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이창무 2025. 1. 26. 13:25
반응형

2025년 사도행전 제 3 강 / 이창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 / 사도행전 2:1-21
요절 / 사도행전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이 분이 누구인지 알아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이분이 없으면,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분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분을 떠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성령님입니다. 호흡이 없는 육체가 죽은 몸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없는 교회는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던 것처럼 교회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첫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오순절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강림하신 그날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사건이 오늘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도 뜨거운 성령의 바람이 불어 오기를 소망합니다.

1.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새롭게 됩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1-3)”

오순절 날, 제자들은 다같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하늘에서 불어온 강렬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을 휘감았습니다. 동시에 타오르는 불의 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춤추듯 자리 잡았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이 자리에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강력하게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제자들 마음속 깊은 곳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의 불씨를 점화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 많은 날 중에 왜 오순절을 택하여 오셨을까요? 오순절은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로, 원래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죄로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해 율법 대신 성령의 법을 주시겠다는 새 언약을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때가 되면 더 이상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 법을 기록하겠다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힘을 주시겠다고 예고하셨습니다. 이 날은 바로 이 새 언약이 성취된 날이었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강렬한 바람처럼, 불길처럼 우리 심령 속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최근 LA 지역에서 대규모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번 산불로 약 16,000채의 건물이 파괴되면서 경제적 손실만 28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강한 바람과 건조한 기후가 불을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속에서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위력적인 강풍이 불어닥친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하여 그 사상과 가치관과 철학을 뿌리부터 변화시키고, 마침내 인류역사의 흐름마저 바꾸어 버린 대변혁의 사건이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사람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중에 미국의 2차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던 찰스 피니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원래 법을 공부하며 변호사로 활동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적이고 논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던 찰스 피니는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못하고 있는 내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답을 찾지 못해 답답했던 그는 뉴욕주 아담스의 숲속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의 표현에 따르면 “성령의 불”이 그의 온 존재를 감싸 안으며 깊은 평화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다는 강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후 그는 변호사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복음 전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울고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약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미국 전역에서 영적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메마른 사막에 내리는 단비처럼, 죽은 땅을 새롭게 하고 생명의 꽃을 피워내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우리를 통해 흘러가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또 다른 사람의 삶을 새롭게 하고, 결국엔 공동체 전체가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물론 바람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바람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길, 우리의 마음과 이 땅이 새롭게 되길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닫혀 있던 마음의 창문, 불평과 원망으로 꽉 닫힌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바람이 들어와 우리를 변화시키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바람 속에서 우리는 다시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바람으로 우리와 이 시대를 흔들고 깨우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장벽을 넘어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오순절 날, 성령께서 강림하시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날 예루살렘은 동쪽의 바대인과 메대인, 엘람인에서부터 북아프리카와 로마에 이르는 광활한 땅에서 온, 각기 다른 언어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자들이 그들이 온 나라 각자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전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7-8)

갈릴리 사람들은 발음이 투박하고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기에, 한 마디로 촌놈으로 여겨졌기에 이 일이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왜 성령이 임하시자 마자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께서 하신 일을 두고,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 때 주어졌던 저주를 완전히 뒤집는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기 이름을 높이려 했습니다. 교만한 죄인들이 높아지려고 하자,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 온 세상에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일을 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증인들을 통해 그 흩어진 민족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려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마다 이렇게 언어의 장벽을 넘어 복음이 전달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는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캐리는 32세에 인도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는 성령이 주신 특별한 언어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벵골어, 힌디어, 산스크리트어 등 무려 30개 이상의 언어와 방언을 배워 이 언어들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도 그 어눌한 입술을 통해 어떻게 현지어로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세웠는지, 이는 성령의 신비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이 사건을 경이롭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13)

몇몇 사람들은 비웃음을 흘리며, 제자들의 말을 새 술에 취한 헛소리로 치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제자들은 명확한 발음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성령께서 함께하신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성령을 통해 다양한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전했던 사건은, 단순한 ‘언어의 기적’을 넘어 모든 장벽이 허물어지는 은혜의 역사가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요즘 우리가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이 안 통할 때가 많습니다. 같은 한국어인데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애들 왜 이렇게 고생을 모르냐?“라는 말에 젊은 세대는 억울함을 느끼고, “아, 말귀를 못 알아들이시네”하는 말에 부모님 세대는 서운함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네가 더 노력하면 되잖아”라는 말이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던지곤 합니다. 노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벽을 더 두껍게 만들 뿐입니다. 결국, 각자가 처한 상황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을 들어도 다르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은 그러한 벽들을 무너뜨리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완벽한 언어 능력이나 전문적인 설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간극을, 성령께서 부드럽게 연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할 때,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던 벽들이 서서히 녹아 내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나 다르지만 하나가 될 수 있구나!”라고 놀라게 됩니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다음 강의에서 다룰 초대 교회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관계의 벽이 느껴질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앞으로 우리 얼굴 안 보고 삽시다.” 이렇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우리는 성령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성령님, 제가 저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 보여 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당장 하나가 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놓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여 열린 공동체, 화해의 공동체, 소통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비전과 참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제자들을 보며 “저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나 봐!“라고 비웃는 걸 들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당황하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차분하고 강력하게 그들의 오해를 풀어줍니다.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15-16)

이른 아침은 유대인들이 금식과 기도로 하루를 열며 경건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술에 취했다는 의심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더 중요한 얘기를 시작합니다. “이건 우리가 그냥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선지자 요엘이 예언했던 바로 그 일입니다!” 어떤 예언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17-18)

여기서 말세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재림하기 전까지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강림한 지금이 바로 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때에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모든 사람”입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신분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이건 구약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꿉니다. 여기서 예언, 환상, 꿈은 모두 하나님의 비전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쇼츠만 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원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지혜로운 꿈을 꾸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함께 이뤄가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정말 가슴 뛰고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왜 이런 비전이 필요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가치 있게 쓰이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목표들은 우리를 순간적으로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를 주지는 못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를 더 큰 목적을 위해 살게 합니다. 비전은 마치 우리 삶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비전을 심어주실 때, 우리는 단순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를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삶이 살맛 나는 삶입니다. 아무 꿈도 비전도 없는 삶은 영적으로 죽은 삶입니다.

지난 주에 이번 전국 학생 수양회에서 메신저로 세움 받은 한 자매 목자님이 안암에 와서 1박 2일 동안 메시지 훈련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이분은 어릴 적부터 배운 바이올린으로 음악가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예고에 들어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예상치 못한 입시 실패와 재수라는 큰 좌절을 겪었습니다. 이후 독일에서 유학의 길을 개척해 보려 했지만, 이또한 녹록치 않았습니다. 독일 생활은 광야와 같았습니다. 의지할 곳 없이 어려움 속에서 어느날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찬양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누리는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교육과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전, 고등학교 때 하나님께서 구령대 위에서 말씀을 전하는 꿈을 자신에게 주셨던 것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캠퍼스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로 복음 전파를 시작했고, 청년부와 함께 전도데이를 계획하며 캠퍼스의 영혼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결과 13명의 새로운 학생들이 교회에 초청 받아 오는 놀라운 열매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 목자님은 처음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렸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이분의 시선을 하나님의 꿈으로 돌리셨고, 그 안에서 더 큰 기쁨과 사명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이번에 말씀 강사가 되어 구령대 위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던 이분의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디 이 한 분 뿐이겠습니까? 이번 전국 학생 수양회 가운데 참석한 모든 학생들에게 성령님이 강력하게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비전을 보고 꿈을 꾸는 청년 세대가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19-21)

피와 불과 연기. 이런 기사와 징조는 출애굽기를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열 가지 재앙을 통해 바로를 치셨습니다.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흑암재앙 때는 해가 어두워지게 하셨습니다. 이로서 바로가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당히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제2의 출애굽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것처럼, 성령 강림 사건은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했습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짓누르고,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죄와 싸울 힘을 얻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때로는 책망하시며, 무엇보다도 승리할 수 있는 힘과 비전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본 오순절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자,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그날, 제자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담대함을 입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복음의 메시지는 언어와 민족의 장벽을 초월하며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새로운 언약의 성취였고, 모든 민족과 열방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도록 이끄십니다. 또한 우리를 담대하게 하시며,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증언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복음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소식을 전하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충만하게 임재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령님께서 서로 간의 장벽을 허물어 주시고, 사랑과 소통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우리의 입술과 마음을 열어 복음의 능력을 전하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도록 사용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반응형