리고" 이 표어 안에는 오늘 본문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사랑은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야에서 시작된 그 겸손한 사랑이 제자들의 발을 적시고, 이제는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발씻겨 주시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나아갑시다. 2026년 한 해 동안 우리가 머무는 곳마다 이 '사랑의 심폐소생술'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세대 차이라는 벽,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편견을 넘어 우리가 먼저 무릎을 꿇읍시다. "나도 주님께 발 씻김 받은, 용서받은 죄인이지"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더 기쁘게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지친 마음을 진심으로 닦아줄 때, 세상은 멸종된 줄 알았던 사랑이 우리 안암 1부 공동체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흘러 생명을 살리는 이 위대한 역사가 2026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의 가정과 캠퍼스, 직장 위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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