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죄 사함을 받으라

이창무 2025. 2. 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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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사도행전 제 4 강 / 이창무

죄 사함을 받으라

말씀 / 사도행전 2:22-47
요절 /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교회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요? 어떤 분들은 햇살에 반짝이는 첨탑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찬송이 울려 퍼지는 예배당을, 어떤 분들은 따뜻한 식탁 교제의 웃음 소리를 떠올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람들이 북적이고, 화려한 프로그램이 가득하다고 해서 그곳이 정말 살아 있는 교회일까요? 그렇다면 교회보다 더 생동감 넘치는 곳은 콘서트 현장이겠지요. 줄 서는 인파와 눈길을 사로잡는 무대가 있으니까요.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선포한 복음의 메시지를 따라 살아 있는 교회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 보려 합니다. 2천 년 전,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에서 태동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선포되고, 성령의 역사가 생생히 나타나며,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교회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오늘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과,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을 함께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살아있는 교회는 진리의 복음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오순절에 전한 설교는 우리에게 복음적인 설교가 가져야 할 핵심 요소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외친 그 복음의 메시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첫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22)

베드로는 설교의 첫 마디에서부터 예수님의 출신을 언급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하찮게 여긴 그곳에서 자라난 예수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통해 세상을 뒤흔들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죽은 자를 살리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23)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이 갑작스럽거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고 증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 말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바로 예수님께 성취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가장 잔혹하고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4)

다음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사망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 깊습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산고를 의미합니다. 산모가 산고를 겪으며 생명을 탄생시키듯,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 부활의 새벽이 움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죽음이 그분을 붙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다윗의 예언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부연설명합니다. 다윗은 시편 16편에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예언이 다윗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죽어서 묻혔고, 그의 무덤은 지금도 그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무덤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유산을 기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그분의 부활을 증거하는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이 500명 이상이었습니다. 이 많은 이들의 일치된 증언은 어떤 ‘풀 HD 현장 라이브 방송’보다 더 강력한 부활의 증거였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늘로 올리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 일주일 만에, 하늘로부터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셨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다섯째, 예수님 앞에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36)

여기서 “주”라는 말은 예수님이 모든 만물의 주인과 통치자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야이자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가 전한 메시지는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너희가 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굉장히 도전적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에게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통해 복음적인 설교의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 살펴 보았습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복음적인 설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나 도덕적 본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자 약속된 구원자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또한 중심에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복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소망도, 생명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소망이자 믿음의 기반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공허한 환상이 되고말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우리를 고아처럼 남겨두지 않으셨다는 사실,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증언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배제한 설교는 단순한 강연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적인 설교는 회개를 요구합니다. 죄에 대해 직면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붙들게 만듭니다.

이 같은 복음적인 설교는 교회의 심장과 같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몸이 죽듯이, 복음 없는 설교는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갑니다. 강단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가 사라진다면, 그 교회는 영적으로 메말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메마른 교회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세상적인 가치와 트렌드가 강단을 채우고, 진리 대신 인기 있는 이야기가 교인들의 귀를 즐겁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회는 본질을 잃고 점점 쇠약해질 뿐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메시지는 종종 본질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적 이슈를 중심에 둔 설교, 기복 신앙에 물든 이야기, 혹은 단순히 마음을 달래는 힐링 메시지가 강단을 채우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 한 마디 따뜻한 말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메시지가 복음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은 그저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말이 아닙니다. 메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고, 죽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부활의 빈 무덤 앞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외치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영원한 소망을 증언하며,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고, 죄를 회개하도록 도전하는 설교가 계속해서 강단에서 울려 퍼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강단에서, 우리의 성경 공부 모임에서, 언제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울려 퍼지기를 기도합니다..그래서 복음의 심장이 뛰고 성령의 숨결이 우리 안에 가득한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살아있는 교회는 회개와 세례를 통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37)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마음 깊이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성령의 역사로 깨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 속에는 그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구원을 갈망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8)

이에 베드로는 구원의 길을 명확히 알려줍니다. 첫째,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것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결단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니, 우리 보고 세례를 받으라고? 이건 이방인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하며 당황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례를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라고 강력히 권면합니다.

베드로는 구원의 결과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합니다. 회개와 세례를 통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기만 하면 깨끗하게 죄를 씻음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39)

이어서 베드로는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이 약속이 너희와 너희 자녀, 그리고 모든 먼 데 사람들, 곧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국경도, 언어도, 시대도 초월하여,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약속 덕분입니다. 우리는 본래 “먼 데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살아있는 교회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41)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삼천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물에 담그느라 아마도 그날 예루살렘에선 물 부족 현상이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 삼천 명은 죄의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킨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란 단순히 교회에 이름만 올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또, 살아있는 교회는 매주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여러 활동에 참여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모습은 귀하지만, 그 자체로 살아있는 교회가 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살아있는 교회가 되는 건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군선교 현장에서 많은 장병들이 세례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살아있는 교회가 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상당수 초코파이의 힘, 불고기 버거의 힘으로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교회의 일원이 되는 길은 명확합니다. 먼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세례로 고백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으니, 이제 우리의 삶으로 응답할 차례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로서 말입니다! 어떤 삶으로 응답해야 하는지 역시 우리는 초대 교회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3.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사랑하고 예배하고 전도하는 곳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42)

삼천 명의 새로운 신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배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서로 교제하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떡을 떼며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이 네 가지—말씀, 교제, 성찬, 기도—는 초대교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첫째, 초대교회에서는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과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3)

사도들을 통해 병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며 단순히 놀라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사도의 복음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덕분에 초대교회는 말씀을 경외함으로 배우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놀라운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44-45)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자신들의 물건을 서로 통용했고, 필요한 이들에게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그들의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 사이에서 살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셋째, 초대교회는 하나님과의 교제, 성도의 교제에 힘을 썼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46-47a)

초대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이 교제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도 모여 음식을 나누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서로 교제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진정한 기쁨과 찬양이 가득했습니다. 그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 성도의 교제에서 오는 진정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칭찬과 존경이 이어졌습니다.

넷째, 초대교회는 선교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b)

이렇게 사랑과 나눔, 기쁨과 찬양으로 충만한 공동체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시며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사랑과 은혜를 자기들만의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갔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에게 빛을 비추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를 통해 살아있는 교회의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며 복음의 중심을 지켰고, 회개와 세례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으로 서로 사랑하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며 필요한 자를 돕는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말씀과 기도, 성찬과 찬양에 힘쓰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으로 숨 쉬고 성령의 역사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교회는 과연 살아있는 교회인가요? 복음의 심장은 뛰고 있습니까? 성령의 숨결이 우리의 예배와 삶 속에 살아 있습니까? 초대교회처럼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가 선명히 선포되고 있습니까? 살아있는 교회는 복음을 중심으로 삼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으로서 이 본질을 얼마나 잘 지켜가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며, 사랑과 나눔이 넘치는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교회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복음의 통로로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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